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석 목사
바로 이 본문으로 곤고한 날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봄바람에 순풍을 맞은 것과 같이 좋은 때도 있고 반면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듯한 어려움도 있을 때가 있습니다.
형통한 때가 있고 곤고한 때도 있습니다. 건강할 때가 있고 병들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날들을 살다보면 "내 인생에 왜 이런 아픔이 있나?!하고 가슴아파 할 때가 있지만 이에 대해서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는 병행하게 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행하게 했다'는 의미는 누구든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평행선이 되어 삶을 이루게 된다고 하는 말입니다.
잘될 때가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되는 것은 잘될 때에 교만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특별히 곤고함이 자기에게 불행함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솔로몬은 그의 인생이 그야말로 형통이요 부귀영화를 한껏 누려본 사람입니다.
다윗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사람인 이 솔로몬이 그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를 오늘 본문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인생은 허무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인생은 곤고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솔로몬의 고백만이 아닙니다. 부귀영화를 누렸던지 그렇지 못했던지간에 누구가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사실이인 것입니다.
배고프면 배고픈 그 자체가 곤고입니다. 호화를 누리면 호화를 누리는 그 자체가 곤고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인기절정의 연예인들이 오늘 마약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마릴린 몬로라고 하는 세계적인 배우도 그의 인생을 자살로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인생의 공허함을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채울 수가 있겠습니까?
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해도 그 자체가 주는 어렵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도 그 자체가 주는 인생의 곤고함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루 다리 맡에서 날 밤을 지새우는 노숙자도 그 자체가 주는 인생의 곤고함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이런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사는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고 오늘 본문은 1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해가 없으면 온 우주 만물은 살 길이 없습니다. 그 어느 동물도 , 그 어느 식물로 햇빛 한 줄기 없는 곳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음지식물, 음지동물이라고 해도 양지에 대한 상대적인 삶일뿐입니다. 빛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해가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지혜는 이러한 해와 같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곤고한 날에는 어떤 지혜가 필요합니까?
1. 곤고한 날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우리는 흔히들 형통한 복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생의 곤고함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본문에서도 살펴 본 바와같이 곤고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루에도 밤과 낮이 있습니다. 만약에 낮이 좋다고 낮만 있고 밤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쇼. 살 수가 없습니다. 낮과 밤이 균형을 이루어 존재하는 그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아랍속담에도 "햇빛만 좋다고 계속 비취면 아무리 좋은 땅도 사막이 된다"라는 격언이 있다고 합니다. 그 지역의 특수성에 맞는 격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년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봄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름도 있어야 합니다. 봄, 한계절로 만물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맨날 꽃만 피우면 열매는 언제 맺을 것입니까?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꽃이 피어야 되지만 내리쬐는 햇볕이 있어야 됩니다. 열매를 맺고난 후 다 쉬어야 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하와이는 환자들의 휴양지로 최고요, 망명객들이 도망가서 살기 좋은 고싱라고도 합니다. 관광지로 최고로 알아줍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날마다 관광만 하면서 지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의 형통과 곤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은혜로 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고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벧전 2:19-20에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고난을 받은 사람을 손꼽으라고 하면 우리는 주저없이 "욥"을 꼽습니다. 당대에 제일 가는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진실된 마음이 있습니다. "주신 자고 야웨시요 취하신 자요 야웨시오니 야웨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신 자도 야웨시요 취하신 자도 야웨시다"라는 고백은 보통 마음이 아닙니다.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이 고백의 의미는 모든 것을 비웠다는 뜻입니다. 비운다는 것! 참 어렵지만 참 귀한 은혜입니다.
마음을 비운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곤고한 날에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러한 날도 주셨다는 은혜로 곤고한 날을 이길 수 있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곤고한 날이 올 때 손해보다는 곤고함 속에 묻혀있는 유익을 추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고통 가운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과 탄식과 분노입니다.
병이 났을 때는 건강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속상함과 슬픔과 분노가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는 잃어버린 물질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가 있습니다. 배신을 당했을 때는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탄식과 분노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곤고함 가운데 있을 때 전부 잃었다는 생각 때문에 심령이 곤고해 지고 괴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사항이 있습니다. 잃는 중에 우리가 잃는 것 보다 더 많이 얻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망하는 중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손해보는 중에도 유익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유익되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더 많이 남게 됩니다.
다윗은 참으로 많은 삶의 질곡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는 시편 23편에서 고백한 표현 가운데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표현도 아낌없이 사용할 정도로 힘든 인생의 질곡을 거친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그가 얻은 진리는 이것이었습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시119:71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우리가 세상적인 유익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곤고함 가운데서 우리가 배워야하고 또한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곤고할 때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을 더 만나게 되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가가이 할 때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곤고한 날 가운데 있습니까? 욥의 고백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사도바울은 곤고함 가운데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의 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가 성경을 기록할 때 금실침대에 누워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축축한 지하감방에서 기록하면서 곤곤한 세월 속에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담아냈던 것입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곤고함이 왔을 때 뒤로 물러가지 마시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세우시는 하나님,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3) 곤고한 날에는 기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 곤고할 때 기도하는 것은 지혜 중에 최고의 지혜라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지혜라는 표현보다는 믿는자의 기본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장애일을 알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지금 눈물로 기도하지만 내일 웃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곤고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약 5장에서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심령 속에 있는 고통과 근심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나갈 수가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염려와 근심은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서 내 보내야 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도 "기도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원망, 불평, 근심, 염려는 기도해야만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곤고를 내몰아야 합니다. 밖에서 안으로 얻어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내 보내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안에 있는 모든 근심과 염려, 원망, 불평을 먼저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먼저인 것입니다. 박에서 안드로 들이는 것은 두번째인 것입니다.
성경은 시50:15에서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곤고한 날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이 곤고 가운데서도 우리는 얻을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는 곤고한 날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곤고를 축복과 승리로 바꿈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지혜롭고 위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