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자연주의’ 분만이 대세다. 각종 약이나 기기를 동원하는 인위적 방식을 되도록 지양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랬듯 최대한 자연스럽게 출산하자는 얘기,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런데 자연주의라고 다 산모나 태아에게 좋고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많은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꼭 그렇지는 않다”고 답한다. 오히려 자연주의 분만을 내세우면서 화려한 병실을 비롯한 부가 서비스로 진료 외 이득을 챙기려는 병원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자연주의 분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는데, 한편에선 시험관 아기 시술이 증가하는 현상도 아이러니컬하다. 자연임신 가능성이 남아 있는데도 시험관 아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추측하고 있다. 정말 ‘자연스러운’ 출산을 바라는 산모라면 꼭 알아야 할 점들을 짚어보기로 한다.
아기가 잘 생기지 않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난자나 정자, 난관 등에 문제가 있거나, 난자와 정자가 만나도 수정이 잘 이뤄지지 않거나, 수정은 됐지만 자궁에 자리를 잘 못 잡기도 한다. 가장 흔한 원인으로는 ‘타이밍’이 꼽힌다. 난자와 정자가 적절한 시기에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배란 시기를 계산해 가장 좋은 타이밍을 찾아내거나 적절한 시기에 배란되도록 유도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연임신이 이뤄질 수 있다. 가능한 방법들을 모두 동원했는데도 도무지 수정이 안 되거나 자궁에 착상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최후의 방법으로 시도하는 게 시험관 아기 시술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시험관 아기 시술 의료기관은 2006년 113곳에서 현재 약 150곳으로 늘었다. 총 시술 건수는 2006년 3만2,783건에서 2012년 4만8,238건으로 증가했다. 이 중 2006년엔 1만9,137건이, 2012년엔 3만1,955건이 국비로 이뤄졌다. 난임 부부를 위한 시험관 아기 시술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기 시작한 건 2006년부터다. 그 직전인 2005년 시술 건수가 2만1,154건이었으니 2배 이상 뛴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임신이 될 수 있을 부부가 잘못된 정보나 의료진의 권유, 정부 지원 등 때문에 시험관 아기 시술을 너무 빨리 선택하게 된 경향이 급증의 한 원인일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이 그래서 제기되고 있다.
임신 관련 장기의 물리적 문제 때문에 난임이 된 경우에도 최근에는 시험관 아기로 직행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고 전문의들은 전한다. 과거에는 수술 후 자연임신이 가능했던 질환도 말이다. 예를 들어 난자가 지나는 길인 난관에 물이 차 막히는 난관수종, 골반 안에서 주변 조직들이 서로 달라붙은 골반유착 같은 경우에는 보통 수술로 해결할 수 있다. 막힌 부분은 뚫어주고 붙어 있는 곳은 떼어주는 것이다. 그런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연임신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피임을 위해 난관을 묶는 난관결찰술을 받은 여성들이 다시 임신을 원하게 된 경우에도 쉽게 시험관 아기를 선택한다. 묶었던 부위를 수술로 풀고 이어주면 자연임신이 가능해질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수술들은 요즘 배를 가르는 개복 방식이 아니라 복부에 작은 구멍들을 뚫고 내시경 기구들을 집어넣는 복강경 방식으로 이뤄지는 추세다. 개복에 대한 두려움이나 흉한 흉터가 남을 걱정은 전보다 훨씬 덜하다는 얘기다.
시험관 아기 시술은 여성에게 호르몬 약을 투여해 난소에서 많은 난자가 한꺼번에 만들어지도록 한 다음 이를 몸 밖으로 빼내는 과정을 거친다. 이 도중 소변이 잘 안 나오거나 복수가 차는 등의 크고 작은 과자극증후군이 뒤따를 우려가 있다. 시술했다고 다 출산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닌 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강조한다.
태아 거꾸로면 제왕절개?
임신에 성공한 뒤 36~37주 정도 지나면 의료진은 태아의 자세를 최종 확인한다. 머리가 질 쪽으로 향해 있어야 자연분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신생아의 4~5%가 반대로 다리가 질 쪽으로 가 있는 역아(逆兒) 상태다. 국내 적잖은 산부인과에선 이럴 때 산모에게 ‘고양이 자세’를 권한다. 무릎을 굽혀 바닥에 댄 채 엉덩이를 뒤로 빼고 두 팔로 바닥을 짚는 것이다. 이런 자세를 자주 취하면 태아가 알아서 거꾸로 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모의 자세 조절로 역아 회전이 자발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학적 근거는 부족하다는 게 국제학계의 견해다. 태아가 역아 상태면 아예 제왕절개를 하라고 권하는 병원도 많다.
하지만 의학 교과서나 외국 학회 진료 지침에는 분만 전에 역아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명확히 나와 있다. 바로 ‘역아회전술(둔위교정술)’이다. 의사가 초음파로 태아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산모의 배 여기저기를 손으로 살살 눌러 자궁 안의 태아가 스스로 자세를 바꿀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술법이다. 유튜브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역아회전술 장면 동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많이 알려져 있단 얘기다.
이에 비해 국내에선 모르는 산모가 대부분이다. 일부 의사들조차 태아가 잘못될 수 있는 옛날식 방법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실제로 역아회전술을 하는 병원은 몇 되지 않는다. 역아회전술 후 태아가 자연분만이 가능한 상태로 다시 자리잡는 비율은 첫 임신인 산모의 경우 60% 안팎, 출산한 적이 있는 산모는 70~90%로 국제학계에 보고돼 있다. 초음파를 비롯한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에 비해 사고 우려가 크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산모에게 역아회전술이 가능한 건 아니다. 가령 자궁이나 양수, 태반, 질 등에 문제가 있으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역아 산모들이 자연분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데는 국제학계가 동의한다. 태아가 역아 상태일 때 무작정 제왕절개부터 시도하지 말고 역아회전술도 고려해볼 필요는 있다는 얘기다. 제왕절개는 자연주의 추세에도 역행할 뿐 아니라 자연분만보다 입원을 오래 하기 때문에 더 비싸다.
글 / 한국일보 문화부 의학 담당 임소형기자
|
출처: 국민건강보험 블로그「건강천사」 원문보기 글쓴이: 건강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