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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행복한 공부 발전소 원문보기 글쓴이: 김상연
긴장을 풀어주는 25가지 연습
마이크 조지 지음/윤규상 옮김
1. 긴장이완에 이르는 길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기술
감정의 로데오 -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감정이 이성과 충돌할 때에도 감정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의 극히 중요한 어떤 것을 억누르게 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감정은 억제해야 좋은 것인가? 우리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감정과 싸우면서 보내고, 감정을 억제하거나 감정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도록 억압한다. 참으로 우리는 미덕의 도구로 인식되고 있는 이성의 고삐로 우리의 가장 강력한 감정들을 잡아당기면서 감정의 로데오 경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감정과 이성을 대립된다고 보는 편이 불안을 이기는 한 처방일지 모른다. 그러나 좀더 건설적인 접근법은 검열관을 두고 부정적인 감정은 삭제시키는 한편, 긍정적인 감정은 자유롭게 표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당신 자신을 여러 마리의 야생마가 있는 마구간의 문지기라고 생각해 보자. 야생마들은 당신의 최선의 노력마저 망쳐놓으려는 습성이 있다.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 야생마 한 마리가 마구간에서 문을 발로 차는 소리를 듣는다. 처음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거든 그 즉시 모든 것을 중단하라는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창 격렬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경우라면 1분 정도 말을 중단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보라. 당신의 말들은 인간의 의지, 지능, 이성의 명령을 따르도록 훈련받았다는 것을 명심하라. 당신이 말에게 마구간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하면 말은 명령대로 따를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이 제멋대로 자기를 주장하고 나서거나 감정이 우리의 천박함에 근거를 둔 것일 때 -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권유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린애처럼 반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경우 -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삶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잘 자각해서 의지의 통제 밑에 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돌출해 나오는 여러 감정들을 잘 조절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감정에 자물쇠를 채워놓는 것이 좋긴 하지만 때로는 감정을 털어놓는 편이 훨씬 더 좋을 때가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감정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문제는 감정을 이야기할 때는 화가 치밀어서 닥치는 대로 마구 쏟아버리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자제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당신이 다른 누군가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원한다고 치자. 훈련의 목적이 당신 자신이 선한 증인이 되어 법관의 판결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차분하게 또박또박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관이 혼동을 일으키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은 자신의 마음을 터놓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기억하라. 즉, 감정이 자신을 이길 때도 더러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이성의 판단에 복종시켜 당신이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걱정 - 염려와 걱정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염려는 타당한 이유와 목적이 있고, 인과의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걱정은 염려와는 달리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걱정은 자신의 과거가 바뀌기를 ‘바라는’ 헛된 욕망이나, 미래의 불가피한 측면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마음이 까닭 모를 불안에 쉽게 물들게 되고, 그것이 점차 습관이 된다. 말하자면 불안이 일상적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머지않아 그것이 정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특정 문제 자체는 해결될지 모르나 불안은 늘 남아 있다. 걱정이 배경의 잡음처럼 떠나지 않는다.
주파수가 맞지 않아 잡음이 뒤섞인 라디오 소리를 오랫동안 듣다가 다이얼을 정확히 조정하고 나서 라디오 소리를 들어보라. 그 소리가 어찌나 깨끗하게 잘 들리는지 깜짝 놀랄 것이다. 충분히 긴장을 풀려면 우리 삶에서 공연히 걱정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이러한 걱정이 없는 맑은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만 각자가 추구하는 만족을 누릴 수 있다.
잡음 없애기
죄의식과 양심 - 양심은 도덕적 지혜를 담는 그릇이고, 도덕적 지혜는 윤리적 직관의 원천이다. 우리가 이기적이고 잔인한, 또는 의심스러운 어떤 것을 말하거나 행할 때마다 양심에서는 주의 경보가 울린다. 우리가 늘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산다면 언제나 선행만을 하면서 인생을 만족스럽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가끔씩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할 때가 있다. 양심의 소리를 묵살하고는 마음 깊은 곳에서 허탈감을 느낀다. 문제는 이 허탈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즉, 그 허탈감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하느냐, 인정하지 말아야 하느냐이다.
양심에서 나오는 죄의식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실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어떤 나쁜 일을 했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좀더 나은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죄의식’이다. 이러한 죄의식으로 인해 우리는 현재 나 자신을 잊고 있으며, 양심의 푯말에 따라 가야만 참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외부로부터 강요되어 ‘프로그램화된 죄의식’이다. 이것은 자기파괴적인 적이다. 우리는 어릴 적에 부모와 교사의 도움으로 자신의 타고난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 영향으로 인해 시대에 맞지 않는 도덕의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더 나쁜 경우는 죄의식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여 강제로 죄의식을 갖게 하는 경우이다. 죄의식이 지속적으로 학교, 가족, 동료, 종교의 압력과 같은 외부의 권위에 의해 강요될 때 양심의 목소리는 문제를 갖게 된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않으면 죄의식이 생길까 두려워 다른 사람의 의지대로 따르는 편인가? 그러나 우리 자신을 옹호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게을리하게 된다는 것은 나쁘다. 집단의 유산으로서의 양심은 그릇된 것이고, 개인적이고 직관적인 양심이 올바른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엉킨 이 두 가닥의 실타래를 푸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내적인 힘, 즉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외부의 압력에 대해 저항하는 용기를 키운다.
2. 정적과 숨과 고요
호흡 명상
이 간단한 호흡 명상 훈련이 다시 고요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을 되찾는 응급처방으로서 아주 좋은 훈련이다. 또한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기초도 갖추도록 해줄 것이다.
․ 조용한 방에서 눈을 감고 앉거나 눕는다. 자신의 생각을 거품 덩어리라고 상상해 보라. 천천히 입으로 숨을 내쉬라. 그러면서 그 모든 생각의 거품 덩어리들이 몸 밖으로 날아가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러면 긴장이 풀리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 이제 콧구멍에 온 신경을 모아라. 코로 숨을 내쉬고 들이쉬면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콧구멍을 통해 오가는 공기를 시각화해보라.
․ 길고 부드럽게 숨을 내쉬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들숨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놔둔다.
․ 마음이 흩어지더라도 포기하지 말라. 재차 콧구멍에 주의를 집중하고, 오로지 호흡만을 느끼려고 해보라.
․ 무리하지 말고 가능한 오래 이 연습을 해보라. 매일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굳이 애쓰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 몸의 휴식과 활동
긴장 상태의 버릇
신체 언어 과학에 따르면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육체의 고통을 감추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약간의 두통이 있을지라도 다른 사람과 만나 이야기할 때에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여느 때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만일 초조감이나 권태감을 느낀다면 손발로 무언가를 톡톡 두드리거나 손톱을 물어뜯거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데, 그런 상황이 메시지를 전달한다.
따라서 우리가 신체 언어의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긴장 상태의 버릇을 억제하고, 습관이 된 버릇을 고칠 수 있겠는가? 예로부터 전해져온 충고와는 달리 습관에서 자유로워지는 첫 번째 단계는 손톱을 물어뜯지 못하게 두 손을 묶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초조해지는지를 분명하게 자각하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찰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하나의 방법은 긴장을 느끼는 상황을 그 상황과 관련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재현해 보는 것이다(긴장 상태에서 우리의 버릇이 나오는 것은 대체로 관련된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 증인은 우리에게서 어떤 이미지를 받을까? 비록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우리들 중 대다수가 단번에 정확히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긴장 상태의 버릇이 진정으로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 알아내면 문제를 합리적으로 다룰 수 있다. 그러면 그 원인을 뿌리뽑고, 증상을 해소시키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좀더 단기적으로는 근육 이완, 마사지, 요가와 같은 기법이 불안에 대비하는 기초작업으로서 몸의 긴장을 푸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긴장을 풀었다면 지속적인 평화를 가져다주는 자기 발견의 내적 여행을 시작할 채비는 어느 정도 갖춘 셈이다.
수면 실험
잠을 적당히 자는 것은 배고플 때 먹고 목마를 때 마시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 연습은 자신의 수면 주기를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수면 주기를 알고 나면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수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 마음속으로 잠잘 준비를 하라. 잠에 빠져드는 지금 이 순간에는 어떤 것도 자신의 마음의 고요를 흩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잠에 깊이 빠져든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근심을 모두 떨쳐버리라.
․ 약간 피곤할 때 잠자리에 눕고, 그 시간을 기억해 두라. 부드러운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달래주는 책을 읽고 잠자기 직전에 명상을 하라. 자명종은 멀리 치워놓고 자연스럽게 깰 때까지 잠을 잔다. 완전히 깨고 나서 그 시간을 기록해 두라. 몇 시간이나 잠을 잤는가?
․ 되도록 여러 날 밤 이 훈련을 반복해서 자신이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는 방식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 분명하게 알아내라. 이렇게 해서 알아낸 것이 자신의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수면 주기이다.
․ 아침에 정해진 시간 이전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면 피곤을 느낄 때 잠자리에 드는 일이 방해받지 않도록 주의하라(예를 들어 친구들에게 밤 10시 이후에는 전화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가능한 한 갑자기 깨어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예를 들어 자신의 배우자에게 천천히 깨워달라고 부탁하거나, 고요한 음악이 울리는 자명종을 자신의 머리맡에 놓아둔다.
4. 자아와 인간 관계
감정 이입을 잘 하려면
관계성 이론 - 우리는 가장 행복한 가정에서 자랄지라도 자라면서 다양한 긴장을 겪게 마련이다. 우리의 가족은 우리의 모든 ‘얼굴’을 보고, 우리가 느낀 모든 감정의 여파를 겪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들이 인간 관계의 원칙을 배우는 것도 가정에서다. 각 가정의 모습이 저마다 다르지만, 심리학자들은 ‘건강한’ 가족이 반드시 천국처럼 평화로워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분노와 좌절을 표현하는 것이 그것들을 마음속에 가둬두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이 금기 사항인 가족 안에서 자란 아이는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화를 내면서도 죄의식을 느낀다. 반대로 아이는 마음속에 억압된 화로 인해 폭발할 듯한 고립된 기분과 두려움을 느끼는데, 우리들 중에 일부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이런 감정을 지니게 된다.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서로 지원해주고 이해해주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우울증과 불만을 털어놓고 나면 그러한 감정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의 위험은 가족의 감정에 너무 깊이 개입하면서 지나친 의존성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 자식과 형제 자매 간에는 너무 자주 서로에게 도움을 원하기 때문에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 가족 간에 심각한 긴장이 발생한 경우에도 - 자신이 거의 통제할 수 없는 인간 관계를 중심으로 문제가 발생한 경우조차도 - 우리는 그 골칫거리를 자신의 삶 속으로 흡수하려 할지 모른다. 이것이 또 다른 스트레스의 일반적인 원인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가족의 권한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다는 데 동의할 수 있을 때 가족이 가장 잘 원활하게 굴러간다. 지원 네트워크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동시에 불안 확대 네트워크여서는 안 될 것이다.
자아에 대한 스포트라이트
울음과 카타르시스 - 포스트 정신분석학 시대인 요즘에는 울음이 치료효과가 있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울음을 터트린다’는 말이 갖는 함의는 울음으로 풀어지는 게 있어 울적한 감정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러면 얼마쯤 긴장이 풀린 기분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울음 끝에는 자신의 본능적인 반응을 표출했다는 안도의 느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는 울음은 호흡을 짧게 하고(훌쩍거리는 것은 산소의 부족을 다시 보충하기 위한 육체의 절망적인 시도이다) 근육을 긴장시키는데, 이것들은 그 어느 것도 장기적인 긴장완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들이 울음을 스트레스에 대한 해독제로 생각한다면 눈물이 그치는 순간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가 부분적으로라도 해소되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눈물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기분이 잠시 평온해질지는 모르지만 그 표면 밑에 숨어 있는 뿌리깊은 요소들이 우리의 눈물을 자극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는 것을 보면 당황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울음을 그치면 고통도 그칠 것이라고 생각해서 위로의 말을 건네며 가능한 한 빨리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애쓴다. 이것은 화재 경보기를 꺼버리면 불도 꺼질 것이라고 믿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눈물을 흘림으로써 주위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데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어서 특정인과의 관계에서 가끔씩 그 ‘울음 게임’을 하게 될지 모른다. 자신의 파트너가 화를 내면 자신은 그보다 더 많은 상처를 입었다는 거짓 증거로서 울음에 호소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울음은 전략의 일부가 되지만, 그러한 감정 조작은 오직 긴장을 높이고, 평화의 실현을 더욱 어렵게 하는 데 이바지할 따름이다.
울음은 고통을 줄이는 즉각적인 방법이라는 면에서 ‘카타르시스이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해방감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물의 골짜기를 자주 찾는 여행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울음은 상처의 표시이고, 상처도 너무 자주 찾아오면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
눈물과 상처의 골짜기를 떠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세계로 발길을 돌리는 결정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이곳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땅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 오면 누구나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큰 슬픔을 겪은 뒤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이곳에서 거처해야 하고, 영주권을 얻어야 한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5. 정신력
감각을 제한하기
생각의 습관에서 벗어나기 - 생각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가 완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어떠한 시도도 즉각적으로 장애물, 즉 생각이 대상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분석의 매개체라는 사실에 부딪힌다. 패러독스에 휘말리기 쉽고, 그 결과 좌절의 매듭이 우리의 마음을 굳게 죄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만일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생각을 중단하고 육체적인 일이나 일상적인 일을 하라. 목적은 겹겹이 쌓인 혼란을 뚫고 나아가는 데 있는 것이지 혼란을 덧보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혼란한 마음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할 때에는 네 가지 수준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장 낮은 첫 번째 수준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비판하고 화를 내고 두려워하고 자기본위적이고 게으른 생각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오직 비애와 불편만을 낳을 뿐이다. 다음 수준은 낭비적인 생각으로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과거를 곰곰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일이나, 일어났을지 모를 일들에 대해 근심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불안해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 다음에는 ‘먹을 것을 사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려와야 한다’와 같은 필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가장 높은 수준은 긍정적인 생각이다. 이것이 평화, 사랑, 창의성을 낳고, 조화와 행복을 촉진한다. 우리가 이러한 생각의 수준을 자각한다면 의식적으로 생각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습관화의 족쇄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정원의 명상
초목과 나무는 세계 전역의 모든 문화권에서 영적인 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존중받아 왔다. 집 근처의 나무들과 친숙해지는 첫 단계로서 그 잎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 자신의 정원과 근처의 공원을 둘러보면서 각 나무나 관목에서 잎을 한 장씩 뜯는다.
․ 편안하게 앉아 모양, 색깔, 질감 등을 찬찬히 살펴보라. 손바닥에 쥐고서 그 차가움을 느껴 보라. 잎맥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라. 자신이 보는 문양에 대해 명상해 보라.
․ 눈을 감고 느끼는 냄새를 맡아 보라. 촉감이나 냄새만으로 그 잎이 어떤 잎인지 기억해 보라.
․ 근심, 불안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의식에서 사라질 수 있도록 잎사귀들에 완전히 몰입하라.
․ 이 연습에 대한 연장으로서 초목이나 식물학에 대한 책을 참조하고, 장상, 우상, 피침형과 같은 잎사귀의 형태를 일컫는 이름들에 대해 배워보라.
․ 나중에 꽃, 돌, 조개껍질 등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이 연습을 적용해 보라.
과거에서 풀려나기 - 우리들 중에 많은 이들이 현재를 즐기는 방법과 미래를 꿈꾸는 법마저 잊을 정도로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는 데 골몰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심한 상처를 입히면 그 일로 자존심마저 큰 상처를 입는다. 과거의 골칫거리가 또 다시 나타날까 근심하고, 이 근심이 현재의 인간 관계에 투영됨으로써 그것이 다시 우리에게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인간 관계에 실패하고, 그것이 과거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배가시키고, 미래를 더욱더 부정적으로 보게 한다.
과거의 경험은 인생의 정신적인 부(富)이자 물려받은 개인적 유산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과거 경험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자기 안으로 웅크려들게 된다. 그러면 미래가 공백이 되고 두려워진다. 우리들은 이 공허함이 소란스러운 기억의 박물관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지 못하고, 다만 자신의 전당을 떠나기 두려워 창을 통해 현재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경험의 박물관을 매우 아름다운 풍경 속에 서 있는 건물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더라도 그 박물관에서 나와 멀리 낯선 곳의 또 다른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되어 보라. 그 박물관은 지평선 너머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찾아가야 할 흥미로운 장소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첫댓글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