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海道 미술기행
일본의 讀賣(요미우리)신문 2018년 8월 20일자의 기사를 옮긴다. 2018년 여름 일본과 여러 외국 사이에 항공기 운행 편수가 총계 한 주일에 4,926편이라고 하고, 나라별로는 다음과 같다고 했다. 상위 10위까지만 든다.
한국 1,116.5편, 중국 1,042.5편, 대만 593편, 홍콩 404.4편, 미국 296편, 유럽 262편, 타이 187편, 필리핀 163,5편, 하와이 151편, 싱가포르 129편
한국과 일본 사이에 비행기가 가장 빈번하게 오간다. 아내와 나도 일본 북해도를 택해 일본을 오가는 사람들에 끼었다. 북해도는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원한 날씨 덕분에 방문객을 모으는 곳이다. 밑천을 들이지 않고 장사를 한다.
기차를 타고 거의 일주를 하면서 자연을 보는 것으로 구경거리를 삼았다. 문화유적은 찾아갈 것이 거의 없다. 가는 곳에 미술관이 있으면 들러보기로 하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음과 같은 구경을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일본은 미술의 나라임을 멀리 가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연관광이 미술기행이기도 해서 이중으로 소득이 있었다. 쉬러 갔다가 공부를 많이 했다.
(가) 8월 14일 삿보로: <日本의 美: 에도시대 미술전 특별전>
(나) 8월 15일 아사히카와: 프랑스 근대미술전
(다) 8월 21일 쿠시로: <棟方志功(무나카타시고우) 福光(후쿠미츠) 時代展>
(라) 8월 22일 하꼬다데: <奇才 달리(Dali) 판화전>
일본 미술전 둘과 서양 미술전 둘이 균형을 이루었다. 일본 미술의 유산을 소중하게 여겨 기획전을 마련해 보여주는 일을 꾸준히 한다. 서양 미술에 대한 이해도 고루고루 갖추려고 노력한다. 공공기관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관람객이 많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룬다.
(나)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먼저 고찰한다. 특별한 주제 없이 프랑스 근대미술 작품을 이것저것 모아서 전시했으나, 인상파 직전의, 인상파에 가려 빛을 잃은 풍경화가들을 여럿 소개한 것이 특기할 사실이다. 그 대표자자 도비니(Dauvigny)라고만 하고 이름을 일일이 들지 않는다.
풍경은 햇빛에 비친 것을 그려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황혼 어스름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재인식하게 했다. 프랑스에 가서도 분명하게 얻지 못한 소중한 깨우침이다. 인상파는 과소평가 때에는 피해자 노릇을 하다가, 갑자기 과대평가되어 가해자가 되었다.
어찌 인상파만 그런가? 과소평가와 과대평가의 양극단이 횡행해 양식을 파괴하고 균형을 깨는 불행이 사람이 하는 활동 거의 모든 여러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심이 변덕스럽고, 인기란 놈이 요상해서 세상을 망친다. 과소평가된다고 억울해 하지 말자. 과소평가는 성실하게 분발하라는 보약이다. 과대평가라는 독약을 마시면, 가죽을 다투어 찬탄하는 죽은 호랑이 신세가 되고 만다.
(가)에서 에도시대 그림을 주름 잡던 狩野派(카노파)의 위세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京都의 시가지를 그린 <洛中洛外圖屛風>, 전쟁하는 장면을 그린 <源平合戰圖屛風>는 놀라운 그림이다. 높이는 150cm대이고 폭은 350cm대여서 대저택 거주자 펼쳐놓고 감상할 수 있는 거작이다. 이런 그림을 바라보면서 흐뭇해하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웠겠는가? 한편에서는 시가지가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어, 건물이 이어지고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간다. 다른 한편에서는 화면 곳곳에서 말 탄 장병, 배를 몰고 온 용사들이 마구 얽혀 생사를 다투는 싸움을 벌인다. 경제력으로 군사를 길러 전쟁을 하고, 전쟁에서 이기면 도시를 차지해 호화로움을 극대화했다. 두 그림 다 금색을 바탕으로 하고, 금색 구름 같은 것이 겹겹이 화면을 가로지르고 있다. 자부심ㆍ허영심ㆍ불안감을 함께 나타낸 것 같다.
狩野派(카노파)라고 한 가문의 화가들이 이런 그림을 그리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幕府의 애호를 받으면서 함께 영광을 누렸다. 솜씨가 너무 뛰어나 혁신이 내부에서도 필요하지 않고, 위세가 절대적이어서 도전자가 있을 수 없었다. 비교 대상이 없어, 과도평가라고도 할 수 없는 절대평가를 누렸다. 흉내를 내면서 비슷한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추종자들은 있어도, 과소평가를 감수하면서 소박하나마 진실을 찾고자 하는 예외자는 나타날 수 없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朝廷ㆍ士林ㆍ方外의 세 영역이 있었다. 셋은 활동영역이고, 정신세계이고, 문학이나 미술의 창작방식이다. 조정에 소속된 전문 화원들이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기량을 자랑한 것과 별도로, 재야의 문인은 詩書畵를 하나라고 여기면서 사림의 정신을 나타냈다. 방외의 탈속을 기대하는 신선도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朝廷 밖은 市町이기만 하고, 士林이나 方外는 따로 없었다. 문인은 아닌 시정의 화가가 장식과 외형에 치우친 문인화를 그리는 일이 더러 있었다. 池大雅(이케노타이카)의 산수화가 좋은 본보기임을 이 전시회에서도 확인했다. 曾我蕭白(소가시요우하쿠)가 산수화나 신선도를 과장된 수법으로 그린 것을 보여주었는데, 고결한 정신세계 탐구와는 거리가 멀고 시정인이 기괴한 것을 선호하는 취향에 호응했다.
(다)의 棟方志功와 (라)의 달리를 비교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둘 다 규범이나 논리를 부정하고 현실을 넘어선 세계로 치달은 공통점이 있다. 현실을 넘어서려면 현실을 비트는 발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같다. 두 전시회를 거푸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다)에서는 棟方志功가 시골을 찾아가 절간을 드나들면서 불교에서 유래한 형상을 아무렇게 망가뜨린 것들을 보여주었다. (라)에서는 달리가 단테(Dante)의 <<신곡>>을 그림으로 옮긴다면서 기독교의 심상을 괴이하게 비틀어놓은 것들을 전시했으며, 지옥편이 압권이다. 불교와 기독교를 발판으로 삼아 인식을 교란한 것이 같다.
그러면서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다. 한쪽은 화면이 크고 색채가 화려하면서 담은 내용은 단조롭다. 거의 동어반복이어서, 작품이 많지 않은데 보기 지루하다. 다른 쪽은 작은 그림을 섬세하게 그리면서 각기 다른 짓거리를 예상을 넘어서고 충격을 주는 방법으로 펼친다. 계속 긴장하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탐닉하게 한다.
棟方志功에 대한 평가는 좀 낮추어야 한다. 달리는 다시 보아야 한다. 진지하지 못한 장난으로 그림을 보는 사람을 우롱하기만 한다고 여긴 것을 반성한다.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 진지한 노력을 한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놀랐다.
棟方志功도 불교에 더 들어가 많은 것을 활용했어야 한다. 풍부한 이야기 거리가 있는 것을 찾아 <<서유기>>라도 우려먹으면 <<신곡>>보다 약효가 더 클 수 있다. 미술이 문학과 멀어지면 발상이 빈곤해지는 것을 알고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