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지!
몇해 전 '당근이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지금도 사람들의 대화나 tv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분명히 '당연(當然)'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인데 대체 왜 이 말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당연'의 '당'자(字)와 '당근'의 '당'자(字)가 같다는 유치한 이유만으로 오랜 동안,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기엔 뭔가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나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당근하면 첫 번째로 생각나는 것은 '당근과 채찍'이다. 그리고 아울러 말(馬)이 연상된다. 우리의 머리 속에서 당근은 말(馬)을 말(語) 잘 듣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채찍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말(馬)을 순응하게 하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느낌을 당근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당근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하다. 더군다나 맛까지 달콤한 탓에 그 친밀감은 한층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화 도중에 나오는 '당근이지'란 말은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고 선입관적인 사고, 즉 훌륭한 처세술의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서 '당연'이란 말보다 더 적극적인 환영과 찬성의 뜻을 가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간에 당근으론 말(馬)을 잘 다룰 수 있고 다른 '당근(당연)' 또한 말(語)을 잘 다루는 것을 보면 둘의 공통점은 없다고 할 수 없겠다.
당근으로 연상되는 두 번째의 느낌은 매력적인 색이 가져다 주는 산뜻함이다. 생동감 있는 초록색 잎과 깨끗해 보이는 주황색의 멋들어진 조화... 만약, 여기에 흰색의 토끼가 당근을 물고 있다고 상상하게 되면 바로 우리는 어렸을 적 자연으로 돌아간다. 너무나 귀엽고 순수해 보이는 흰색 토끼가 홍당무를 먹고 있는 모습은 바로 행복의 모습이다. 추억의 모습이며 우리가 너무나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 보았던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런 연유로 우리의 대화에 나타나는 홍당무는 우리의 말이 더욱 홍조와 활기를 띠게 함에 부족함이 없는 듯 보인다. 더군다나 홍당무는 채소다. 그리고 채소에 가지는 우리 인간의 애정은 특별하다. 그 만명통치의 위대한 비타민C를 우리에게 공급하니까!
그리고 이젠 우리의 말에도 그 상큼한 비타민C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당근이지'란 말에 엄청난 철학적 비밀이 숨어있다.
'시금치는 사람과 같이 흙에서 나왔다.'- 엠페토탤래스
뽀빠이가 먹는 시금치, 말과 토끼가 좋아하는 당근, 그리고 사람은 같은 흙에서 나온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존재는 채소보다 조금도 위대할 것 없는 시금치나 당근과 평등한 존재란 것이다.
'당근이지'란 말엔 인류가 걸어가야 할 완전한 평등의 세계가 보인다. 인류의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당근'이 될 때 역사가 굽이치며 도착하고자 하는 이상향을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친구 왈
"너 드디어 미쳐가는 구나?"
"당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