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마음을 읽어내는 그림책
⌜남쪽의 초원 순난앵⌟/아스트리드 린드그랜.글
현정란
나이가 들수록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 어린시절 기억이다. 힘들었던 기억은 힘든었던 기억대로 즐겁다. 그래서 그런지 아스트린드그랜의 <남쪽의 초원 순난앵> 에서 오누이 이야기는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스스로 문을 닫아걸고 영원히 어린이인 채로 남았기 때문이다.
. <남쪽의 초원 순난앵> 의 그림은 매우 서정적으로 너무 아름답다. 표지를 한 장 걷어내면 자작나무의 겨울 눈 덮인숲을 두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우리네의 겨울 풍경을 보는듯 하다. 또한 그림만으로도 이야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농부의 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회색빛그림과 순난앵마을에서의 밝은 색체를 이용한 그림은 대조를 이루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순난앵마을에서의 빨간색옷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과 초록풀밭의 서정적인 그림은 슬픈이야기속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만든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로 오누이가 노동력에 착취당하며 회색들쥐처럼 회색빛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용이다. 작가는 오누이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의 회색빛 생활을 옛이야기의 구조로 쉽게 읽을수 있도록 풀어내고 있다. 오누이인 마티아스와 안나의 뮈러마을 생활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농부의 집에서 매일 매일 우유를 짜고 외양간 청소를 하며 청어를 절인 물에 감자를 찍어 먹어야하는 아이들을의 유일한 희망은 학교였다. 눈 내리는 겨울이면 학교에 갈수 있는 것이다.
"올 겨울까지 견뎌내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이 오고 오누이는 어두컴컴한 헛간에서 나올 수 있게 된다. 그림으로 표현된 어두운 회색빛은 좋아하는 배 만들기를 못하고 진흙 집짓기 놀이도 못하는 오누이의 마음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우리네의 겨울 눈 덮인 풍경을 보는듯한 그림에서 오누이는 손잡고 행복한 모습으로 뛰어간다. 이 모습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학교에 가면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누이의 학교생활은 회색빛으로 뒤덮힌다. 선생님에게는 매를 맞아야했고, 친구들에게도 가난뱅이라고 놀림을 받아야했으니까. 유일한 탈출구였던 학교도 자신들이 생각하던 곳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안나는 마티아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빠, 학교에 다니는 것도 즐겁지 않아.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으니 어떡하지? 차라리 봄이 오기 전에 죽었으면 좋겠어."
안나의 말은 어른인 나를 너무 슬프게 만들었다. 오누이에게 내가 죄를 짓는 듯한 느낌, 마치 농부가 된 듯 했다. 하지만 하얀 눈 속에 나타난 빨간 새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다가온다. 하얀 눈 속에 불꽃이 타오르듯 빨간 새는 오누이를 따뜻한 순난앵 마을로 인도한다.
순난앵 마을을 보는 순간 어린시절 부모님에게서 들었던 '이어도'라는 섬이 생각났다. 힘든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평상에 누워 별을 보며 '이어도'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다 저 멀리에 '이어도'라는 섬이 있다. 그 섬에는 항상 꽃이 만발해 있고, 과일나무에는 온갖 과일들이 주렁 주렁 달려 있지. 힘든 일도 없고, 과일도 마음껏 따 먹을 수 있고 항상 즐거운 일만 있는 곳이란다. 착한 사람들은 그곳으로 갈수 있지."
나뿐만 아니라 제주사람들은 환상의 섬 '이어도'가 있다고 믿었다. 제주 사람들은 '이어도'를 생각하며 고단함을 참아냈을 것이다. 제주의 '이어도'처럼 순난앵 마을도 오누이가 꿈꾸며 원하던 마을이었다.
순난앵 마을에서는 배를 만들어 시냇가에 띄울 수도 있고, 마음껏 뛰어놀 수도 있다. 또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인자한 손길의 어머니도 만날 수 있다. 오누이는 영원히 순난앵 마을에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4학년인 우리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었다. 책을 읽는 도중 "잠깐만." 하며 멈추게 했다.
"오누이는 왜 농부 집으로 돌아가지? 농부아저씨에게 혼나고 일만 할 건데. 나 같으면 안 갈 거야. 그냥 순난앵 마을에서 살 건데."
"왜?"
"여기 순난앵 마을이 좋잖아."
"왜 좋은데?"
"마음껏 놀 수 있고 맛있는 것도 마음껏 먹을 수 있잖아."
"으응..."
" 이 곳에 있는 아이들은 왜 빨간 옷을 입고 있어요?"
"글쎄?"
"음…행복해서 그런가. 빨간 새가 행복을 가져다주잖아."
오누이가 빨간 새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빨간 새를 보며 그림책의 매력을 다시한번 느낀다. 아니 좋은 책의 매력을 느꼈다고 해야겠지. 마지막 문장인 오누이가 "살그머니 문을 닫았습니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는 "다행이다." 라고 했다.
나는 "왜?"하고 되물었다.
"오누이가 순난앵 마을에서 지낼 수 있잖아. 친구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고 맛있는 밥도 마음껏 먹을 수 있잖아."
그렇다. 그림책을 보는 아이는 자신만큼 생각한다. 아이 나름대로 책 속에서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강요되지 않은 생각을.
어른인 나는 내가 생각 하는 대로 안타까움에 젖어 이 책을 읽어나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누이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을까 하는 생각. 힘들어도 이겨내지 하는 안타까운 생각. 그것이 어른인 나의 한계이다. 책 속에서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가능한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책을 써야한다고 했다. 어른이 입장에서가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써야한다는 뜻일 것이다. .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좋은 책을 갈망하는 것은 아이에게 뭔가를 알려주고 가르쳐주어야겠다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좋은 책은 아이든 어른이든 모두가 좋아하게 된다.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그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남쪽의 초원 순난앵> 이 책에서 오누이가 문을 닫는 것에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내 아이는 안도감을 느꼈다. 나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이 책을 읽어내려 간 것이다. 그래서 좋은가보다. 읽는 이마다 다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책이 그래서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첫댓글 난 이어도가 실제로 존재하는 섬인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