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이부자리
서용선
딱히 사용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해묶은 이부자리를 버리기엔
아깝고, 장롱안에 보관하자니 공간만 차지하여 계륵(먹기도 버리기
도 아까운)같이 귀찮기만 하길래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깨끗하게
세탁하여 곱게 개켜둔 이불이며 홋이불들이 아까워 만지작 만지작
한참을 망설이다가 재활용 봉투에 과감히 밀어 넣는다. 버린 후 후
회가 될망정 후련하고 깨끗한 맛에 길들여져 이사할 때마다 버리는
것을 거듭하다 보니 시집올 때 엄마가 해준 살림살이들이 이제 눈
씻고 찾아 볼 수가 없다. 시집가서 잘 살라고 없는 살림 쪼개며 혼
수를 해주신 엄마께 미안하고 죄송스런 마음에 엄마한테는 끝까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작은 천 조각 하나도 소중히 여기며 양말짝하나 허투로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살림을 했던 엄마 밑에 자랐건만, 과감히 버리는
것만이 살림에 지혜인양 물건 아까운 줄 모르는 이 시대의 잘못됨
이 나부터 시작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가 직접 목화를 심어 만들어주신 목화솜 이불만은 버
리기가 아까워 재활용에 내어 놓았다가 누가 선뜻 가져갈세라 다시
가져와 이불솜 집에 맡겼다,
며칠 후 두꺼운 솜이불은 산뜻하게 얇은 솜이불 몇 개로 만들어
졌고, 예쁜 방석도 여러개 나왔다. 역시 목화라서 그런지 비가 오
나 눈이오나 삽삽하고 보드라운 감촉이 여간 기분이 좋지 않다.
자랑스러운 듯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엄마가 해주신 목화
솜이불을 다시 리모델링해서 알맞은 두께로 침대 이불 몇 개를 만
들었어요.
손님 오시면 덮어드릴 요와 이불도 한 세트 나왔다고 자랑을 했
더니 엄마는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살림한다며 매우 좋아하신다.
사실 다른 것들은 몽땅 버렸는데 말이다.
기분 좋아하시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 미안해지고 이것이
선의의 거짓말이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고지식하게 있는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상대에게
기분 좋은 하얀 거짓말은 참 필요한 것 같다.
해묵은 이불을 버리면서 다시 깨닫게 되는 작은 진리가 햇빛처럼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