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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은 '늘재 → 제단 터 → 청화산 → 갓바위재 → 조항산 → 고모치(갈림길) → 의상저수지 → 옥양교'의 13km, 6시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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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산[靑華山]
높이: 984m
위치: 충북 괴산군 청천면
청화산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문경시 농암면과 충북 괴산군 청천면 등 3개 시군의 경계를 이루며 그 중앙에 우뚝 솟아있다. 청화산의 높이가 1/25,000 지도에서 970m, 1/5,000 지도에는 984.2m로 표시되어 있다.
청화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의상저수지를 거쳐야 하는데 청화산과 주변의 산 그림자가 저수지 수면 위에 아름답게 펼쳐져 산을 오르기 전에 산과 어우러진 자연의 경관에 감탄하게 된다.
청화산에는 산죽군락 지역과 소나무가 많아 겨울철에도 푸르게 보인다. 청화산 정상은 언 듯 보면 정상 같지 않은 곳에 청화산이라는 표시 목이 없다면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정상이다.
청화산 정상에 오르면 우선 서쪽 아래로 화양동계곡과 용유동계곡이 한데 이어진 듯한 모습으로 내려다보인다.
시루봉
시루봉은 어디서 보든지 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금방 알아볼 수가 있다. 정상 부분의 암벽이 튀어나와서 떡시루같이 생겨서 시루봉이란 말도 있다.
산행은 청화산에 왔다가 시간이 넉넉하면 시루봉으로 오를 수가 있고 시루봉만 오르려면 농암면 화산리 천연기념물 292호 반송 조금 지나서 비치재계곡 오른쪽 능선을 타면 정상에 오르기 쉽다. 약 2시간이면 충분하다. 정상은 장엄한 암벽으로 되어 있어 아주 시원하다.
조항산[鳥項山]
높이: 953.6m
위치: 충북 괴산군 청천면
조항산은 기암절벽과 옥수가 한데 어우러져 산행의 묘미를 더해주는 산이며 최근에 등산로가 개척되어 인적이 드문 산이다.
조항산에 오르기 전에 삼송리에는 천연기념물 제290호로 지정된 수령 약 600여 년 되는 일명 용송이라 불리는 소나무가 우뚝 서 있는데 이 소나무는 밑동 둘레가 약 5m나 되는 데다 높이 15m에 가지를 드리운 폭이 20m가 넘는다. 또한 주변에 아름드리 노송 20여 주를 부하처럼 거느리고 있어 왕소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조항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마치 하늘 위에 오른 기분이다. 북쪽으로는 대야산과 둔덕산 줄기 너머로 군자산 장성봉, 희양산이 보이고 장성봉, 희양산 너머로는 월악산과 주흘산이 겹겹이 시야에 들어온다. - 한국의 산하
근교 산행만 지속하다 슬슬 다른 산세와 경치를 경험하고 싶어 원거리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70% 이상이 산악지대라 산 선택의 기준이 필요했다. 그때 알게 된 사이트가 "한국의 산하"다. 그 사이트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우선 한국의 산하 선정 100대 명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에 오르다가 그중 몇 산에 실망해 100대 명산이라는 거 자체에 회의가 들었다. 그 대안을 동일한 사이트에서 찾다가 발견한 게 높이별로 줄 세운 거였다. 그래서 100 명산과 1,000m 이상의 산을 병행하는 거로 기준을 변경했다. 물론 1차 기준은 1,000m 이상의 산! 그 와중에 다른 산꾼의 산행기를 구경하다 백두대간에 관해 알게 되었다. 구글링을 통해 중산리에서 진부령까지의 남한 백두대간을 24구간으로 나눈 지도를 확보해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백두대간을 종주할 체력이나 시간은 없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산 대부분이 그 위에 있어, 24개 구간 중 대표적인 봉우리를 오르기로 했다. 결국, 산행 기준이 1,000m 이상, 100 산, 대간과 정맥의 봉우리, 셋 중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선택해 오르기로 했다. 결국 대한민국 산은 다 간다!
늘 하는 얘기지만, 내가 산에 가고 싶다고 쉽게 갈 수가 있는 게 아니다. 서울 기준 대중교통으로 당일에 다녀올 수 있는 산이 한정적이라, 그 외의 산을 가고자 한다면 의지할 데는 안내 산악회밖에 없다. 그 안내 산악회는 영리 단체라 수익이 나지 않는 산행을 계획하지는 않는다. 아니 영리 단체가 아니라도 최소 비용도 해결하지 못하는 행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기부를 받는 자선 단체라면 몰라도. 어쨌든 그 안내 산악회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산행도 한정적이라는 얘기다. 까만 소가 인증하는 산이나 섬이 최우선이고, 가물어 산불 위험 때문에 산행이 통제되는 시기에는 그 외 유명한 산을 가는 정도. 안내 산악회가 중요한 게 그 편리함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비용도 대중교통의 50% 정도라 가성비 최고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런 다양한 이유로 까만 소가 인증하는 100 산이나 백두대간 등을 위주로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중에 이번에 가고자 하는 청화산이 있다. 백두대간 중에 있는 산이고 한국의 산하는 아니지만, 까만 소의 100 산 중 하나다.
청화산은 심심해서 백두대간 상에 있는 어느 정도 고도가 되는 산을 정리하다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충북의 괴산 인접한 경북 문경이 강원도 평창 못지않은 산꾼의 보고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해서 '우리가 가야 할 충청도의 산!'이라는 페이지로 관리하며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 결과 다녀온 산이 희양산, 덕가산, 칠보산, 대야산, 가령산, 조령산, 주흘산 등 10여 곳이다. 그런 면에서 관리 대상에 없었던 청화산은 다른 충청도 산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진 게 아닌가 생각된다. 아니면, 경북 상주 관리? 그나마 까만 소 100 산에 끼어 있어 안내 산악회를 이용해 편히 다녀올 기회라도 생긴 거라, 까만 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애초 백두대간의 청화산, 조항산 연계 산행도 몇 번 시도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연기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애용하는 산악회의 산행이 있어 신청하게 되었다. 흥수와는 서로 얘기가 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번과 같이 둘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봉 감독이 청화산과 조항산에서 속리산을 포함한 주변 산세를 보고 싶다고 해 같이 가기로 했다. 해서 3명이 동행하기로 했지만, 출발 이틀 전 봉 감독이 일요일까지 촬영을 해야 해서 참석할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 환급도 안 되는 상태라 급하게 등산방에 공지해 주행이 같이하기로 했다. 그리고 서기가 추가로 신청해 서기, 주행, 흥수, 나 이렇게 넷이 이번 산행을 같이하게 되었다.
산악회의 산행 계획을 보면 청화산, 조항산 13km 구간을 10시 산행 시작 16시 산행 마감이다. 고로 최소 시속 2.2km로 달려야 그나마 김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산행이라, 쓸데없는 사치는 부리지 않고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물론 만약에 대비해 비상용 디팩과 비상식은 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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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이 새벽에 일어나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준비해 둔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 시각이 5시 57분이다. 구산역에서 6시 7분 차를 타야 사당역에 6시 53분까지 도착할 수 있다. 버스 출발은 7시 정각. 합정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여유를 부리며 가고 있는데, 다른 승객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어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같이 뛰어올랐다. 2호선 승차장으로 가니 지하철 막 도착하고 있었다. 여유를 부렸으면 안내 산악회 버스 출발 시각을 맞출 수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당역에 도착해 10번 출구를 향해 가고 있는데 지하상가에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아 놀랐다. 평소라면 이 시간에 등산객으로 붐비고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의 영향이 큰 거 같다.
10번 출구로 나가니 두 대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고, 청화산행은 앞에 있는 버스였다. 아침에 산행 신청 현황을 확인했기 때문에 내 옆자리가 비어 있는 걸 알고 있어 배낭을 들고 바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타서 보니 서기와 흥수는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주행이 보이지 않아 전화해 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그리고 좀 있으니 주행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일어났다고.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이번 백두대간 청화산, 조항산 산행은 서기, 흥수, 나 셋이 하는 거로 결론이 났다. 멤버 구성에 곡절이 많은 산행이다.
예정보다 3분 늦은 7시 3분에 사당역을 출발한 버스는 죽전에서 나머지 인원을 태웠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많은 등산객이 산행 취소를 요청했지만, 또 그 인원만큼 신청해 이번 산행에 총 26명이 같이 하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버스에 탑승한 인원은 인솔 대장 포함 20명에 불과했다. 취소 시기가 늦으면 환급이 안 되니 굳이 취소 요청하지 않고 코로나가 무서워 나오지 않은 인원이 6명이라는 얘기다. 죽전을 출발하며 인솔 대장이 산악회에서 준비한 김밥과 생수를 나누어 준 후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했는데, 갈림길이 나오면 무조건 왼쪽으로 가라는 게 설명의 핵심이었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버스가 휴게소에 들어가는 낌새에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보니 7시 55분이었다. 그리고 안성 휴게소. 아직 경기도를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휴게소로 들어온 게 이상했지만, 버스에서 내려 스트레칭 후 볼 일을 보고 왔다.
휴게소를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지도를 나눠주며 다시 한번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이른 9시 30분경 들머리에 도착할 예정이니, 마감 시간을 16시에서 15시 30분으로 30분 당긴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체력이 안 되는 등산객을 위해 16시까지 기다려 준다고. 뭔 말인지? 어쨌든 6시간 30분이 주어진 청화산, 조항산 연계 산행이다. 그리고 인솔 대장이 부연 설명한 내용이 날머리 식당에 전화해 보았는데, 문을 열지 않고 시기가 시기인 만큼 외부인의 왕래를 반기지 않는다고. 날머리에 술이 없다면 서둘러 하산하지 않고, 시간을 꽉꽉 채우는 게 현명한 산행이라는 걸 이미 경험으로 체득했다.
무주공산인듯한 텅 빈 도로를 달려 9시 26분경 들머리인 백두대간 늘재에 도착했다. 코로나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며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에서 내렸다. 도착 10여 분 전에 인솔 대장이 도착지에 주차할 공간이 여의치 않아 정차하자마자 내려야 하고, 그 후 바로 버스는 날머리로 이동한다고 얘기해 우리는 버스 안에서 산행 준비를 마쳤다. 버스에서 내리자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덮쳤다. 생각보다 상당히 추웠다. 왕복 2차선에 불과한 도로에는 자차로 온 등산객이 주차한 10여 대의 차자 있었다. 그리고 날이 흐려 조망은 기대할 수 없었다. 봉 감독이 이번 산행에 기대한 것이 ‘청화산이나 조항산에서 속리산과 월악산이 어떻게 보이는 가?’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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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늘재에 있는 거대한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서낭당도 사진에 남긴 후 본격적인 청화산 산행을 시작했다. 그때 확인한 고도가 415m였다. 984m의 청화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2.6km. 고로 2.6km를 가는 동안 570m가량을 올라가야 한다. 처음에는 2.6km를 한 시간 내에 올라가는 10시 30분까지 정상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했다. 그런데 쉼 없이 계속되는 오르막에 목표를 맞추기 쉽지 않았다. 급경사를 허덕이며 오르다가 산행 계획을 세울 때 본 선배 산꾼의 산행기가 기억났다. 그 산행기를 보며 2.6km 불과한 거리를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 거에 대해 갸우뚱했었는데, 막상 올라보니 이해가 되었다.
헉헉대고 올라 9시 56분에 논란이 되는 "정국 기원단"에 도착했다[참고 Click]. 서기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안개로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서기가 도착해 몇 마디 농담을 주고 받은 후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 이번 산행 처음으로 밧줄이 매달린 암벽에 도착했다. 그런데 암벽을 오르는 두 방향에 각각 밧줄이 매여있었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니 왼쪽 암벽 옆으로 기어 올라가는 게 더 빠르고 안전해 보여 그쪽으로 밧줄의 도움 없이 올랐다. 암벽 정상은 꽤 넓은 지역으로 누군가 부러 식탁을 가져다 놓은 거 같이 보이는 바위도 있었다. 거기서 서기를 기다리다가, 올라오는 걸 보고 바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헬기장을 지나 10시 50분에 청화산 정상에 도착했다. 목표보다 20분이 늦었다. 정상석 주변에는 까만 소 인증을 찍기 위해 인증꾼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중에 앞서간 흥수가 있었다. 들머리에서 중간 그룹에서 속해 산행을 시작했지만, 계속 서기를 기다리며 산행을 하는 동안 거의 다 추월당해 정상에 도착할 즈음에는 후미 그룹에 속해 있었다. 따라서 지금 있는 등산객만 인증을 찍고 떠나면 편히 인증을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서기를 기다렸다가 인증을 찍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등산객이 정상석을 향해 오고 있었다. 계산 착오다. 산악회를 이용해 온 팀은 우리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인천에서 온 팀이 우리 뒤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이대로 서기를 기다려 인증을 찍었다가는 시간 내 산행을 완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일단 흥수와 둘이 인증을 찍기로 했다. 까만 소 인증을 받기 위해 팀으로 왔더라도 단독으로 온갖 모양새를 잡으며 예닐곱 장의 사진을 찍으니 한 사람당 걸리는 시간이 상상 이상이다. 와중에 삼일절이라고 태극기를 가져와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그래서 까만 소를 싫어한다. 단체로 찍고 인증을 하면 되지, 꼭 단독으로 인증을 해야 하니. 어쨌든 줄 서서 기다려 뒤에 있던 인증꾼에게 부탁해 인증을 찍은 후 서기를 기다렸다. 11시경 서기가 도착했을 때는 정상석 주변으로 인증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인증꾼만 20여 명에 달했다. 청화산만 오르고 말 거라면 모르지만, 조항산까지 오르려면 줄 서서 기다릴 상황이 아니었다. 해서 서기는 정상석이 아니라 정상석 아래에서 인증을 남기기로 했다. 흥수와 내가 사진을 찍었지만, 타이밍을 잘 맞춰 정상석 주변에 있던 인증꾼의 교체 타임에 셔터를 눌렀다.
인증을 찍은 후 11시 3분경 정상을 떠나 11시 11분에 인솔 대장이 강조해 주의하라고 했던 시루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시루봉(떡 시루의 시루봉이라는 이름이 너무 많아 늘 헷갈리는 봉우리), 백두대간은 왼쪽으로 꺾어야 했다. 길은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눈이 얼어 대단히 미끄러웠다. 가야 할 길을 봤을 때는 얼어 있는 코스가 길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이젠을 하는 게 모두를 위해 좋을 거 같았다. 해서 그 자리에서 흥수는 아이젠을 꺼내 착용했고, 나는 아이젠 꺼내기가 귀찮아 나무를 잡고 버티며 서기가 오기를 기다렸다. 갈림길에 서기가 도착하는 걸 보고 큰 소리로 아이젠을 착용하라고 한 다음, 흥수를 따라 내려갔다. 물론 주변의 나무를 의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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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운 눈밭을 지나자 오지 산행에서 늘 경험한 낙엽이 쌓여 더 미끄러운 길이 나타났다. 문제는 얼음이 녹은 지역은 진흙탕이라 더 미끄러웠고 아이젠도 필요가 없었다. 미끄러져 넘어지면 대형 사고다! 역시 까만 소의 영향력도 100 산에서 끝났다. 100 산이 아닌 조항산으로 길을 틀자마자 이정표는 사라졌고, 등산객이 많이 다니지 않아 얼어붙은 등산로와 낙엽 쌓인 등산로가 길을 막고 있었다. 청화산 정상에 있던 이정표에 따르면 조항산까지 4.2km였다. 11시에 청화산을 떠났으니 4.2km를 1시간 30분 동안 달려 12시 30분에 조항산 정상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다년간 산행 경험에 따르면 아주 합리적인 목표였다. 그런데 청화산 정상에서부터 갑자기 안개가 몰려와 시야가 10m가 채 안 되는 와중에 능선이 늘 그렇듯이 기복이 심했다.
그 역경을 뚫고 나에 앞섰던 등산객을 추월하며 달려 12시 10분경이 되자 이번 산행의 하산 표지라고 할 수 있는 의상 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들머리 기준 청화산 2.6km, 청화산 기준 조항산 4.2km 그럼 들머리 기준 조항산은 6.8km 대략 7km면 조항산에 도착한다는 얘기다. 배터리 잡아먹는 하마임에도 불구하고, 500m 단위로 정보를 알려주는 등산앱을 쓰는 이유는 그 정보를 토대로 남은 거리와 소요 시간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이라면 목표한 12시 30분에 충분히 조항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이정표의 거리가 맞는다는 전제하에!
어쨌든 늘재를 출발점으로 백두대간을 따라 북진하는 상황에서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북으로 대야산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흥수와 내게는 2017년 12월 9일 동무들과 대야산에 올랐다가 다른 친구들이 '손녀마귀통시바위'에서 하산하는 동안 둘만 둔덕산까지 달린 과거가 있다. 무려 2년 3개월 전 얘기다(산행기를 다시 읽어 보니 그 당시 문경 지역 산을 집중적으로 다닌 거 같은데 기억이 없다. 그래서 산행기가 필요한 듯[산행기]). 어쨌든, 둘에게는 추억을 더듬는 기회였다. 희미하게 앞에 보이는 산의 추억에 관해 얘기를 나누며 쉬지 않고 조항선 정상을 향해 갔다. 정확히 얘기하면 앞에 보이는 바위 봉우리는 대야산 중대봉이다.
그리고 12시 29분에 산악회 인솔 대장이 두 번째로 강조했던 '갓바위재'에 도착했다. 여기서 직진하면 조항산 좌로 틀면 의상저수지로 내려간다. 뚜렷한 이정표가 있는 게 아니라 한 안내 산악회에서 코팅한 갓바위재 표지가 나무에 걸려 있는 게 다였다. A 코스는 조항산까지, B 코스는 여기서 좌로 방향을 틀어 저수지 쪽으로 하산하면 된다. 그 표지를 만들어 나무에 매단 산악회에 경의를! 어쨌든 그 표지에 따르면 조항산 정상까지 1.6km가 남았고, 고도는 710m 근처였던 거로 기억한다. 애초 목표인 12시 30분에 조항산 정상에 도착하는 건 이미 물 건너갔고, 수정된 목표를 13시 즉 오후 1시까지 도착하는 거로 바꿨다. 그런데 조항산이 900m가 넘으니 최소 200m는 올라가야 해 수정된 목표를 달성하기도 쉽지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오기도 쉽지 않았는데, 앞에 보이는 조항산의 모습이 또 좌절하게 했다. 조항산 정상으로 보이는 봉우리 앞에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그 바위 봉우리는 우회할 거로 생각했는데, 우리에 앞선 등산객이 그 암릉을 오르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저기를 올라야 해?"라고 흥수에게 얘기했을 정도다. 싫든 좋든 암릉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고 감탄했다. 안개가 완전히 걷힌 건 아니지만, 주변의 산세는 볼 수 있을 정도라. 암릉답게 그 바윗덩어리를 내려가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밧줄은 과잉 친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와중에 밧줄이 양쪽으로 설치되어 있어 등산객에게 혼란을 초래했다. 결론적으로 조항산 방향 오른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앞서가던 흥수는 왼쪽을 택했고, 나는 그 위에서 좌우를 살펴보다 오른쪽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오른쪽으로 내려갔다. 당연히 밧줄은 무시하고. 그렇게 내려가 암벽을 따라 돌아가 흥수가 선택한 쪽에서 오는 길을 살펴보다가 흥수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서 큰 소리로 흥수를 불러 오른쪽이 답이라고 알려주었다. 내 말을 들은 거 같지는 않고 좀 있다가 흥수가 암릉 정상에 나타났다. 그리고 암벽을 타고 내려왔다. 산에서는 그게 암벽이든 얼음벽이든 걱정이 안 되는 친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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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산 정상 앞에 있던 바위 봉우리를 넘어 조항산을 보자 그 바윗덩어리를 우회하면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시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선배 산꾼이 다 알아서 길을 만든 거다. 사실 그 바윗덩어리를 넘으면 정상까지 힘든 과정은 다 끝난 거였다. 그렇게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서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막 갓바위재에 도착했고, 상태가 좋지 않아(산행 후 들은 얘기에 따르면 빙판 지역 통과 후 진흙탕 지역에서 두세 번 미끄러졌다고) 거기서 저수지 쪽으로 하산하겠다고. 그렇게 서기와는 날머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1시 8분에 조항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대여섯 명의 등산객이 쉬고 있었고, 인증은 다 찍은 거 같았다. 해서 삼각대를 설치하고 흥수와 둘이 인증을 찍고 저 멀리 보이는 대야산과 희양산을 사진으로 남겼다. 물론 흐린 날씨 덕에 선명한 사진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대야산 쪽 능선에 바위가 깎인 거 같은 흔적이 있었다. 아마 채석장의 흔적이 아닐까, 둘이 결론 지었다[관련 기사]. 그리고 둘이 대야산과 둔덕산을 조망하며 지난 2017년 12월 산행에 관한 얘기를 나눈 후 점심 먹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1시가 넘은 시간이라 배가 고팠고, 조항산 정상이 의외로 넓어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다만, 암봉답지 않게 평평한 바위를 찾을 수가 없어 선배 산꾼이 만들어 둔 식탁을 이용해야 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김밥과 흥수가 가져온 빨갱이 팩 하나와 늘 디팩에 들어 있던 사과 하나, 보온병에 들고 간 생강차가 우리의 점심이다. 대략 20분가 휴식을 겸해 점심을 먹고 조항산을 출발해 저 밑으로 보이는 의상 저수지를 향해 갔다. 산행 마감 시각이 3시 30분이고 남은 거리가 6km 정도 남은 시간은 2시간이 조금 안 되었다. 고로 시속 3km로 하산한다고 해도 마감 시각인 3시 30분까지 도착은 불가능하다. 다행히 최종 마감 시각은 4시지만, 다른 등산객의 눈치도 봐야 하니 가능하면 1차 마감 시간에 가깝게 도착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6시간 이내에 청화산, 조항산 연계 산행을 마치려면 점심시간 포함 휴식 시간을 줄여야 한다.
1시 53분에 고모치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정표의 사진만 찍고 저수지 쪽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따라 오던 흥수가 백두대간을 잇기 위해 고모치를 다녀오자고 했다. 해서 이정표상의 거리가 얼마였는지 물어보니, 0.9km에 불과했다고.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지만, 사실 고모치까지 간다고 대간이 연결되는 건 아니었다. 산행 당시에는 밀재까지 가야 연결되는 거로 알고 있었다. 고로 대간 연결을 위해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이후 이 산행기를 쓰며 2017년 당시 산행기와 사진을 확인해 보니 밀재까지가 아니라 마귀할미통시바위 직전에서 백두대간은 고모치로 향하고 있었다. 지도 확인 결과 고모치까지 40분 거리다. 고모치에서 조항산 갈림길까지 또 30분 고로 대간 연결을 위해서는 70분, 왕복 140분 2시간 20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정표에 의하면 고모치 갈림길에서 저수지까지 3.8km! 거리로나 고도로나 내리꽂는 하산 길임을 알 수 있었다. 실제 그랬고. 와중에 발목까지 오는 낙엽은 눈길 이상으로 미끄러웠다. 낙엽과 나무뿌리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며 급경사를 내려가 3시 1분에 의상저수지에 도착했다. 저수지는 생각보다 크고 넓었고 저수지 가를 따라 난 도로는 굴곡이 심해 보이는 거보다 더 길었다. 저수지에서 놀고 있던 청둥오리를 놀라게 하기도 하며 빠른 속도로 도로를 따라 저수지 끝, 댐까지 갔다. 그리고 댐에 도착한 시각이 3시 19분이다. 1차 마감 시각까지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에 도착하기는 틀렸다.
그런데 댐 아래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음에도 굳이 도로 가에 버스를 주차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뭐 어쨌든 버스가 기다리는 곳까지 가야 했고, 그 거리는 1.6km에 달했다. 가능하면 다른 등산객에게 피해는 주지 않기 위해 빠른 속도로 포장도로를 따라가 3시 41분에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1차 마감보다 10분 정도 늦었다. 10분만 늦자고 한 내 목표를 맞췄다. 미안한 마음으로 정신없이 버스에 타고 보니 서기를 포함 소수의 인원만 버스에 타고 있었고 반 이상은 아직 도착 전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버스에 타는 거로 이번 청화산, 조항산 연계 백두대간 산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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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를 보니 2차 마감인 4시까지 버스가 출발할 거 같지 않아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로 갔다. 처음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 버스를 포함 3대의 버스가 주차해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인천에서 온 팀은 산행 중 만났기에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산에서 만나지 못한 팀이 하나 더 있다는 얘기라. 해서 어느 산악회에서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버스 앞으로 갔다. 놀랍게도 산악회 버스가 아니라,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시외버스였다. 고로 여기는 주차장 겸 종점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와 서기에게 다들 어디 갔는지 물어보니 가게에서 막걸리 파티 중이라고. 해서 그럼 우리도 막걸리 한잔하고 가자고 했지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서울에 도착해 마시기로 했다. 식당이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최소한 마감 30분 전에는 도착했을 텐데. 4시가 가까워지자, 등산객이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해서 모두 가 탄 4시 3분경 날머리인 버스 종점을 떠나 서울을 향해 달렸다.
4시 54분에 버스는 화장실을 다녀오지 못한 등산객을 위해 음성 금왕 휴게소에서 잠깐 쉰 이후 텅 빈 고속도로를 달려 6시 9분경 이번 산행의 출발지인 사당역에 도착했다. 우리끼리 했던 말이지만, 지방 산행을 다녀오면서 아직 해가 떠 있는 경우는 처음이다. 이게 다 코로나 덕이다.
사당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으로 들어가 보쌈과 빨갱이, 맥주, 막걸리를 시켜 무사 귀환을 축하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친구에게 연락했다.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해서 합류한 친구가 동숙, 진행이다. 6시 15분경부터 마시기 시작해 9시 10분까지 마셨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간 거로 이번 산행을 공식적으로 마감했다.
애초 계획대로 '늘재 → 제단 터 → 청화산 → 갓바위재 → 조항산 → 고모치(갈림길) → 의상저수지 → 옥양교'의 14.44km(트랭글 기준), 6시간 13분 코스의 백두대간을 달렸다. 이동 5시간 30분, 휴식 43분! 산악회 기준 6시간 내 이 코스 산행을 마치기 위해서는 점심 포함 휴식 시간을 줄여야 한다.
날이 흐려 주변 산세를 감상할 수 없었다는 게 아쉬웠지만, 산 자체로도 대단히 좋았다.
청화산, 조항산 트랭글 기준 14.5km를 6시간 이내에 주파하려면, 휴식 시간을 30분 이내로 줄여야 가능하다. 그렇게 줄여도 시속 2.6km 이상으로 달려야 하지만! 무리가 있는 산행 계획이다. 그리고 시루봉 갈림길에서 조항산 정상까지 대략 5km는 쉽게 갈 수 있는 코스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산행을 하다 보면 백두대간도 조만간 완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끝에서 끝까지가 아니라 구간 구간 주요 지점만.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이란 것도 다를 바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