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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사무엘하 17:1-14】
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2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3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
4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5 압살롬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르라 우리가 이제 그의 말도 듣자 하니라
6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매 압살롬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히도벨이 이러이러하게 말하니 우리가 그 말대로 행하랴 그렇지 아니하거든 너는 말하라 하니
7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니이다 하고
8 또 후새가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9 지금 그가 어느 굴에나 어느 곳에 숨어 있으리니 혹 무리 중에 몇이 먼저 엎드러지면 그 소문을 듣는 자가 말하기를 압살롬을 따르는 자 가운데에서 패함을 당하였다 할지라
10 비록 그가 사자 같은 마음을 가진 용사의 아들일지라도 낙심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아버지는 영웅이요 그의 추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
11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12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그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13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
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 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말씀 선포】
10년 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군 전역하고 광주로 내려 와보니 광주가 고향임에도 새로 난 길들이 낯설어서 내비게이션을 켜고 다녀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예전에 내가 살던 동네는 택지 개발로 사라지고 아파트가 잔뜩 들어와 있습니다.
20여 년 만에 돌아본 광주는 전혀 다른 도시였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1년만 지나도 강산이 변한다고 바꾸어 말해야 할 정도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교회의 환경도 급변하였습니다.
불과 5년 전 만해도 거의 모든 교회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생중계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개척교회에서도 실시간으로 예배를 방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비해 교회가 환경을 극복하는데 제한 사항이 많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세상이 교회를 모방할 만큼 교회가 세상을 선도했지만,
이제는 교회가 발전된 세상의 기술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AI가 발전하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방대하고 막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들에게 주는유익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원하는 컨텐츠를 골라서 시청하고 부족한 지식도 채울 수 있습니다.
그 반면에 그 만큼 세상에는 말씀이 흔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흔한 세상에서 살다보니 오히려 말씀이 귀한 줄 모르고 말씀에의지하여 살아갈필요성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1년 통계에 따르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떠나 있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약 70%에 달하고 있습니다.
21년 종교인구 현황에 개신교라 응답한 사람들의 비중이 20%이지만 이 중에는 이단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정통교단에 속한 성도의수는 전체 인구의 20%보다 훨씬 더 적을 것입니다.
이 통계에 따르면 18-29세의 개신교 비율은 14%이며 종교가 없다고 응답한 인원이 67%에 달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하나님을 떠나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정보통신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고 밀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면 갈수록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즉, 먹고살기 급급한 시대가 되었고,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교회학교가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교회가 전체 교회의 50%가 훌쩍 넘었습니다.
통합교단 통계에 따르면 교단 소속의 약 70% 교회가 교회학교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나 제한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 중에는교회학교의 차별성 상실과 학교 학업 때문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대답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학교 교육에 흥미와 활동성을 더한‘어와나’와 같은 프로그램 등을 편성하여 운용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좋은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도 결국 세상의 정보와 지식을 뒤따르는 수준이어서 말씀보다 세상의 지혜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막강한 세상의 정보력 앞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아히도벨과 후새가 서로의 지혜를 겨루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황급히 예루살렘 도성을 벗어났지만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사해 북단의 평지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히도벨은 만 이천 명의 군사를 내어주면 급히 추격하여 다윗을 따라 잡아야간에 신속하게 기습하겠다고 합니다.
기습으로 함께한 백성들에게 공포심을 주어 흩어지게 하고 다윗만 제거하는 소위 암살작전을 수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이 전략은 현대전에서도 사용되는효과 위주 전술로서 다윗의 약점에 집중 하여 최소의 피해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뛰어난전술이었습니다. 아히도벨의 전략을 들은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도 이 전략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4절).
아히도벨의 지략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길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삼하 16:23에 보면,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히도벨의 전략을 들은 압살롬은후새가 아히도벨의 전략을어떻게 판단 할지, 그리고 후새는 어떤 전략은 세울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후새를 불러들였습니다.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의 전략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새는 다윗 왕의 강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압살롬의 허영심을 자극하였습니다. 후새는 아히도벨의 전략은 아히도벨의 역할의 비중이 압살롬 보다 많이 있음을 역 이용합니다.
아히도벨의 작전은 주인공이 압살롬이 아니라 아히도벨입니다.
3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그렇게만 되면, 내가 온 백성을 다시 임금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돌아오듯이, 백성이 그렇게 임금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노리시는 목숨도 오직 한 사람의 목숨입니다. 나머지 백성은 안전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히도벨의 말에는 모든 백성이 압살롬에게 돌아오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즉, 전쟁을 승리하면 그 공이 아히도벨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후새는 이 점을 은연 중에 강조하며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을 이끌고 다윗과 전투를 벌이면,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대적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백성들의 단합을 이룰 수 있으며, 압살롬이 이 전투에서승리하게 되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살롬을 왕으로 인정하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는환상을 압살롬에게 불어 넣은 것입니다.
후새는 다윗은 전투 경험이 많음으로 백성들과 함께숙영하지 않고 필히 경계를 세웠을 것임으로 섣불리 공격하면 오히려역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직접 출정하여 그들을 진멸하는 전면전 전략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하면 승리의 공이 압살롬에게 집중되게 됩니다.
후새의 전략은 아히도벨의 전략에 비하면 누가 봐도 좋은 전략이 못됩니다.
후새의 전략대로 시행하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여 승리한 자에게도 좋을 것이 없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합리적이고치밀한 아히도벨의 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허영심을 채울 수 있는 후새의 전략을 선택합니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을 한다는 것은 한 쪽은 취하고 한 쪽은 버리는것입니다.후새의 전략을 선택하고 아히도벨의 전략을 버린 것은 곧 천하의 지략가인 아히도벨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이 일로 아히도벨은 압살롬을 떠나고 고향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압살롬의 패배를 예측한 것입니다.
압살롬이 뛰어난 아히도벨의 지략을 버린 이유는 그가 후새의 조언에넘어갈 만큼 어리석은 것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생각을 주관하사아히도벨의 계략을 버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히도벨의 지혜가 높고 그가 펼친 계략이 뛰어나다 할지라도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심으로 그의 전략은 허공에 흩어지는 헛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로서 다윗이 맨발로 감람산을 오르며‘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했던 기도가 응답되어 진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지 않으셔서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전략을선택하였다면 다윗은 처참하게 패배하였을 것입니다.
다행히 후새의 전략을 선택함으로서 다윗 일행은 요단강을 건널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신속함이 쿠테타의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간과함으로서 승리의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우리들이 볼 때 세상의 지혜는 아히도벨의 지략보다 더욱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그 것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현실의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 즉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지식보다 강합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제 2의 히틀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압살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 왕의 19명의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난 압살롬은 외모가 아름답고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만큼 말솜씨가 뛰어나고, 왕실에서 왕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을 우수하게 통과한 자원이었습니다.
그는 수년에 걸쳐서완벽하게 복수를 계획하고 수행할 만큼 똑똑한 사람입니다.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도 인정받는 왕자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부족한 것이 없이 자란 압살롬은 그 똑똑한 머리로 수년 동안 왕자의 난을 치밀하게 계획하여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살인마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해마다 고학력자들의 범죄 비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특히 성범죄자 중에는 고학력자들의 비율이 높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아히도벨처럼 그 좋은 머리를 범죄를 계획하는데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눈먼 자식이 효도한다(盲者孝道)는 속담이 있습니다.
무능하다고 여긴 사람이 도리어 인간다운 일을 해낸다는 의미로 활용되는 속담입니다.
공부 잘하는 자식들은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고향을떠나 서울에 살기 때문에 1년에 한두 번 집에 찾아 올까말까 합니다. 심한 경우 열심히 공부 시켜 놓으니 유학 가서 그대로 눌러 앉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 다닐 때 속 썩이고 사고나 치던 아들이 이제는 장성하여 부모곁에 남아서 부모를 공양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세상의 지식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
매년 소년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계십니까? 소년범죄는 날로 흉폭 해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한 일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잔인하고 흉악하여 국민적인 공분을 사는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특수강도 범죄와 같은 강력범죄 또한 해가 갈수록 늘고 있으며 재범율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촉법 소년이어서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여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은 성장하여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강력 범죄자들 중에 촉법소년에 해당되었던 범죄자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올해 청소년 마약과 도박도 작년에 비해 3배나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해마다 청소년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범죄는 늘어난다는 것은 실제보다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인 현상이 대한민국의 교회학교의 쇠락과 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고학력자들 사이에 범죄율도 높아지고 있는 것도 우연의 일치일까요?
신문 보도에 따르면 술집이 1% 늘어나면 범죄는 10.7% 늘어난다고합니다.
이 통계를 반대로 생각하면 술에 취하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을받은 사람이 전체 인구의 1% 늘어난다면 범죄율이 10.7% 줄어든다는것입니다.
이러한 단편적인 비교를 통해서도 이 세상의 지혜로는 이 땅이 공의와 정의로 다스려 지는 나라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샬롬을 누리는 땅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리 어리석은 전략이라 할지라도 승리의 도구가 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제 아무리 기발한 전략이라 할지라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지혜로 아무리 좋은 전략을 수립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실현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똑같은 도구가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느냐에 따라 그 기능이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똑같은 칼이라도 의사의 손에 들려 있으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기능을 하지만, 강도의 손에 들려 있으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지혜 자체는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중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를 활용하는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서 희대의 범죄자를 만드는 지식이 될 수 있고,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지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에 주님의 권능이 더해 질 때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지혜는 위험한 흉기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히도벨은 자신이 가진 지혜를 악한 일에 사용하여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자신의 지혜를 흉기로 사용한 것입니다.
반면에 후새는 자신의 지혜를 활용하여 악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압살롬을 제지하고 다윗을 구할 전략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나옵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변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로 인해서 우리들은 죄의 굴레에서부터 자유 함을 누리게됩니다.
압도적인 지혜를 자랑하는 세상을 이기고 그 지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선한 능력으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세상의 학문도 습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지식에 하나님의 지혜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그 지혜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길 원합니다.
또한 선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는 필수입니다.
후새의 전략이 압살롬에게 더 좋게 들린 것은 다윗이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의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지혜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게 되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는 무적이 됩니다.
동일한 지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가 함께 하면 생명을 살리지만, 하나님의 지혜가 없으면 생명을 죽이는 지식에 불과합니다. 오늘 이후 저와 여러분 모두 한 생명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사명을 수행하는 사명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누리며,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힘입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생명을 살리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추천 찬양】
선하신 목자,주선한 능력으로, 주 이름 큰 능력 있도다, 예수 이름이 온 땅에, 시선.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 나의 기도하는 것보다,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찬송가 : 350장 우리들의 싸울 것은, 338장 내 주를 가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