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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서신 6강 정면 교사와 반면 교사 ~ 요한 삼서 세가지 축복 디오. 데메 영접 (디오드레베 데메드리오)
26.08.01(토)
요한삼서 1장 9절에서 12절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오늘 요한서신서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요한삼서를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요한 삼서를 시청하시면서 세 가지 포인트를 주목해주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째는 유한삼서의 본문을 관찰하고 요약한다.
본문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면서 내용의 흐름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를 파악하시고 정리하시면 좋겠고
두 번째는 요한삼서 주요 내용과 또 주제는 뭐냐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거기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그런 주제는 무엇인가?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요한삼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메시지는 무엇인가?
언제나 성경을 볼 때 여기까지 가야 되겠죠.
그냥 지식으로만 끝나지 않고 그 말씀이 빛이 되어서 나에게 와서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는 것 그 말씀은 변화를 목적으로 해서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적용을 하는 것들 염두에 두면서 그렇게 가시면 좋겠습니다.
요한삼서의 배경과 상황을 먼저 살펴보죠.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한입니다. 성경에 개인적인 서한이 하나 더 있죠.
신약에 빌레몬서가 있죠.
바울이 빌레몬에게 쓴 개인서신이 있습니다.
오늘 요한삼서도 개인에게 쓴 편지로 굉장히 친밀감이 있고 공적인 문제를 다루긴 하나 개인적인 그러한 감정과 정서 관계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해서 서신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순회 전도자를 박대한 디오드레베라는 직분자가 있었어요. 교회의 영향력이 큰 직분자였습니다.
그는 순회 전도자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또 순회 전도자들을 받아들이려고 한 교인들을 내쫓기까지 하는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그런 자가 있었는데 그 자를 책망하는 것이 나옵니다.
세번째는 요한삼서는 가이오에게 요한서신이 보낸 순회 전도자 데메드리오라는 종을 잘 영접할 것을 부탁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요한삼서의 기록과 목적 주제는 뭘까요?
기록 목적은 가이오와 그가 속한 교회가 저자가 보낸 데메드리오를 영접하고 잘 환송해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 썼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이오 디오드레베 데메드리오의 세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요한의 이 세 인물에 대한 평가와 반응을 중심으로 편지가 전개되고 있다라는 거 굉장히 아주 재미있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면 진리와 사랑으로 사는 선한 자를 본받고 진리와 사랑으로 살지 않는 악한 자를 본받지 말아라 그런 내용입니다.
인간은 누군가를 본받게 되죠. 그러면서 그를 따라가게 되는 본능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 주제는 좋은 본은 본받고 본보기로 삼고 그 다음에 나쁜 본은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내용으로 이 주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요한삼서의 서두를 보죠.
1장에 보면은 자신을 소개하죠.
장로인 나 그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서에서도 마찬가지로요 사랑하는 가이오 그건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기 편자들이 가이오에 대한 사랑이 철철 넘치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말을 인사 안 해서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고 개인적인 친분 관계에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 가이오를 요한 사도가 전도해서 키운 교회의 일꾼이다. 또 자기 자녀처럼 사랑했던 아주 친밀감이 있던 그런 교회의 직분자다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굉장히 근거가 있는 말로 보입니다.
발신자는 사도 요한이며 자신을 장로로 소개하고 있고 수신자는 가이오이고 요한은 그를 특별히 사랑한다는 표현 그것이 가이오를 이렇게 대하는 그런 모든 면에 그 사랑이 묻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 2절에서는 이 가이오를 축복합니다.
굉장히 중요하고 유명한 구절이 나오죠.
2절 한번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여 네 영원히 잘 된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굉장히 많이 알려진 요한 서신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의 하나죠. 자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이 축도에 있어서 핵심어는 영혼히 잘됨 이게 뭐냐는 거예요.
영혼히 잘됨을 전제로 해서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진리대로 순종하고 진리 안에 거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이고 그것이 영혼이 가장 잘 된 상태이다. 라는 것을 말해주죠
이거는 뭐 너무나 명료합니다. 그러니까 이 축원의 전제는 영혼의 잘 됨이고 영혼의 잘 됨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자 사도 요한은 요한 2서에서도 그러한 표현을 했는데 여기선 좀 더 강력하게 너희들이 내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그걸 듣고 내가 너무나 심히 기뻤다 그리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나에겐 더 최상급을 씁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기쁨을 주는 것은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라는 것이다. 이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그랬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이 말씀대로 살라는 것이에요.
성경을 요약하며는 교회의 어떠한 성전에 어떠한 열심을 내는 거 갖고 때우려고 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 말씀을 청종하는 것으로다가 가야 된다. 그 말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도 변치 않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은 다른 거 갖고 때우려고 하지 말아라 말씀을 들어야 된다. 그것을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고.
그걸 내가 가장 기뻐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고.
반대로 역으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게 말씀을 순종하는 거라면 가장 슬퍼하고 가장 분노하시는 게 뭐겠어요. 말씀을 거역하는 겁니다. 말씀을 반역하는 겁니다.
그거는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도 아니고 무시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반응이 그럴 수밖에 없죠
자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말씀에 대한 그 순종을 이렇게 이토록 기뻐하시는 이유는 뭘까? 몇 가지만 했어요.
더 많지만 대표적인 거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격으로 사귐에 있어서 존중감을 갖게 되고 권위를 인정하고 이것부터 시작해야 되잖아요.
그분이 어마어마한 분인데 말을 시시하게 여긴다라는 것은 그분을 시시하게 여기는 거랑 똑같으니까 그 다음에 말을 존중하는 것은 그분을 높이고 사랑하고 권위를 인정하는 거랑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구요.
두 번째는 말씀대로 행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신 그런 그림이 있잖아요. 그게 그려져요 우리를 향하신 뜻이 있단 말이에요.
이 땅에 보낼 때 우리를 향한 뜻이있지요 이제 각 개인에게 그게 말씀 순종할 때 그려지는 거예요. 우리 스스로 못 그려요 내 맘대로 그리면은 그림이 엉망이 돼버려요
그래서 말씀대로 행할 때 그때 그 그림이 그려지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기뻐하시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의 자녀들에게 최선의 삶이기 때문에 그래요.
말씀대로 살아라 그것은 우리의 자유나 그런 것들을 억압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최소한의 삶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때문에 그렇죠. 하나님의 나라는 뭐여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통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이죠.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면 통치가 이뤄지는 것이고.
말씀을 안 지키고 버리고 그러면은 통치가 안 이루어지는 것이고. 말씀에 반대하는 것은 반역하는 것이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약 구약 이런 데서 반역이라는 말을 쓸 때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해서 통치와 관련해서 쓰는 용어들이죠.
그 다음에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의 영혼이 잘 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말씀으로 순종할 때 우리의 영혼이 소생하게 되고 건강하게 되고 그 다음에 성숙하게 되죠. 그 다음에 지혜롭게 되죠.
그래서 말씀으로 하나하나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가장 지혜롭게 만들고 가장 영적으로 건강하고 온전하게 만들어가기 때문에 이게 이루어지는 것은 말씀 순종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너무너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자 가이오에 대한 칭찬이 있는데,
사랑에 대한 칭찬을 해요.
5절 6절 전반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여 내가 무엇이든 형제고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다. 충성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한다.
그러니까 가이오가 그 교회의 지도자였나 그 순회 전도자들이 오면 영접을 하고 환대를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것을 칭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가요의 환대는 같은 교회에 디오드레베라고 하는 실력자가 있었죠. 나쁜 실력자 나쁜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있었어요.
그래서 요한이 보낸 그러한 순회 전도자들을 무시했고 박대했고 그 다음에 그들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있으면 교회에서 내쫓기까지 했으니까 이게 얼마나 아주 극렬한 반대입니까?
교회 내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압력이 됐을 텐데 불편함이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오는 사랑으로 그들을 환대해 줬다 칭찬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이 돌아와서 교회에서 보고했던 것 같아요.
그 다음에 두고두고 그런 것을 얘기했겠죠. 가이오 그분이 아마 장로님이셨던 것 같긴 한데 그분이 글쎄 우리를 이렇게 대접해 줬다 이런 얘기들을 사도 요한이 듣고 그 사랑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라는 부탁을 해요.
앞으로 또 보낼 건데 지금처럼 그렇게 잘 해왔지만 1~2번 한 게 아니거든요.
계속 잘해 왔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그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우리 순회 전도자들을 보내주시오.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순회 전도자들을 대하는 것은 하나의 앞에서 합당하게 환대하는 것이고. 특별히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진리를 위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 이유와 의미를 얘기해요.
그러니까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게 어떤 음식을 대접하고 잠자리를 대접하고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기도해주고 이러는 것은 거룩한 진리 위대한 진리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이거는 굉장히 중요한 연결이죠. 오늘날 이런 가이오와 같은 분들이 많이 있어서 우리나라에도 선교사님이 들어오셔서 말씀을 갖고 복음을 들고 여기까지 오신 거고 지금도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죠.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나가서 현장 뛰는 게 있고 그들을 위해서 재정적이거나 기도하거나 어떠한 것으로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는 모든 것들은 위대한 말씀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거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자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말씀에 참여하는 것이죠.
6~2강
대신 대조적인 인물 한 명을 등장시켜요 디오드레베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분은 가이오와 완전히 반대가 되는 그런 삶을 살았던 자입니다.
그는 교회에서 으뜸이 되려고 했어요.
여기서 인제 으뜸이 되려고 했다라는 내용이 이 분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는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그는 교회의 중심에 있었고 자기 위에 어떤 사람이 있는 것을 허락지 않았어요. 그가 비록 사도 요한일지라도 그러니까 이 사람은 교회 공동체를 이용해서 그 교회를 지배하고 그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는 그런 어떤 권력을 갖기를 원했던 인물이었죠.
그러니까 굉장히 아주 나쁜 동기를 갖는 죄질이 아주 안 좋은 그러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형제를 거절했어요.
그리고 요한이 보낸 형제 자기랑 라이벌로 생각을 했는지 자기를 인정 안 하니까 적으로 생각을 하고 그분이 보낸 자들을 거절하고 그분이 보낸 자들을 영접하는 것을 그분 편을 든다고 생각을 했는지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내쫓아버렸다
교회에서 교회가 분열을 하든 뭐든 자기가 으뜸이 되는 그것만을 생각했던 거기에 사로잡혔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나쁜 본을 하나 보이면서 끝으로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요한이 보내는 굉장히 아주 선하고 본이 될 만한 인물을 칭찬하면서 추천합니다.
데메드리오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은 자다 또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를 추천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인물에대한 평가 그 인물이 어떤 자인가 세 가지 검증을 거치면 확실한 것 같아요.
첫째는 진리 그 사람이 말씀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 자인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에 의해서 끊임없이 자라가고 있는 자인가 이거 하나 보면 많은 부분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어요. 진리로 검증되고
그 다음에 우리도 증가한다. 그랬어요. 우리도 증가한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과 거기에 속한 공동체도 이 사람은 같이 살아보니까 아주 신실한 자다 본이 될 만한 자다 그렇게 추천을 한 것이고.
그 다음에 다른 뭇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았던 자다 그러니까 교회 지도자라고 했을 때 교회 밖에 교회 안에 그다음에 진리 이렇게 검증 받으면 이 사람은 분명한 사람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데메드리오에 대해서 세 가지 증거를 한 다음에 사도 요한이 이제 세 인물을 평가하고 그것에 대한 반영을 하면서 도전을 하는 거예요.
두 부류의 인물이 있는데, 각자 나름대로 선과 악을 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의 궤적은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공동체의 본으로 그것이 그려지고 있다.
그러니까 나쁜 본이 있고 좋은 본이 있을 수 있는데, 악한 것은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은 본받으라는 그러한 내용으로다가 정리를 해줘요
그래서 사도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선한 것은 본받아 따르고 악한 것은 그것은 본받지 말아야 된다. 이렇게 말씀을 강도 높게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끝 인사를 보죠. 방문 기획을 합니다.
보기를 원한다라는 것 가서 할 말이 많겠죠. 사랑하는 자랑 많은 얘기도 나누고 싶고 그 다음에 격려도 하고 싶고 그런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안 인사를 하라 그렇게 말해요.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한다. 여기 있는 친구들이 네게 문안하고 있다. 그리고 너도 그 친구들 이름으로 문안을 해라 이렇게 문안을 강조합니다.
문안은 인사죠 작은 소통입니다.
근데 이게 문안을 통해서 우리의 연대감이 강해져요 연대는 무엇을 했냐 문안으로 하게 되고 아까 가이오가 다른 사람들을 환대하라 그랬죠
좋은 사람들 환대 환대가 연대를 낳고 연대하면 위대해진다라는 말이 있어요. 작은 인사하는 것 그게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 뒤에 문안해라 이런 말을 계속 하거든요.
격려하고 짧은 메시지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서로 격려하는 것은 우리가 바쁜 세상에서 만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서로 소통하는 이런 일이 있을 때 공동체가 더욱더 건강해지고 연대감이 커지고 또 연대할 때 우리는 또 더 많은 힘들을 발휘할 수 있고 멀리 갈 수 있고 어려운 일도 함께 헤쳐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연대하는 공동체와 함께 하라는 그런 메시지가 사실 있습니다. 혼자 너 아니다. 가이오가 혼자 이것을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디오드레베의 영향을 받고서 왜 저런 짓을 해 이러면서 왜 저런 사람에게 돈을 써 이러면서 좋지 않은 말들도 들릴 수 있어요.
착한 일 한다고 항상 칭찬이 오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기대하고 그런 선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순진한 사람이에요.
선한 일 거룩한 일 아주 좋은 일 복된 일을 하더라도 항상 공격은 있어요.
예수님이 엄청나게 공격받았잖아요.
사도바울이 얼마나 엄청난 공격을 받습니까?
세상은 그런 곳이에요. 우리 삶의 현장과 사회 현장도 그런 곳이여요.
그래서 혼자 있으면 안 돼요. 서로 지지하는 사람 편 들어주는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문안해라 공동체 안에서 해야 된다.
우리 주변에 서로 기도해주는 사람들 또 무난하면서 함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가 이 편지의 서문을 통해서도 배울 수가 있네요.
자 이제 요한삼서를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적용을 할까 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나는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있는가
요한서신서에서 요한이 계속 도전하고 있던 부분이 무엇으로 기쁘게 할 건가 하나님을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해라 그것보다 더 기쁜 것은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고 말씀 순종하는 게 어렵다고 그래서 다른 것으로 다 때우려고 하지 말아라 그건 하나의 기뻐할 수 없다라는 겁니다.
두 번째 나는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 편에 서서 진리와 사랑의 길을 가는 자인가 나는 누군가의 본을 본받고 영향을 받고 가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는 내 삶의 궤적과 모습이 누군가에게 본이 되고 있다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삶의 발자치는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우리는 선한 것을 본받고 나쁜 것을 본받지 말아야 된다.
더 나아가 좋은 본은 본보기로 삼고 나쁜 본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라는 평범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면서 적용하라고 권면하고있죠.
여러분의 반응은 어떤 것입니까?
이렇게 요한서신서를 6번에 걸쳐서 강의를 마쳤습니다.
요한 서신서는 사도요한이 당시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서신서를을 통해서 몇 가지 키워드를 사용합니다. 영생 그 다음에 사귐 관계 이런 용어를 쓰죠
영생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 관계를 시작으로 해서 사귐을 맺어가는 것이 영생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생으로 인한 놀라운 결과들이 맺혀지게 된다.
그런 내용을 담고 있고 그 사귐과 그 삶의 내용은 두 가지 핵심 가치가 끌어가야 된다. 그게 뭐죠 진리와 사랑이어야 된다. 라는 것을 역설하고 일관되게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요한서신서를 통해서 정말 원숙하고 성령충만했던 가장 성숙한 경지에 이르렀던 사도 요한의 메시지를 보면서 그가 우리에게 전해주었던 메시지가 우리의 삶이 되고 우리의 영적인 삶에 풍성한 그러한 가르침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지금까지 유한서신서서를 시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유다서 진짜를 알아야 가짜를 막을 수 있다
~ 거짓 교사 경계 이용세 목사 유라소망교회
안녕하십니까? 저는 유라소망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용세 목사입니다. 오늘은 유다서를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다서는 한 장짜리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신앙의 많은 보물과 같은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유다서를 통해서 우리가 낯선 또 하나의 책을 또 은혜롭게 접하고 하나를 떼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포인트는 유다서의 배경과 서신 쓴 목적이 있겠죠. 그것이 무엇인가
두 번째는 유다서의 주요 내용과 그런 주제는 무엇인가 유다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러한 포인트를 갖고서 진행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다서의 배경과 상황을 보면 유다서의 저자는 유다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남동생이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 이렇게 있었죠.
그러니까 유다가 네 번째로 나오는 것으로 봐서 사실 막내인 것 같은데 네 친동생이 있었고 그중에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쓴 분이고 여기서의 유다는 유다서를 쓴 분이다.
그 공통점이 있기도 한 것 같아요. 메시지 내용이 굉장히 돌직구처럼 그렇게 세게 메세지를 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수신자에 대한 그런 구체적인 언급은 없어요.
구약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인용하는 것을 볼 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한 편지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정확한 기록연대와 역사적 배경도 확실하게 그렇게 기록된 그런 곳은 없습니다.
거짓 형제들이 그렇지만 이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 그때 당시에 거짓 그런 교리들이 많이 횡행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들은 계시보다 꿈을 주장을 했고 그 다음에 그것을 가장 우월하다고 주장했어요.
그리고 굉장히 교만해서 어떤 사도의 권위라든지 이런 것들도 부정하고 교회의 권위도 부정하고 불평하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이익과 돈을 사랑하는 육에 속한 그런 정욕대로 살아가는 그런 불경건한 자들이었습니다.
진짜 신자인체 하면서 교회에 들어와서 나쁜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거짓 교사들의 특징이 그렇죠.
그러면서 분열을 조장하는 그런 일들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유다는 그들이 성령이 없는 자라고까지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짜이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그들에 대한 정체를 이야기하죠.
유다서의 기록 목적과 주제를 보면 거짓 교사들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가르친 온전한 복음의 진리를 따라서 살 것을 전하기 위해서 이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주제는 진짜를 알면 가짜를 막을 수 있다.
그런 주제를 갖고서 이 서신서를 살펴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다서의 앞 부분에 그 서두를 보며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나와요.
그런데 여기서 유다가 예수님의 친동생이라고 그랬죠 그런데 여기서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예수님의 친동생 이러면 좀 폼도 나고 권위도 생기고 주먹도 쫙 끌 것 같은데 그렇게 소개를 안해요.
예수 그리스도에 뭐라고 소개하죠.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자신은 야고보의 형제다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이잖아요.
거기에 형제인 유다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예수님의 육체적으로는 그의 친 동생이나 나는 그를 나의 주로 섬기는 나는 그의 종이다.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는데, 굉장히 의미심장한 겁니다.
당시에 종은 노예잖아요.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사도들 대부분이 그 다음에 예수님의 친동생인 유다마져 야고보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네 이렇게 소개하거든요.
왜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자신을 그의 기꺼이 그의 종으로도 소개하는 것일까?
자 옛날에 종은 고대시대 때 주인이 명예를 잃거나 그의 영토를 잃거나 이랬을 때는 종들이 할 일은 한 가지였어요. 자기의 목숨을 던져서 주인의 명예와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는 데 쓴 겁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모두가 예수를 주라고 부르죠 그러면 우리는 그게 종이죠. 종의 입장은 누굴 위해서 살아가는가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유다만 예수의 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데 예수님 주님 이렇게 부를 때 이러한 내용들이 함께 연결돼서 주님을 부르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발신자는 예수님의 친동생으로서 자신을 종이라고 소개했다는 것을 여기서 살펴보았고요.
예수 그리스도 의 그런 부름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
그렇게 말하는데 수신자들이 명확하지는 않죠
부르심을 받은 자다 그렇게 말했는데 부르심을 받은 자의 특징이 뭐냐하면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고 지키심을 받은 자들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게 우리 성도들인데 하나님께 부름받았다. 그러면 어떠한 느낌이 많아요.
그의 일을 해야 되고 수발을 들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는 어떠한 사명적인 부분에 많은 내용들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그거는 물론 있겠으나 여기서는 하나님하고 관계해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자들이다. 그렇게 일반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축원으로 들어가요
긍휼이렇평광과 사랑이 너에게 많을지어다 이렇게 세 가지를 빌어줍니다.
긍휼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될 자들이 처벌받지 아니하고 용서받는 것 그리고 그를 환대해줘서 더 영광스럽고 존귀한 자로다가 받아들여지는 자비 불쌍히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극휼입니다.
그래서 긍휼을 맨 앞에 뒀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무엇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셨을까? 이 못난 자들을 하나님께 별 도움도 안 되는데 왜 구원하셨을까? 그랬을 때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 긍휼하신 마음 때문에 그렇게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긍휼을 받았다는 것은 엄청나게 정말 중요한 부분이고 축복 중의 축복이라고 볼 수가 있겠고 평강은 긍휼을 얻은 자에게 오는 내적인 평화이죠. 하나님하고 긍휼을 받아서 평화로운 관계가 된것이고 그 다음에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주신 애정과 열심 우리를 도우시는 그 모든 것들을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편지를 쓴 이유보죠.
믿음의 도를 위해서 힘써 싸우라는 그런 편지를 쓴 이유와 목적 한 부분을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해서 내가 너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맨 처음에는 일반적인 구원론에 대해서 쓰려고 그랬어요.
정통적인 구원이란 뭔지 구원 어떻게 지켜야 되는지 이걸 쓰려고 그러다가 이 교회의 공동체에 갑작스런 문제가 생겼어요.
거짓 교사들이 침투해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게 만든 거거든요. 그래서 편지 내용을 바꿨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다
여기서 믿음의 도라는 것은 사도들이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믿음의 도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얘기해요.
가짜들의 특징이 뭔가 오늘 이런 시각으로 유다서를 좀 보면 좋겠어요. 여기서부터는 그 어떠한 진품이 있으면 그것을 감별하는 감별사가 있죠. 위폐감별사도 있고 보석감별사도 있죠.
보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감별해내는데 가짜의 특징들 그때 당시에 있었던 그것들을 오늘 이야기해요. 성도들에겐 그것이 지금 필요하니까 그 다음에 진짜는 뭐냐 진짜의 특징은 뭐냐 이거를 또 가르쳐 줘요
그래서 가짜의 특징을 알게 하고 진짜를 알게 함으로 인해서 짝퉁과 거짓된 것 가짜들을 분별해내도록 하는 그런 두 가지 내용을 갖고서 유다는 이 편지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경건하지 않아요. 은혜를 방탕으로 여겨요 그 다음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다 적 그리스도죠 이런 자들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들과 싸워야 된다.
그러니까 진리의 싸움의 영적인 싸움은 결국은 진리 싸움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죠. 물리쳐야 됩니다.
참된 진리 갖고서 싸워야 될 그런 급박한 상황에 있어서 그래서 가만히 있지 말고 이것을 대적해야 된다. 과거에도 거짓인 자들은 판결을 받았다.
이런 자들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너희들에게 알려준다. 하면서 그들을 따르거나 뭐 그들의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서 선을 그어버리죠
그 다음에 사탄이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라는 것들도 얘기합니다.
1~2강
자 그럼 불의한 자들 한번 알아보죠.
이들에 대한 심판의 예를 쭉 들어요.
유다는 구약에 있는 것 그 다음에 외경에 있는 것 몇 가지를 넣어서 하나님께서 심판했던 것들을 쫙 판례를 묶어가지고 이런 사람은 이런 제목 때문에 심판받았고 이렇다 이렇다 하면서 열거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왜 심판의 판례를 열거해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심판이 반드시 있다라는 거예요.
그때 당시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심판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거든요.
모두에게 그리고 이 사람들은 망할 자들이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함이고 심판받은 자들과 거짓 교사들의 공통점을 발견해요.
심판받는 자들의 죄목이 이거지 이 사람들도 이런 죄목이 똑같애 그럼 공통점이 있으니 이 사람들도 하나님께 심판받은 게 자명하지 않냐 이런 논리로 그들을 끌고 갑니다.
그 다음에 독자들로 하여금 심판받을 죄를 멀리하고 멸망의 길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심판의 예들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자 그 다음에 내용을 보면 심판의 예 중에 첫 번째 예가 애굽 소돔 고모라의 심판입니다. 출애굽한 뒤에 믿지 않는 자들 애굽에서 반역 반역하죠. 우상을 섬기고 이런 것도 심판했어요.
그 다음에 천사들이 처소를 떠난 것 그거는 교만한 거죠. 그 다음에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 것 소돔과 고마라는 육체를 따라갔던 것들 이런 것들이 심판의 죄목이었고 그 다음에 이 교회에 몰래 들어온 자들이 지금 행하는 행위와 유사하다 공통점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5절에서 7절은 그들의 내용들을 적용하는데 유다서의 거짓 교사들은 꿈을 통해서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니까 꿈을 통해서 직통 계시를 받으니까 성경 자체를 사실은 무시하게 되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얼마나 자극적이에요.
직통 계시를 받았다는데 직통계시가 있는데, 성경이 뭐가 필요하면 뭐가 그래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완전히 안 하신다고는 하실 수 없을지 모르나 하나님이 이 혼란을 막기 위해서 그런 일들을 극도로 자제하실 것만은 분명하겠죠.
자 유다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심판받을 것이다. 망할 것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육체를 더럽히고 영적 질서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했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외경에서 인용한 것 같아요. 천사장 미가엘이 이제 그 하나님께서 모세 시체를 잘 이렇게 거두어라 그렇게 했는데 사탄이 모세는 살인도 저질렀는데 그런 자리를 어떻게 그렇게 하면 되겠느냐 영광스럽지 않다 이런 시비가 벌어졌다고 그래요.
그랬을 때 미가일이 천사장이면서도 사탄을 정죄하는 거를 하나님께 맡겼다 유보했다. 자신은 그리고 하나님의 소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해서 하나님께 위임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예요. 천사장도 그 높은 권위로 이렇게 했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누구를 정죄하고 판단하고 재판해버렸다 이런 것을 지금 자기 그런 주제에 넘는 그러한 오만방자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 예를 든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인 발람 고라의 심판의 예를 듭니다. 가인은 악한 자로서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 예배를 드렸죠
예물이 문제라기보다는 그가 악한 자로서 회개하지도 않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린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는 것이고. 발람은 돈에 매수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거역하게 한 자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음란의 우상숭배에 빠지게끔 했던 그러한 못된 또 못난 선지자이기도 했고 고라는 모세와 아론처럼 제사장이 되겠다고 왜 당신들만 하게 높임을 봤냐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려느냐 이렇게 권위에 도전했다가 땅 꺼짐으로 인해서 거기에 고라 자손이 매몰되는 그러한 일들이 있었죠. 권위에 대한 도전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탐욕적이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그러한 공통점을 띠고 있습니다. 유다서에서는 이 사람들에 대한 적용을 하는데 거짓 교사들은 경외심 없이 성만찬을 먹어서 성만찬의 의미를 훼손하고 교회 권위를 훼손했고 그들은 알맹이 없는 허세로서 가득한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에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에녹이 65세 무두셀라를 낳았는데 그가 동행을 하다가 무두셀라가 죽은 그 해에 노아의 심판이 임하게 되죠.
그러니까 에녹이 예언했던 것이 그때에 성취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일과 완악한 말을 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 그런 내용들입니다.
1장 14절 15절에서도 그들은 원망과 불만과 정욕 자랑 아첨하는 자다 라고 그렇게 하면서 거짓 교사들과의 공통된 그런 죄목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주는 권면이 있죠.
사도들의 예언을 기억해라 그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사도들이 너희들에게 이런 자들이 나타나리라고 예언하지 않았냐 놀라지도 말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에 매력을 느끼지만 사도들이 이미 말했다. 이런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그래서 정욕대로 살면서 말씀을 조롱하는 그런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예고하는 것이 나타났기 때문에 당황하지도 말고 신비롭게 생각하지도 말아라 그렇게 이들을 안심시키고 붙잡아 놓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를 분별하는 세 가지 특징을 제시하는데
거짓 교사는 분열을 일으킨다 어 이거는 굉장히 중요한 그 분별 기준 중에 하나입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는 영이시죠.
성령께서 하나 된 것을 신중성 지키게 하라 그렇게 에베소서에 나오지 않습니까?
사탄은 분열시키는 영이죠. 물론 이단하고는 우리가 분열하고 이단 하고는 우리가 같이 갈 수 없어요. 그거는 분별력이죠.
그러나 같이 부족하지만 예수를 믿는 같은 성경을 믿는 그런 구원받은 자 교회 안에서 분열을 일으킨다는 것은 그것은 이적행위랑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들의 특징은 육에 속한 자였어요. 육적인 그런 자연이나 본능만 있었지 성령에서 통제를 받는다든지 성령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그런 속성이나 소욕이 나오질 않았어요.
거짓 교사는 그래서 성령이 없는 자다 이렇게 단정을 했고 성령이 없다라는 것은 넌 크리스찬이다. 그 말입니다. 가짜 신자다 짝퉁이다. 유사신자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죠.
거짓 신자 짝퉁을 구별한 다음에 이제 진짜가 뭐냐 진짜를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고 성령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고 긍휼을 기다리라 4가지 정도를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성도가 바람직한 신앙생활 참된 길 진짜의 길을 걸어가는 진짜 성도가 진짜를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여기서 간단하지만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신앙을 위한 권면 네 가지 잠깐씩 살펴볼게요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지켜라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한다든지 믿음의 대상이 있잖아요.
믿음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이거든요.
거기에 기반을 두고 기초를 둬서 우리의 신앙생활 우리의 공동체를 세워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초가 중요하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결론 부분 마태복음 7장 후반부에서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모래 위에 세운 자와 반석 위의 세운 자를 이야기하면서 산상수훈을 끝내지 않습니까?
유다도 이 부분을 강조하는 거예요.
기초가 중요하다 무슨 기초 위에 우리를 세우는가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의 말씀 위에 기초를 세워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하고 공동체를 세워라 그렇게 말하고 있고
두 번째가 성령으로 기도하라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 라는 것이 애매할 수 있는데, 자 그럼 성령과 반대되는 게 뭘까요? 욕심으로 하는 것이에요. 성령의 소욕은 욕심을 거스르고 욕심은 성령을 거스러요 둘은 원수가 돼요.
그래서 성령으로 한다라는 것은 욕망을 이기고 새로운 하나님의 소욕이 있어요. 거룩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소욕이 있어요. 그것을 우리가 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말씀의 원리와 하나님의 뜻과 그 방향을 붙들고 기도하게 되죠. 그 다음에 기도의 내용과 태도 모든 것들이 좋아지겠죠. 그리고 하나님께 몰입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기도의 표현이나 기도의 자세도 아주 아름답게 되죠. 그것이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내용이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켜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함으로 지켜줘요 우리가 손 쓸 수도 없는 곳은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맡겨야 돼요. 물론 다른 분들도 맡기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의 원리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죠.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나 우리가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에게서 우리가 해야 될 것들로다가 우리를 지키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네 번째는 긍휼을 기다려라 이거는 마지막 날에 성도들에게 베푸는 극휼하심인데 우리가 마지막 날 예수님 심판자를 만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말을 맨 먼저 할 것 같아요.
저 같으면 하나님 저를 긍휼로 여겨주십시오.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지금도 긍휼히 여기여서 여기까지 왔으나
마지막 최종적인 극휼을 얻은 다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겠죠. 그날을 기다리면서 오늘을 싸우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가 해야 될 신앙의 본분을 말씀을 붙들고 가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도 긍휼히에기라고 말해요. 이 거짓 교사들에게 유혹과 미혹을 당해 가지고 의심하는 자들이 있겠죠.
그런 자들을 정죄하거나 내치지 말고 긍휼히 여기라 그 다음에 좀 조금 더 들어간 사람들 불 가운데 있는 자 정력과 죄에 빠진 자들인 것 같아요.
이런 자들도 포기하지 말고 끌어내도록 해라 그 다음에 거짓 가르침과 제일 오염되지 않도록 그 거짓 교사를 따르는 자들 거기의 핵심 멤버들 이런 사람들도 극휼히 여기되 조심하면서 해야 된다.
왜냐하면 전염될 수 있고 오염될 수 있으니까 이렇게 거기에 관여된 사람들을 극휼히 여기면서 그들을 끄집어내고 보호하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마지막은 속령입니다. 아주 장엄한 속령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유다소의 또 다른 매력이고 특징이에요.
능히 너희를 보호하서 거침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구원에 대한 부분을 보면서 구원하신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죠.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예수 그리스라마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 와 영원토록 있을지하다 아멘 하면서 끝납니다.
자 우리 삶에 적용할 점이 있겠죠.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나에게 누구인가 입니다.
과연 그는 나의 진정한 주인인가?
이 부분을 굉장히 기본적이지만 하나의 전제와 같고, 신앙의 본질과 맞닥뜨리는 부분이기 때문에 늘 점검하고 가야 될 부분인가?
두 번째는 유다서늗 거짓 교사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을 알려줬습니다. 심판을 인식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굉장히 큰 영향을 주겠죠.
오늘 여기서의 삶은 그 심판하고 연결되어 있습니까?
그 심판은 오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그날을 위한 오늘 오늘을 위한 그날 살고 있는지 이 서신서는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나는 진짜인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확실히 알아가고 있는가?
진짜를 갖고서 짝퉁을 구별해내고 분별해내고 막아내고 있는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혼란한 시대에 진짜를 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가자를 쫓아다니는 것은 인생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 가짜의 인생은 여기서도 불쌍하지만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진자를 붙들고 이 혼란한 시대에 짝퉁을 멀리하면서 그것을 분별하면서 막아내시면서 정말 진자를 추구하는 진자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유다서를 시청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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