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양재역10번09:30 버스4432옛골하차 봉오재 목배삼거리 구름다리 이수봉545m11:29 망경대 점심 혈읍재 매봉12:59 돌문바위 안터골(느티나무집 2차) 양재역
어제 저녁 세종문화회관에서 재경청주고 동문회 정기총회가 있었는데 우리 동기인 신현호 청주고 총동문회장이 청주에서 올라와 참석했고 서울 우리 동기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따뜻한 봄날을 맞아 양재역에 류성걸 양계선 한상철 민정홍 본인 포함 5명이 모였다.
김밥을 준비했는데, 한 사람이 좀 늦어서 버스 한 대를 보내고 나서야 탑승을 했다.
청계산 가는 버스는 매번 혼잡해서 좌석은 생각지도 못하고 콩나물 시루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옛골까지 간다.
청계산은 여러 번 와서 낯이 익은데도 힘들기는 매번 마찬가지다.
다들 힘들어 하는 기색이다.
땀이 자꾸 흘러내리니 모자를 아예 벗어서 들고 간다.
더우니까 겉옷을 벗어서 배낭에 집어넣고 얇은 옷만 걸친 채 가기도 한다.
산에는 곳곳에 노랗게 핀 꽃이 눈에 띤다.
꼭 산수유꽃하고 흡사하게 생겼는데 성걸이가 생강꽃이라고 알려준다.
산에 수많은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으나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몇 개밖에 안된다.
어느덧 이수봉에 이른다.
많은 등산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이수봉 표지석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우리는 물끄럼이 쳐다보다가 그냥 망경대 쪽으로 향한다.
松山 趙 狷 선생과 망경대
송산 조견선생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양이고 호는 송산이다.
고려말 영남 안렴사로 있을 때 나라가 망하자 통곡하며 두류산(현 지리산)으로 들어가 이름을 견으로 고치고 자도 從犬 이라 하였다.
조선개국 초에 이태조가 공의 절개를찬양하고 재능을 아껴서 호조전서에 명하였으나 끝내 사양하고 청계산에 은거하여 건너편 망경대에 자주 올라 송도를 바라보며 슬퍼하다가 마왕존 샘물로 갈증을 풀었다한다.
이태조가 한양에 정도한 후 다시 조준을 대동하고 청계사로 찾아가 옛 친구 사이로 마주 앉아 도와 줄 것을 간청했지만 공의 굳은 절의를 돌이키지는 못하고 청계산 일대를 봉지로 내렸으나 공은 곧 양주 수락산기슭(현 의정부 송산마을)으로 옮겨 은거하다가 생애를 마쳤다.
청계산에서 최고봉인 망경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망경대는 사고위험이 있다고 "등산로 폐쇄"라는 팻말이 있지만 무시하고 많은 등산객들이 그냥 오르내린다.
망경대에서 5명이 기념사진을 찍고서 점심으로 김밥, 사과, 찐 고구마, 과자, 커피를 마십니다.
음식점에서 먹는 것보다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산에 올라와 음식을 펼쳐 놓고 삥 둘러앉아 먹는 것도 낭만적이고 친밀감도 있고 좋지요.
한참을 오르내리는 등산로에는 번지없는 주막집도 여럿 보입니다.
매봉에는 완전히 시장바닥처럼 붐빕니다.
기념사진을 찍기위해 삥 둘러서 있다가 사진을 찍고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잽싸게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냥 지켜만 보다가 그냥 내려갑니다.
나는 좀 서운해서 남들이 거들떠도 안보는 매봉 표지석 뒷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되노라.
유치환의 시 행복 중에서
여기서부터는 무수한 계단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요.
김창식이 수락산에서 다리를 좀 다쳐서 오늘 등산에 참가는 안하고 원터골의 맨날 가는 느티나무집에서 만나기로 해서 6명이 뒷풀이를 합니다.
처음 막걸리1, 소주1를 시켰다가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막걸리4, 소주2 되어 다들 거나하게 취했습니다.
인원이 늘어날수록 술의 양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평상시보다 등산코스가 좀 길어서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