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간 / 고혜숙
복수초가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수선화가 피어났고, 노랗게 피었던 개나리는 어느새 푸른 잎사귀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한두 송이 벌어지기 시작하던 벚나무의 꽃망울이 팝콘처럼 하얗게 터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듯했다. 올 벚꽃은 유난히 탐스러웠다. 어디를 가나 화사한 벚꽃이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온갖 초록이 산과 들을 물들이고 있었으니, 놀러 다니기 딱 좋은 날들이었다.
그림 그리는 도구를 챙기는 손마저 설레는 기분이었다. 이번 주에는 어떤 소재를 주실까? 지난주에 찍어왔다는 사진이 단톡방에 올라왔다. 유채밭과 주변에 널려 있는 화산석, 그 너머 푸른 바다 그리고 오른쪽 가장자리에 하얀 등대가 서 있는 풍경이었다. '와, 제주도!' 스케치를 시작했다. 등대는 꼼꼼하게 그려야 한단다. 사진을 확대했다. 보기와 달리 등대 윗부분이 복잡했다. 단순해 보이던 아래쪽도 그리기 어려웠다. 좌우, 상하 비율 맞추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거다. 뭐든 대충 쓱쓱 그려도 작품이 되는 선생님 손길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렵사리 스케치를 끝냈다. 색을 칠하는 것도 요령이 필요했다. 겨우 4주 차 생초보였으니 남들보다 항상 느렸다. 가방을 챙기기 시작하는 사람들 소리에 마음이 급했다. 그때 왜 날짜를 물어보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 며칠이죠?"
"4월 16일이요."
"아, 세월호...."
말문이 막혔다. 대답해 주던 그 젊은이의 표정이 선하다. '아니, 세상에 그것도 몰랐어요?' 티비를 안 보니까, 신문도 하루 지나 오후에나 받아볼 수 있으니까. 그 어떤 것도 변명이 될 수 없었다. 잊지 않겠노라 했지만 말 뿐이었던 것이다.
문화활동하는 지인이 공연 소식을 보내왔다. 5월 29일, 집에서 출발하면서야 카톡으로 온 포스터를 자세히 살폈다. 노란 리본? 설레발쳤던 마음이 확 가라앉았다. 그제야 어떤 연극을 보러 가는지 알게 된 것이다. 4.16 가족극단 노란 리본 다섯 번째 작품 기획공연 <연속, 극>이라 적혀 있었다.
세월호 참사 후 10년. 그동안 어처구니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속옷 바람으로 도망갔다는 선장. 그와 함께 했던 선원들. 시킨 대로 가만히 있었던 사람들은 기다렸다. 구조의 손길을. 그러나 승객 탈출 지시를 내려야 할 선장은 사라졌고, 경비정은 너무 늦게 나타났다. 사고 발생 100분 만에 배는 물속으로 잠겨버렸다. 300명 넘는 승객과 함께.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원 구조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진실을 밝히는 일은 더뎠고, 국가는 국민을 저버린 것 같았다. 극우 단체의 세월호 특별법 반대 시위. 단식 투쟁을 하던 유민이 아빠. 그 옆에서 피자를 먹은 일베 사용자. 한술 더 떠 벌어진 폭식 투쟁까지. 이처럼 비극적인 사건에도 편 가르기가 작동하다니. 어쨌든 곳곳에 분향소가 차려졌고 사람들 발길이 이어졌다. 1년, 2년, 3년.... 언제까지나 기억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팽목항에도 가고 세월호 선체가 있는 목포 신항에도 찾아갔다. 노란 리본이 퇴색해 가듯 나도 차츰 단원고 아이들을 잊기 시작했다. 이제는 묻어 두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강진 도서관의 공연장은 소박했다. 무대 장치도 단순했다. 50명 쯤 들어갈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관객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일곱 명 각자의 이야기를 단막극 형식으로 이어서 보여 주었다. 처음에는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유치원 다니던 아이랑 같이 했던 놀이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으니까. '너'의 탄생 비화는 외설스럽게 들릴 법했지만 오히려 웃음을 자아냈다. 왕년의 농구선수였던 엄마는 아들에게 슛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언제나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하는 엄마. 동생의 영정 사진을 들고 가족사진을 찍는 이야기. 유족들 곁에서 힘을 보태려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는 엄마. 자기 딸만 살아난 것이 죄스러웠던 게다. 유치원 교사를 꿈꿨던 그녀의 딸은 소방대원이 되었다. 드디어 마지막 꼭지. 화려하게 번쩍이는 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등장했다.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불렀다.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라, 지지 않는 사랑의 꽃으로, 다시 한번 내 가슴에 돌아오라, 사랑이여 내 사랑아...." 눈물에 젖어 살던 때를 건너서, 이제 '너'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다정하게, 단단하게 살리라 다짐하는 듯한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글 쓰면서 자신의 노래도 만들어 보겠다는 그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아마추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연기였지만, 연극을 보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 저렇듯 천연덕스럽게 죽은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유족의 목소리에 바짝 귀 기울이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의 아픔이 내 마음속 깊이 들어온 느낌이었다. 10년 세월이 걸린 셈이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