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성경어휘 십자가
https://youtu.be/jEN27j0Idzk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 어휘 연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성경 어휘 연구를 지금까지 한 4년여 진행해 왔는데, 오늘은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제200회 강의를 장식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제목은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고, 성경에서도 엄청난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 그 중심 주제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오늘 제200회 강의를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헬라어로는 '스타우로스(stauros)'라 하고, 영어로는 '크로스(cross)'라고 표현하죠. 이런 십자가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많이 보고, 교회 건물에서도 많이 보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라는 단어가 성경에 얼마나 자주, 어떻게 나오는지 잠시 보겠습니다.
우선 제가 갖고 있는 민중 에센스 국어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라는 단어가 우리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회나 국어 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에 국어사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말하기를, 첫 번째로 "옛날 서양에서 죄인을 처형하던 십자 모양의 형틀이다." 맞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형틀입니다. 사람에게 형벌을 주는 도구였습니다.
둘째로는 특별히 "기독교에서 교도가 위하는 십자형의 표상. 그것은 예수가 못 박혀 죽은 표상으로서 예배의 대상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배의 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예배당에 잘 부착해서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하나의 상징이죠.
십자가 하면 열십(十)자 모양으로 된 글자 형태의 틀을 말합니다. '가(架)'라고 하는 것은 나무로 만든 틀이나 장식을 뜻합니다. 옛날 서양에서 죄인을 처형하던 십자 모양의 형틀, 이것이 십자가가 맞습니다. 아주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을 보면 구약에는 십자가라는 말이 없고 신약에만 나오는데, 명사 '스타우로스(stauros)'로는 28회 나옵니다. 십자가, 십자형 틀을 뜻하죠.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다'라는 동사로는 44번 나옵니다. 그것은 '스타우로오(stauroo)'라고 합니다. '스타우로오'는 '스타우로스'의 동사형입니다. 그래서 명사 28회, 동사 44회 합쳐서 총 72회 나옵니다. 확실하게 72회 나옵니다. 십자가 명사와 십자가에 못 박는 형벌을 뜻하는 동사를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마태복음 16회, 마가복음 12회, 누가복음 8회, 요한복음 11회, 사도행전 2회 등등 해서 총 72회인데, 요한계시록에는 한 번 나옵니다. 복음서에는 47회 나오고 바울서신에서는 22회가 나옵니다. 참 많이 나오죠? 바울이라는 한 개인이 쓴 여러 편지에 22번이나 나오는 단어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흔히 십자가 그림을 많이 봅니다. 예수님이 이런 모양의 형틀에서 돌아가셨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십자가 형태입니다. 교회당 벽이나 정면에 십자 모양을 자주 보기도 하고, 건축물 구조 가운데 십자가를 넣기도 합니다. 이런 건축물은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던 모습, 마리아와 가족들이 애통해하는 모습 등을 담은 그림이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십자가 위에 붙은 'INRI'는 라틴어 머리글자입니다. 라틴어로 '예수(Iesus) 나사렛 사람(Nazarenus) 유대인의(Iudaeorum) 왕(Rex)'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그 위에 죄패 형식으로 붙인 글입니다. 이것을 다 쓰기 복잡하니까 첫 글자만 따서 'INRI'로 주로 표기합니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예수님이 가운데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양쪽에 두 죄인(강도)이 있으며, 주변 사람들이 돌아가신 예수님을 애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모습을 표현한 그림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십자가가 왜 형틀로 사용되었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하는 형벌인 십자가형(Crucifixion)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영어로는 십자가를 'cross'라 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동사는 'crucify', 명사형인 십자가형은 'crucifixion'이라고 합니다. 죄인을 십자가 형틀에 매달아 죽이는 십자가형은 기원전(BC) 6세기 이전부터 고대 근동(Ancient Near East) 지방에서 이미 실시되었습니다. 고대 근동이란 오늘날의 바빌로니아, 이란 지역 등을 가리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은 앗수르(아시리아)로 봅니다. 죄인을 나무 기둥에 꿰뚫거나 매달아 처형했습니다. 이것은 후대에 시행된 십자가형과 똑같지는 않지만, 십자가 형벌의 기원 또는 원형으로 여겨집니다. 앗수르에서 제일 먼저 나무에 달아 처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다음에 이어진 곳이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에서도 중죄를 지은 죄인을 공개 처형함으로써 그 죄인에게 심한 모욕과 수치, 고통을 주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경고하여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고자 십자가형을 집행했습니다.
그다음에 등장한 나라인 페르시아(성경의 바사)는 앗수르와 바벨론으로부터 제도를 물려받아 이를 더 체계화하여 제국 전체에 시행했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은 땅을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에 죄인의 시신이 땅에 닿으면 땅이 부정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죄인의 몸이 땅에 닿지 않도록 나무 기둥에 매달아 죽이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왕들이 수천 명의 죄수를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역사책에 기록했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를 거쳐 이것이 헬라(그리스)로 넘어옵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헬레니즘 세계로 십자가형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카르타고(오늘날 북아프리카 튀니지 지역)에서도 십자가형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가 카르타고를 정복하면서 이 제도를 로마 제국에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헬라로,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전해지며 지중해와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간 것입니다.
로마 제국에 도입된 십자가형은 가장 효과적이고 잔혹하며 고통스러운 처형 방법으로 발전했습니다. 밧줄로 묶던 것에서 못을 박아 극심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주로 노예, 흉악범, 강도, 반란군, 반역자, 탈영병, 잔인한 살인범, 상습범 등을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노예가 죄를 지었을 때 다시는 반역하지 못하도록 본보기로 잔혹하게 집행한 것입니다.
반면 로마 제국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에게 십자가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의 특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 제국 치하에서 십자가형을 받지 않고 참수형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22장 28절에 기록되었듯,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그렇다면 유대에는 십자가형이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로마 제국의 속주(속한 주) 중 하나였던 팔레스타인 유대 지역 역시 로마의 사형 제도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에는 십자가형 제도가 없었습니다. 모세오경에 기록된 대표적인 사형 방법은 돌로 쳐 죽이거나, 칼로 처형하거나, 불사르거나, 사형 집행 후 시신을 나무에 매다는 방식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21장 22-23절에는 매우 특별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구약 시대에는 살아 있는 사람을 나무에 달아 죽이지 않았지만, 장차 일어날 일을 내다보고 주신 예언적 말씀이었습니다.
구약 말라기부터 신약 복음서가 시작하기까지 약 400년의 공백 기간을 '신구약 중간사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중간사 시대인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유대는 로마의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원전 37년 헤롯이 로마의 후원을 받아 유대의 왕이 되었고, 서기(AD) 6년부터는 로마 총독이 유대를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유대는 로마법에 따라 십자가형이 시행되었습니다. 유대 속주를 다스리던 초기 총독들은 코포니우스(AD 6~9년), 마르쿠스 암비불루스(9~12년), 안니우스 루푸스(12~15년), 발레리우스 그라투스(15~26년), 그리고 다섯 번째가 본디오 빌라도(26~36년)였습니다. 바로 이 빌라도 총독 재임 기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됩니다.
신약 시대 유대의 최고 의결 기관은 산헤드린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종교 재판권은 있었지만 사형 집행권은 없었습니다. 사형 집행 권한은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처형하려면 총독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의 판결이 필요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종교적으로 신성모독 죄(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등)를 씌워 예수를 죽이려 했으나, 로마 법정에서는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 칭했다"며 정치적 반역죄로 고발했습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영적 왕이셨지만, 유대 지도자들은 황제에게 반역하는 정치적 왕을 자처한다고 억지 주장을 펼쳤습니다. 결국 우유부단했던 빌라도는 민중의 소동과 압박에 굴복하여 로마식 사형인 십자가형(Crucifixion)을 선고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 배후에는 성경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받으신 구속사적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성경 예언과 언약의 성취입니다.
외형적으로는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죄로 처형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상으로는 구약의 메시아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에 예언된 '고난받는 종(Suffering Servant)'의 모습 그대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4-5).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과 징벌을 대신 지신 것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로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신명기 21장 23절의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하신 말씀의 실체로서 인류를 대신해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증언합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절정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확증입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 갚으신 대속(Atonement)의 죽음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24). 우리가 형벌을 면제받고 의인이 되도록 주님이 친히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고 갈라졌던 관계를 십자가로 다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승리자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라틴어로 '크리스투스 빅토르(Christus Victor)', 곧 승리자 그리스도이십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
히브리서 2장 14절에서도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십자가는 사탄을 이기신 승리의 표상입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완성하고 폐지하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2, 14). 그림자였던 동물의 제사는 온전한 실체이신 예수님이 단번에 자신을 드리심으로 완성되고 끝났습니다.
그리스도인 삶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십자가는 순종과 희생, 사랑의 삶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요구합니다. 참된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를 넘어 '믿어 순종하는 삶'(롬 1:5)으로 나타납니다.
우주적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승리를 나타낸 깃발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이룰 수 없다고 참소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공의(죄에 대한 형벌 집행)와 사랑(자기희생을 통한 죄인 구원)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입증하고 사탄의 거짓말을 폭로한 구속사의 중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이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매우 소중한 신앙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이 서기 79년에 폭발하여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같은 도시가 화산재에 묻혔는데, 1939년 헤르쿨라네움의 한 발굴 가옥 벽면에서 십자 모양의 흔적과 그 앞의 기도용 의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서기 79년경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흔적입니다.
특히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십자가는 복음의 중심이자 구속 경륜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3-24).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비움(Kenosis)'과 '낮추심(Humility)'의 최저점이며 절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버림과 형벌을 그분이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찬송가 130장, 132장, 147장 등 수많은 찬미가 십자가의 은혜와 희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걸려 있는 십자가는 단순한 외적 장식물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를 위해 끔찍한 고통을 당하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우리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십자가의 정신을 품고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핵심 요약 정리]
성경 속 십자가 어휘
헬라어 명사 '스타우로스'(28회), 동사 '스타우로오'(44회)로 신약성경에 총 72회 등장하며, 바울서신에만 22회 언급될 만큼 복음의 중심 주제임.
십자가형의 역사적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