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순교자의 피가? (히 9:11~14절)
2010,9,26,
* 카타콤의 교회 (김기홍 목사는 이야기 교회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카타콤이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지중해 여러 도시에서 발견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이 일은 교회사의 새로운 장을 열도록 만들었다.
카타콤의 발견은 마치 폼페이나 니느웨 또는 바벨론의 발굴처럼 신비감을 더해 준다.
카타콤이란 단어는 지하의 묘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로마의 흙은 우리나라의 황토 흙과는 다르게 자줏빛을 띠면서 바위가 부서진 모래 같다. 그래서 간단한 도구로 쉽게 파들어 갈 수 있으며, 흙이 단단해서 구멍을 파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본래의 모래를 재취하려고 파들어 가던 것이 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박해가 시작되자 기독교인들은 지하의 묘지로 숨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파들어 가 한없이 길고 긴 미로가 형성되었다. 대부분의 카타콤은 처음 3세기 동안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교회가 가장 고통스럽던 시절,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장 영광스럽던 시절의 기념품이기도 하다.
순교자들과 보통 기독교인들의 시체는 양쪽 벽에 서너 층의 구멍을 파서 넣어졌고, 그 무덤은 네모나고 널찍한 돌로 막아졌다. 그러고 그러한 무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때때로 조그마한 방처럼 넓은 공간도 있었다. 거기에서 장례식도 하고 몇몇 사람이 모여 예배하기도 했다.
* 카타콤의 교훈
카타콤은 가장 어렵고 자랑스러웠던 3세기 동안의 기독교를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죽음과 영원 앞에서 기독교인의 삶을 보여 준다. 한없이 길고 장엄한 어둠과 미궁의 신비, 거친 묘비와 그림, 조각, 수공품, 예배와 순교는 당시의 정치, 사회, 종교생활에 대한 생생한 모습을 제공한다.
그것이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 경건한 정신, 고난과 역경, 신앙과 소망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까지의 기독교의 살아 있는 모습을 제롬에게 보여 주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보여준다. 침묵의 유물들 앞에서 기독교인들은 초대 기독교의 무섭도록 단순했던 삶과 예배를 배우게 된다.
가장 보편적인 상징의 그림은 선한 목자, 물고기, 그리고 포도나무였다. 이러한 상징들은 4세기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단순한 표식이 삶과 죽음, 그리스도와 구원의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것들이었다.
즉 선한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 끝까지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해가면서 양들을 보호해 주는 구세주의 모습이요.
물고기는 일용한 양식과 중생의 세례의 의미를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그리스어 단어의 첫 글자였다.
또한 포도나무는 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고 신자들과 신자들의 연합을 의미하고 있었다.
카타콤의 또 다른 중요한 가르침은 소망과 기쁨이 넘치는 종말론이었다. 상징으로나 그로, 영혼의 불멸과 육신의 부활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이루어짐을 모두 다 일치하여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원하고 보배로운 삶을 확신할 때 이 세상에서의 삶의 기준이나 방법도 나온다. 초대교인들은 가난이나 역경, 박해 속에서도 이러한 영광스런 소망이 더욱 넘쳐났다. 이 점은 다른 어떤 종교와도 다른 것이다. 너무나 분명한 더 나은 삶. 영원한 하늘나라와 그것에 대한 소망은 잠깐 있다 없어지는 그림자 같은 세상을 초연하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삶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만들었다.
카타콤의 발굴로 초대교회의 아픔과 영광이 우리에게 드러났다. 셀 수 없이 많은 순교자들, 박해의 공포, 초대교인들의 어두운 지하의 삶은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그들은 죽음과 매우 가까운 곳에 살았다. 이것은 그만큼 그리스도를 가까이 느끼면서 살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죽는 것같이 살았고, 또한 사는 것같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들의 삶은 단순하고 겸손하였다. 세상적이지 않고 더러운 이익을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도 영원한 부활의 소망으로 인해 그들의 모습은 빛났고 죽음 너머로 걸어가는 발길은 자랑스러웠다.
거룩한 순교자들의 군대는 보잘것없는 인간이 얼마나 위대하게 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세상에서 아무리 보잘것없는 이라도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이 자녀가 된다. 그러고는 성령이 계속적인 감동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산다. 순교자들은 이러한 마음으로 살았을 것이다. ‘육체는 하나님으로부터 빌려 받은 것이다. 그러니 주인에게 기꺼이 돌려드려야 한다.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 세상적인 기쁨이나 자랑도 많겠지만, 주인을 위해서 그런 모든 것을 포기하자.’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순교의 아픈 잔을 마셔야 했다. 그리고 가족들의 고통은 순교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감수해야 한다. 주인을 위해 모든 아픔과 수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첫째, 대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 (히 9:11절)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거쳐서,”
1, 그리스도께서
2, 대제사장으로
3, 더 완전한 장막 집을 위해
1), 십자가를 통한 제사
2), 만인을 위한 구원
3), 영원한 영적 축복
**, 그리스도께서
1), 천사보다 뛰어나신 분 (히 1:4 “그는 천사들보다 훨씬 더 위대하게 되셨으니, 천사들보다 더 뛰어난 이름을 물려받으신 것입니다”)
2), 모세보다 더욱 영광 받으실 분 (히 3:3 “집을 지은 사람이 집보다 더 존귀한 것과 같이, 예수께서는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기에 마땅한 분이십니다”)
3), 영원한 구원의 根源者(근원자)되십니다. (히 5:8~9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복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둘째, 피는 죄를 정결케 함 (히 9:12~13절)
“12. 오직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룩하여 주셨습니다 13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해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1, 오직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2, 짐승의 피가 아닌.
3, 자기의 피로.
4,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위해.
**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
1, 흠 없는 그리스도의 피 (히 9: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떠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2,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그리스도 (히 10:2 “ 그렇지 않다고 하면, 제사드리는 사람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그들은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제사 드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겠습니까?”)
3,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신 그리스도 (히 9: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그는 첫 번째 언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약속된 영원한 유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 이재완 목사는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를 이렇게 보고 합니다.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2월 2일에 지금이 신안군 암태면 수공리에서 태어나 17세가 되는 1908년 3월 18일에 지금의 증도면 등선리로 시집을 가서 19년 동안 남편의 사랑을 한 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시부모님께 지극 정성으로 효도함으로 효부 소리를 들었으나, 시아버지마저 죽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재봉틀 하나 들고 오빠가 사는 목포에 나와 삯바느질을 하는 중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북교동교회 출석하여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지도를 받으며 5년간 평신도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이성봉 목사의 추천을 받아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대 전신)에 입학함으로 성직의 길을 나서게 되었다.
특별히 문준경 전도사는 그 당시 제일 낙후된 섬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1년에 고무신 아홉 켤레가 닳도록 섬마다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다가 민족의 비극인 6.25 동란으로 말미암아 그곳까지 찾아온 공산당에게 1950년 10월 5일 증도 갯벌에 몸이 꽁꽁 묶인 채 끌려가 죄명도 아닌 “새끼 많이 깐 암탉”이라는 죄명으로 아직 먼동이 트기전인 새벽 2시에 창을 찔리고 쇠스랑에 찍히고 급기야는 따발총에 맞아 순교의 피로 갯벌을 붉게 물들게 했다.
모든 순교자는 피를 흘리면서까지 복음을 지켰고 신앙을 굳게 지켰다.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기에, 신앙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순교의 피를 흘린 것인가? 그것은 기독교의 복음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히9:27). 그러나 복음의 신앙을 지킨 성도는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으며, 구원을 받아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
셋째, 깨끗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피 (히 9:14절)
“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떠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1,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
2, 깨끗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피.
3,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는 그리스도의 피.
*** 망해 가는 조국 로마를 바라보면서 제롬은 신자들을 향해 울부짖었다.
“기독교인들이여, 부끄러운 줄 알라! 온 세상이 잿더미로 변해 가는데 우리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다. 이 난리 통에도 우리 마음은 돈 버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내일은 죽을 테니 오늘이라도 잘살자.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좋은 집들을 지었다. 벽돌은 금빛으로 반짝이고 천장 기둥도 모두 금빛으로 찬란하다. 집 앞에 버림받은 인간들을 보면서도 신나게 돈을 모을 동안 그리스도는 그들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고 외치었다.
첫댓글 하늘 아파트 당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교자의 신앙의 뿌리가 흐르는 샘물 같은 고운 성품의 은혜가 넘치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