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7회 주자태극도와 조동오위도 비교 – 7
전체가 하나의 일진법계가 되고, 統體一太極이 되는 점을 칸트철학은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서양철학 보다 동양 사상이 훨씬 깊고도, 근본 진리를 잘 설하고 있다고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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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탄허스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칸트철학 전공자들은 여기에 대해서 의의를 제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논쟁을 한번 벌여보고 공부해보도록 합시다.
칸트는 “안티노미” 라고 하는 얘기를 합니다.
‘二律背反(이율배반)이다.’ 이것이지요.
인간의 순수이성이라고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됩니다.
말하자면 인간은 순수이성이있습니다.
불성과 같은 근본지혜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모르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우리 불교처럼ㆍ부처님처럼 성불했을 때, 모든 지혜를 다 갖추어서 환하게
모르는 것이 없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칸트는 “내가 모르겠다.”는, 순수이성으로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二律背反이라는 겁니다.
우주 창조주를, 신에 대한 문제라든지, 역사에 시작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 몇 가지 안티노미를 제시했지 않습니까?
이것은 순수이성으로도 좀 알기 어려운 그런 난해한 부분이 있다고 하는
얘기를 했다는 말이지요.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 서양철학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독교 세계 관에 나타나는 신과 인간이 하나로 합치되는,
인간에게 각자 각자가 성령이라고 하는 것을 각자 각자가 다 갖추고
있지만, 성부의 세계와 하나로 완벽하게 합일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양상이, 안티노미가, 二律背反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거든요.
그러니까 순수이성이라고 하는 각자 각자의 불성이 있다면,
우리 불교에서처럼 일진법계화 돼서 전체가 하나의 원상 하나로 수렴
되는, 말하자면 화엄의 법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하나로 다 수렴되는
것과 같은, 일진법계화 되는ㆍ순수이성화 되는 어떤 세계를 제시해 줘야
되는데, 거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탄허스님의 순수이성
비판. 칸트의 철학에 대해서 문제를 삼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시사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동ㆍ서 철학에 대해서 비교를 할 때,
이렇게 선과 주역을 회통한 사상을 가지고, 서양 철학들과 다시 한번
텍스트를 놓고 공부를 하면서 연구를 하고 고찰을 해봐야 될 필요가 있
다고 생각을 합니다.
탄허스님은 이것 말고도 역학 사상에 대해서 다른 말씀들을 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중에 저의 책에도 나왔지만, 서양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얘기를 역학을 가지고 설명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뭐냐?
“서양의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이,
서양의 진화론부터 시작되는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해서 시작되는,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발달되어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 있다.” ←이것이 빈부격차
라는 것이지요. 인간의 욕망은 엄청난데 빈부격차를 막을 길이 없다는 겁
니다.
“그것을 다 해결해 줄 재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산과 생산력의 관계가 아무리 발전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인간의 욕망을 다 채워줄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자본주의라고 하는 서구에서 나타난 이 사상이 지구를 굉장히
발전시켰지만, 한계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대한 반대 급부로 사회주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이것을 어떻게 불균형의 모순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냐? ←이런 부분에서,
서양에서 한번 크게 반이성 철학이라고 하는 사회주의 이론이
굉장히 대두되면서 이것이 역시 하나의 휴머니즘이다.
이런 식으로 대두가 됐었다.”
그 다음에 탄허스님이 또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지금 가장 똑똑한 친구들이, 우리나라의 아주 유수의 대학들의
대학생들이 이 사회주의 이론을 많이 보고 있다.
일리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모르는 것이 있다.”
사회주의 이론 역시 모순이 있다는겁니다.
“인간의 자유를, 인간의 자기 원력이나 욕망이나 이런 자유를
박탈하는 그런 단점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물질로만 살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이론 전체가, 경제 문제ㆍ물질의 문제와 직결
돼있고, 정신이 빠져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결국은 크나큰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
좌파이론과 우파이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물질의 문제를 놓고 펼쳐지는 철학과 사상이기 때문에,
이것이 해결된다 손치더라도 결국은 근본에 가서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 ←이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소유냐? 존재냐?
이 세상의 철학은 소유의 철학과, 존재의 철학으로 다 나눠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이데거도 이런 얘기를 하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존재철학을 해오지 않았다. sein이라고 하는 존재철학
을 해오지 않았다. 존재자에 대한 철학만 해왔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라고 하는 것이 불교의 “진여”같은 겁니다.
우리가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같은 겁니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 불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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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그만두었던 철학서적들이 생각나서 웃습니다. 그때는 재미없어서... 그래도 또 시도를 해보기도 했고요. 비교하면서 공부하게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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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철학의 차이.
불교이론의 우수성이 드러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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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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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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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존재철학을 해오지 않았다. 존재자에 대한 철학만 해왔다.”...명료한 설명, 답답했던 한구석이 풀립니다 고맙습니다 _()()()_
아이구. 오타인지 6타인지... 저의 무식인가 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
文光스님 - 韓國學(呑虛思想) - 17-7. 周子太極圖와 曺洞五位圖 比較.
존재와 존재자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