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血濃於水(혈농어수) 피는 물보다 진하다>> 상. 중. 하 강준식 지음. 아름다운 책
몽양 여운형 일대기.
길고 짧은 재면서 잘났다 다투지만
그대는 숲에 솟은 나무처럼 우뚝했지
얼굴의 봄바람은 가슴에서 일었고
변설은 혀끝에서 강물이 쏟아지듯
명성은 우레처럼 온 나랄 흔들어도
육십년 인생사는 부침도 심했는데
이런 분을 죽여서 어쩌자는 것인가
슬프다 좌우 모두 성키는 어려우니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가 쓴 여운형 추모시
분나고, 화나고, 억울하였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나는 무척 화가 나 있다. 이 책은 슬픈 이야기다. 몽양 여운형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이 민족에게도 그렇다. ‘해방’ 전후에 이 나라의 분단을 상상해 본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이 좁은 땅에서 동족끼리 3백만 명을 서로 죽이는 전쟁의 발발을 누구 하나 생각해 보았을까?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이후 5년 만에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그 5년 동안 이 땅 한반도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까? 이 책을 다 읽고 서울 어느 곳에 있다는 몽양 여운형의 묘소 참배를 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꼭 한 번 방문하여 절을 올리고 싶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당시에 내가 그 언저리 어디에 있어, 그 모든 걸 목격했다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글자들이 영상으로 변화하여 내 눈 앞에 스크린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론 몇 부작의 드라마로 만들어 보면 좋을 듯도 하다. 소설을 읽다가 화를 주체할 수 없어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가 책 위에 방울져 떨어지기도 했다.
위대한 자들이 하나 둘씩 테러를 당하고, 음모에 쓰러져 갈 때 기회주의자들과 친일파와 시류에 번개처럼 올라타는 약삭빠른 자들이 권세를 누리고, 그들의 권세가 높아질수록 한반도의 운명은 파국을 향하여 속도를 내는 꼴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기보다는 세상과 인간들에 실망하여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줄 알았다.
언젠가부터 책 같은 걸 권하거나 추천하지 않지만,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라도 요청한다면 나는 단연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내년이면 대통령 선거이고 지금은 각 당에서 치열하게 내부 경선을 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온갖 말들과 음모가 넘쳐나고 , 가짜뉴스들이 연기처럼 올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장단이 바뀔 때마다 대중도 거기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 세상은 늘 시끄럽고 혼돈이다. 누구는 조금이나마 ‘좋은 세상;을 위해 반 발자국이라도 내딛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누군가는 그 힘겨운 발목에 족쇄를 채워 어떻게든 부와 권력을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그러나 함께 모인 힘겨운 한 걸음 한 걸음이 강물이 되어 역사를 지금가지 끌고 왔다고 생각하니 먹먹하다.
1947년 7.19일 지금의 혜화동 로타리에서 미군정의 어떤 암시와 이승만의 사주와 친일경찰의 조직적 개입에 의해 세 방의 총탄에 몽양 여운형은 절명한다. 그 전에도 몽양 여운형은 좌우 양측으로부터 수많은 암살과 테러을 당하였다 .소설은 몽양 여운형을 결코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수 많은 인간적 약점을 드러내고 중요한 시점에 실기를 하고 자책을 하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지만, 이데올로기나 이해관계를 떠나 이 민족과 분단을 막기 위한 한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가감없이 담아내고자 한다.
저자는 7여 년간의 조사와 연구를 하였다고 한다. 사실 이 소설은 역사의 소설화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허구가 아니라, 역사를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냈다고 하고 싶다. 비단 여운형 쁜만 아니라 당시의 세력들 미군정청, 총독부, 한민당. 공산당 등 제 새력과 이승만 ,김구, 허헌, 송진우 등 수많은 인물들의 선택과 음모와 관계와 행위들을 때론 세밀하게 하지만 맥락을 놓치지 않으면서 전개하고 있다, 어떤 눈 밝은 독자는 해방전후사의 ‘삼국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반도라는 ‘천하’를 놓고 벌이는 한 판의 거대한 서사시이다. 삼국지만큼 박진감이 넘치고 전략과 전술이 종횡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결코 픽션이 아니다.저자는 서사와 이야기를 함께 담고자 했다고 한다. 해방전후사를 여기저기에서 단편적으로 읽고 주워들었지만,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는데, 이 소설 한 권이면 어느정도 ‘완전 정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왠지 부끄럽다. 소설을 소설로 가벼이 읽지 못하고 이렇게 무겁게 읽고 있는 내가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1945년을 흔히 ‘해방’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3.8선을 기준으로 북조선은 소련이 남조선은 미군이 점령하였다. 식민지를 직접 경영하던 제국주의 시대였다면, 분명 북조선은 일본에서 빼앗은 소련의 식민지, 남조선은 미군이 점령한 식민지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그 당시에는 식민지를 직접 통치하던 제국주의 시대가 지나고 바야흐로 ‘민족자결주의’ 시대였기에 어떻게든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어떤 식으로든 ‘독립국가’로 만들어야 했다. 일제의 패배로 세계적 대재앙인 2차 대전은 막을 내리지만, 세계는 이제부터 재국주의와 식민지 시대는 막을 내리고 냉전의 시대에 진입한다. 듣도 보도 못했던 ‘공산주의체제’가 러시아혁명을 통해 새롭게 세계에 등장하여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양분되었다. 북조선은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이 남조선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이 지배자로 등장한다. 이로써 한반도는 이상하고 엉둥하고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서부터 한반도의 팔자는 완전 꼬이고 만다. 더 이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우리의 운명은 이들의 처분에 온전히 내맡겨졌다.
군대도, 국가도, 일제 36년의 탄압을 거치며 온전한 사회단체 하나 가진 게 없는 이 민족은 어떻게 살아낼 것이고, 어떤 국가를 만들어 내야 할까?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상해나 만주나 러시아 연해주 등 해외에 국가를 자처하는 세력이 있었고, 꾸준히 일제에 저항하였지만, 멀리 떨어져 있고, 한 국가를 세울 정도의 힘도 없었고 대표성도 없었다. 설령 그런 단체나 조직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실제적 지배력을 가진 소련과 미국의 지지가 없이는 그 존재 자체를 인정받기가 힘들었다. 한반도의 운명은 현실적으로 미국과 소련에 전적으로 달렸고, 그 틈바구니에서 한반도는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내야 했다.
한반도의 현실적 지배자이고 실제적 힘을 가진 미국과 소련은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를 발족하고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지만 미소공위는 1947년 10월에 아무런 성과도 없이 종결된다. 분단을 반대하고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기를 바라는 자들은 어떻게든 미소공위가 합의를 이루기를 바랐고, 그 반대 세력들은 미소공위가 결렬되기를 원했다. 미소공위가 결렬되기 직전 여운형은 암살되고, 조선은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다. 북조선은 공산주의로 남조선은 자유주의 자본주의로 갈라선다. ‘해방’에사 미소공위가 결렬될 때가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각 정치세력은 사활을 건 ‘정치’를 한다. 이 소설은 이 기간 중의 놀랍고 기막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에 묘사된 미군청의 하지 장군과 그 참모들의 남조선 각 세력들의 인물평을 좀 길이만 중요하기에 실어보자. 시사하는 바가 많은 듯 하다.
“여운형과 대립하는 송진우는 우도 좌도 인공지지를 포기하고 임정을 봉대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좌측에서 보면 통합운동에서 좌를 배제하자는 소리와 같습니다”
“여운형은 우선 서로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공통점을 발견해나가자, 그리고 그 공통점 위에서 서로간의 차이점을 좁혀 나가자는 겁니다”
“안재홍은 좌익 협력을 얻되 통합운동의 주도권은 우가 쥐어야 한다는 겁니다”
“박헌영은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배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사실상 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우파를 배제하자는 말입니다”
“이승만은 통합에 대한 뚜렷한 원칙이나 중심 테마가 없습니다. 그간의 협상 과정을 보면 좌파의 요구에 따라 임정지지를 철회했다가 다시 집어넣는 등 편의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결론은 그가 매우 보수적인 사상의 소유자라는 겁니다. 공산당은 이박사가 덮어놓고 뭉치자는 것을 비난합니다. 이 비난에는 일말의 진실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이박사의 이데올로기는 송진우와는 조금 다른 것으로 말하자면 버번(왕당파)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좌우가 모두 뭉쳐 자기 한사람을 떠받들라는 겁니다”
민족의 영웅의 상징처럼 된 김구에 대해서는 소설에서는 차지하는 비중도 작고 곁다리로 취급하고 있는 듯하다. 김구의 임정은 정치적 프로그램이나 상이 없이 원칙론만 주장하다, 철저하게 이승만이나 우파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이용가치가 다 하고 걸림돌만 되자 암살하는 듯하다.
당시의 남조선의 큰 세력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세력. 이승만의 독립촉성협회, 송진우의 한민당, 박헌영의 공산당이 가장 큰 세력이었다고 한다. 물론 셀 수도 없는 단체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몽양 여운형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당시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몽양의 길이었고, 그의 길을 따랐다면 분단도 민족상잔의 비극도 막고 좀 더 정의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인 모양이다. 이 책은 어쩌면 죽을 때가지 좌우합작의 길을 놓지 않고 이 민족을 구하려 한 몽양에게 바치는 헌사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 덤으로 얻은 게 있다. 세상과 인간과 정치를 보는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각 후보들이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 마치 시대와 이름만 달라졌지, 해방 공간에서 각 당파들이 벌이는 ‘천하’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쟁투를 보는 것 같다. 테러와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전쟁이기는 매일반이다. 이 소설을 읽고나자 지금의 정치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이면의 전략과 전술과 이합집산과 그 정치인의 이상과 현실과의 타협, 시대의 한계와 대중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한계를 조금씩 확장하려는 몸짓 등도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인간세상은 선각자를 죽이고 한참 지난 후에 아닌가 싶어 다시 돌아와서 초라한 비석 하나 세워두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가 보다.
좌에서는 우라고 욕먹고 우에서는 좌라고 배척되고 남애서도 북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몽양 여운형 어쩌면 삶도 정치도 그 사이 언저리에서 흔들리며 지향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파도에 심하게 요동치면 침도 요동치지만 언제가 북극을 가리킨다고 한다
첫댓글
/민족자결주의’ 시대였기에 어떻게든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어떤 식으로든 ‘독립국가’로 만들어야 했다/는 시대에
/좌에서는 우라고 욕먹고 우에서는 좌라고 배척되고 남애서도 북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몽양 여운형/
부와 권력을 쥐고 놓지 않으려는 강대국에 의한 38선, 그리고 여운형의 삶은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 생각에 빠지게 하는 글이네요.
책을 참 잘 읽고 정성껏 잘 쓰는 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잘 읽었슴다ᆢ^^ᆢ쏙쏙 들어옵니다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