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21》 사무실에 5월 중순 리영희 선생으로부터 한 통의 엽서가 도착했다. 엽서에서 리 선생은 공개하지 않은 북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이에 《민족21》은 복잡한 상황에 놓인 민족의 현실에 대해 리 선생님으로부터 귀한 말씀을 듣기 위해 선생의 자택을 방문했다. 리 선생은 그동안 분단과 냉전에 갇힌 남쪽 사회에서 ‘인식의 해방자’이자 ‘사상의 은사’로 불리며 많은 사람에게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그는 2000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오른손과 발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 반대와 잘못된 한미동맹의 재정립, 그리고 남쪽 사회에서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미국 숭배라는 미신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거듭 촉구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기자협회에 제정한 제1회 ‘기자의 혼’상을 수상했고, 전집 발간을 준비 중이다. 냉철하고 진중한 리영희 선생의 시대 읽기를 《민족21》 발행인 명진 스님과의 대담으로 소개한다.[편집자주]
대담 명진 발행인 정리 유병문 기자 사진 김도형 객원기자
일시 2006년 5월 31일 오후 2시 장소 경기도 산본시 리영희 선생 자택
명진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리영희 일전에 보내준 차는 잘 먹고 있고, 《민족21》에서 보내준 책 두 권도 잘 받았습니다. 책이 아주 좋더구먼.
명진 최근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리영희 기관지가 안 좋아 앰뷸런스를 두 번이나 탔지. 겨울엔 가래가 맺히고 영 힘든데 봄엔 좀 낫다고. 누가 천마를 술로 담아서 마시면 좋다고 하면서 보내왔는데 영 독해서 못 먹고 있지. 그래도 지금은 퍽 좋아진 편이야.
명진 전에는 술을 많이 하셨는데 전혀 안 하십니까?
리영희 독주는 못 마시고 막걸리나 포도주는 가끔 하지. 의사가 적포도주는 순환기 계통에 좋다고 권하더군. 조금 있다가 기자들하고 막걸리 한 잔하면서 얘기할까 하고 준비해 놨으니 사양 마시오.
“진실만이 내가 숭배하는 가치
거실에서 《민족21》 취재진을 맞았던 리영희 선생은 준비해 놓은 쌀 막걸리와 족발이 차려진 식당으로 기자들을 안내했다. 자연스레 대담은 술 한잔을 리 선생한테 건네며 시작됐다.
명진 얼마 전 한국기자협회(이하 기자협회)에서 제정한 제1회 기자의 혼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기자협회가 기자의 날을 제정한 건 처음 있는 일인데,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신군부독재의 광주학살 왜곡보도에 반대하여 기자들이 제작 거부 투쟁을 시작한 5월 20일을 기점으로 삼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리영희 내가 그날도 얘기했지만 나보다 1980년 군사정권에 항거한 언론인들을 기리려 날을 정했으면 그런 사람이 상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갉. 나는 양심을 가진 기자로서 혹은 학자로서 살아온 것밖에 없고, 특히 5·18 당시엔 광주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줄도 몰랐어. 그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남산에 있는 돌을 깎아 만든 방 속에 갇혀 있었지.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나왔는데, 나중에 집사람이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호외를 보여주더구먼. 그제야 광주를 알게 됐지.
명진 기자로서 오랫동안 활동해오셨는데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우리 시대 언론의 정신이 있다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겠습니까?
리영희 나는 국가나 애국심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속한 국가, 정부, 사회라 하더라도 진실을 기본 정신으로 삼지 않는다면 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거부했어. 그런 점에서 진실만이 내가 추구하고 숭배하는 가치야. 언론은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 또한 민중과 사회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자기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돼.
명진 6월에는 선생님의 저작이 전집으로 출간된다지요?
리영희 나란 사람은 별 대단한 학문도, 실력도, 사상적 바탕도 없는 사람인데, 내 책을 읽고 많은 젊은이들이 의식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다는 건 과분한 일이지. 내가 주장한 것들이 누구에게나 상식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쓰긴 했지만 그만큼 반향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 지금은 상식으로 통하는 것이 절반, 그렇지 않은 것들이 절반쯤 되는 것 같아. 아직도 내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내 생각보다 변화가 적은 게 아닌가 싶어.
미국이 어떻게 감히 인권과 평화를 논하나
명진 선생님께서는 미국의 본질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해오셨습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데요. 현재 미국에서 제기하고 있는 북의 인권문제를 어떻게 봐야하겠습니까?
리영희 미국이 인권문제 다루는 것은 진정하게 인권문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순 정치적 모략이지. 미국이야말로 인권 탄압, 최고의 인권인 생명을 유린 말살한 최고의 범죄국가가 아닌가. 미국 내의 인종차별은 두말할 것 없고 전 세계적으로 인권 탄압에 앞장선 수십 개 나라를 미국이 지원해왔잖아. 대표적으로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가 1975∼1976년 사이에 포르투갈령이었던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에 합병했는데, 이 지역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무자비하게 학살했지.
미국 언론들이 20만∼30만이 죽었다고 했지만 실제 학살당한 민간인 수가 40만∼50만 명에 이른다고 훗날 인도네시아 대사가 실토했지. 그 학살로 스와라지강이 석 달 동안 벌겋게 핏물이 흘렀다는 거야. 그걸 지원한 게 미국이야. 히틀러 다음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유린한 범죄인 남아프리카연방의 인종격리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원한 것도 미국이지.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을 말살하고 고향에 못 가게 높이 20m의 벽을 쌓은 이스라엘의 만행을 돈과 무기, 정치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미국이야. 그런 이스라엘을 전 세계가 규탄하는데 오직 미국만이 지지해. 가장 극악한 독재정권을 20∼30년 간 지원한 미국은 그들의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적어도 절반은 책임져야 해. 그런 미국이 감히 어떻게 남의 나라 인권문제를 제기할 수 있나.
명진 미국이 독재국가를 지원한 것이 단순히 정치적 지지나 묵인만이 아니라 군사적인 부분까지 깊숙이 들어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리영희 미국이 이스라엘에 핵무기를 지원했는데, 지금 이스라엘이 중국보다 핵무기가 많아요. 1980년대에만 해도 핵탄두가 100개 있었어. 그걸 이동할 2000km급 미사일은 200기나 있고. 남아프리카연방도 1993년까지 여섯 개 반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어. 왜 여섯 개 반이냐? 여섯 개는 미국이 지원한 거고 반 개는 만들고 있는 중이었거든.
1994년 만델라 대통령이 들어서는데 만델라에게 핵무기를 넘겨줄 순 없으니까 6개는 가지고 오고 만들다만 반 개는 미국 CIA와 과학자들이 가서 해체했어. 세계적으로 악랄한 인권 유린자들에게는 핵무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북과 이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말이 되나? 미국은 남미의 흉악한 독재자들과 우리의 박정희, 전두환 등 가장 비인도적인 정권을 지원해왔어.
미국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국민복리,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는 적대시해왔어. 대표적인 예가 1973년 칠레 아옌데 정권을 미국이 무력으로 쓰러뜨린 것 아닌가? 가장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을, 미국의 반인권적 탄압과 수탈에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한다며 그런 거지.
명진 미국이 그렇게 남미를 관리해왔지만 최근 남미에서 좌파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리영희 볼리비아, 브라질, 베네수엘라 모두 과거 미국의 범죄적 사주에 의해 쓰러진 나라들 아니요. 그 민중의 원한이 미국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지.
명진 쿠바나 북 같이 사회주의를 채택한 나라는 어김없이 미국의 경제적 봉쇄와 군사적 압박, 외교적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공격으로 많은 나라가 붕괴되었는데 50년 넘는 압박에도 북이 건재한 이유를 무엇으로 보십니까?
북 건재 이유는 김 주석의 민족철학과 지정학적 위치 때문
리영희 일단 내적인 조건과 외적인 조건이 있다고 봐야지. 내적인 조건으로는 북 건국의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민족철학 때문이지. 북은 외세와 싸워온 역사를 국가와 민족의 국가 정책, 철학으로 계승했고, 그 때문에 차라리 외세에 모욕을 당하느니 죽는 게 났다는 생각을 가지고 미국과 맞서고 있어. 둘째는 6·25 때 국가가 소멸될 뻔한 경험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자기 나라의 생명의 존속을 고민하는 결의가 내부에 있지. 특히 북쪽 군대는 남쪽의 군대와 달리 그 행위의 중심인 군부가 과거의 친일파가 아니라 민족에 대한 충성이 철저한 세력이기 때문에 어떠한 외세의 압박에도 나라를 지키려는 정신이 있는 거요.
외적 요소로는 중국이 북과 국경을 맞대고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지. 그것이 많은 힘이 된다고 봐야지. 지금까지 미국이 핵으로 북을 공격하려고 한 것이 10여 차례 있는데, 그때마다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까 미국 쪽으로선 자신이 없었어. 중국은 6·25를 겪었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이 합세해서 북을 점령한 뒤 자신들과 국경을 접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 게다가 과거 소련이 미국의 사랑을 받기 위해 움직이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과 같이 미국에 대항하고 있으니까, 전쟁을 하려면 중국이나 러시아하고도 같이 해야 하니까 불가능한 거지. 그러니까 미국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거야.
명진 그래서인지 미국은 최근 미일동맹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한미동맹도 강화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리영희 그렇지. 일본과는 이미 군사적 일체화 수준에 이르렀으니까 한국을 어떻게든 더욱 강력한 군사동맹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지. 노무현 정부가 좀 우습지만 노무현 개인보다 지난 10∼20년 동안 각성하고 강대해진 시민세력이 미국에 대한 일방적 군사동맹화를 용납하지 않을 만큼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어. 그 전에는 양해니 조정이니 하는 것 없이도 미국이 자기 맘대로 했을 거야. 다시 북과 전쟁을 하면 6·25 때처럼 맘대로 한국을 움직일 수 없을걸.
명진 최근 일본이 독도에 대해 도발을 하고 있는 것도 미일군사동맹을 믿고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일본이 우리 땅을 침탈했던 것처럼 독도를 침탈한다면 미국이 일본을 지원하면서 모른 체 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리영희 그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세력 균형자와 세력 분포라는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봐야겠지. 미국이 일본을 지원해서 중국과 북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기 위한 힘을 축적할 때까지는 일본의 그 같은 태도가 도움이 되지.
일본은 미국 추종이니까. 하지만 일본이 군국주의를 강화하면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교과서문제와 독도문제를 계속 일으킨다면 한국민이 참지 못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붕괴될 수밖에 없어. 지금은 그런 단계에 와 있어. 그런 점에서 미국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지.
한국이 일본과 함께 미국의 강력한 군사기지가 되어야 중국과 북에 맞설 수 있는데 일본과의 고리가 끊어진단 말이야. 일본의 독도문제 야기나 야스쿠니신사 참배, 교과서 왜곡 문제 등의 태도가 죽을 맛일 거야. 그래서 미국 의회에서 일본을 나무라고 있는 거지. 일본 때문에 한국이 자꾸 미국과의 동맹전선에서 이탈하니까. 앞으로 독도문제 때문에 거의 결정적으로 일본과 함께 하기 힘들 것 같아. 그래서 독도문제를 좀 더 강하게 우리가 밀고 가야 하는 거야.
숭미의식과 일제 때 내선일체 주장은 같은 꼴
명진 우리 사회는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 분노하는데, 왜 미국이 평택 대추리를 거의 영구적으로 점령해 군사기지화하는 데는 다수가 침묵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왜 같은 외세인데 미국과 일본에 대한 생각이 다를까요?
리영희 미국이 없으면 못 산다는 한심한 노예 의식 때문이지. 거기에 남쪽이 북쪽과 대등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 협상을 하는 게 못마땅하니까 미군을 앞세워서 자꾸 긴장을 만들려는 거야. 북쪽이 남쪽을 공격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으니까 미군이 우리 생명 보호해준다고 역시 착각하는 거야. 일제 때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면서 내선일체 주장한 것과 최근 미국을 따라 세계시민이 되자며 미국 시민이 되려는 꼴이 똑 같다고.
명진 미국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앞으로도 미국의 영향력은 막강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미국과 잘 지내지 않으면 우리의 운명도 장담할 수 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리영희 한마디로 비역사적, 비주체적, 자기 패배적인 사고야. 미국? 미국의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범죄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그런 점에서 미국은 근본적으로 부정돼야 할 객체라는 걸 분명히 하면서 우리의 행위를 결정해야 해. 미국은 막강하다, 그러니 따라야 한다는 건 물신주의에 빠져 있을 때 나오는 결론이야. 미국의 지배력은 물질적 힘에서 나오는 거야. 한마디로 군대지. 하지만 미국에는 정신적, 도덕적인 순수함과 고결함이 없어.
오로지 물질적 소유를 통해 이익을 내는데 그것은 악의 구축이야. 정신은 없고 타락한 물질적 악만 있는 미국이 어떻게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겠어. 현실적으로도 미국의 자본주의는 쇠퇴기에 들어서고 있어. 그들의 뒷마당이라는 라틴아메리카를 봐. 미국에 대해 민족자존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잖아. 유럽 국가들이 이란 문제에서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야.
모든 제국주의는 일정한 정점에 오른 다음부터는 변증법적으로 약화되고 내부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겪게 돼. 로마제국이나 청 제국, 대영제국도 그랬잖아. 어떤 현상을 볼 때 역사적 관점을 바로 가지지 않으면 그따위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지.
명진 최근 경기도에서 미군이 군사 훈련을 한다며 농민에게 길 비키라고 총부리를 들이댄 적이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 소리도 못했겠지만, 그 농민이 사과를 받으려고 끝까지 미군을 쫓아가 항의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죠. 미국의 손아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징후 같은데요.
리영희 국민이 미국에 대해 자각해나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국가 역량을 발동하고 동원하는 국가 권력의 구조 요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 실제로 국가 권력의 70%를 점령하고 있는 수구 보수세력들의 인식과 행동은 여전히 미국의 손아귀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 때문에 국가적으로 미국에게서 전혀 못 벗어나는 거지. 다만 20∼30년의 민주화투쟁 속에서 강화된 민중의 의식이 민족의식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는 건 타당성이 있는 것 같고.
명진 그래서 최근 한미동맹 재조정에 대한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리영희 한미동맹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런 전제 조건이 달라지면 재조정될 수밖에 없는 거지. 지금은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아. 그런 점에서 한미동맹이 전반적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건 필연이지. 아마도 미국이 북을 점령하려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누구도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거야.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모두 의사가 없어. 북도 그럴 의사가 없다고. 북으로서는 전쟁을 하면 국가의 존속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데 그럴 수 없지. 따라서 6·25전쟁으로 인한 대결 상태가 질적으로 변한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그대로 유지할 이유가 없는 거야. 미국과 맺은 각종 군사동맹은 물론이고 군사기지의 이용, 군대의 행동양식과 목표 등 모든 것이 달라져야지. 문제는 남쪽을 움직이고 있는 수구세력과 미국에 예속함으로써 이익을 얻은 숭미세력이 지금도 자기 이익을 위해 미국의 군사적 힘이 필요하니까 한반도를 6·25 때처럼 여기며 미군 주둔 필요성을 얘기하는 거지.
명진 북쪽에서 핵무기를 만드는데 한미동맹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지요.
리영희 노 대통령이 ‘북핵은 방어용’이라고 한 것이 일면은 맞지. 보다 정확히 보자면 북핵은 전략용이야. 1개를 가지고도 미국의 압력에 맞설 수 있도록 활용하는 거야. 상대방에게 존립을 위협받으면, 궁지에 몰린 쥐도 무는 것처럼 북도 그런 측면에서 핵을 가지게 된 거야. 북은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이 압력을 가하면 가할수록 이에 맞서 더욱 자립정신을 키워온 나라잖아.
남북관계 상호주의 대신 역지사지 태도 갖춰야
명진 DJ 방북 시 철도를 이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남북이 이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쪽에서는 서해안 문제를 거론했는데 남쪽에선 반응이 영 좋지 않습니다.
리영희 서해안 문제라는 것이 소위 말하는 북방한계선(NLL) 때문에 생기는 군사적 긴장 문제 아니요. 근본적으로 북방한계선이라는 게 가당찮은 일이지. 이쪽에서 6·25 때 우세한 공군력과 해군력으로 불법적으로 장악한 것이 북방한계선이야. 그러니 북쪽에서 자꾸 문제 삼는 거고. 내가 《통일시론》에 ‘서해 북방한계선은 불법이다’라고 썼더니 보수단체 등에서 요란하게 고소하고 난리가 났어. 그럼에도 검찰이 감히 나를 조사 못해.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자료까지 근거를 대서 얘기하는데 무슨 수로 그러겠어. 나는 1960년대부터 알고 있었지만 계기가 없어서 쓰지 못하고 있었지. 계기 없이 썼다간 문제가 되니까.
명진 남북관계가 협력적으로 진행되다가도 어느 순간 대립하기도 합니다. 남북관계를 풀어 가는 근본 태도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우리가 견지해야 할 자세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리영희 중요한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야. 상호주의를 내세우지 말고 역지사지해야 한다고 봐.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는 자기 입장이나 이해관계만 생각하지 말고 같은 문제에 대해 상대방은 어떻게 보나를 봐야해. 상대방을 나쁘다고만 하지 말고 상대방의 어려움은 무엇일까, 그들이 입을 피해는 또 무엇일까 그렇게 봐야지. 미국이나 미국을 추종하는 수구반동세력들은 상대방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 이익만 취하려고 하니까 북이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펴는 거야. 우리 신문들도 미국의 입장만 보도하고 북쪽의 입장을 내보내지 않거나 생트집, 억지를 부린다는 식으로 쓰고 있지. 이것도 큰 문제야.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면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하지. 이건 북도 마찬가지고.
명진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서 젊은 세대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리영희 젊은 세대들은 복잡한 거 싫어하고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드만. 그래서 주가가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에서는 민감하게 연구한다고 하고. 어떻게 주가 오르내리는 데는 주판알 튀기며 마음을 쓰면서,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민족문제에 대해선 외면하고 진실을 구하지 않느냔 말이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소소한 일상이나 경제적 혜택도 전쟁이 나면 일거에 사라지는 거야. 또한 젊은 세대가 역사문제와 민족문제에 대해 진실을 구하지 않으면, 특히 신앙화된 미국 숭배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돼.
리영희 이 정도로 하고 마지막으로 오늘 내가 여기까지 기자들을 오라고 한 걸 얘기 해보자고. 얘기가 길지만 잘 들어둬. 17년 동안 가슴에 묻어둔 얘기니까. 1987년 미국 버클리대에서 1년 동안 강의하고 돌아왔는데 《뉴욕타임스》 독자란에 재미난 기사가 하나 실렸단 말이야. 미국 젊은이가 결혼을 하려는데 시시하게 집안에서 하고 싶지 않다, 들판에 나가 하고 싶다, 그걸 인공위성으로 사진 찍어주면 좋겠다, 그 방법을 소개해달라는 거야. 그 뒤 한참 있으니까 인공위성 회사에서 회신을 실었어.
자기네 인공위성으로 찍을 수 있는데 얼굴이 잘 안보일 것이라며 군사위성에선 얼굴도 잘 보일 거라는 거야. 그걸 보고 내가 수첩에서 지도를 찢어서 50년 동안 가보지 못한 고향이 여기니 찾아달라고 했지. 회신이 왔는데 조그마한 지도에선 찾을 수 없다. 촬영의 목표 지점을 정확히 표시해 달라는 거야. 그래서 다시 표시해 보내니까 운하, 다리 등은 볼 수 있지만 당신이 원하는 고향의 모습은 안 된다는 거야. 이 이야기를 1988년 《한겨레신문》 논단에 썼어.
북쪽이 호시탐탐 남침을 준비하고 있고 남침해서 공병대가 포항까지 점령한다는 얘기가 나돌 때였어. 미국이나 소련의 인공위성이 휴전선 남북의 움직임을 서로 보고 있는데 불가능한 일이지. 특히 북쪽의 경우 미국의 인공위성이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내려다보고 있는데 상대방 모르게 군대를 움직여 남침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럼에도 정부는 안보위협 운운하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었던 거야. 나는 기사를 통해 그렇게 기만적으로 국민을 통치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명진 이미 1980년대 한국군이 미군 위성으로 찍은 군사자료를 받고 있었죠?
고향 취재해준 《통일신보》 기자들 집에 초청하고파
리영희 나도 직접 본 적 있지. 황해도 어느 동네 담벼락에 자전거 세워 놓은 사진까지 봤다니까. 하여간 그 기사가 나간 뒤 실향민들이 그런 것이 있냐며 나한테 문의가 여러 번 왔었지. 그리고 석 달 뒤 판문점에서 남북회담을 하는데 북의 《통일신보》 기자가 취재 나와서, 비밀리에 당시 《한겨레신문》 기자에게 리영희 선생에게 전달해달라며 신문 한 장을 보내왔어. 편집자주에 이런 내용이 있어 “남조선의 리영희 교수가 지난해 200달러의 선금을 내고 미국 민간인공위성공사에 고향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편지를 써보냈는데 기차나 자동차를 타면 하루 길도 채 안 되는 고장을 두고 제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에 사진촬영을 의뢰해서야만 고향산천을 볼 수 있는 세상에 전무후무한 이 민족분단의 비극을 두고 우리는 같은 겨레로서 가슴 저미는 아픔을 금할 수 없었다.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웠으면 그런 기막힌 생각을 했겠는가?”라며 자신들이 리영희 교수를 위해 직접 가서 취재하겠다며 취재기자 2명, 카메라기자 1명을 보내서 내 고향을 취재했어. 이거 내가 가보함에 집문서랑 같이 넣어 보관하고 있던 건데 처음으로 공개하는 거요.
명진 선생님의 고향이 평안도 대관이시죠. 장준하 선생의 고향도 거기로 알고 있습니다.
리영희 옛 지명으로는 평안북도 삭주군 외남면 대관동인데 지금은 대관군 대관읍으로 되어 있다는구먼. 자, 이거 한 번 보라고. 1989년 6월 17일 토요일 기사인데 제목이 〈평안북도 대관땅을 찾아서〉야. 문장도 절절하고 사진도 7장 실렸지. 옛 고향 사진과 지금 사진, 내가 자주 가서 낚시하던 곳, 게다가 내 소학교 동급생 4명을 찾아냈더구먼. 이걸 나한테 보내왔어. 그 책임기자가 전 통일신보 주필인 박진식씨지. 지금은 내각참사로 활동중이라고 하더구만. 2000년에 누이동생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평양에 갔다가 그 얘기로 특집기사를 구성했던 3명의 기자에게 식사 대접을 했지. 그 기자들 남쪽에 내려오면 꼭 우리 집에 데려와서 막걸리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민족21》이 《통일신보》와 가까우니 이 뜻을 꼭 전달해주시오.
자료출처 : 남북이 함께하는 통일 전문지 "민족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