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 110호 (7~8월)에 실린 수필 한편입니다.
잘살고 있는 거겠지?
배 영 숙
오전 8시 40분에 집을 나서서 나의 새로운 일터에 도착하면 9시 반쯤 된다. 정식 출근해본 경력은 결혼 전 교사 생활 1년과 동아출판사 몇 개월이 고작이다. 그런 내가 남들은 다 정년퇴직한 나이인 60대 중반을 넘어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서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생각해 보면 한심할 정도로 노후 준비를 못 했다. 그렇다고 경제관념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에도 아르바이트하였고, 결혼 후에도 아이들 어릴 적부터 집에서 과외 아르바이트하였다. 그러다 남편의 보조자로 치열하게 뛰어다녀야만 했다. 노후 같은 걸 생각할 겨를 없이 당장 해야만 할 일들이 산재해 있었고, 그 일들에 빠져 지내다가 문득 그 모든 일로부터 놓여났을 때 남아 있는 건 이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노후의 시간이다. 그리고 자신을 건사할 최소한의 비용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삼계탕 직영점을 몇 곳 운영하는 친정 동생을 도와 직원들 반찬을 해 나르는 일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대량의 반찬을 만들어 코엑스지점에 갖다 주었다. 새벽 장을 봐서 다듬고, 삶고, 볶고, 끓이고 해서 반찬 준비를 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반찬을 해 나간 김에 카운터 보는 일을 배웠다. 한 달가량 코엑스지점에서 카운터 보는 연습을 하고 코로나로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여는 광화문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서서 인사하는 것은 원래 나의 전공인지라 다섯 시간 정도 서 있는 것은 별 무리가 없다. 문제는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이다. 재빠르게 그릇을 치우고 다시 세팅하고, 불과 한 시간 사이에 200명 넘는 손님들이 다녀가니 정신이 없다. 카운터 계산기가 작동이 잘 안될 때도 있었고, 쿠팡 주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럽기도 했다. 냉방을 돌린다는 것이 난방을 눌러 점장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한 번은 손님 테이블을 치우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줄줄 나왔다. 손님의 힐끗거리는 시선을 느끼면서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초라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힘이 들어서도 아니다. 눈물은 그냥 내 통제를 벗어난 몸의 일이다. 가끔 내 몸은 나를 그렇게 배반한다. 밤이면 허리가 아프고 젊은이들 틈에 끼어 일하다 실수라도 할라치면 진짜 많이 민망하고 미안하다.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 회의가 드는 순간이다. 그래도 다달이 들어오는 급여와 한도 내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 슈퍼에서 장을 볼 때도 이젠 불안하지 않다. 지인들을 만나 밥을 먹을 때도 얼른 일어나 밥값을 계산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그래 견뎌보자.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뭐, 타협하고 다시 용기를 내곤 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꼭 돈 때문에 일을 계속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테면 작은 성취, 어쩌면 내가 존재하는 이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응시하게 되는 것이다. 우선 광화문이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주는 매력이 적지 않다. 세종문화회관, 교보문고, 씨네 큐브영화관, 덕수궁, 경희궁, 서울 역사박물관, 돈의문 옛 마을, 경희궁로, 정동 길…, 조선왕조부터 근현대의 의미 있는 역사가 아로새겨진 농도 짙은 공간들이다. 북한산기슭에서 출발하여 멀리 북악산을 느끼며 인왕산 자락길을 돌아 안산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출근길, 수려한 풍경 속 고전과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 길을 달리다 보면 나는 찰나의 점 같은 존재가 아니라 無窮속의 여행자가 된다. 인생 자체가 아름다운 길이라는 각성에 잠깐이나마 이르기도 한다.
주차하고 경희궁 숲길, 내수동 길을 걸어서 내 일터로 간다. 이 또한 품격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하는 길이다. 나의 새로운 일터가 있는 새문안로, 대로변에 ‘금연’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런데 그 옆에 출근 도장을 찍고 나온 젊은 직장인들이 줄지어 서서 흡연 중이다. 커피점은 왜 이리 많은지. 그 많은 커피점마다 젊은이들이 줄을 서 있다. 내 젊은 시절엔 감히 엄두도 못 내었던 여유로움을 그들을 통해 느낀다. 격세지감이다. 그것은 거리감이 아니라 부러움이다. 모두가 발랄하고 모두가 싱싱하다. 멋진 광경이다. 이런 생동감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 식당은 직원들이 베트남, 몽골, 조선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아침마다 어미 새를 기다리는 새끼 새 마냥 내 손가방이 열리는 것을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본다. 집에서 돼지고기 주물럭이나 카레 등 반찬을 해 나갈 때도 있지만 급할 때는 김밥이나 빵을 사 간다. 간혹 비싼 샌드위치와 모닝커피로 한턱내기도 한다. 직원들이 재미있다고 셀카를 찍는다. 그들과 함께 웃고 농담하다 보면 외국서 생활하는 자식들 모습이 문득문득 겹쳐온다. 아! 자식들이 그립고 그립다.
식당 문이 열리자마자 혼자 와서 소주 한 병을 곁들여 삼계탕을 먹는 사람도 있다. 아침을 못 먹었나, 속상한 일이 있나, 공연히 마음 졸이며 덤으로 뭐라도 갖다 주게 된다. 맛있게 잘 먹었다고 치하하는 사람, 코로나로 문을 닫아서 섭섭했다고 하는 사람, 이야기에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낯익은 단골이 늘어간다. 한가로운 시간대에 오는 손님에게는 커피를 내려 대접하기도 한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어설픈 콩글리시로 말을 건네기도 한다. 세상 재미중에 사람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이 있을까. 나는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서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에너지가 남아 있는 어떤 날은 교보문고에 들러 몇 권의 책을 사고 어떤 날은 씨네큐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도 한다. 불쑥 ‘내가 왜 여기서 삼계탕을 팔고 있지’ 자기 모습이 낯설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지만, 돌아보면 내 인생 그 어떤 순간도 낯설지 않은 시간은 없었다. 처음 가는 길, 예기치 않은 길을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겠지.
광화문으로 출근한 지 1년이 지났다. 동생이 광화문점을 직접 책임지고 맡아 보라고 한다. 내가 식당을 운영한다고? 더럭 겁이 났다. 살면서 몇 번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친 적이 있다. 그리고 실은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맹꽁이다. 한 달가량 뭉그적거리다가 일은 진전되어 대표이사 자리를 맡게 되었다.
어제는 여섯 시간의 위생교육도 받았다. 봉급자에서 운영자가 되고 보니 책임질 일들이, 신경 쓸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근무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며칠 전부터 피부가 먼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북한산 공기 속에서 지내다가 도심지 식당에 종일 있으려니 힘이 든다. 정치판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힘들어했으면서 왜 나는 또 사람들 속으로 나가는 것인지? 궁핍하면 궁핍한 대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텐데.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삶의 의미를 묻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글을 썼으면, 아!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독한 사람만이 자신을 향해서 집중할 수 있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럴 위인이 못 되는 듯하다. 그냥 맥없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 어울리고 있다.
그래, 내 삶은 오늘 이 순간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감, 그 모든 인연의 총체일 것이다.
나 잘살고 있는 거겠지?
배영숙(57bys@hanmai;.net)
2000년 창작수필로 등단
저서: 그대의명함. 공저:우리 기도할까요
제 10회 정경문학상수상
현)에세이스트 작가회의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