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 주일 강론
오늘 복음은 바로 앞 단락인 지난 주 연중 21 주일 복음과의 연관성 안에서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지난 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믿음(“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σὺ εἶ ὁ χριστὸς 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τοῦ ζῶντος”: 마태 16,16)을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그에게 천국 문을 여는 열쇠를 주셨습니다(마태 16,18-19).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 묻히심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① 예루살렘에 가시어 ②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③ 죽임을 당하셨다가 ④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Ἀπὸ τότε ἤρξατο ὁ Ἰησοῦς δεικνύειν τοῖς μαθηταῖς αὐτοῦ ὅτι δεῖ αὐτὸν ① εἰς Ἱεροσόλυμα ἀπελθεῖν καὶ ② πολλὰ παθεῖν ἀπὸ τῶν πρεσβυτέρων καὶ ἀρχιερέων καὶ γραμματέων καὶ ③ ἀποκτανθῆναι καὶ ④ τῇ τρίτῃ ἡμέρᾳ ἐγερθῆναι”: 마태 16,21)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반박하자(22절),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οὐ φρονεῖς τὰ τοῦ θεοῦ ἀλλὰ τὰ τῶν ἀνθρώπων”: 23절) 하고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ὕπαγε ὀπίσω μου, σατανᾶ”: 23절ㄴ)는 예수님의 명령을 직역하면 “사탄아, 네 뒤로 물러가라.”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앞’이 아니라 ‘뒤’로 물러감으로써 예수님을 따르는 그분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① 자신을 버리고 ② 제 십자가를 지고 ③ 나를 따라야 한다.”(“εἴ τις θέλει ὀπίσω μου ἐλθεῖν, ἀπαρνησάσθω(‘ἀπαρνέομαι’ 동사의 명령법 단순과거 중간태) ἑαυτὸν καὶ ἀράτω(‘αἴρω’ 동사의 명령법 단순과거 능동태) τὸν σταυρὸν αὐτοῦ καὶ ἀκολουθείτω(‘ἀκολουθέω’ 동사의 명령법 현재 능동태) μοι.”: 마태 16,24ㄴ) ‘누구든지’라는 말에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지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αἴρω’는 어머니가 아기를 가슴에 끌어안듯, ‘가장 소중한 것을 가슴에 품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즉 십자가는 마지못해, 억지로 떠맡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랑으로 품어 안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평생 자신을 괴롭힌 육체적 고통을 하느님께서 자신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만드시기 위해 주신 ‘가시’로 여기며 기꺼이 끌어안은 것처럼(2코린 12,7 참조), 우리도 십자가에 담긴 하느님 뜻을 생각하며 기꺼이 끌어안을 때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과 의도가 내 삶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십자가는 나를 괴롭히고 벌주는 회초리가 아니라, 나를 구원으로 하느님 나라로 건너가게 하는 다리가 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두 가지 근본 태도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아모르 수이’(Amor Sui)입니다.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하느님을 밀쳐낸다.’는 말입니다. 하느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을, 자신의 것을 앞세운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각, 자신의 판단, 자신의 뜻, 자신의 가족, 자신의 지위가 더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회피하려 하고, 자기가 필요할 때만 하느님을 찾고, 언제나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청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중심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둘째는 ‘아모르 데이’(Amor Dei)입니다.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밀쳐낸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하느님을 앞세운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 그리고 자신의 뜻이나 자신의 지위 심지어는 혈연 관계마저도 뛰어넘어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뜻을 앞세우면서 하느님을 더욱더 사랑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언제나 하느님을 찾고, 언제나 자신에게보다는 타인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청하고, 자기에게 주어지는 작고 큰 십자가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 중심적인 삶, 타인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 제 2 독서 바오로 사도의 권고 말씀으로 오늘의 강론을 갈무리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1ㄴ-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