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은 가장 유명한 이스라엘 판관이자 헤라클레스에 비견되는 영웅이다. 그는 단 지파 출신으로, 삼손이라는 이름은 ‘태양과 같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판관기 13장에서 16장까지는 삼손의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묘사되어있다. 삼손의 생애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에피소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삼손과 블레셋(Philistine) 여자 데릴라의 일화이다. 판관기 16장 4-22장이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삼손은 소렉 골짜기에 사는 데릴라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블레셋 제후들이 데릴라에게 “삼손을 구슬려 그의 그 큰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잡아 묶어서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알아내어라. 그러면 우리가 저마다 너에게 은 천백 세켈씩 주겠다.”고 말하였다. 매수당한 데릴라의 질문에 삼손은 세 번이나 거짓으로 답한다. 그러나 데릴라가 날마다 들볶고 조르는 바람에 삼손은 자기 속을 털어놓고 말았다. “내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 본 적 없소. 나는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자르인이기 때문이오. 내 머리털을 깎아 버리면 내 힘이 빠져나가 버릴 것이오. 그러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처럼 된다오.”(판관 16,17) 비밀을 알아낸 데릴라는 블레셋 제후들을 불러 모으고, 삼손을 무릎에 뉘어 잠들게 하고 나서, 사람 하나를 불러 일곱 가닥으로 땋은 그의 머리털을 깎게 하였다. 그러자 삼손을 허약해지기 시작하더니, 힘이 빠져나가 버렸다. 블레셋 인들은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후벼 낸 다음, 가자로 끌고 내려가서 청동 사슬로 묶어, 감옥에서 연자매를 돌리게 하였다. 그런데 깎인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였다.
중세교회, 삼손을 그리스도의 원형으로 보다.
[삼손과 데릴라], 1200-7년 스테인드글라스, 코로나채플, 캔터베리 대성당, 캔터베리
시대를 호령했던 영웅이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몰락의 길을 가게 되는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13세기부터 서양미술사에서 등장한다. 1200-7년 사이 제작된 영국 캔터베리 대성당의 코로나 채플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된 [삼손과 데릴라]에는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삼손과 데릴라, 그리고 침실로 침입하는 블레셋 제후들이 있다. 주목할 점은 이미지를 둘러싼 원형의 테두리에 새겨진 명문인데, 이를 해석하면 “삼손이 그의 연인을 위해 잠들었듯, 예수의 육체가 교회를 위해 대리석에 갇혔다.”이다. 중세 교회에서는 이처럼 삼손을 그리스도의 원형으로 강조했으며, 그 이미지가 널리 다루어졌다.
[삼손과 데릴라], 1250년경 채색 필사본, 마카이요프스크 성서, 모건 라이브러리, 뉴욕
1250년경에 제작된 마카이요프스크 성서에 실린 [삼손과 데릴라]에서 데릴라의 무릎을 베고 있는 삼손은 자신의 머리가 잘리는 줄도 모른 채, 잠을 자고 있다. 데릴라 뒤에는 삼손의 힘이 빠져나간 순간 그를 공격하기 위해 블레셋 인들이 무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성서 텍스트에는 데릴라가 직접 삼손의 머리를 자르지 않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을 잘랐다고 기록되어있다. 화가들은 데릴라로 하여금 삼손이 머리를 직접 자르는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데릴라를 치명적 아름다움으로 남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팜므 파탈로 부각시킨다. 삼손 뒤쪽, 화면 오른편에 서 있는 나무는 포도나무로 주님의 천사가 삼손의 어머니, 마노아에게 나타나 포도주를 먹지 말라고 한 금기를 상기시킨다.(판관기 13,4) 또 이는 삼손이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 잠들었음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손의 머리를 자르는 데릴라, 팜므 파탈의 원형
Andrea Mantegna
Samson and Delilah
1495
Oil on canvas, 47 x 37 cm
National Gallery, London
1495년 안드레아 만테냐가 제작한 [삼손과 데릴라]는 단색조를 사용 입체감을 부각시킨 그라자이유 기법이 주를 이룬다. 포도 덩쿨을 배경으로 삼손은 데릴라의 무릎을 베고 잠들었으며, 데릴라는 그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중세미술에 등장하던 블레셋인들은 등장하지 않고 삼손과 데릴라 두 인물만이 화면을 꽉 채운다. 나무를 타고 기어오르는 포도 넝쿨과 탐스러운 포도는 마카이요프스크 필사본처럼 알코올의 위험을 경고하며 삼손의 금기를 상기시킨다. 삼손이 데릴라의 집요한 요구에 비밀을 털어놓은 것도, 의식을 잃을 만큼 잠에 취한 것도 과도하게 술을 마신 탓임을 짐작할 수 있다. 화면 왼쪽 물통에서 쉴 새 없이 흐르는 물은 무절제한 정욕의 분출을 상징한다. 또 나무의 잘린 가지 아래 몸통에는 ‘사악한 여자는 악마보다 세 배나 더 나쁘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즉 이 작품은 삼손의 과도한 욕정이 비극을 초래했음을 꾸짖는 한편, 색정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만테냐는 성서 원문과 달리, 삼손이 잠든 장소를 야외로 묘사하였는데, 16세기 초 프란체스코 모로네가 그린 [삼손과 데릴라] 역시 침실이 아닌, 열린 공간이 펼쳐진 건물의 중정에 침상을 배치했다. 이 작품에서 삼손의 머리를 자르는 이는 블레셋 인으로, 마치 데릴라는 그의 행동을 망토로 가리고 있는 듯하다.
Francesco Morone
Samson and Delilah 16세기전반 Oil on wood, 76 x 121 cm Museo Poldi Pezzoli
르네상스 화가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 풍경을 배경으로 삼손과 데릴라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각색했던 반면, 17세기로 접어들면 그 배경은 주로 실내가 된다.
루벤스, 데릴라의 관능미를 그리다.
1609-10년 루벤스가 그린 [삼손과 데릴라]는 그에게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으로 강렬하고 관능적이다. 젖가슴을 드러낸 채 잠든 삼손을 내려다보는 데릴라, 연인의 무릎에 엎어져 자고 있는 삼손, 그의 머리를 자르는 블레셋 인, 그리고 촛불을 들고 있는 노파, 문밖에서는 블레셋 병사들이 삼손을 공격하려고 대기하는 모습이 긴장감이 흐른다. 루벤스는 데릴라의 방을 고급 사창가로 설정하고, 성서에 등장하지 않는 노파를 사창가의 여주인으로 묘사하였다. 즉 사창가의 여주인인 노파를 등장시킴으로써 데릴라가 창녀이며 남자를 유혹해서 파멸시키는 팜므 파탈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화면 왼쪽 상단, 잠든 삼손의 머리 위, 벽감 속에는 비너스에 매달려 있는 눈먼 큐피드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맹목적인 사랑이 죽음을 부른다는 비유로 삼손의 눈먼 사랑을 나타낸다.
RUBENS, Pieter Pauwel Samson and Delilah c. 1609 Oil on wood, 185 x 205 cm National Gallery, London
한편 루벤스의 제자였던 안톤 반 다이크는 삼손의 머리카락이 잘린 이후를 묘사한다. 블레셋 병사들은 삼손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놀란 삼손은 원망의 눈초리로 데릴라를 응시하면서 왼쪽 주먹을 날리려고 하지만 한 병사에 의해 제지당한다. 등 뒤 병사는 삼손의 몸을 밧줄로 묶기 시작했다. 잘린 머리카락과 가위가 데릴라의 발밑 바닥에 흩어져 있다. 데릴라는 한 손을 뻗어 삼손의 얼굴을 감싸려한다. 몸부림치는 영웅의 역동적인 자세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라오콘] 상을 연상시킨다.
Anthonis van Dyck
Samson and Delilah
circa 1630
Oil on Canvas, 148 x 257 cm
Kunsthistorisches Museum,Vienna
렘브란트의 [눈먼 삼손], 영웅의 비참한 몰락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Samson and Delilah 1628 Oil on oak, 61 x 50 cm Staatliche Museen, Berlin
렘브란트는 삼손과 데릴라의 일화를 2점 그렸는데, 1630년 경 제작한 [삼손을 배반하는 데릴라]는 삼손은 데릴라의 품에 잠들었고, 가위를 든 블레셋 남자가 머리를 자르기 위해 접근하는 장면이다. 잠든 삼손은 헤라클레스에 비견되는 건장한 영웅이라기보다 연인의 품을 파고드는 작은 체구의 나약한 모습이다. 멀리 어둠 속에서 블레셋 병사가 삼손의 동태를 살피고, 빛은 삼손을 배반하는 데릴라, 즉 가위를 든 블레셋 남자에게 눈짓을 하는 데릴라를 비춘다. 1636년 경 그려진 [눈먼 삼손]은 삼손의 오른쪽 눈이 단검에 찔리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렘브란트 특유의 어둠을 가르는 밝은 빛은 왼쪽에서 들어오고 화면에는 눈이 찔린 삼손, 삼손의 목을 잡고 있는 병사, 그의 팔을 사슬로 묶고 있는 병사, 오른쪽 눈을 찌르고 있는 병사, 창을 겨누는 병사가 얽혀있다. 데릴라는 오른손에는 가위, 왼손에는 전리품인 삼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고개를 돌려 삼손을 보며 뒷걸음친다. 가해자인 데릴라와 피해자 삼손을 극명하게 대조시킨 대각선 구도와 몸부림치는 거구의 영웅과 이를 제지하는 병사들의 몸짓은 바로크의 역동성을 나타낸다. 렘브란트는 피가 튀고 일그러진 얼굴의 처참한 삼손을 그림으로써 비참한 영웅의 몰락을 표현하였다.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The Blinding of Samson 1636 Oil on canvas, 236 x 302 cm Städelsches Kunstinstitut, Frankfurt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The Wedding of Samson 1638 Oil on canvas, 127 x 178 cm Gemäldegalerie, Dresden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Samson Accusing His Father-in-Law 1635 Oil on canvas, 159 x 131 cm Staatliche Museen, Berlin
글 출처 : 네이버 캐스트 (정은진)
LEYDEN, Lucas van Samson and Delilah c. 1512 Woodcut, 413 x 289 mm Museum of Art, Cleveland
Lucas Cranach the Elder
Samson and Delilah
1529
Oil on canvas, 57.2 × 37.8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HONTHORST, Gerrit van Samson and Delilah c. 1615 Oil on canvas, 129 x 94 cm Museum of Art, Cleveland
GUERCINO Samson Captured by the Philistines 1619 Oil on canvas, 191 x 237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OUWENBERGH, Christiaen van The Capture of Samson 1630 Oil on canvas, 156 x 196 cm Dordrechts Museum, Dordrecht
STOM, Matthias Samson and Delilah 1630s Oil on canvas, 99 x 125 cm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STEEN, Jan Samson and Delilah 1667-70 Oil on canvas, 134 x 199 cm Wallraf-Richartz-Museum, Cologne
PADOVANINO Samson and Delilah - Oil on canvas, 96 x 121 cm Private collection
CRANACH, Lucas the Elder Samson's Fight with the Lion 1520-25 Panel Kunstsammlungen, Weimar
RENI, Guido The Triumph of Samson 1611-12 Oil on canvas, 260 x 223 cm Pinacoteca Nazionale, Bolog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