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나이와 바이크맨 / 최선우
내 별명은 '산사나이'이다. 대학교 재학 시절 지리산을 종주 이후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각종 등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 멤버로 활동했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3박 4일간의 종주 경험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는 취사와 야영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등산 물품을 모두 각자 짊머지고 산행했다. 코펠과 버너, 텐트, 그리고 3박 4일 동안의 식량 등. 여름철 산행이라 소나기가 쏟아져 흠뻑 맞았던 일,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덜렁거리자 수시로 노끈으로 묶으며 산행했던 일, 갖은 고생 끝에 천왕봉에 올랐을 때 하얀 구름이 밀려왔다가 잠시 후에 다시 밀려가는 장관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경험은 이후의 나의 등산 생활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친구들, 교직원들, 학생들과의 산행 등.
이렇게 즐겨 했던 등산을 지금은 잘 안 하고 있다. 체중이 많이 나가서 산행하는 것이 무릎에 무리가 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올라갈 때는 괜찬지만 내려올 때는 체중이 짐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등산을 잘하지 않고 대신에 시간나는대로 자전거를 즐겨 탄다. 자전거 타기로 방향이 바뀐 것은 전국에 자전거 길이 생기자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고향의 섬진강 자전거길을 달려 보고 싶어서였다.
자전거를 몹시 타고 싶었지만 비싸서 사질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동료 교사가 자기한테 있는데 안 쓰니 가져가라고 하여 바로 그날로 타기 시작했다. 첫날은 광주집에서 승천보까지를 다녀왔다. 3시간이 걸렸는데 다음 날 사타구니가 쓰려서 여러 날 고생했다. 지금은 하루 종일 타도 이런 일은 없다.
4대강 자전거 길 외에도 전국에 많은 자전거 길이 있는데 모두 종주하고 나면 국토해양부에서 인증서도 주고 있다. 난 섬진강 자전거 길과 영산강 자전거 길만을 종주했는데 남은 전국의 자전거길 나머지도 다닐 생각이다.
나는 틈이 나면 섬진강 자전거 길을 즐겨 달린다. 금년에만 벌써 3번인데 모두 합치면 10회는 될 것이다.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의 4대강은 보를 설치해서 개발이 돼 버렸지만 섬진강은 그대로 보전되고 있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섬진강 길이 애착이 가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느 해 겨울, 고향 곡성군 오곡에서 압록까지 섬징강변을 따라 10여km를 걸었다. 그 후 오곡에서 남원시 금지까지 13km를 걸었다. 2번에 걸쳐 20km를 걷고 나니 기왕 나선 김에 종주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생겨서 주말마다 20~25km씩 모두 9회에 걸쳐 150km를 완주했다. 혼자서 특별한 일 없는 토요일이면 걷다보니 6개월이 걸렸다.
섬진강 자전거 종주길은 섬진강 댐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댐에서 10km 내려온 곳에 첫 번째 인증센타가 있고 또 버스나 승용차로 가도 편리한 주차공간이 있다 보니, 자연스러운 출발 지점이 되었다. 전체가 150km가 넘지만 난 이틀에 걸쳐 달리곤 하였다. 중간 지점인 곡성에 고향집이 있어서 숙박이 편하고 이틀에 달리면 몸에 무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첫날 섬진강 휴게소에서 출발하여 30분 달리면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생가가 나온다. 방문자들이 손쉽게 커피를 타서 마시도록 커피포트와 커피믹스가 준비되어 있으며 운이 좋으면 김용택 시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계속 달리면 향가 유원지가 나온다. 거기로 진입하는 길에는 일제 시대에 암벽을 뚫어 만든 터널이 있는데 철도용으로 만들어졌으나 완공 전에 해방을 맞아 레일은 깔리지 않았다. 길이는 약 300m인데,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으며 내부에는 조명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면 갑자기 유원지의 푸른 자연이 펼쳐져 나름대로의 묘미가 있는데 터널을 이용하지 않고 우회도로로 갈 수도 있다. 유원지의 강물속에 박혀 있는 8개 철도 교각 역시 일제 시대에 순창과 남원을 연결하는 철도를 가설하려다 중단된 흔적이다.
이 교각 위를 지나 강 건너편에 시계 2시 방향으로 금호타이어 곡성 공장이 나온다. 강을 따라 내려가면 곡성과 남원시 금지면을 잇는 다리-금곡교-가 나온다. 이 다리가 멀리 보이면 잠시 길가 정자에서 목을 축이고 사탕으로 당분을 보충하며 쉰다. 한다. 이곳을 지나면서 정자에서 쉴 때면 동네 할머니 한 두 분을 꼭 만나고 했다. 갈 길을 재촉하면 횡탄정 인증센터가 나오며 이곳을 지나면 침실 습지가 나오면서 강물 흐름이 느려진다.
이 습지는 출입을 금지하며 보존하고 있어서 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함께 다니는 길'이라는 안내판에 사람, 자전거, 승용차가 그려져 있다. 고달면 고달리의 노거수를 바라보며 달리면 일명 '퐁퐁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5분만 더 가면 고향 마을인데 난 고향집에서 1박을 한다.
이틀째,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간단하게 점심 도시락을 준비한다. 갓 지은 밥을 조각 김에 싸서 작은 도시락에 담으면 끝이다. 여름에는 아침 6시경, 겨울철에는 9시경에 나섰다. 강 양쪽에 자전거길이 있지만 난 강 건너편의 길을 달렸다. 출발하여 몸이 풀릴 때면 도깨비마을 나오고 두 바퀴 쉼터라 이름 지어진 한옥 펜션, 가정 마을 나를 기다린다. 가정마을 곡성 기차마을에서 출발하는 관광열차의 종착지이다.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쉰다.
다시 페달을 밟으면 압록유원지, 구례의 입구라는 구례구, 사성암 인증센터, 수달보호구역을 관리하는 초소가 순서대로 나오는데 이곳에서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시며 이러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남도대교를 2km 남겨둔 길거리 카페 '아비앙토'에서 커피 한 잔을 사마시며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다. 이 아비앙토 사장은 사람이 많이 올 수 있는 화개 장터를 마다하고 이 장소를 고집하는 것은 이곳이 본인이 생각하기로는 섬진강변중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이란다.
남도대교, 3월이면 매화꽃 축제가 열리는 다압면이다. 언덕에 오르면 섬진강이 두꺼비들이 모여서 나루를 이루었다는 섬진강 유래비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고 사진도 찍는다.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 맹고불고불길이 나오는데 섬진강 자전거 길을 만들 때 처음에는 이 부근을 직선 길로 내려고 했는데 당시 맹○○ 행정안전부 장관이 강변을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류로 갈수록 강폭은 넓어지고 강물의 흐름도 느려진다. 계속 달리면 망덕포구가 보이면서 윤동주공원이 나온다.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 친구와 얽긴 사연이 소개되어 있고 대표 시인 <서시>가 입구에 손글씨로 쓰여 있어 다시 낭송해 본다. 이곳에서 20여분 달리면 종점이면서 시점인 배알도 수변공원이다. 이곳에는 유인인증센터와 무인 인증 센터가 있어 선택하여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스탬프 못지않게 인증샷을 찍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해 독도 방문하며 손에 들었던 태극기를 들고 인증샷을 찍었더니 다른 분이 자전거를 번쩍 들고서 찍어서 나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에 날짜와 시간을 써서 지인들에게 자랑 삼아 보낸다.
힐러리 경이 '왜 산에 오르느냐?'라는 물음에 '거기 산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해서 유명한 말이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왜 섬진강 자전거길을 종주하느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답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