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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인연, 뜻깊은 만남 김경화
2017년 1월 14일 (토), 구슬 24일차, -귀한 인연, 뜻깊은 만남-.hwp
08:00 부산 자유 여행
16:00 12차 복지 순례단, 구슬 1 2 3기 선배님들과의 만남(사회복지사 사무소 구슬 총동문회)
23:00 기록
어제 저녁 구슬 3기 천소향 언니가 지지방문을 왔습니다. 옆 침대에서 잔 언니와 아침을 같이 맞이했습니다. 언니는 참 붙임성이 좋습니다. 어제 처음 본 언니와 아침에 샤워를 같이 했습니다. 서로 구슬 활동하면서 겪은 일화들을 이야기하며 친해졌습니다. 씻고 나와서도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언니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한국 와서도 쌀국수를 자주 먹는지, 베트남에서도 화장을 했는지 등 여러 질문들을 했고 언니는 친절하게 답해줬습니다.
언니 베트남 이름 뜻은 하늘의 아름다운 달입니다. 환한 언니 미소가 정말 밤하늘의 은은한 달 같습니다.
묻고 물어 감천문화마을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부산 자유여행 시간이었습니다. 동료들이 총 4팀으로 나뉘었습니다. 승철 오빠 순강 오빠 소향 언니 희연이가 한 조, 광환 오빠 상희 언니 도희 언니가 한 조, 은상 오빠 현지 언니 제가 한 조, 정현 언니 언주 언니 희민 언니가 한 조였습니다.
은상 오빠 현지 언니와 감천문화마을에 갔다가 남포동 시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숙소인 천마산에코하우스에서 감천문화마을까지는 700m도 안됩니다. 가까운 거리이니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신나게 에코하우스 앞 가파른 계단을 뛰어내려왔습니다. 내려오고 지도를 확인하니 안 내려오는 편이 감천문화마을과 더 가까웠습니다. 이미 내려온 거니 어쩔 수 없다며 다시 길을 찾으려 하는데 아무리 지도를 살펴봐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은상 오빠가 빠르게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길을 물었습니다. 무심한 표정으로 듣더니 “같이 가입시더.” 하셨습니다. 아주머니 표정만 보고 무시하는 줄 알았는데 직접 길 안내를 해주시니 참 고맙습니다. 감천문화마을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안내해주었습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버스를 따라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어느새 처음보다 가야 할 거리가 더 늘어났습니다.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열심히 올랐습니다. 지도를 유심히 보던 은상 오빠가 지름길로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가파른 계단 길이었습니다. 얼른 가고 싶은 마음에 계단을 오르는데 계단이 두 갈림길이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는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오른쪽 위로 쭉 올라가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위로 쭉 올라가니 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왕 구름 전망대에 올라온 김에 경치를 구경했습니다. 꽤 높이 올라왔습니다. 집을 나오신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또 길을 물었습니다. 여행을 왔냐며 친절히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분 걸릴 거리를 20분은 걸려 감천문화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밥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감천문화마을 가는 내내 밥을 외쳤습니다. 은상 오빠와 현지 언니와 저는 구슬팀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밥심으로 살아가는 동료들입니다. 감천문화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안내센터에 짐을 맡기고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가장 먼저 발견한 집은 타코 김밥집이었습니다. 김밥 속에 문어가 들어가고 타코야키처럼 위에 소스와 가쯔오부시가 올려 있었습니다. 흔한 김밥이 고급 음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가격이 비싸 셋이서 하나를 나눠 먹고 간식을 사러 할인마트에 갔습니다. 옛날입맛인 우리는 건빵과 약과를 샀습니다. 구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빠르게 구경하러 다니기로 다짐했습니다.
먼저 작은 박물관에 들어갔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이 만들어진 배경과 옛날에 쓰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있는데 마침 단체 관광객과 가이드가 들어왔습니다. 가이드가 감천문화마을의 옛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을 했습니다.
“이것 봐요. 집이 따닥따닥 붙어있죠? 이게 다 계단식으로 집이 이렇게 쭉쭉 있는 거예요. 엄청 못 살았죠. 우리가 옛날엔 못 살았어도 다 배려를 한 게 계단식 집은 나의 뒷집에도 햇볕이 들게끔 한 거죠.”
건물에서도 느껴지는 이웃과 인정이 놀랍습니다. 건물로 다른 건물에 비치는 햇살을 가리는 지금 건물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움막에 살 정도로 못 살았어도, 좁은 방 한 칸에 대식구가 모여 살았어도, 배려와 인정이 넘치니 살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물관을 나와 조금 걸으니 피자 한 조각을 천 원에 파는 곳이 있었습니다. 빠르게 돌아다니기로 한 다짐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피자집에 들어가 고구마 피자 한 판을 시키고 몸을 녹이며 아까 산 건빵과 약과를 나눠 먹었습니다. 은상 오빠가 건빵에 든 별사탕에 관한 군 시절 추억을 나눠주었습니다. 이등병은 건빵 속 별사탕을 먹으면 안 되는데 이등병 때 분대장님이 시켜서 별사탕을 부수다가 선임에게 오해를 받아 온갖 욕을 다 먹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군대에서 이등병은 한 감자 과자 안 디핑 소스도 먹어서는 안 됩니다. 먹을 걸 가지고 쩨쩨하게 구는 게 참 싫습니다. 군대에도 동료를 섬기고 같이 나눠 먹는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피자를 먹다가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습니다. 휴지가 필요한데 화장실 안에는 휴지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옆 칸 아이가 “엄마 나 모르고 변기에 화장지도 버렸어.” 했습니다. 이때다 싶어 아이 어머니에게 휴지를 빌려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양을 화장실 아래로 넘겨주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인심이 참 고맙습니다.
피자와 건빵 약과를 먹고 다시 본격적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계단을 올라 ‘어둠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어둠과 빛은 상반된 개념이지만 서로가 있어야 어둠으로서, 빛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잊고 있던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라도 배척하지 않고 공존해야 함을 느낍니다.
‘어둠의 방’을 나와 ‘하늘마루’에 올라갔습니다. 감천문화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인 듯했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색색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깔끔해 보일 순 있지만 감천문화마을은 다르기에 아름답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개성 있는 갤러리와 가게 집들이 모여 예쁜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하늘마루’에서 내려와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가방을 맡긴 안내소로 돌아가는 길에 양말 집에 들러 양말도 사고 츄러스도 사먹고 여러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네 의자도 타고 ‘별계단집’ 148계단도 뛰어 내려갑니다. 추위를 이기려 더욱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정지용 시 ‘향수’를 시각화한 작품 앞에서는 흩어져 있는 글자들 속에서 동료들 이름을 찾으며 놀았습니다. 먹고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안내소에서 가방을 찾고 점심을 먹으러 택시를 타고 남포동 시장에 갔습니다. 버스를 타려 했는데 버스 정류장에 ‘남포동, 자갈치 시장 3인 이상 갈 거면 택시가 좋습니다. 기본요금밖에 안 나와요.’라는 낙서가 있었습니다. 낙서를 믿고 택시를 탔습니다. 낙서 덕에 기본요금으로 편하게 자갈치 시장에 도착했습니다. 회를 먹으려 했으나 비싸서 포기했습니다. 은상 오빠가 냉채족발을 추천했으나 이 또한 비쌉니다. 현지 언니가 부평깡통시장 거인치킨을 추천했습니다. 1마리만 시켜도 양이 무척 많아 유명한 집입니다. 거인치킨을 찾아갔더니 대기하고 있는 팀이 4팀이 있고 자리에 앉아도 치킨이 나오는 데까지 3~40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바로 앞 가게인 ‘국제치킨’에 갔습니다. 치킨 1마리를 시키고 치킨이 나오는 동안 잠깐 잠을 잤습니다.
치킨과 함께 하는 나눔
구슬 활동이 끝나가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여러 선생님들 이야기 들으며 선생님의 가치와 철학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 선생님이 멋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그 선생님을 쫓진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정해진 하나의 답을 지양하는 우리가 몇 가지 답을 만들어 따르는 우리 안 모순이 혼란스럽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치킨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현지 언니가 우린 모두 다르니까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따를 필요는 없다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습니다.
분업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왜 우리 사회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그나마 제일 잘 하는 것만을 업으로 삼아 일해야 하는 걸까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속 구절들을 나누며 일을 어떻게 생각하며 좋을 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직업과 나는 따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이우석 선생님 말씀을 떠올리며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우석 선생님이 말했던 사회사업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사회사업가라는 말은 일과 나라는 구분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복지관을 들어가면 사회사업가고 복지관을 나서면 사회사업가가 아닌 게 아니었습니다. 사회사업가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인생철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통의 발달이 사람들 관계에 끼친 영향도 이야기했습니다. 논과 밭 위에 만들어진 고속도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구슬팀은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논과 밭의 아름다움을 누렸습니다. 현지 언니는 도로를 깔기 전 아름다운 논과 밭을 사람들이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습니다. 교통의 발달에 대해 은상 오빠는 컵에 담긴 콜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콜라를 사람들 관계에, 컵과 그릇을 사람들 생활권에 비유했습니다. 컵에 있는 콜라를 그릇에 부으면 콜라 깊이가 얕아집니다. 즉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생활권이 좁을 때는 생활권 내 사람들 간 관계가 깊었지만 교통 발달로 생활권이 넓어지면서는 사람들 간 관계 깊이가 얕아졌습니다. 사회사업가는 세계라는 그릇 속 한 부분 부분을 삽질하여 그 전 컵 깊이만큼 관계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은상 오빠는 사회사업에 앞서 자신의 가치를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의도해서 누군가들이 만난 게 아니라 사실은 그 사람들 의도로 그 사람들이 만난 거라면 그 상황에서 나는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빠는 끊임없이 자신을 올곧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고 했습니다. 현지 언니는 무엇이든 걸언하면 그 속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오빠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습니다. 덧붙여 내가 없어도 그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 속에 내가 있으면 내가 행복하니까 이 일을 하는 것 같다 했습니다.
이어서 현지 언니가 신비한 물고기 ‘코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코이는 자신이 자라나는 환경에 따라 몸 크기가 바뀌는 물고기입니다. 코이는 어항에서 자라면 어항만 하게 크고 바다에 들어가면 그보다 더 크게 자랍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어항 속 코이가 바다 속 코이보다 불행할 거라 생각합니다. 현지 언니 광활 동료는 “굳이 바다여야만 행복할까? 어항이어도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산다며 좋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어항에 있어 내 몸이 더 자라지 못하더라도 그 어항을 바다에 넣어 바다를 보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이가 어항 안에 있어도 그 어항을 어항 째로 바다에 넣어서 코이가 바다를 보며 자라면 좋겠어요.”
“그럼 다른 바다 속 물고기를 보며 열등감을 느낄 거 같지 않아?”
“바다 속 물고기들은 제 어항의 안락함을 부러워할 수도 있죠. 각자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나를 먼저 스스로 올곧게 하면 열등감은 안 느끼지 않을까?”
코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나눔이 풍성했습니다.
코이 이야기에 이어 현지 언니가 은상 오빠에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하는지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은상 오빠는 사람이 먼저라 생각한다 했습니다. 대나무의 폭발적인 성장인 ‘퀀텀 리프’처럼 대나무가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은 대나무 안에 항상 있는 것이고 자라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그 대나무를 자라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덧붙여 은상 오빠는 그렇게 했을 때 어제 대익 오빠가 말해준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가 성립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으로서 내 자리를 지키면 내 주변 환경이 좋게 변합니다. 그럼 나 혼자 잘하면 되는 걸까에 대해 생각을 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는 말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지금 내 곁에 있는 좋지 않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다른 좋은 사람들이 온다는 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좋은 사람은 내 주변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강점을 보는 눈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주변 사람을 빛나게 할 수 있기에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동료들은 송도해수욕장도 다녀오고 국제 시장 깡통 시장도 갔다 왔습니다. 다들 즐거운 자유여행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인간미 없는 내비게이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시간을 확인하고 급하게 치킨 집에서 나와 뛰었습니다. 이미 늦었는데 이름이 헷갈려 청록만덕실버센터가 아닌 청록노인복지관에 갔습니다. 급하게 택시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부산 지리를 몰라서 기사님에게 주소를 보여드렸습니다. 주소를 보여드렸는데도 택시 기사님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묻습니다. 혹시 늦을까 급한 마음에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서 가자고 했습니다. 아저씨께서 운전을 하며 한 말씀을 했습니다.
“이 내비게이션은 인간미가 없어. 이거 없을 때는 손님들에게 물어가며 어느 길이 좋을지 말하며 갔는데 요즘은 이게 있으니까 내가 손님한테 길을 물어보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니까.”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택시와 내비게이션만 보이던 눈에 점점 택시 기사님이 들어왔습니다. 빨리 가려고 기사님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사람 간의 소통을 단절시켰습니다. 기계 발달이 편리하다고 무작정 좋아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택시에서 내리며 감사 인사를 하니 답으로 택시 안에서 힘차게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참 귀한 분을 만났습니다.
귀한 인연, 뜻깊은 만남
30분 늦게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센터에 들어가니 구슬팀 동료 외에 12차 복지 순례단 구슬 1 2 3기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들에 낯설긴 했지만 왁자지껄한 소리와 많은 사람들이 정겨웠습니다. 오랜만에 동료들을 보는 선배님들 눈에 애정이 넘쳤습니다. 선배들이 한 글자씩 맡아서 ‘사회복지사 사무소 구슬 총동문회’ 종이를 인쇄해 왔습니다. 각자 좋아하는 글씨체와 색으로 인쇄한 글자가 알록달록합니다.
청록만덕실버센터는 상리종합사회복지관 오영석 부장님이 주선해주었습니다. 넓은 공간에 쇼파도 많고 기타도 마음껏 칠 수 있는 곳입니다. 아들과 함께 직접 지지방문도 왔습니다. 부장님 고맙습니다. 자리를 정비하고 앉자 청록만덕실버센터 최소남 이사장님이 센터 소개와 구슬팀을 위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쉬는 날에도 센터에 나와 귀한 말씀 나눠주니 참 고맙습니다.
이어서 대익 오빠 진행에 따라 선배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서로를 소개하고 지지 격려해줬습니다. 한 명 한 명과 만남이 귀해서 인사하는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아쉬움을 담아 포옹하고 자유 시간에 더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3200원이 공연을 했습니다. 3200원은 12차 복지순례단인 이병문, 정재훈 선배가 만들었습니다. 이병문 선배가 기타와 노래를 맡았고 정재훈 선배가 베이스를 맡았습니다. 더하여 광환 오빠가 젬베를 쳤습니다. 처음 치는 건데도 곧잘 칩니다. 언니들이 역시 교회 오빠라며 웃었습니다.
첫 노래는 ‘나이 서른에 우린’이었습니다. 선배들이 일제히 12차 복지순례 당시 30살이었던 김정연 선배를 쳐다봤습니다.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들 율동도 하며 즐겁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음 노래는 ‘바위처럼’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대익 오빠가 일어섰습니다. 흥겹게 율동하는 대익 오빠를 따라하며 다들 즐겁게 노래했습니다.
승철 오빠가 ‘등대지기’를 독창했습니다. 기타와 엇박자로 노래하는 게 미묘했습니다. 승철 오빠 추천으로 제가 ‘섬집아기’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못하기에 제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첫 음도 높게 잡아서 ‘자장 노래에~’ 부분에서 애를 먹었습니다. 볼이 화끈해졌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완창한 점이 뿌듯했습니다.
다시 병문 선배가 실무자인 동료들을 위해 ‘탈진’을 불러주었습니다. 동료들을 위한 응원이 간절하게 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소향 언니가 ‘Proud of You’를 불렀습니다. 청아한 언니 목소리가 수줍게 들립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이에 저녁이 도착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공연을 이어나가기로 했습니다.
저녁은 피자 치킨과 청록만덕실버센터에서 준 인절미였습니다. 저녁이 닭갈비인줄 알고 치킨과 피자를 자유여행 때 먹은 동료 대부분이 웃었습니다. 치킨과 피자는 더 먹어도 맛있었습니다. 이 푸짐한 저녁은 12차 순례단 구슬 1 2 3기 선배들이 사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받은 사랑 저희도 베풀겠습니다.
치킨 피자가 순식간에 바닥나고 인절미가 남았습니다. 광환 오빠가 게임을 해서 인절미 먹기를 제안했습니다. 젓가락 하나로 ‘제로 게임’을 해서 돌아가며 인절미를 먹었습니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인절미가 게임하며 웃으면서 먹으니 더욱 맛있었습니다.
다 같이 둘러앉아 하는 푸짐한 저녁 식사
저녁을 먹고 나서는 YB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YB는 기타 치는 광환 오빠와 베이스 치는 도희 언니 노래하는 승철 오빠입니다. 구슬 1기이기도 한 승철 오빠는 OB 아니냐며 다들 웃었습니다.
YB 첫 곡은 ‘복지인의 노래’였습니다. 현지 언니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니 김세진 선생님도 선배들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딱 마침 도착한 선배와도 짝 바꿔가며 즐겁게 노래하며 춤췄습니다. ‘바위처럼’도 한 번 더 불렀습니다. 배가 부른 동료들 선배들은 이번에는 춤은 추지 않고 노래만 불렀습니다.
승철 오빠가 부산자유여행을 하다 버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정말 좋아서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다음 노래를 소개했습니다. “괜찮아~ 잘될거야~” ‘슈퍼스타’였습니다. 처음 불러본다는데 참 잘 불렀습니다. 노래 가사를 들으며 조급했던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드디어 예전부터 준비했던 구슬 4기 공연을 했습니다. 저녁 먹기 전에 준비한 곡인 ‘등대지기’, ‘섬집아기’, ‘당신을 응원합니다’를 다 불러서 ‘섬집아기’와 ‘당신을 응원합니다’만 불렀습니다. 동작이 잘 맞지 않아 선배들의 웃음을 샀습니다.
이어서 총동문회 축하 케이크 초를 불었습니다. 초는 총 22개입니다. 22는 12차 복지 순례단의 12, 구슬 1 2 3 4기이 숫자를 다 더한 숫자입니다. 마침 내일이 조아라 선생님 생일이라 생일 축하 노래도 불렀습니다. ‘행복한 과일가게’를 부르며 우리의 만남을 축복했습니다. 노래에서 참 좋은 향기가 났습니다.
인생이 어떻게 익어갈런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향기가 나면 좋겠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달콤한 포도를 주고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는 새콤한 레몬을 주지
세상의 과일이 모두 모여 있는 곳 행복한 과일가게 나는 주인이랍니다
초를 불고 나서 자유발언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유발언은 가운데에 마이크를 두고 어떤 이야기든 하고 싶은 사람이 나와서 제한 시간 내에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잘 이뤄질까 걱정이 앞섰지만 가만히 기다리니 마음이 동한 사람들이 한두 명씩 나오기 시작했고 총 11명의 동료와 선배들이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
시작은 30살에 12차 복지 순례단 활동을 하게 된 김정연 선배였습니다. 정연 선배는 20대에 늦은 방황을 했습니다. 순례를 하며 이렇게 살면 좋겠다는 느낌을 받았고 순례 활동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동료와 선생님을 만난 게 인생의 큰 축복이었습니다. 아기 엄마가 된 지금의 삶도 복지순례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의 배움을 삶에 잘 적용해보길 바라며 발언을 마쳤습니다.
순례 활동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제게도 구슬팀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전환점입니다. 참 귀한 나눔입니다.
이어서 구슬 4기 동료 광환 오빠가 활동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선배들 내리 사랑에 감사하며 좋은 선배가 되기를 다짐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것도 선배들이 내리 사랑 덕분입니다. 받은 사랑 잊지 않고 꼭 후배들과 나누겠습니다. 선배들 고맙습니다.
대익 오빠는 겨울에 한 구슬 활동과는 달리 여름에 활동하며 해수욕을 7번이나 했던 12차 순례단 경험을 말했습니다. 오랜만에 꺼내보는 여름 추억에 12차 순례단 선배들이 신났습니다. 이에 질세라 승철 오빠도 구슬 4기의 겨울 추억을 나눴습니다. 벌써 아름다운 기억들이 한가득 입니다. 이 기억들이 오래오래 잘 쌓여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선배들이 답을 찾으려 순례단 활동 또는 구슬 활동을 했다가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구슬 4기 동료 중에도 어떠한 인생의 답을 찾으러 구슬 4기에 지원한 동료들이 있을 것입니다. 답을 찾지 못했더라도 동료들이 더 많은 꿈들을 마음속에 품을 수 있음을 감사하며 이 시간을 즐기길 바랐습니다.
12차 복지 순례단 이병문 선배는 순례 기간에 쓴 시도 들려줬습니다. 가두리 양식장의 조개보다는 조금은 어둡더라도 자유로운 조개의 진주가 더 빛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해진 방식에 따라 사육되는 게 편할지는 모르겠으나 내 인생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양식장에서 벗어나 치열하게 삶을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슬 2기 박상언 선배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난 데에도 어떠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생에서 인연이 닿는 것은 참 귀합니다. 상언 선배는 우리의 인연을 응원하고 감사했습니다. 우리 만남이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내 곁에 있어주는 모든 인연들에게 고맙습니다.
12차 복지 순례단 선배이신 원지윤 선생님은 12차 복지 순례단 수료식 때 불렀던 GOD ‘보통날’을 개사한 노래를 불러줬습니다. 수료식 당시 조아라 선생님은 많이 떨던 원지윤 선생님 손을 꼭 잡아주었다고 합니다. 그 장면을 재현하며 두 선생님은 손을 꼭 붙잡고 즐겁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사 하나 하나에 순례단 추억과 배움 감사가 녹아 있습니다. 다가오는 수료식에 대한 부담감이 많았는데 노래 형식의 아름다운 수료사를 들으니 뭉쳐 있던 부담감이 풀어졌습니다.
구슬 1기 김승호 선배는 이 활동 또한 인생의 일부이니 부담감을 갖지 말고 즐기기를 권해주었고, 12차 복지 순례단 노수연 선배는 협회들과 일을 하지만 순례단에서 배운 관점을 적용하고 걸언하니 일이 즐겁다고 했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마지막으로 김세진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지금처럼 동료들끼리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자유발언을 듣고 나니 동료들이 더 귀하게 보이고 멀리까지 와 준 선배들에게 더욱 고맙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참 뜻깊은 만남입니다.
과자와 케이크를 나눠 먹고 12차 복지 순례단은 순례단끼리, 구슬 1기는 1기끼리 모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구슬 4기는 센터의 큰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밀린 기록을 했습니다. 구슬팀 활동 처음으로 정해진 취침 시각이 없는 하루였습니다. 여행에 만남에 기록까지 참 알찹니다. 가득한 배와 함께 마음까지 빵빵해집니다. 밀린 기록들을 잘 마무리하고 동료들 모두 빨리 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기록
동문회 할 수 있는 공간과 구슬팀 잠자리 내어 주신 청록만덕실버센터 최소남 이사장님 고맙습니다. 격려 말씀 해주시고 맛있는 인절미 대접해주셨습니다.
청록만덕실버센터 이사장님을 주선해준 상리종합사회복지관 오영석 부장님 고맙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시간 내어 부산에 동문회 오고, 저녁 식사인 피자 치킨 간식 제공해주고, 작은 콘서트와 격려 말씀해준 12차 복지 순례단, 구슬 1 2 3기 선배들 고맙습니다.
제주 서귀포 작은예수회 윤주영 원장님이 준 용돈으로 부산 자유여행 했습니다. 원장님 고맙습니다.
부산 자유여행 때 순강 오빠에게 길 안내해 준 승철 오빠 고맙습니다.
부산 자유여행 때 순강 오빠에게 자비로 맛있는 음식을 사 준 소향 언니 고맙습니다.
구슬팀이 선배들을 위한 공연할 때 구슬팀이 연습한 노래 잘 부를 수 있도록 앞에서 지휘해 준 광환 오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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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쁘지요~ 글 기다리고 있어요.
글 나오면 구슬 선배들과도 공유할게요.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1.28 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