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6일 오르고함양 영취산 백운산 등반,
산행은 약 3시간 소요되어서 육십령에서 구시봉 올랐다가 함양에서 유명한 정자를 들러서 돌아왔다.
산행은 무령고개에서 출발하여 영취산, 백운산, 무령고개로 돌아오는 코스다.
무령고개
영취산 들머리
영취산
낙동정맥 영취산(1075m)
남덕유산 방향
장안산 방향
백운산(1278m)
흰구름산이란 뜻의 백운산은 전국 30여개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높은 산이다.
지리산 방향
부부목
육십령에서 백두대간 구시봉
육십령 : 육십령은 도적때가 들끓어 도적때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소 장정 60명이 모여서 고개를 넘어야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충령탑 : 1950년 625 사변 직후 곡군 8사단, 11사단, 수도사단에서 덕유산 공비토벌을 위하여 작전을 수행하다 산화한 국군 영령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구시봉(1014m),
구시봉은 옜날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 군사들이 치열한 영토 전쟁을 별여 승전할 때 마다 정상에 깃발을 쫒았다고 하여 깃대봉이라고 불리다가 2006년 구시봉으로 변경하였다. 구시봉이란 이름은 산의 형태가 소나 돼지의 구유(구시)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함양 거연정(居然亭)
고려말 화림재 전지서가 처음 터를 잡은 것을 추모하기 위하여 1872년 화림재의 7대손인 진사 전재학, 전계진 등이 세웠다.
군자정(君子亭)
정여창이 처가인 이곳을 찾으면 올라와 쉬던 곳으로 전세걸과 전세택이 정여창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902년에 세운 정자로 군자가 머물던 곳이란 의미가 있다.
동호정(東湖亭),
동호정은 동호 장만리가 관직에서 물러나 낙시를 즐기며 지내던 곳에 장만리의 10대손인 장대운, 장서부, 장서진 등이 만든 정자이다. 장만리는 조선 선조때 학자로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몽진할 때 선조를 등에 업고 피난하였다고 한다. 정자앞에는 차일암이란 너럭바위가 있다.
차일암
농월정(弄月亭).
조선 중기 학자인 지족당 박명부가 1637년 이 곳에 농월정이란 정자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정자 오른쪽 암반에는 선생께서 지팡이를 짚고 노닐던 곳이란 뜻의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