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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유령이고 싶다
정유제
금보다 귀한 게 밥이다.
신 여사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켜온 평소의 소신이다. 어릴 때는 보릿고개니, 뭐니 하는 통에 먹을 것이 없어서 그랬다. 지금은 처한 환경이 그런 신념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신 여사는 ‘밥심이 최곤기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다닌다. 역설적이게도 금이 밥보다 귀하다는 사실쯤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설사 금을 손안에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팔아서 밥을 사 먹을 생각은 엄두도 못 내는 위인이기에, 당장 일용할 밥이 최고라고 하는 것이다. 신 여사는 그런 사람이다.
신 여사가 출근할 때 손에는 늘 슈퍼용 검은 비닐봉투 하나가 들려 있다. 한 끼를 때울 밥이다. 새벽일을 나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두 끼를 연명해야 하는 밥은 대부분 김밥이다. 김밥이라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달랑 노란 무 한 가지만 길게 썰어서 넣고 김으로 말아버리는 정도다. 그래도 김밥은 김밥이다. 그것도 여의찮을 때는 억센 손으로 주물럭주물럭 해버린 주먹밥을 준비한다. 별도의 반찬 없이 먹을 수 있는 최상의 밥이기 때문이다.
신 여사는 오늘도 검은 비닐봉투 하나를 달랑달랑 들고 집을 나섰다. 하늘거리는 옷차림처럼 마음 또한 가볍다. 골목어귀를 나서자 더운 바람 한 줄기가 훅하고 끼쳐온다. 신 여사는 오늘도 엄청 더울 모양이라고 짐짓 걱정을 한다. 날씨가 더울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밥이다.
신 여사는 냉장고에 한번 들어간 밥을 죽은 밥이라고 생각하기에 가급적이면 입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자연 상태로 보관하려 한다. 추울 때면 따뜻한 곳을 찾아 웅숭깊게 덮어두고, 더울 때면 서늘한 곳을 찾아 잘 매달아 둔다. 아무리 단속을 하더라도 비닐봉투에 담아 다니는 그 밥이 쉬어버리기라도 하면 그날 점심은 날씨라는 놈의 양상군자에게 도둑맞은 꼴이 되기에 신경이 쓰인다. 날씨도 문제지만, 고양이나 쥐도 신 여사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양상군자이기는 매한가지다.
신 여사가 도처에 널려 있는 양상군자를 피할 수 있는 냉장고에 밥을 넣지 않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싸늘하게 식은 것이, 장롱 위의 제삿밥을 떠올리게 해 죽은 유령의 밥이라고 생각한 탓이다. 시집에서는 꼭 제사를 지낸 뒤 제삿밥을 장롱 위에 얹어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내려서 먹으라고 했다. 다 식은 밥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정말이지 싫었다. 밥이 식은 것은 둘째 치고라도 간밤 동안 쥐들이 들락거리며 ‘제사 덕에 이밥이라’고 온몸으로 활보를 하면서 응당 주둥이까지 처박았을 밥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보기조차 싫었다. 그런데도 시집 어른들은 꼭 그렇게 하라고 했다. 며느리가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집에서 아무리 그래도 신 여사는 죽은 밥을 한 번도 먹은 적은 없다. 먹는 체를 하다가는 어른들 몰래 밥상 밑으로 내려놓았다가 구정물통에 냅다 버렸다. 호강은 소가 한 셈이다. 그래서 조상의 음덕을 못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어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생각지도 않았다. 결혼하고 팔 년을 시골에서 생활한 뒤 도시로 나온 지 육년 만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뒤에야 비로소 든 생각이다. ‘철나자 망령’이라고 이미 잃을 것은 다 잃은 뒤였다. 그때부터 삼형제를 키우느라 손은 권투글러브처럼 볼품없이 두툼하게 부풀어오르고, 얼굴은 푸르죽죽하게 쪼그라들었다. 오늘날까지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궁상이 조상의 음덕을 못 받은 탓이라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신 여사는 비트에 도착하자마자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생명줄과 같은 고리에 검은 비닐봉투를 걸었다. 대롱대롱 매달리던 비닐봉투가 두어 번 가볍게 좌우로 흔들리더니 이내 중심을 잡고 멈춰 섰다. 6.6제곱미터가 채 될까 말까 한 비트는 신 여사의 개인 비밀아지트다. 구청에 소속된 대부분의 미화노동자들이 남자인 탓에, 신 여사는 운 좋게 독방을 얻어걸린 셈이다. 옷을 갈아입을 때나 잠깐의 휴식을 취하라고 마련해준 비트다. 비트 중앙에 비닐봉투를 매달고 난 신 여사는 창문부터 열었다.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서늘한 바람이 비트 안으로 들락거려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창문을 열고 난 신 여사는 창문 옆 못에 걸려 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침에 입고 나온 블라우스와 치마는 옷걸이에 걸쳐서 창문 맞은편 벽에 반듯이 펴 걸었다. 신 여사는 작업복과 출퇴근할 때 입는 옷을 절대로 같은 벽에 걸지 않는다. 현실과 미래, 일터와 가정을 정확하게 구분 짓기 위한 신 여사만의 소신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그리고 보면 생명을 이어가는 밥은 늘 그 중간에 있었다. 비트 안 동서남북의 중간이고, 천장과 바닥의 중간에 생명을 이어줄 밥이 있었던 것이다. 옷을 갈아입은 신 여사는 출입문 옆에 붙어 있는 달력을 찾아 음력 날짜를 확인했다. 제삿날이 맞다.
신 여사의 남편은 열두 살, 열 살, 그리고 미운 일곱 살짜리 삼형제를 고스란히 떠넘기고 졸지에 세상을 떴다. 사고였다. 크레인이 무너지면서 짓던 건물이 폭삭 내려앉는 통에 남편은 그 속에 파묻혀 깔려버렸다. 남편이 죽은, 그 사고는 쓰나미가 되어 신 여사에게도 그대로 덮쳤다. 도미노처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남편을 죽인 사고가 신 여사에게까지 가격했다. 청천벽력이었다. 남편은 불귀의 객이 되고, 신 여사는 남편의 몫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천근만근 짓눌려 오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장례식장에서는 눈물도 눈꺼풀을 뚫고 나오지 못했다. 목울대를 넘지 못한 울음소리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촌수가 먼 집안의 어른들은 ‘남편을 잡아먹고는 울지도 않는 독한년’이라고 수군덕거리면서 타박을 했다. 그들에게 대꾸할 힘은 더더욱 없었다. 물오른 호랑가시나무에 찔리고 찢긴 신 여사의 가슴속에서는 굵은 핏방울이 선연하게 돋아나면서 핏줄기를 이뤄 흘렀다.
남편은 건축공사장을 전전하며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했다. 기술자들이 일하는 중에는 주로 그들이나 하청업체 사장이 시키는 일을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날 즈음에는 연장 등속의 정리며, 간단한 청소 등 허드렛일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해치웠다. 기술자들의 뒷일 설거지까지 도맡아서 하는 남편이었다. 그 때문에 하청업체 사장은 어디를 가든지 남편을 데리고 다녔다. 그 덕분에 남편은 한 번도 백수로 쉬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따뜻한 밥 한 끼가 간절하다. 금보다 귀한 게 밥이다. 지하창고에서 먹는 밥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A회사 앞에서 삼십여 명은 족히 될, 한 무리의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준비하는 중이다. 플래카드에는 ‘여성고령비정규직 삼중고 해결하라’고 쓰여 있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이 들어 보이는 여성들이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취재진은 물론이거니와 회사의 간부라고 지칭할 만한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청소복을 입고, 도로청소용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채 리어카를 끌고 A회사 앞을 지나던 신 여사는 동료의식이 일었다. 피켓에 적힌 내용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을 그대로 풀어내 놓았기 때문이다. 신 여사는 반대편 길가에서 한참동안 그들을 지켜보며 마음을 보탰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찾기. 신 여사는 그동안 마음으로만 가졌던, 막연한 생각이 저토록 적확하게 이야기될 수 있다는 데 적이 놀라며 ‘말의 성찬’에 새삼 혀를 내둘렀다.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 흡족했다. 그러나 이내 가슴이 두근거려오면서 온몸이 순간적으로 떨려오는 것을 감지했다. 불안감이 끼쳐온 것이다. 권리를 찾겠다는 시도는 좋으나 그것이, 그리 쉽게 쟁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신 여사는 응원하던 마음을 바꿔 기도를 했다. 투쟁을 해서 얻을 것을 얻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혹시 물거품이 되더라도 모두 무사하게 살아남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루살이에 진배없는 여성고령비정규직 노동자들로서, 막다른 이 터전마저 잃게 된다면 어디에 발붙이고 살겠는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신 여사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정해진 곳의 거리청소를 시작했다. 먹는 재미로 산다는 사람이 있다. 먹을 것이 넉넉하다는 말이겠다. 반면에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말은 절박함이 배어있다. 재미로 먹건, 살기 위해서 먹건, 먹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형편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자 비트로 돌아온 신 여사는 천장에 매달려 있던 밥을 끌어내려 ‘유령의 밥상’을 차렸다. 한쪽 모서리가 깨진 노란색 맥주상자를 뒤집어 놓은, 지상 비트에 마련된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오찬이다. 노란 무 한 가지만 넣고 말아서 썰어온 김밥 한 개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날씨 덕분에 차갑지는 않다. 먹을 만 했다. 신 여사는 이런 것을 두고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루하루를 걱정해야 하는 인생이지만, 당장 닥쳐올 내일도 지금부터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될 눈앞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순간순간의 포만감에 호들갑을 떨지 못한다. 그래서 신 여사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점심을 먹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신 여사는 밥상을 밀치고 포장용 박스를 펴서 만든 누울 자리를 돌아보았다. 막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즐기는 잠깐 동안의 낮잠은 그 어떤 휴식보다도 달콤하고 좋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눕고 싶은 마음도, 몸이 피곤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신 여사는 그 자리에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어 A회사 앞으로 찾아갔다. 그들은 아침나절과 다르게 거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때까지 회사 쪽에서 책임질 위치에 있는 어느 누구도 얼굴을 내밀거나 대화를 해서 풀자고 제안조차 하지 않은 듯했다. 처우를 개선하라고, 답변을 하라고, 얼굴을 좀 보자고 외치는 구호 속의 인물은 회장이거나 사장쯤은 되는 듯했다. 신 여사는 주변에 있던 전단지 한 장을 주워 펴 보았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전단지의 내용은 구구절절 혀를 내두를 말이었다. 좋은 회사라고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화장실 옆 창고를 개조해 만든 휴게실은 전기도 없다고 까발렸다. 그래서 밥솥이나 밥통, 전자레인지와 커피포트 등 전열기구는 아예 사용할 수 없도록 원천봉쇄를 해버렸다는 것이다. 실내가 어두워 문이라도 열어놓을라치면 꼴사납다며 문을 열지도 못하게 했다는 사실까지 폭로했다. 휴게실 외에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세탁실은 좁고 냄새가 난다고도 덧붙였다. 그래서 점심시간 짬을 내 다리를 뻗고 누울 자리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돈이 없어서, 돈을 아끼기 위해서도 가지 않았던 직원식당은 명토를 박아서 출입금지구역이라는 팻말까지 걸려 있다고 성토했다. 작업복을 입은 미화노동자들은 직원식당에서조차도 ‘관계자 외’의 인물로 지목돼 출입을 허락 받지 못한다는 어이없는 사실을 고발했다. 작업복을 입으면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해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유령이 된다는 대목을 읽던 신 여사는 폭소를 터트릴 뻔했다. 정말 그랬다. 특히 남자들의 화장실에서 더 그랬다. 그들은 여성미화노동자들이 청소를 하기 위해서 화장실로 들어오건 말건 상관없이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화장실 안에 여성미화노동자들이 있는 것을 보고도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지퍼를 내리는 치들도 있다. 유령이라서 안 보였을까? 먹지 못해도 안 되겠지만 배설도 하지 못하면 죽는다. 먹는 일만큼 배설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파초가 열매를 맺게 되면 제 스스로 말라죽고, 청노새가 새끼를 배면 낳지 못해 죽는다는 말은 종교의 성전에나 있는 말이 아니다. 자기네들의 영역에서 배설이라는 거사를 감행함에 누구를 탓하겠는가?
여성미화노동자들이 유령으로 취급당하는 일은 신 여사도 수없이 겪었던 일이다. 새벽 일찍 일을 나가는 날이면 심심찮게 만나는 이들이 술꾼들이다. 그들은 간밤에 마셨던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못하는 일이 없었다. 도로 쪽으로 몸을 돌려서 실례를 하는 것은 다반사다. 청소리어카를 마주보고서도 거침없이 배설물을 쏟아냈다. 차들의 돌진은 가장 두려운 존재다. 그래서 새벽이면 사람의 표식을 분명하게 해야만 했다. 불빛을 반사하는 형광색 제복으로 유령의 몸을 가려야 한다. 꼬이고 뒤틀린 고주박 같은 인생일지나 하나뿐인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신 여사는 가끔 무논에 피어오르는 새벽안개처럼, 희붐한 새벽의 도시를 질주하는 차들을 볼 때마다 날아다니는 전투기가 떠올랐다. 어슴새벽이나 어슴막에 섬광을 뿜으며 적지로 날아가 거대한 폭격을 가하는 전투중계를 텔레비전으로 본 뒤부터 그랬다.
“엄마, 오늘 제사 맞지?”
큰아들 명호의 전화다.
“그래. 맞아. 잊지는 않았네.”
“그런데……나……오늘……많이 늦을 것 같은데…….”
“…….”
신 여사는 딱히 뭐라 할 적당한 말을 생각하지 못해 금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명호는 늘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드는 아들이다. 아버지를 잃고 집안형편이 어려운 탓에 일찍이 학업을 접었다.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고등학교에는 안 가겠다며 일찌감치 일자리를 찾아 나섰던 아들이다. 그러면서 다짐을 했었다. 동생들은 자기가 공부를 시키겠다고……. 동네 사람들은 그런 명호를 장하다고 치켜세워 주었다. 그때마다 신 여사로서는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아리다 못해 쓰라린 생채기를 하나 더 키워야 했다.
“그래…. 일이 바쁘면 어쩌겠나?”
“…….”
이번에는 명호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걱정하지 말고 하던 일이나 잘해라. 장호가 집에 있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말고…….”
말은 막상 그렇게 했지만 신 여사는 큰아들 명호가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말에 허탈한 마음까지 들었다. 여럿의 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큰아들만한 아들은 없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노릇을 하는 명호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일이었다.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서였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번듯한 직장은 아니지만 중국집에서 배달을 할 때도, 막노동판에서 짐꾼을 할 때도 명호는 자기가 하는 일을 소중하게 여겼다. 지금 명호가 일하고 있는 동대문시장 옷가게는 신 여사가 몸담고 있는 구청 사람이 소개해준 곳이다. 그래서 명호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허투루 할 수는 없다며 갖은 정성을 다 기울였다. 그 덕에 가게주인으로부터 귀염을 받았다.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게 주인은 ‘딸이 있으면 사위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명호에게 했다고 했다. 빈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기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다는 모른다손 치더라도, 신 여사는 명호가 절대로 허튼 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제사상 앞에 명호가 없는 모습은 더더욱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남편보다도 더 믿고 의지했던 큰아들이지 않은가? 신 여사에게 명호는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가 아버지 제사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에 신 여사는 어쩔 줄을 몰랐다. 몸은 청소도구를 든 채 길바닥 위에 서 있지만 몸 따로, 생각 따로, 마음 따로 공중을 떠도는 유령이 된 기분이었다. 명호를 향한 집념이 너무 컸던 탓일까? 걷잡을 수 없는 허전함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명호의 부재……. 신 여사는 끔찍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신 여사는 종종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그게 현실로 다가왔던 일을 수없이 경험했던 터다. 좋은 일보다는 꼭 나쁜 일일 때 그랬다. 특히 악몽을 꾸고 난 뒤에 그 비슷한 땜질거리를 반드시 치러야 했을 때는 몸서리를 쳤다. 그래서 마음 놓고 함부로 남을 힐난할 수조차 없었다. 나쁜 생각을 하거나, 좋지 않은 상상을 하거나, 악몽이라도 꾸게 되는 날에는 하루 종일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명호의 부재를 생각하는 자신이 어이없어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며 빗자루를 거머쥐었다.
A회사 앞에서 꽹과리와 북소리가 한 차례 들리더니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우~’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움직이지 않는 산을 향한 외침일까? 회사 건물 유리벽에 부딪혀 튕겨 나온 메아리만 길거리로 쏟아져 유령처럼 사람과 차량 사이를 쏘다니고 있었다.
“엄마, 나야.”
둘째 아들 근호였다.
“그래 몸은 편안하고? 아픈 데는 없지? 훈련은 잘 받고 있는 거니?”
명호와 통화할 때와는 다르게, 근호에게는 말을 느릿느릿 할 수가 없었다. 군대생활을 하는 근호와의 통화는 언제나 그랬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묻고, 엄마로서 확인할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근호 역시도 그랬다. 명호와 다르게 성격이 급했던 근호는 때로 자기가 할 말만 따따부따 풀어놓고는 수화기를 내려놓거나 폴더를 닫아버렸다. 신 여사가 말을 할라 손치면 저쪽에서 먼저 ‘딸깍’하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그래서 근호와 전화를 할 때는 신 여사의 마음도 자연 급해진다. 신 여사 쪽에서 전화를 먼저 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신경전을 벌여야만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늘 그렇게 당했다.
“오늘 제사네. 난 못 가니까 미안해.”
딸깍. 신 여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딸깍’하는 신호음을 들으며 힘없이 폴더를 닫았다. 선수를 쳤건만 근호는 역시나 제 할 말만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신 여사는 정말이지 인정머리 없는 놈이라고 쏘아대며 핸드폰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래도 애비 제삿날은 기억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결혼이라도 해서 에미까지 떠나면 또 모를 일이나 ‘품안의 자식’이라고, 옆에 있었다면 머리라도 한번 쓰다듬어 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치우다 만 쓰레기처럼 마음속에서 늘 어지럽게 뒹굴었다.
신 여사는 퇴근시간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트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향했다. 제사준비를 하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과일이며 고기, 해산물, 포, 떡, 전 등 갖은 음식으로 뻑적지근하게 상을 차릴 수야 없지만 구색은 맞춰야 한다. 신 여사는 아무리 궁색하게 살더라도 제사 음식은 갖추어야 할 선이 있다고 믿는다. 시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기까지 시간적인 여유는 다소 있겠지만, 혼자 하는 일이라는 게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명호를 생각하다가, 아직 장가를 들일 나이는 아니지만 제때 결혼을 시켜야 할텐데 하는 마음이 들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명호가 일하는 가게주인에게 딸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일이겠지만 자식 결혼생각을 하면 자신이 없어진다. 공부는 제대로 시켜주지 않았어도 결혼만큼은 반듯하게 시켜야 할 텐데 앞뒤를 돌아봐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먼저 간 남편이 원망스럽다가도 금세 마음이 누그러뜨려지는 것은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고 간주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울화병으로 벌써 사단이 나도 수천 번은 났을 것이다. 신 여사는 ‘내 탓이려니’ 하면서 참는 데는 이골이 나 있었다.
신 여사는 정신없이 걷다가 움찔하며 놀랐다. 마음만 급했지,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A회사 쪽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머릿속이 하얘진 것처럼 먹먹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하면서 돌아서려는데 꽹과리며 북소리에, 확성기까지 범벅된 소리가 귀청을 찢어 놓았다. 신 여사는 아침부터 시위를 하는 그들이 남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분신이 하는 시위로 여기고 싶은 것이었다. 신 여사 역시 A회사에 몸담고 있었다면 가장 앞자리에 서서 가담했을 것이다. 가려운 데를 긁어주듯이, 꼭 하고 싶었던 거사를 대신해서 해주는 그들이 자신의 생활까지 지켜줄 구원자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이다. 신 여사는 잠시 가까이 가서 일이 어떻게 풀려 가는지 상황이라도 지켜보고 갈 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가슴도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 가까이 다가가자 사람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섬광이었다. 인공위성이 발사될 때 나는 굉음이 저랬을까 할 정도의 폭발음이었다. 간헐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비명소리 사이사이로는 ‘우~’하는 야유가 넘실거렸다. 비명과 야유, 점점 거세지는 꽹과리, 북소리가 소리의 바다를 이뤄 출렁댔다. 스포츠머리를 하고 젊고 건장하게 생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한 사람씩 안아서 시위대열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중이었다. 신 여사는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그 중 한 사내를 덮쳤다. 철퍼덕 하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길바닥으로 엎어졌다. 이내 다른 사내들의 손에 잡혀 있지 않던 무리의 사람들이 신 여사 위로 날아올라 포개졌다. 꽹과리가 깨지도록, 북의 가죽막이 찢어지도록,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소리도 거세졌다. 바닥에 깔린 사내는 어떤 말도 뱉어내지 못했다. 보도블록 바닥에 얼굴을 짓뭉개며 바동거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쉽게 빠져나가지는 못했다. 제 살기 위해 몸을 납작하게 만들어 땅에 바짝 붙이고 끙끙거리는 꼴이 천상 박쥐였다. 잡식성의 박쥐 중에서도 피를 빨아먹는 흡혈박쥐다. 돈이 주어진다면 어떤 장소나 환경도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부여된 용역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흡혈박쥐를 짓이겨 누르며 신 여사는 자신도 짓눌려 오는 사람들의 무게를 감당하려고 애를 썼다. 몸은 점점 더 쪼그라들며 샌드위치가 되어 갔다. 바동거릴수록 힘은 더 빠지게 마련이다. 신 여사는 힘을 축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최대한 힘을 빼 몸을 늘어뜨렸다. 폐에 가득 들어차 있던 공기까지 뽑아내듯 부피를 줄이며 몸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야 밑에 깔려 있는 흡혈박쥐에게는 윗사람들의 무게가 더 실려 괴로움을 한층 크게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안청소는 물론이고 길거리를 쓸고 다니면서 다진 체력 덕분에 얼마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버텨주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지는 게임이라는 생각으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사람 죽네, 사람 죽어. 사람 살려! 어……억, 억, 억…….”
신 여사의 등에 바짝 엎드려서는 귓가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사람이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고함을 질러댔다.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이 귀를 때렸다. 천둥번개소리도 이만큼 크게 들어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계속되는, 등 뒤의 사람이 질러대는 괴성에 고막이 찢어질 듯 했다. 순간 호루라기 소리가 귀청을 뚫을 듯이 들리더니 짓눌리는 무게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제일 밑바닥에 깔려 있는 흡혈박쥐를 구하기 위해 다른 검은 옷의 사내들이 위에서부터 한 사람씩 떼어낸 모양이었다. 신 여사는 끝까지 흡혈박쥐를 놓아주지 않을 작정으로 팔을 벌려서 품었다. 그때 한 사람씩 떼어내며 인간탑을 허물었던 다른 검은 옷의 사내가 신 여사의 배 밑으로 양손을 찔러 넣어 깍지를 끼었다. 맥없이 처져 있는 신 여사는 용을 써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들어 올려졌다. 힘을 다 빼버린 뒤라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었다. 그때 밑에 깔려 있던 흡혈박쥐가 손을 털고 일어나면서 머리통으로 신 여사의 코를 들이박았다. 신 여사가 몸을 홱 돌려 트는 바람에, 깍지를 낀 채 신 여사를 들어 올리던 검은 옷의 사내와 한 덩어리가 돼 옆으로 나뒹굴었다. 코에서 난 피가 볼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얼굴 전체로 따끔거리는 통증이 번졌다. 신 여사와 같이 넘어졌던 검은 옷의 사내는 흡혈박쥐의 손에 이끌려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여보세요. 정신 차려보세요. 많이 다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네…….”
신 여사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 눈을 뜨지 못했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웅성거리는 소리만 흐릿하게 들릴 뿐이었다. 보이는 것도 없고, 일어날 힘은 더더욱 없었다. 짓눌리는 압박감과 버텨내려고 악을 썼던 긴장이 풀리면서 몸은 국수 가락처럼 처져 보도블록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경찰관이 이름을 확인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부르라고 다그치는 소리에 몸이 먼저 떨려왔다. A회사 소속 직원이 맞느냐는 질문도 날아들었다. 이 지경을 어떻게 수습 해야 할지 난감해 어찌할 줄을 모르고 몸을 떨어댔다.
“아주머니, 추워요? 이 여름에 이렇게 떨어서야, 이거. 좀 있다가 시작합시다.”
신 여사는 담당 경찰관 앞에서 물러나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몸은 주눅 들어 사정없이 떨려왔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아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지 않고 A회사 앞으로 간 것이 잘못이었다. 오지랖이 넓은 것도 병이다. 큰아들 명호가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하면 더 큰일이다. 막내아들 장호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 여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쿵쾅거리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엄마. 어디 있어? 빨리 오지 않고.”
“…….”
장호의 전화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폴더를 닫았다. 신 여사는 핸드폰이 다시 울리자 폴더를 열었다가 닫은 뒤 아예 배터리를 분리시켜 버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군 채 눈을 감았다. 길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죽은 다음이라면 모를까, 이 공간을 벗어나 집으로 갈 길이 막막했다. 그렇지만 담담하게 받아내야 할 일이었다. 빨리 집으로 가서 제사 지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저기, 이제 좀 나아졌습니까? 시작해보죠. 이 앞으로 오시지.”
경찰관이 먼저 눈치를 채고 말을 걸어왔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A회사에는 언제 들어갔습니까?”
또 말문이 막혔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간신히 대고, 다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회사에는 언제 들어갔느냐고요?”
“…….”
“아주머니 그 회사 직원이 아니지요? 그렇지요?”
“예에.”
말끝을 흐리며 간신히 대답을 토해냈다.
“직원도 아닌 사람이 왜……. 나. 원. 참. 아주머니 꾼으로 몰리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요?”
“아닙니다. 그저 지나가다가 사람이 다칠 것 같아서 떼어놓는다는 것이 그만……. 나도 상처를 입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오늘이 애들 아버지 제산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신 여사는 애원을 했다. 잘못인 줄도 모르고 그저 사람들이 다칠까 봐 그랬다고 했다. 그리고 제삿날을 무기로 들이댔다.
“저쪽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주머니가 회사 직원도 아니면서 시위를 선동하고, 과격하게 덤벼들었다고요.”
“그것이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사람들이 쓰러지고 넘어지고 해서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뿐입니다.”
“오늘이 제사라는 것은 맞습니까? 이것까지 거짓말로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럼요. 우리 아들을 바꿔 주겠습니다. 전화로 확인해보시면 금세 아실 텐데. 왜 괜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신 여사의 조서를 담당했던 경찰관은 경찰서 전화로 장호와 통화를 하고 나서야 불법시위가담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겠다는 말을 하며 나가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과 통화를 하고, 집 주소를 확인해 놓았으니 일단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확인까지 했다. 다시 부를 때는 언제든지 경찰서로 나와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경찰서 문을 나서며 핸드폰 전원을 켜고 보니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신 여사는 무거운 마음을 다독거리며 동네시장을 찾았다. 캄캄한 밤이었다. 하는 수 없어 길모퉁이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러 건어물과 과일 몇 개를 샀다. 슈퍼마켓에서 나오며 출입문 옆에 붙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다 닦아내지 못한 핏자국이 얼굴 군데군데 널려 있었다. 핏자국 밑으로는 긁히고 짓눌린 흔적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엄마, 왜 이래?”
막내아들 장호가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신 여사는 대꾸도 않고 화장실부터 찾아 들어가 얼굴에 묻어 있는 핏자국을 닦아냈다. 따끔거리며 아렸다. 화장실에서 나온 신 여사는 서둘러 밥솥에 밥을 안치고 과일과 건어물을 손질했다. 평소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을 싫어했던 신 여사지만 오늘은 달랐다. 워낙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장호가 이럴 때는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왜 그렇게 됐느냐고 묻지를 않아서였다. 신 여사는 쓴웃음을 삼켰다.
장호 혼자 제사를 지내라고 거실에 상을 차려준 신 여사는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늦은 밤 시간 텔레비전을 본 적이 없었기에 몇 시, 어디서 뉴스를 하는 지는 더더욱 몰라 일단 전원부터 켜고 채널을 여기저기로 돌렸다. 불구속 기소라는 말에 겁을 먹었지만, 시위를 하던 A회사 직원들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순간을 못 참고 채널을 돌렸지만 뉴스 하는 곳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랬는데.”
“넌 몰라도 돼. 제사나 지내라.”
“제사가 지금 중요해? 산 사람이 이 꼴인데 제사는 무슨…….”
“나는 괜찮다. 뭐가 발에 걸려서 좀 심하게 넘어졌을 뿐이다.”
신 여사는 두려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들다는 것은 많이 느꼈지만, 막상 두려움을 느끼기는 정말이지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감한 일이다. 경찰서에 다시 불려가야 하는 것도 그렇고, 아들네들이 눈치를 챌까봐서도 그랬다. 스스로 저질러 놓은 일이지만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남의 회사 일에 끼어들었다고 일자리까지 잃을지도 모르는 공포감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다. 큰일이다. 몸에 돋은 상처쯤이야 시간이 가면 아물고 없어지겠지만,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은 하루하루가 절박한 형편이다. 여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후회가 해질녘 산 그림자보다도 빠르게 몰려왔다. 온몸이 짓이겨지는 무게에 오한까지 덩달아 찾아와서 괴롭혔다. 간신히 찾아낸 뉴스채널에 눈을 박고 귀를 세웠지만 끝끝내 A회사 앞 시위사건은 한 줄의 자막도, 한마디의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대수롭잖은 일이어서 그렇겠거니 위안을 하면서도 걱정은 좀체 잠재워지지 않았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신 여사는 모든 것을 자기 탓이라고 여겼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을 때도, 세 아들이 저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푸념을 할 때도 누구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내가 지어온 복이 까짓 것인데 남 탓을 해서 뭣하겠는가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 세상에 식솔들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무심하게 떠난 남편도 자기 복이 거기까지인 것이고, 남은 가족들의 인연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었다. 자식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들 복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하면서 속을 달랬다.
명호, 근호, 장호 세 아들이 차례로 눈앞에 어른거렸다. 미안하다 못해 부끄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창피스러운 것도 그렇지만,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사이 구청에서 알았다가는 당장 쫓겨날 것은 뻔한 일이기에 걱정이 앞섰다. 되돌릴 수 있는 일이라면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은 마음에 안절부절 못했다. 똥 마려운 강아지 속이 이보다 더 갑갑할까 하는 생각도 느물느물 끼쳐왔다. 차라리 유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였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유령이 되고 싶었다. 한 달 일을 한 몫은 통장으로 들어오니 월급날이라고 해서 구청직원들을 대할 이유는 없었다. 거리청소를 하는 일도 각자의 정해진 구역에서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기에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 행세를 해야만 할 까닭은 없었다. 이 세상에서 충분히 유령으로 살아갈 수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자식들이었다. 자식들은 집안에서 눈뜨고 있는 한 소리 지르고 부대끼면서 살을 비비고 살아야 하는 가족이지 않은가. 이들에게까지 유령으로 행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듯 했다.
입이 벌어지지 않아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던 입속에 희미한 실웃음이 돋아났다. 아예 감당하지 못할 일을 당했을 때 차라리 용기가 생기고, 괜한 만용도 일어나듯이 불가항력의 자포자기 상태에까지 맞닥뜨린 기분이 들자 몸이 먼저 무너졌다. 나중에 닥쳐올 불운을 미리 걱정하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리라. 신 여사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 옆으로 누웠다.
“엄마. 제사상 치워야지.”
제사를 마친 장호가 부르는 소리에 놀란 신 여사는 벌떡 일어나 얼굴도 들지 못한 채 방을 뛰쳐나갔다. 신 여사는 큰아들 명호가 오기 전에 서둘러 정리하고 방으로 숨어들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제사상 위에 있던 마지막 음식인 과일을 주방으로 들고 가 냉장고에 넣으려고 할 때 명호가 불쑥 들이닥쳤다.
“많이 늦었구나. 제사는 장호가 다 지냈다. 피곤하겠다. 어서 들어가 자거라.”
신 여사는 큰아들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빨리 방으로 들어가라고 옆구리를 떠밀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제삿밥 한 술이라도 먹여서 재우려고 했을 것이지만, 오늘은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행스럽게 명호도 술기운이 도는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흐느적거리며 이내 방으로 들어갔다.
신 여사는 억척스럽게 살아온 그간의 모든 노력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주체할 수 없는 기분에 속까지 매슥거려 옴을 느꼈다. 혼자 앉아 있는 방안의 물건들마저도 이물스레 공중을 떠다녔다. 남들 다 잘 살아가는 대열에 섞여들지 못하는 낙오자. 갈라진 마룻바닥 틈새 끼여 있는, 수십 년 묵은 땟자국처럼 흉물스럽게 세상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듯한 처지를 생각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치가 떨렸다. 속을 후벼 파고드는 아픔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쥐어뜯듯 움켜쥐었다. 손끝에서 피가 보였다. 피를 보는 순간 구역질이 났다. 신 여사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얼굴을 박고 토악질을 해댔지만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것은 신물뿐이었다.
“차라리 유령이고 싶다. 유령이 되고 싶다고.”
신 여사는 변기를 뒤집어쓰고 유령이 되리라고 핏대를 세웠다. 그러나 신 여사가 울부짖듯 쏟아낸 말은 끝내 변기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머리통을 감싸고 있던 두 손이 위아래로 요동을 치면서 이마만 연방 변기 모서리를 찧었다.
정유제
경북 성주 출생. 2010년 『시에』로 등단.
―『시에』(2010, 여름호)
첫댓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시며 할 말을 다하신... 낮에 읽고 지금 다시 한 번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재미있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이야기의 무게감...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연수 선생님 감사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시에카페에서 함께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밥, 밥이 아픔입니다.
정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한평생 응어리진 마음이 격렬하게 몸을 뚫고 빠져나온 한 순간의 댓가로 오히려 인생이 더 고달퍼진 여인의 삶을 간단치 않은 시선으로 보여주셨네요. 더욱 정진하셔서 좋은 소설들 계속 써내시길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다녀가셨네요. 감사합니다. 첫 단추에 이은 약속을 빨리 지켜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