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래 _ 길에서 생각을 얻다
적응
1.
내일 코스는 어디지?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모르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일본의 여행가(유명한 사진작가)인 후지와라 신야는 이런 말을 했다. “정보가 많을수록 여행의 불안은 줄어들지만 실상은 멀어진다. 그러면 놀라움은 수반되지 않는다.” 미리 다 알면 놀라움이 줄어든다는 얘기인가?
여행은 미지의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알고 있는 곳도 매번 다르다. 매일을 살지만 앞일을 모르고 사는 삶과 같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 시선을 옮기기만 해도 미처 상상하지 못한 세계를 만난다.” 역시 그의 책 『인도방랑』에 있는 얘기다. 그래서 여행은 삶과 같다. 또한 삶이 바로 여행이다.
내일은 기장군을 걷는다. 처음 가 보는 곳이다. 기장이라는 지명은 기장멸치밖에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낯섦은 새로움이다. 그건 기대(期待)다.
내일은 천천히 걸어야겠다. 기대에는 만끽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니까. 그게 적응이다.
2.
기장군, 처음 걸었다. 꽤 잘 알려진 곳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길이라면 모르고 걸을 만했다. 미리 알고 걸었다면 아는 곳에 너무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려져 있는 곳보다도 마음에 드는 건 바다였다. 걷는 내내 바라보아야 했던 바다, 한없이 펼쳐진 바다였다. 나만이 느끼는 바다. 정보가 느낌을 미리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걸 몰라서 만끽할 수 있는 하루였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기호(嗜好)를 갖고 있다. 때로는 미리 챙겨둔 정보가 기호를 제한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