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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천 년을 이어져온 논쟁, 합종책이냐, 연횡책이냐 >>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 중반, 진(秦)나라가 최대강국(最大强國)으로 부상하면서 중국 대륙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특히 진(秦)나라는 경쟁관계에 있던 전국시대의 여섯 제후국(한·위·조·초·연·제)과 천하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외교 전쟁을 벌여야 했다.
춘추시대를 연이어 전국시대가 시작되자 각 제후국의 제후들을 찾아 합종연횡(合縱連橫)이라는 외교책(外交策)을 주장하며, 중국 대륙을 누비고 다닌 종횡가(縱橫家)라는 새로운 사상가들이 등장했다. 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는 전혀 다른 '세력 판도'를 보였다.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오는 동안 멸망한 제후국만 52개국이었다. 춘추시대의 최강대국이었던 진(晋)나라 역시 유력 귀족 가문인 한씨(韓氏)·조씨(趙氏)·위씨(魏氏)에 의해 멸망당했다. 이들 세 귀족 가문은 각각 한(韓)나라·조(趙)나라·위(魏)나라를 건국했다. 중국 역사에서는 진(晋)나라가 멸망하고 이들 세 나라가 제후국을 세운 기원전 453년을 춘추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가 시작하는 해로 본다(일부 역사학자는 천자국인 주(周)나라가 이들 세 나라를 제후국으로 정식 승인한 기원전 403년을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 세 제후국은 제(齊)나라·초(楚)나라·연(燕)나라·진(秦)나라와 함께 전국7웅(戰國七雄), 즉 전국시대의 일곱 강대국을 이루게 된다. 그 외에도 수십 개의 제후국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명맥만 유지하는 소국(小國)의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 중반, 전국시대의 세력 판도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그 이유는 중국 대륙의 서쪽 변방에 위치한 -땅덩어리만 컸지 그다지 국력이 강하지 못했던- 진(秦)나라가 제25대 제후인 효공(孝公 : 재위 기원전 362년∼기원전 338년) 때 상앙(商鞅)을 등용하여 실시한 변법개혁(變法改革)의 성공을 시작으로 초강대국(超强大國)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진(秦)나라의 동쪽으로의 영토 확장과 진(秦)나라의 침략과 정복을 저지하려는 여섯 제후국들 간에 치열한 전쟁과 외교가 벌어지게 된다. 당시에는 침략과 정복 전쟁 못지않게 진(秦)나라를 중심으로 한 각 제후국들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꾀하는 외교전(外交戰) 또한 활발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등장한 정치 사상가들이 바로 종횡가(縱橫家)였는데, 이들은 '합종책(合縱策)'과 '연횡책(連橫策)'이라는 외교 전략을 사용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합종책과 연횡책은 전국시대에 활동한 종횡가 중 귀곡자(鬼谷子) 밑에서 동문수학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에게서 나온 것이다.
합종책(合縱策)은 동주(東周) 낙양 출신의 소진이 주장한 것으로, 진(秦)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6국(한·위·조·초·연·제나라)이 정치·군사동맹을 맺는 외교 전략을 말한다. 이 합종책 때문에 진(秦)나라는 15년 동안 중국의 동쪽, 즉 중원으로 진출할 수 없었다. 소진은 제(齊)나라로 가서 귀곡자(鬼谷子)에게 배운 후 먼저 진(秦)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을 만나 6국(六國)을 제압해 천하 통일을 이루는 방책을 유세(遊說)했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6국(六國)의 제후들을 차례로 만나 진(秦)나라에 대항하는 정치·군사동맹을 맺도록 설득했다.
진(秦)나라를 떠난 소진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진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조(趙)나라였다. 그러나 당시 조나라의 실권자인 봉양군(奉陽君)은 소진을 탐탁지 않게 여겨, 소진은 중국 대륙의 동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연(燕)나라의 문후(文侯)를 찾아가 조나라와 합종(合縱)하라고 유세(遊說)했다. 조나라를 설득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자, 우선 조나라와 이웃하고 있는 연나라의 제후를 설득해 조나라를 꼼짝달싹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과 요동, 북쪽으로 임호와 누번, 서쪽으로 운중과 구원, 남쪽으로 호타하와 역수가 있습니다. 영토는 사방 2,000여 리, 군사는 수십만 명, 전차가 600승(乘), 말이 6,000필, 식량은 몇 년을 견딜 수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갈석과 안문처럼 물자가 풍부한 곳이 있고, 북쪽으로는 대추와 밤이 풍부하게 생산되어 백성들은 밭을 갈지 않아도 넉넉하게 살 수 있습니다. 생활이 평안하고 무사해 전쟁의 참화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이어서 하늘이 내려준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왕께서는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연나라가 외적의 공격을 받지 않고 피해를 입지 않는 이유는 바로 조(趙)나라가 연(燕)나라의 남쪽을 막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秦)나라와 조(趙)나라는 다섯 번 싸워 진나라가 두 번, 조나라가 세 번 이겼습니다. 이 때문에 진나라와 조나라는 모두 황폐해졌고, 왕께서는 연나라를 지키면서 그 배후를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연나라가 외적의 침략을 당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또한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려면 운중과 구원을 넘어 대와 상곡을 지나 수천 리의 행군(行軍)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래서는 진나라가 연나라의 성을 점령한 후, 그 어떤 계책을 써도 성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해 해치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나라가 연나라를 친다면, 군사 동원 명령을 내린 지 열흘도 안 되어 군사 수십만 명이 동원(東垣)에 진을 치고 호타하와 역수를 건넌 후 4∼5일도 되지 않아 연나라의 도읍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면 천 리 밖에서 싸워야 하는 반면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면 백 리 안에서 싸우게 됩니다. 백 리 안의 근심거리가 되는 조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천 리 밖의 진나라를 중시한다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왕께서 조나라와 합종(合縱)하여 친교를 맺을 것을 권하는 것입니다. 천하가 합종(合縱)으로 뭉친다면, 연나라의 근심거리는 사라질 것입니다.
소진의 유세(遊說)에 깜빡 넘어간 연나라의 문후는 소진에게 금은보화를 주어서 조나라로 보냈다. 이때에는 이미 봉양군이 죽고 난 후여서, 소진은 직접 조나라의 제후왕인 숙후(肅侯)를 만나 유세했다. 여기에서 소진은 진(秦)나라를 섬겨 평화를 얻자고 주장하는 외교가들을 비판하면서, 여섯 나라가 하나로 힘을 합해 진나라에 맞서자고 주장한다.
저는 조나라와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두 가지 대책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하나는 '천하와 합종(合縱)하여 진(秦)나라를 적국으로 대할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연횡(連橫)하여 진나라에 항복할 것인가'입니다. 왕께서 진심으로 제 의견을 들어 주신다면, 연나라는 모직물·갖옷·개·말 등이 생산되는 땅을 바칠 것이고, 제나라는 물고기와 소금이 생산되는 땅을 바치게 하고, 초나라는 귤과 유자를 생산하는 땅을 바치게 할 것입니다. 또 한나라와 위나라 그리고 중산국(中山國)은 모두 땅을 바치고, 왕의 친척과 부형들 모두 영지를 받아 제후에 봉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왕께서 진나라와 손을 잡는다면, 진나라는 틀림없이 한나라와 위나라를 약화시킬 것입니다. 반대로 제나라와 손을 잡는다면, 제나라는 반드시 초나라와 위나라를 약화시킬 것입니다. 위나라가 약해지면, 위나라는 하외(河外)의 땅을 갈라 진나라에 바칠 것입니다. 한나라가 약해지면, 한나라는 의양(宜陽)의 땅을 진나라에 바칠 것입니다. 의양(宜陽)이 진나라의 땅이 되면 상당(上黨)에 이르는 길이 끊어지고, 하외(河外)가 진나라의 땅이 되면 상군으로 통하는 길이 막히게 됩니다. 또 초나라가 약해지면 조나라는 도움 받을 곳을 잃게 됩니다. 이 세 가지 대책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신이 천하의 지도를 놓고 살펴보았습니다. 제후들의 영토는 진나라보다 다섯 배나 크고, 제후의 병사들은 진나라보다 열 배나 많습니다. 여섯 나라가 하나가 되어 힘을 합해 진나라를 공격하면, 진나라는 반드시 패배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왕께서 서쪽을 향해 진나라를 섬긴다면, 진나라의 신하가 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다른 사람을 깨뜨리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깨지는 것, 또 다른 사람을 신하로 삼는 것과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는 것을 어떻게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연횡책(連橫策)을 주장하는 정치가들은 모두 제후들의 영토를 쪼개 진나라에 바치고자 합니다. 진나라가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는 목적을 달성하면 궁전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고 온종일 생황과 거문고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앞으로는 누대와 궁궐과 큰 수레가 있고, 뒤로는 미인이 있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것입니다. 연횡책을 주장하는 정치가들은 자신의 조국이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도 고향 사람들과 근심을 함께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진나라의 권세에 의지해 제후들을 위협해 영토를 떼어주자고 요구할 것입니다.
제가 왕을 위해 계책을 생각해본다면, 여섯 나라가 하나로 합해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 최상의 대책입니다. 여섯 나라의 장군과 재상들을 원수(洹水)가에 모이도록 해 인질을 교환하고 백마를 죽여 다음과 같이 맹세하십시오.
"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면 제나라와 위나라는 즉시 정예부대를 보내 초나라를 돕고, 한나라는 진나라의 식량 보급로를 끊고, 조나라는 황하와 장수를 건너고, 연나라는 상산 북쪽을 지킨다. 진나라가 한나라 혹은 위나라를 공격하면 초나라는 진나라의 배후를 끊고, 제나라는 정예부대를 보내 한나라와 위나라를 돕고, 조나라는 황하와 장수를 건너고, 연나라는 운중을 지킨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면 초나라는 진나라의 배후를 끊고, 한나라는 성고를 지키고, 위나라는 하내의 길을 막고, 조나라는 황하와 장수를 건너 박관으로 가고, 연나라는 정예부대를 보내 제나라를 돕는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면 조나라는 상산을 지키고, 초나라는 무관에 군대를 보내 머무르고, 제나라는 발해를 건너고, 한나라와 위나라는 함께 정예부대를 보내 출병시켜 연나라를 돕는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면 한나라는 의양에 군대를 보내 머무르고, 초나라는 무관에 병사를 보내 진을 치고, 위나라는 하외의 땅에 군대를 머물게 하고, 제나라는 청하를 건너고, 연나라는 정예부대를 출병시켜 조나라를 돕는다. 만약 이 맹약을 어기면, 다섯 제후들의 군대가 힘을 합쳐 공동으로 그 나라를 공격한다."
여섯 나라가 합종(合縱)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면, 진나라의 군대도 더 이상 함곡관을 나와 산동을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소진의 유세에 설복당한 조나라 숙후는, 소진에게 수레 100승(乘), 황금 2만 냥, 백옥 100쌍, 비단 1,000필을 주어 각 나라의 제후들과 합종(合縱)의 맹약을 맺도록 했다. 조나라를 떠난 소진이 찾아간 곳은 한(韓)나라의 선왕(宣王)이었다. 선왕(宣王) 역시 어렵지 않게 설득시킨 소진은 위(魏)나라의 양왕(襄王), 제나라 선왕(宣王)을 차례차례로 찾아가 합종(合縱)의 맹약을 받아냈다. 다섯 나라의 제후로부터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합종(合縱)의 약속을 받은 소진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중국 대륙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이었다. 당시 초(楚)나라는 강대국(强大國)으로서, 진(秦)나라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만약 초(楚)나라가 합종(合縱)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소진이 추진한 합종책(合縱策)은 실패나 다름없게 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소진은 다른 제후국에서의 유세와 다르게, 합종책이 진나라의 위협에 대한 대책일 뿐만 아니라 초나라가 나머지 다섯 나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는 것을 특별히 강조했다.
진나라가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는 업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물로 여기고 있는 나라가 초나라입니다. 초나라가 강해지면 진나라가 약해지고, 진나라가 강해지면 초나라가 약해집니다. 따라서 두 나라는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왕을 위해 생각해보건대, 여섯 나라가 합종(合縱)하여 친교를 맺고 진나라를 고립시키는 것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습니다. 왕께서 합종책(合縱策)을 쓰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군대를 둘로 갈라 하나는 무관으로 출동시키고 다른 하나는 검중으로 내려올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언(鄢) 땅과 초나라의 도읍지인 영(郢)은 크게 동요할 것입니다.
저는 '모든 일은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리고, 해로운 일은 발생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재앙이 닥친 후에 근심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대왕께서 저의 의견을 받아들이신다면, 저는 산동의 여러 나라들이 일년 내내 예물을 바치고, 대왕의 명령에 복종하고, 종묘사직을 초나라에 맡기고, 병사들을 잘 훈련시켜 대왕의 지휘에 따르도록 만들겠습니다. 또한 여섯 나라의 절묘한 음악과 미인이 반드시 대왕의 후궁에 가득 차고, 연나라와 대(代)나라에서 나오는 낙타와 명마(名馬)가 반드시 대왕의 마구간에 가득 차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합종(合縱)이 이루어지면 초나라가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고, 연횡(連橫)이 이루어지면 진나라가 천하의 제왕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는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는 대업(大業)을 버리시고, 진나라를 섬기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고자 하십니다. 저는 왕에게 그것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체로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나라로 천하를 먹어치우려는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나라는 천하의 원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횡책(連橫策)을 주장하는 정치가들은 모두 제후들의 영토를 쪼개 진나라를 섬기고자 합니다. 이것은 '원수를 길러 보복을 당하는 길'입니다. 그들은 신하된 자로서 자기 나라 임금의 땅을 쪼개 밖에 있는 강하고 흉악한 호랑이나 이리 같은 진나라와 친교를 맺어 천하를 침략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자신의 나라가 진나라 때문에 전쟁의 참화를 입어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밖으로는 진나라의 권세와 위력을 믿고, 안으로는 자신의 군주를 위협하여 토지를 나누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대역불충(大逆不忠)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합종이 성공해 친교를 맺게 되면, 제후들은 영토를 떼어 바치며 초나라를 섬길 것이고, 연횡이 성공하면 초나라의 영토를 쪼개 바치면서 진나라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계책은 진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 때문에, 조나라 왕께서는 저를 보내 계책을 대왕께 말씀드려 확실한 약속을 받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초나라의 위왕(威王)은 은근한 '협박'과 달콤한 '약속'을 동시에 던지는 소진의 세치 혀에 결국 합종의 맹약을 하게 된다. 초나라를 마지막으로 여섯 나라 제후의 합종 맹약을 이끌어 낸 소진은, 마침내 합종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직하는 최고의 권세가로 탈바꿈했다. 소진은 여섯 나라 제후국의 '재상의 도장(相印 : 상인)'을 지니고 다니는 한편 스스로를 무안군(武安君)이라고 부르며, 무한한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절대 권력과 부귀영화는 합종책(合縱策)이 장의(張儀)가 주장한 연횡책(連橫策)과의 외교전(外交戰)에서 무참하게 패배함으로써 한순간 사라져버리게 된다.
연횡책은 전국시대 위(魏)나라 출신인 장의(張儀)가 6국의 정치·군사동맹인 합종책을 깨뜨리기 위해 주장한 것으로, 진(秦)나라가 여섯 제후국과 개별적으로 정치·군사동맹을 맺는 외교 전략을 말한다. 즉, 진(秦)나라가 6국과 개별적인 외교 관계를 맺어 침략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신들을 섬기도록 한 외교술이다.
장의(張儀)는 합종책을 주장한 소진과 함께 귀곡자(鬼谷子)에게서 유세술(遊說術 : 종횡가의 외교술)을 배웠다. 서로 적대적인 외교 전략을 추구했던 소진과 장의는 동문수학한 사이였는데, 일찍부터 소진은 자신이 장의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귀곡자로부터 종횡가의 외교술을 모두 배운 후, 장의는 소진과 마찬가지로 제후를 찾아가 유세(遊說)를 하고자 했다. 그가 맨 먼저 찾아간 곳은 초(楚)나라였다. 그러나 초나라의 재상(宰相)과 술을 마시다가, 구슬을 훔친 도둑의 누명을 쓰고 흠씬 얻어맞기만 하고 쫓겨났다. 그 후, 그는 동문수학한 소진의 계책에 빠져 진나라로 갔는데, 그곳에서 마침내 혜문왕(惠文王)을 만나 자신의 외교술인 연횡책(連橫策)을 펼 수 있었다.
합종책을 깨뜨리기 위해 장의가 가장 먼저 손을 쓴 나라는 진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던 위(魏)나라였다.
제후들이 합종(合縱)의 맹약을 하는 이유는 장차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임금을 높이고, 군사들을 강하게 하여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합종(合縱)을 주장하는 정치가들은 천하의 제후들을 하나로 합해 형제의 의(義)를 맺고, 원수(洹水)가에서 백마(白馬)를 죽여 그 피를 나누어 마시고 서로의 결속을 지키자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부모를 가진 형제 간에도 서로 재물을 다투는 법인데, 사기와 배반을 일삼는 소진(蘇秦)의 술책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루어질 수 없음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만일 왕께서 진나라를 신하의 예(禮)로 섬기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군사를 동원해 하외(河外)를 공격하고, 권(卷)·연(衍)·연(燕)·산조(酸棗)에 의지해 위나라를 위협하여 양진(陽晋)을 공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나라는 남쪽으로 내려와 위나라를 돕지 않을 것입니다. 조나라가 남하(南下)하지 않는다면 위나라도 북상(北上)하여 돕지 않을 것입니다. 위나라가 북상(北上)을 못해 조나라와 연락이 안 되면, 합종(合縱)의 방법은 끊어질 것입니다. 합종의 방법이 끊어진다면, 왕의 나라는 위태로움을 도저히 모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제압하고 위나라를 공격한다면, 한나라는 진나라를 두려워해 복종할 것이고, 진나라와 한나라가 한편이 되면 위나라의 멸망은 한순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대왕의 나라를 걱정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생각해보건대, 왕을 위해서는 진나라를 섬기는 것보다 더 좋은 계책이 없습니다. 왕께서 진나라를 섬긴다면, 초나라와 한나라가 감히 위나라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초나라와 한나라의 근심이 없다면, 왕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고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라도 반드시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약화시키고자 하는 나라는 초나라뿐이고, 초나라를 약화시킬 수 있는 나라는 위나라뿐입니다. 세상에서는 초나라가 부유하고 강대한 나라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초나라 군사가 많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경솔해 패배하기 쉽고 또 싸움에 대한 끈기도 부족합니다. 위나라의 군사를 모두 동원하여 남쪽을 향해 초나라를 공격한다면, 분명히 승리할 것입니다. 초나라 영토를 쪼개 위나라에 더하고, 초나라 영토를 갈라 진나라에게 더해주면, 재앙을 초나라에 돌려서 자신의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왕을 위해 좋은 계책입니다.
만약 왕께서 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무장한 군사를 동원해 동쪽으로 위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진나라를 섬기고자 해도 이미 때가 늦을 것입니다. 합종(合縱)을 주장하는 정치가들은 호언장담(豪言壯談)만 할 뿐이어서 믿기가 힘듭니다. 한 사람의 제후만 설득하면 후(侯)에 봉해지므로, 천하의 유세객(遊說客)들은 모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팔을 걷어 올리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 합종의 이익에 대해 말하면서 임금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제후가 그들의 교묘한 말을 현명하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현혹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가벼운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를 가라앉게 하고, 가벼운 물건이라도 모아 수레에 실으면 축(軸)을 부러뜨리고,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일 수 있고, 여러 사람의 비난이 쌓이고 쌓이면 뼈까지 녹인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왕께서는 충분히 살핀 후, 계책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장의는 초나라 회왕에 의해 감옥(監獄)에 갇히는 수난을 겪지만, 결국 합종(合縱)을 깨도록 설득한 다음 곧바로 한나라로 가 연횡책(連橫策)을 받아들여 진나라를 섬기도록 했다. 그 후, 진나라로 간 장의는 혜문왕으로부터 다섯 고을을 식읍(食邑)으로 받고 무신군(武信君)에 봉해지는 영광을 누린다. 혜문왕은 다시 장의를 동쪽의 강대국인 제(齊)나라로 보내 민왕을 설득하도록 했다.
천하에 존재하는 강대국(强大國)으로 제나라 이상 가는 나라는 없습니다. 제나라의 대신이나 왕족들은 숫자도 많고 부유하며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을 위해 계책을 짜는 자들은 모두 한때의 이익만을 돌아볼 뿐 백대의 이익은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합종(合縱)을 주장하는 자들은 "제나라는 서쪽으로 강대하면서 우호적인 조나라가 있고, 남쪽에는 한나라와 위나라가 있습니다. 또 바다를 등지고 있는데다 영토는 넓고 크며, 백성은 많고, 병사들은 강하고 용감하여 백 개의 진나라가 있다 하더라도 제나라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왕을 설득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그 말을 현명하다고 여겨 그 실제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합종(合縱)을 주장하는 자들은 도당(徒黨)을 만들어 한패가 되어서는 합종(合縱)에 관한 일이라면 모두가 옳다고 합니다.
저는 제나라와 노나라가 세 차례 싸워 노나라가 세 번 모두 승리했지만, 노나라는 위태로워져 결국 멸망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왜 그렇습니까? 제나라는 대국(大國)이고 노나라는 소국(小國)이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와 조나라의 관계 역시 제나라와 노나라의 경우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나라와 조나라는 황하와 장수 부근에서 싸웠는데, 두 번 싸워 조나라가 두 번 모두 승리했습니다. 조나라의 파오 성 밑에서도 두 번 싸워 조나라가 모두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이 네 차례의 싸움으로 조나라는 수십 만의 병사를 잃었고, 도읍지인 한단(邯鄲)만을 겨우 지킬 수 있었을 뿐입니다. 조나라는 싸움에서 모두 이겼다는 명예는 얻었을지 몰라도 나라는 이미 모두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왜 일까요? 진나라는 강국(强國)이고 조나라는 약소국(弱小國)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나라와 초나라는 서로 공주를 시집보내고 며느리를 데려오는 형제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나라는 진나라에 의양을 바치고, 위나라는 하외를 내놓았으며, 조나라는 민지에 입조(入朝)하여 하간 땅을 쪼개 주며 진나라를 섬기고 있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한나라와 위나라를 시켜 제나라의 남쪽을 공격하고, 조나라의 모든 군대를 총동원해 청하를 건너 박관을 향해 쳐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나라의 도읍지인 임치(臨淄)와 즉묵은 더 이상 대왕의 영토가 아닐 것입니다. 제나라가 일단 공격을 받은 후에는 진나라를 섬기고자 해도 어려울 것입니다.
장의의 '협박' 반 '회유' 반에 설득당한 제나라의 민왕은 결국 진나라를 섬기는 연횡(連橫)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제나라를 떠난 장의는 서쪽으로 가 조나라의 왕을 설득하고, 다시 북쪽의 연나라로 가서 진나라를 섬기도록 했다. 이로써 장의는 여섯 나라 모두가 진나라를 섬기는 연횡책(連橫策)을 완성했다. 그러나 연나라를 떠난 장의가 미처 진나라의 도읍지인 함양(咸陽)에 도착하기 전에 혜문왕(惠文王)이 죽고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르는 변화가 발생했다. 그런데 무왕(武王)은 태자 시절부터 장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섯 나라의 제후들은 무왕과 장의의 사이가 나쁘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연횡(連橫)을 포기하고 다시 합종(合縱)을 맺었다. 그 후에도 진나라와 여섯 나라는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을 되풀이하면서 치열한 외교 전쟁을 치렀다.
그런데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의 외교술은 진나라 무왕(武王)의 다음 대(代)를 이은 소양왕(昭襄王) 때, 재상을 지낸 범저(范雎)에 의해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합종책이 진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한 6국 연합의 외교술이었다면, 연횡책은 6국 연합의 침공을 막기 위한 진나라의 외교술이었다. 따라서 합종책과 연횡책은 다분히 방어적인 성격이 강한 외교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진나라는 연횡책(連橫策) 덕분에 6국 연합을 깨뜨리고, 여섯 나라가 모두 진나라를 섬기도록 했지만 초강대국인 진(秦)나라를 달가워하지 않는 6국의 끊임없는 견제와 의심을 받았다. 이 때문에 진나라와 여섯 나라의 '이합집산'은 계속해서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는 패자(覇者 : 제후왕의 우두머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여섯 나라의 제후들을 굴복시킬 수는 있었으나, 연횡책은 진나라와 여섯 나라의 정치·군사적 긴장과 대치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지는 못했다. 연횡책으로는 진나라가 꿈꾼 천하 통일을 이루기 힘들었다. 범저는 바로 이 점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범저가 연횡책을 버리고 수립한 외교 전략은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다. 이 외교 전략은 당시 전국시대의 세력 판도를 뒤집어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란, 글자 뜻 그대로 진나라와 비교적 거리가 떨어져 있는 3국, 다시 말해 제나라·연나라·초나라와는 좋은 사이로 지내고,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3국, 즉 위나라·한나라·조나라는 무력을 사용해 침략한다는 외교 전략이다.
양후(穰侯)가 한(韓)나라와 위(魏)나라의 영토를 넘어서 제(齊)나라의 강수를 공격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소수의 병력을 보내면 제나라의 국력을 약화시킬 수 없고, 다수의 병력을 보내면 진나라의 국력이 약화될 것입니다. 제 생각에, 왕께서는 진나라 병사를 최대한 적게 보내고, 한나라와 위나라 병사를 최대한 많이 동원시키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올바르지 않은 방법입니다. 지금 동맹국인 제나라와 좋게 지내지 못한다고 하여, 다른 나라의 영토를 지나가면서까지 공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이겠습니까? 계책치고는 지나치게 약점이 많습니다.
옛날 제나라의 민왕은 남쪽으로 초(楚)나라를 공격해, 제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장군을 죽였습니다. 또 제나라의 영토를 두 번이나 사방 천리까지 확장시켰습니다. 그럼에도 제나라는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땅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나라의 형세(形勢)가 땅을 보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후들은 제나라의 군신(君臣)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제나라를 공격해 크게 승리했고, 제나라는 피폐해지고 선비들은 치욕을 당했으며 병기는 파괴되었습니다. 제나라 백성들은 모두 자신들의 왕을 비난하면서, 그 계책을 세운 사람이 누군인가를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계책은 맹상군이 세웠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맹상군은 도망쳤습니다. 따라서 제나라가 크게 패배한 것은 초나라를 공격해 한나라와 위나라를 이롭게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곡식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께서는 '진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는 친교하고, 진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 그러면 한 치밖에 안 되는 땅을 얻어도 그 땅은 왕의 땅이 될 것이고, 한 자의 땅을 얻어도 그 땅은 왕의 땅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처럼 좋은 계책을 선택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를 공격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중산국(中山國)은 영토가 사방 오백 리였습니다. 중산국에서 가장 가까운 조(趙)나라가 홀로 이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조나라는 공적을 이루고 명성을 높였으며 큰 이익도 얻었습니다. 천하의 여러 나라들도 조나라를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는 중원(中原)에 자리하고 있는 나라로서, 천하의 중심이 되는 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왕께서 패자(覇者)가 되고 싶으시다면, 반드시 중원의 나라들과 친선을 맺어 스스로 천하의 중심이 되어서 초나라와 조나라를 위엄으로 압박하십시오. 초나라가 강하면 조나라를 진나라의 편으로 삼고, 조나라가 강하면 초나라를 진나라의 편으로 하십시오. 초나라와 조나라를 모두 진나라의 편으로 만든다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두려움을 느낀다면 스스로 낮추고 예물을 후하게 챙겨 진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제나라가 진나라의 편이 된다면, 한나라와 위나라를 수중에 넣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범저가 주장한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외교 전략은 6국 모두에게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 진나라가 연횡책을 버리고 원교근공책으로 전환한 순간, 6국은 모두 고립에 빠지게 되었고 진나라에 각개격파당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시황의 통일전쟁 과정을 보아도 진나라가 이 '원교근공책'을 얼마나 충실하게 실천해 나갔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진시황은 먼저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한나라와 조나라 그리고 위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초나라, 연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쪽 끝에 자리하고 제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했다. 이렇게 보면, 진시황이 천하 통일을 위한 외교·군사 전략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범저의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그가 단지 실행에 옮겼을 뿐이라고 하겠다.
합종연횡(合縱連橫)의 외교술을 각국의 제후들에게 유세(遊說)하고 다닌 종횡가(縱橫家)들에 대해 가장 커다란 비판 세력은 법가(法家)들이었다. 그들은 외교술에만 의지하는 나라는 결코 부강(富强)해질 수 없다고 여겼다. 또한 외교 전략에 의지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임금은 권력과 권세를 모두 외교술을 부리는 신하, 즉 종횡가들에게 넘겨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나라의 안과 밖에서 서로 다투고 사악한 짓을 하면서 강한 적(敵)을 기다리는 형국인데, 어찌 위태롭다고 하지 않겠는가? 여러 신하들 가운데 외교술(外交術)을 말하는 자는 합종(合縱)의 패거리가 아니면 연횡(連橫)의 패거리로 분열해 있거나,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나라의 힘을 빌리려는 자들뿐이다.
합종(合縱)이란 여러 약한 나라들이 힘을 합해 강대한 한 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이다. 연횡(連橫)이란 강대한 한 나라를 섬겨 여러 약한 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모두 나라를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지금 신하들 중 연횡(連橫)을 주장하는 자들은 '큰 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다른 적대국(敵對國)의 공격을 당하여 재앙을 입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큰 나라를 섬긴다고 해도, 그 나라가 반드시 자신의 나라를 충분히 보호해주고 또 실리(實利)를 챙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도 큰 나라에 자신의 나라의 지도(地圖)를 바치고, 옥새를 건네주고, 군대의 도움을 요청한다. 지도(地圖)를 바칠 경우 나라의 영토가 줄어들고, 옥새를 건네주면 나라의 명예를 잃게 된다. 영토가 줄어들면 나라는 약해지고, 명예를 잃게 되면 정치는 어지러워지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큰 나라를 섬겨 연횡(連橫)한다고 해도, 그 실리(實利)는 보이지 않고 대신 영토를 잃고 정치는 어지러워질 뿐이다.
또한 신하들 중 합종(合縱)을 주장하는 자들은 '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큰 나라를 공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의 제후(諸侯)들을 잃게 되고, 천하의 제후(諸侯)들이 등을 돌리면 나라는 위태롭게 된다. 나라가 위태로우면 임금의 위신은 떨어지게 마련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작은 나라들을 구원하여 반드시 실질적인 효과가 있지 않으면, 곧 군사를 동원해 큰 나라에 대적하는 형국이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작은 나라를 설령 구원했다 해도 그 나라가 반드시 존속하는 것은 아니다. 큰 나라와 대적하면 사이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사이가 나빠지면 큰 나라의 억압과 공격을 당하게 될 뿐이다. 밖으로 군사를 내보내면 큰 나라의 군대에 패하고, 안으로 물러나 지키려고 해도 성은 함락된다. 합종(合縱)을 해 작은 나라를 구원해 그 실질적인 이익을 보기도 전에, 영토를 잃고 군대는 패배할 뿐이다.
따라서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을 주장하는 신하들은, 강대국(强大國)을 섬길 때는 강대국의 권력에 의지해 나라 안에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작은 나라를 구원할 경우에는 자기 나라의 권력을 거듭 내세워 작은 나라에서 개인적인 이익을 구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라는 실리(實利)를 챙기지 못했는데 신하들은 봉토(封土)와 후한 봉록(俸祿)을 챙기고, 임금의 위신은 추락해도 신하의 지위는 높아지고, 나라의 영토는 줄어들어도 신하의 집안은 넉넉하게 된다. 만약 자신들의 외교 전략이 성공하면 권세를 쥐고 오랫동안 존경을 받게 되고, 설령 일이 실패한다 해도 넉넉한 재물을 지니고 관직에서 물러나 편안하게 산다.
임금이 신하의 의견을 받아들여 계획한 대책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신하에게 높은 벼슬이 주어지고, 후한 봉록이 내려지거나 또 일이 실패했는데 벌을 주지 않는다면, 말솜씨로 먹고사는 선비 중에 우연한 행운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따라서 나라가 멸망하고 임금이 파멸하는 까닭은, 말솜씨로 먹고사는 자들의 근거 없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농업과 전쟁을 두 축으로 한 부국강병(富國强兵)과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엄격한 상벌(賞罰)을 적용하는 법치(法治)를 주장한 법가(法家)들에게는 외치(外治)보다는 내치(內治), 즉 왕권 강화와 정치 개혁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였다.
합종과 연횡을 주장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외교(外交)를 잘하면 크게는 천하의 왕자(王者)가 되고 작게는 나라의 안전이 보장된다"고 말한다.
대개 왕자(王者)란 다른 나라를 공격할 능력을 갖고 있어도, 그 나라가 안정되어 있으면 공격하지 않는 법이다. 또 강자(强者)는 다른 나라를 공격할 능력을 갖고 있어도, 그 나라의 치안(治安)이 튼튼하면 공격하지 않는 법이다. 이처럼 나라의 강병(强兵)과 치국(治國)은 나라 밖의 외교(外交)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정치(政治)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라 안에서 법(法 : 법으로 다스리는 정치)과 술(術 : 임금의 나라를 다스리는 술책)을 시행하지 않고, 지혜를 나라 밖의 외교에 쏟으면 반드시 나라는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다. 속담에 '소맷자락이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자금(資金)이나 발판이 탄탄하면 일하기가 쉽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라 일도 강하고 잘 다스리면 계획한 정책이 잘 이루어지지만, 나라가 약하고 어지러우면 생각했던 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진(秦)나라처럼 큰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은 열 번이나 계획을 바꾼다고 해도 실패는 드물다. 그러나 연(燕)나라처럼 작은 나라에 일하는 사람은 단 한 차례의 계획도 성공하기가 힘들다. 이것은 진나라에서 일하는 사람이 지혜롭고 연나라에 일하는 사람은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거나 어지러워지는 것에 있어서 자금과 발판이 다를 뿐이다.
주(周)나라는 진나라와 갈라서서 합종책(合縱策)을 사용한 지 1년 만에 파멸했고, 위(衛)나라는 위(魏)나라와 갈라서서 연횡(連橫)을 결정했는데 반년 만에 멸망했다. 결국 주나라는 합종으로 파멸했고, 위나라는 연횡으로 멸망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주나라나 위나라가 합종과 연횡의 계책을 사용하지 않고, 먼저 나라 안의 정치를 강화해 법률과 제도를 밝게 하고, 엄격한 상벌(賞罰)을 시행하고, 농사에 힘써 생산력을 북돋워 재물을 축적하고, 백성들에게 온 힘을 다해 성(城)을 굳게 지키도록 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천하의 어떤 강대국도 그 나라의 영토를 빼앗아도 별 이익이 없고, 성(城)을 공격해도 큰 손실을 입는다고 여겼을 것이다. 상황이 이랬다면 만승(萬乘)의 대국이라도 견고한 성곽 아래에서 패배를 자초하는 약한 꼴을 다른 나라에 보이고 싶지 않아 주나라나 위나라를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만이 멸망하지 않는 방법이다. 결코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 이와 같은 방법을 버리고, 반드시 멸망하는 외교술에 의지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합종과 연횡의 계책을 세워 나라 밖에서는 지혜를 소모하고, 나라 안에서는 정치를 어지럽게 한다면, 그 나라의 멸망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비자는 나라가 부국강병(富國强兵)해지려면, 말솜씨를 재주삼아 합종책과 연횡책 등을 주장하는 종횡가(縱橫家)들과 같은 변설가(辯說家)들의 쓸모없는 공론(空論)을 멀리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오직 신하와 백성들이 농사를 통해 부(富)를 얻고 전쟁을 통해 출세를 할 수 있도록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나라의 멸망을 원하지 않는 임금은 결코 외교술(外交術)에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법(法 : 법으로 다스리는 정치)과 술(術 : 임금의 나라를 다스리는 술책)에 의지해 농사와 전쟁에 전념하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현명한 임금은 백성들의 노력은 소중하게 여기지만, 쓸모없는 공론(空論)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또한 상(賞)은 반드시 그 공로(功勞)에 따라 시행하고 쓸모없는 일은 금지한다. 그러면 백성들은 죽을힘을 다해 임금을 섬긴다.
대개 농사일은 대단히 힘들다. 그럼에도 백성들이 농사일을 하는 것은, 그 일로 부(富)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것은 위태롭다. 그럼에도 백성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귀한 자리를 얻어 출세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학문을 공부하고 언론을 익히는 것은 힘들여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부(富)를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목숨이 위태로운 전투를 하지 않아도 귀한 자리를 얻어 존경을 받을 수 있는데, 누가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가만히 앉아 머리를 사용하는 사람은 백 사람인데, 힘들여 노력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가만히 앉아 머리만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나라의 법(法)은 무너지고, 힘들여 노력하는 사람이 적어지면 나라는 가난해진다. 이것이 곧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책에 적힌 글이 없고 오직 법으로 가르침을 삼고, 선왕의 말씀은 없고 오직 관리로써 스승을 삼고, 사사로운 용맹을 부리지 않고 오직 적(敵)의 목을 베는 것만을 용기라고 말한다. 나라 안의 백성들 가운데 변설(辯說)을 일삼는 자는 반드시 법(法)을 따르고, 힘들여 노력하는 자는 반드시 그 부(富)를 목적으로 삼고, 용맹한 자는 군대에서 온 힘을 다한다.
이렇게 하면 태평성세가 찾아 와 나라는 부유(富裕)해지고, 군대는 강해진다. 이것을 두고 천하 통일의 왕자(王者)가 될 수 있는 바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임금이 이미 왕자(王者)의 바탕을 이룬 후, 적국(敵國)의 틈새를 엿보아 오제(五帝)를 능가하고 삼왕(三王)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업(大業)을 이루려면 반드시 이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사용해야 한다.
소진
왕께서 조나라와 합종(合縱)하여 친교를 맺을 것을 권하는 것입니다. 천하가 합종(合縱)으로 뭉친다면, 연나라의 근심거리는 사라질 것입니다. 여섯 나라가 합종(合縱)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면, 진나라의 군대도 더 이상 함곡관을 나와 산동을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장의
지금 합종(合縱)을 주장하는 정치가들은 천하의 제후들을 하나로 합해 형제의 의(義)를 맺고, 서로의 결속을 지키자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부모를 가진 형제 간에도 서로 재물을 다투는 법인데, 사기와 배반을 일삼는 소진(蘇秦)의 술책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루어질 수 없음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범저
왕께서 패자(覇者)가 되고 싶으시다면, 반드시 중원의 나라들과 친선을 맺어 스스로 천하의 중심이 되어서 초나라와 조나라를 위엄으로 압박하십시오. 초나라가 강하면 조나라를 진나라의 편으로 삼고, 조나라가 강하면 초나라를 진나라의 편으로 하십시오. 초나라와 조나라를 모두 진나라의 편으로 만든다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두려움을 느낀다면 스스로 낮추고 예물을 후하게 챙겨 진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제나라가 진나라의 편이 된다면, 한나라와 위나라를 수중에 넣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한비자
합종과 연횡을 주장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외교(外交)를 잘하면 크게는 천하의 왕자(王者)가 되고 작게는 나라의 안전이 보장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외교술에 의지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합종과 연횡의 계책을 세워 나라 밖에서는 지혜를 소모하고, 나라 안에서는 정치를 어지럽게 한다면, 그 나라의 멸망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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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동안 자세히 몰랐던 합종책과 연횡책을 자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18사략 좋네요 써므리 ㅎㅎ
너무나 중요한데 우리 기존 멤버들은 좀 식상할까 싶어서 자료로만 올립니다. 또한 춘추전국시대의 전체 맥락 역시 자료로 맹글어가기도 대략 난감이라서 오늘은 고조선에 대해 간략히 준비해봅니다..ㅠㅠ
긴 글이지만 일목 요연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네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대의 흐름, 주변의 상황들을 잘 가름할 수 있기란 정말로 힘든거 같아요
그것도 급박한 상황에서는 그렇게 따라가지 않으면 안될꺼 같거든요
그 순간의 위기를 해결하기위해 많은 생각과 고뇌로 답을 찿아내고 실행한다해도
결론이라는 것에 도달하면 항상 옳지만은 않은걸 보면 말이죠
예나 지금이나 뚝심을 가지고 내실을 튼튼히하고 벗과 같은 외교정책을 유지한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옳다해도 옳지 않고 바르지 않다해도 옳은 현실들!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이것이 최선일꺼야 판단하며 이쪽 저쪽 (합종과연횡&법)기웃거리며 분위기따라 현실따라 줄다리기를 하는 삶의 연속인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