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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뜨작가 에프라임 키숀(Ephraim Kishon)은
나의 롤 모델이었다. 키숀은 1924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은행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예술사와 조각을 공부했고, 2차 대전 당시 독일, 헝가리, 구소련 등지의 강제수용소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1949년 가족들과 함께 헝가리를 탈출하여 이스라엘로 망명했다.
1974년 이스라엘 최고의 문학상인 <야콥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1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행운아 54』, 풍자작품 『모세야 석유가 안 나오느냐』, 『개를 위한 스테이크』, 『미안하지만 우리가 이겼어』 등과 예술비평서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피카소는 야바위꾼이 아니다』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37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4천 3백만여 권이 팔려나갔다. 2005년, 80세에 스위스 아펜첼에서 작고하였다. 다음에 소개하는 꽁뜨 『책을 읽지 않고 평(評)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그의 꽁뜨 중 가장 인상이 깊은 작품이어서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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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고 평(評)할 수 있는 방법
몇 천 년 전에 헤브라이어를 발견한 우리 선조들은 왼손잡이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그들은 성서의 글이 사방의 멍청이들에게 읽히지 못하도록 조심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속기법에서처럼 모든 모음을 없애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헤브라이어는 읽기보다 쓰기가 쉽다. 반면 헤브라이어를 쓰는 작가는 그들의 독자를 찾기에 혈안이 되고 있는 것인데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평균 독자 수는 일반적으로 셋으로 국한된다. 출판업자, 인쇄업자 그리고 교정공, 그리고 네 번째로 그들은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톨랏 샤니와의 어떤 용건은 나를 무겁게 한다. 아니, 그것은 내가 잘못한 일이다. 약 반년 전에 그는 한 권의 책을 나에게 보내왔다. 나는 그것을 당장 책상 위 어디에다 놓아버리고 그 책은 항시 놓여 있는 자리에서 거미줄 속에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통 둘러대는 핑계로 별일이 아니었다.
「이미 받았네!」
나는 톨랏 샤니를 볼 적마다 예방조처로 소리치곤 하였다.
「몇 시간 틈을 내어 꼭 읽어보도록 함세!」
그러면 장래가 유망한 젊은 작가는 감사의 미소를 띄우곤 했다.
몇 주 전 내가 실수로 그를 쓰러뜨렸을 때 나는 불쑥 내가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얼마 후에 책에 관하여 이야기하자고 내뱉었다.
그러자 곧 아주 난처한 사건이 생겼다. 톨랏 샤니는 막 카페를 들어서고 있었으며 그의 시선은 주방 쪽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그 날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책을 향하여 손을 뻗어 아주 신중히 읽어나갈 생각으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전화가 울렸던가 초인종이 울렸던지 어쨌든 무엇이 일어난 것이었다. 어쨌든 나의 손은 책까지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책은 따라서 여전히 예전에 놓아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며칠 전 영화관 앞에서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을 때 누가 갑자기 내 팔을 움켜쥐는 것을 느꼈다. 그는 톨랏 샤니였다. 그리고 아무리 보아도 그로부터 달아날 방도가 없었다.
「선생님, 책은 이미 읽어 보셨겠지요?」
그는 물었다.
「우리 자세하게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세. 나는 자네에게 할 말이 많네.
그러나 여기서......... 줄을 선 채로...........이 경황 중에야 어디.........」
나는 아직 말을 마치지 않았지만 매표소 앞에 <매진사례>판자가 나붙자 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오로지 갑작스럽게 독수리 한 마리가 나를 채어 날아간다면 나는 구원받을 수 있으련만, 텔아비브에는 독수리는 없었고 유감스레 너무나 많은 카페가 있었다. 두 사람이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수많은 카페가 말이다.
내 팔을 아직 꼭 붙들고 있던 톨랏 샤니는 드디어 식탁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앉았다.
「자, 선생님. 」
톨랏 샤니는 말했다.
「제 책에 관하여 고견을 들려주십시오.」
그러자 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서부 영화의 극적 클라이맥스 장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보안관과 악당이 인적 없는 거리의 살롱에서 마주치어 숙명의 대결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카페의 디첸고푸 거리도 갑자기 인적이 끊어진 듯했다. 오늘 따라 거리가 이렇게 황량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아는 얼굴이라고는 하나도 나타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요.」
나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마침내 만나게 되어 기쁘기 짝이 없네.」
나는 절망적으로 그 책을 기억 속에 끌어올리려고 애를 썼으나 나의 망막 앞에는 단지 갈색의 책 포장지만이 아른거릴 뿐이었다.
제기랄. 책 포장도 뜯지를 않았으니! 적어도 무슨 내용의 책이라는 것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적어도 무슨 내용의 책이라는 것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소설이었던가? 단편집이었던가? 혹은 시집이었던가? 또는 극본, 수필집?
납과 같이 무거운 침묵이 나의 숨길을 막는 것 같았다. 나는 무어라고 입을 열어야 했다.
「나는 얘기해야 하겠네.」
나는 입을 열었다.
「자네는 어마어마한 노력을 이 책에 기울였더군.」
「8년입니다. 」
톨랏 샤니는 끄덕거렸다.
「그러나 테마를 잡기까지에 더욱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건 곧 알 수가 있더군. 원숙한 작품이야.」
침묵, 납과 같은 정적. 구원의 길은 요원했다. 친구들은 모두 위기에 빠져 있단 말인가? 정말로 난처한 일이었다.
「선생님의 의견을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
유망한 청년 작가는 기대에 떨리는 음성으로 요구했다.
「나는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네.」
「그 속에 쓰인 모든 것에서요?」
마지막 순간에 나는 함정을 모면했다. 톨랏 샤니는 날카롭게 나의 눈가를 관찰했다. 내가 만약
「그래, 모든 것에서.」
하고 대답했더라면 그는 내가 책을 읽지 않은 것을 즉각 알아 차렸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말했다.
「처음 부분은 그렇게 잘 됐다고 볼 수 없어.」
「선생님도 역시?」
톨랏 샤니는 실의에 찬 채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처럼 경험 많으신 작가는 적어도 한 책의 서론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아실 줄 알았습니다.」
「서론, 서막이라....」
나는 약간 당황하여 대답하였다.
「문제는 독자가 책의 힘에 곧 끌려 들어가는가 혹은 아닌가에 달려 있는 걸세.
」
톨랏 샤니는 머리를 숙이고 아주 슬픈 모습이어서 나는 자신이 불편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는 얘기가 차츰 활기를 띠더군.」
하고 그를 위로했다.
「인물들은 아주 빼어나게 묘사되었고 이야기는 무드와 리듬을 가지고 있어서 좋았어.」
「선생께서는 내 책의 서론 부분을 반쯤으로 줄였어야 좋았다는 말씀인가요?」
「그렇게 했으면, 군의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됐을 것이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는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나 내게는 보리스가 왜 반란군에 가입했는가를, 그 동기를 아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보리스라!
「보리스는 물론 쉽사리 있을 수 없는 성격을 가졌지.」
나는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의 온 애정이 보리스에게로 쏟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네.」
깜짝 놀란 그의 눈이 동그래진 채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애정이요? 내가 보리스를요? 그 돼지 같은 놈을? 그 범죄자를요? 그 놈은 내가 창조해 낸 인물들 중에서 제일 불쾌한 놈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일세.」
나는 그를 타이르듯 말했다.
「나는 자네가 자네 속의 자아(自我) 그 가장 깊은 핵심과 보리스를 동일시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네.」
톨랏 샤니는 창백해졌다.
「선생 말씀은 마치 몽둥이로 뒤통수를 치는 것처럼 제겐 충격적입니다. 」
그는 억양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보리스를 증오했어요. 나는 그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페터와 해군무관과의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친에게 그가 아비가일을 강간한 것을 숨기고......... 아직 기억하십니까. 선생님? 」
「기억하느냐고? 그는 어머니에까지 아무 것도 얘기 않았지....」
「옳습니다. 그때 저는 자문했습니다. 이 보리스는 그의 모든 착오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료학자보다 가치 있는 인간이 아니가? 하고요.」
「우리는 모두 인간일세.」
나는 관대하게 논평했다.
「혹자는 그렇고 혹자는 또 다른 성품과 운명을 타고나는 걸세. 그러나 결국 우리 인간은 다 같은 것이야.」
「바로 그 점을 나는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주 명백하게 말입니다.」
나는 아무래도 책을 끝까지 읽어버린 것인가? 소위 깨닫지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라도 말이다.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저에게 확언하더군요. 」
그는 주저하며 말했다.
「이 책은, 적어도 행동을 묘사한 데 있어서는, 나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요.」
나는 말없이 식탁보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내가 그럼으로써 이 유망한 젊은 작가의 제작물을 한 번에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처럼. 그러나 나는 아직 한 줄도 그의 작품을 읽지 못했다. 또한 무슨 이유로? 대체 이 톨랏 샤니란 친구는 누구인가? 왜 그는 나에게 자기 책을 보내는가? 모든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일이었다.
「그 책이 직접적으로 자네 최고의 작품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네.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이 가장 긴장미가 있는 책이야.」
톨랏 샤니는 움찔했다. 틀림없이 나는 그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 유감일세. 그럼 내가 애송이가 제멋에 갈겨버린 멜로드라마에 얼어버려 무릎이라도 꿇어야 한단 말인가?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
그의 월등히 뛰어난 선배에게 샅샅이 자기 속을 꿰뚫려 보인 것을 안 무능력자의 통렬한 감정을 그의 목소리에 여실히 나타냈다.
「선생께서는 돌격 기동대의 사령관 집에서의 만찬을 말하는 거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당신의 국수주의가 이 장면에서는 틀림없이 혐오감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맹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내가 이 홍수처럼 휩쓸려 내려가는 계곡의 모든 사건을 사카린으로 달짝지근하도록 했어야 했단 말인가요? 선생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말이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말을 더듬지 말게.」
나는 그에게 경고했다.
「내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네.」
「선생께서는 토후의 할렘에서 낙타들이 밤에 경주하는 장면의 묘사를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아마 선생 마음에 들었을 겁니다. 안 그래요?」
「아주 좋았네. 그것은 총천연색 장면이었어.」
「그럼 예카체리나가 책상 램프로 판사의 머리를 내려 갈긴 것은 어땠나요? 그것도 괜찮았습니까?」
「부분적으로 괜찮았어.」
「그렇다면 선생께서는 내가 마이어 크론슈타트나 그의 패거리들에게 마련한 운명에 대해 항의할 자격이 없으십니다!」
순간 나는 격렬한 반발을 느꼈다.
<아이고, 이런 철부지야> 하고 나는 생각했다. 너는 네가 말하고 싶은 대로 지껄여도 좋다. 그러나 마이어 크론슈타트여, 나를 좀 내버려두어라! 사실 말이지만 도대체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대화였다. 모든 것이 너무 공허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지금은 불꽃이 튀어야 한다. 내 양보도 이젠 끝장이다.
「이것 봐, 톨랏 샤니군! 내가 자네라면 나는 여기서 마이어 크론슈타트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랑스러울 게 없겠네! 」
「나는 그가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피가 머릿속에서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믿을 수 없는 일! 이 녀석은 나를 반박하려고 하지 않는가!
「크론슈타트는 사기꾼일세.」
나는 날카롭게 쏘아 부쳤다.
「그가 하는 짓은 누구도 납득 못시켜. 무엇보다 그는 도대체가 필요 없는 인물이야. 그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자네는 자네 책에 흠 하나 남기지 않을 걸세.」
「여쭈어도 좋다면, 그럼 어떻게 문제의 갈등, 투쟁을 전개시킬 수 있습니까?」
「흠....... 어떻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선생은 아마 동물학자 쪽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그밖에 누가 있겠나?」
「예카테리나는요?」
「판사와 결말을 짓도록 해야지.」
「임신 8개월 째 가서요?」
「그럼 나중에.」
「선생께서는 이야기를 조금 너무 단순하게 상상하시는 게 아닙니까? 그리고 선생은 예카테리나가 자동차에 치게 된다는 사실을 잊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녀가 꼭 사고를 당해야 하나? 하필 그녀가? 누가 차에 치여야 한다면, 아비가일이어야지.」
「웃기지 마십시오. 그러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너무했다. 나 같은 전문가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분명히 어딘가 잘못된 일이었다. 나는 30년 전부터 거의 중단 없이 책을 읽고, 평을 쓰고 있었으니까.............. . 그런데 풋내기가 하나 오더니 웃기지 마쇼! 란다. 웃기지 말라고? 이 풋내기야! 자네가 쓴 천치 같은 낙타 경주는 웃기지 않는가? 무어라고 그래야 내 속을 알릴까? 웃긴다? 구역질이 나네!
「나는 지금 토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네!」
「멋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내가 시도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구역질을 느끼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 스스로를 알게 됩니다. 선생이 바로 그런 경우이지요!」
우리 사이에는 가로지를 수 없는 개인적인 모욕의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 톨랏 샤니도 화가 나서 얼굴이 노래져 있었다. 그는 헐떡거리며 말했다.
「제 책의 어떤 부분이 선생에게 불쾌한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는 양치질할 때 목에서 나는 소리를 내었다.
「내가 통속적인 해결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내가 보리스를 범람하는 홍수의 물결 속에 떠내려가게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틀림없지요?」
보리스! 나는 그를 깜빡 잊고 있었다.
「보리스는 이제 제발 좀 그만 내버려두게!」
나는 콧김을 거세게 내뿜었다.
「자네는 이 건달에게 그야말로 빠져 버렸군! 그리고 원한다면 얘기하겠네만 아비가일과 보리스의 관계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네!」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라니!」
유망한 젊은 작가는 신음하였다.
「그녀는 누구에게건 무조건 속해야 한단 말이오!」
「그러나 보리스는 안돼! 다른 남자는 없나!」
「누가 있습니까?」
톨랏 샤니는 튀어 오르더니 나의 옷깃을 움켜잡고 흔들었다.
「누구여야 합니까?」
「내 생각 같아선 동물학자......... 누구라고 했더라? ....... 크론슈타트! 」
「크론슈타트는 동물학자가 아니오.」
「그는 평범한 동물학자군! 크론슈타트가 아니라면 기동 돌격대 사령관이 좋겠지.」
「크론슈타트는 기동 돌격대 사령관이란 말이오!」
「그럼 됐군 그래. 내 생각에 그가 제격이야! 내 생각으로는 누구든지 괜찮아. 단지 보리스만은 안돼! 해군 무관도 괜찮고! 그렇지 않으면 페터! 혹은 비른바움!」
「비른바움은 누굽니까?」
「크론슈타트보다는 백배 나은 놈이지. 내가 보증할 수 있어! 자네는 분명히 원고지만 끄적거리면 책을 한 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조심하게! 이야기의 사건은 그래 뭔가? 이 쑥맥아! 주인공들의 성격은 또 어떤가? 내면적인 갈등은? 작품의 깊이는?」
이번에는 내가 목을 조르기 시작하였다.
「작품의 깊이가 문제일세. 자네처럼 신파조의 이야기나 싸구려 타령은 통하질 않네! 보리스! 보리스! 누굴 보라고? 청중에게는 물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존재일세! 누구도 그런 책은 읽질 않아! 나 역시 읽질 않았고.」
「선생님도 안 읽으셨습니까?」
「안 읽었네. 앞으로도 읽을 생각은 전혀 없네!」
그리고 나는 앉아 있는 그를 남겨두고 일어났다.
그는 아마도 지금까지 그곳에 앉아 있을 것이다. 바보 같은 녀석. 그래 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