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지리산문학상
공터 / 지관순
우리는 과장주의자. 칠 벗겨진 정글짐이 무서워서 공터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침 해가 넘어가려는 때였고 너는 희망을 드리블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차도 생겨나지 않는 골대. 도심에 이렇게 큰 공터는 흔치 않아. 울음소리만 들리는 어제의 새에 대해 말해줄까. 새소리의 궤적으로 점점 차오르는 공터. 쉴 새 없이 공명하는 기관들. 이제부터 저 새를 공터의 성대라고 부르자. 우리는 귀가 먹먹해지도록 희망을 굴린다. 정말 도심에 이렇게 큰 공터는 흔치 않아. 너는 반복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고 나는 흘려듣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광장주의자. 정글짐 위로 새소리를 힘껏 날린다. 어제 날아간 새가 하늘에 단단히 박힌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어두워지는 공터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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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들은 “시 쓰기의 경험을 오래 한 사람만이 가능한 독창적 상상과 개성적 표현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불어 시적 대상을 매개로 한 새로운 상상과 세련된 어법을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분적 시상들의 연결고리가 단단하여 작품 전체의 완결성과 안정감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견과 함께 시편들이 주제의식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고 문맥 깊숙이 내장하는 솜씨로 신뢰감을 주고 있다는 심사 의견이 있었다. 또한 심사 대상인 시편들이 모두 일정한 수준의 균질성을 확보한 것도 선정된 사유”라고 심사배경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