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 그리고 여행
오월의 한 가운데를 흐르는 연두 빛 생명의 강 한 마리 백로의 날개 짓으로 가뭇없이 건너, 건너가고 싶다. -졸시 신록 전문
푸른 오월의 손짓을 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는데 뜻밖의 기회가 왔다. 가까이 지내던 전직 동료의 모친상을 당하여 갑자기 군산에 내려가야 했다. 노환으로 요양원에 계신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빨리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으실 줄이야. 사람이 한 세상을 마감할 때도 좋은 계절과 요일, 그리고 날씨를 택하는 것도 고인의 복이요, 자손들에게도 큰 은혜가 아닌 듯싶다. 서울에서 문상 온 대부분의 친구들은 당일치기로 부랴부랴 얼굴을 내밀고 쫓기듯 떠나가지만 나는 아내에게 집을 떠나는 명분(?)을 얻어 1박 2일로 느긋하게 준비했다. 차편도 고속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일부러 천천히 가는 무궁화호(장항선)를 택하여 창밖에 흐르는 풍경을 즐긴다. 이제 본격적으로 모내기를 준비하는지 들녘마다 찰랑찰랑 물댄 논에 산과 숲 구름이 함께 머릴 맞대고 있다. 왜가리들이 떼 지어 논 속에 들어가 맛있는 먹이를 찾고 있는지 들녘은 한가롭기 짝이 없다. 야산의 연두색 참나무 이파리들이 햇볕에 반짝반짝 거리는 게 생명의 보석이 아니랴. 싱그러운 초록을 스치는 바람결이 계절의 푸른 여왕을 축하해 주는 듯하다. 지금까지 예순 네 해째 오월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함으로 다가오는가. 잿빛 구름아래 거무칙칙하던 나목의 숲이 어느새 사라지고 저마다 초록빛을 뽐내는 모습이 안델센 동화에 나오는 미운 오리새끼의 화려한 변신처럼 여겨진다. 장례식장이 어쩌면 내가 30여 년 전에 익산시(구 이리시)로 첫 발령을 받고 은행 대리가 되어 근무하던 중 가족들과 함께 봄나들이 나왔던 은파 유원지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분향소 있는 곳에서 밤을 지새울 수 없기에 가까운 모텔 방을 혼자서 새벽 네 시쯤 찾아 나섰다. 퇴폐적 분위기의 모텔 촌에서 방을 빌려 자보기는 처음이라서 약간 기분이 이상했다. 얼마나 많은 비정상적인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세태이기에 이런 모텔업이 번성하는 것일까. 좀처럼 빈 방 찾기도 힘들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눈만 붙이고 얼른 나온다는 게 어찌나 피곤했던지 골아 떨어져 아침 아홉시 반이나 지나서야 겨우 깨어났다. 해장국집을 찾아 아침을 시켜 먹는데 젊은 아줌마 세 명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대화 소리를 들어보니 새벽 한 시쯤 퇴근해 집에 가면 다시 출근하기 바쁘고 ‘애들 얼굴 보기도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비록 고달픈 삶이지만 아주 열심히 식당에서 몸으로 뛰며 살아가는 그들의 태도가 모텔 주변의 수많은 윤락여성들에 비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이름그대로 은파(銀波)저수지는 가로등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잔잔히 흘러나오는 선율을 따라 물결이 어리광 부리듯 기슭에 찰랑거린다. 30대 초반에 두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이곳에 들렸을 때 시골처녀처럼 시커먼 갯펄도 여기저기 보이고 갈대숲이 우거진 채 수수한 자연미가 풍겼는데 몰라보게 세련된 단장미로 다가왔다. 산뜻한 조경은 물론 수변 산책로가 미끈하게 다듬어지고 호수를 가로질러 아치형 다리가 멋지게 놓여 있고 분수대가 중앙에 설치 돼 경관을 더 해 준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노란 창포 꽃과 붉은 꽃 잔디며 유채꽃이 호수 둑을 따라 미풍에 흔들린다. 더구나 호수를 감싸고 있는 야산의 숲이 연두 빛 신록으로 생기를 뿜어낸다. 맨발로 걷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호수를 끼고 둘레 길을 걷다 말고 소나무 아래 벤치에 앉는다. 이 고요함, 이 평안함. 언제까지나 자릴 지키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겨 일어나려는데 뒤쪽의 언덕바지에 서너 개의 봉분들이 역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어쩌면 이런 최고의 전망대에 누워 계실까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든다. 새파랗게 솟구치는 갈대숲을 바라보자니 지난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물뱀 한 마리가 갈대 잎에 몸을 숨긴 채 혀를 날름거리며 노려보고 있어 순간적으로 아이들과 나는 얼마나 놀랐던가. 그 때 부주의로 그 놈에게 물렸다면 어찌 됐을까 싶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뿐이다. 발바닥이 시큰거리도록 호수를 따라 한바퀴(약 3.5 km)를 두 시간 가량 걸어 나오니 정문 쪽에 세워진 안내판에 세 바우 전설이 적혀 있어 읽어 보았다. 어느 스님이 이름난 고을의 부잣집에 찾아가 공양을 청하지만 구두쇠 주인은 번번이 거절했다. 그런데 마음씨 착한 그 집의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스님에게 공양을 드리며 잘못을 빌었다. 스님은 마침내 구두쇠가 사는 마을에 큰 재앙을 내리고자 하면서 그 집의 며느리만 구해 주고자 한다. 그리고 마을에 저주가 내릴 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자신의 뒤를 오로지 따라오도록 했다. 그러나 며느리는 자신의 고향 마을이 물바다가 될 때 한 번만이라도 돌아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아고 있던 아이와 기르던 개 한 마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바우로 변하고 말았다. 스님도 며느리를 잘못 인도하였다 하여 벌을 받아 똑같이 바우로 변해 지금도 세 개의 바우(스님, 아이, 개)가 저수지에 그대로 놓여 있다. 이러한 은파 저수지의 생성에 관한 전설이 성경에도 비슷하게 나와 있다. 죄악으로 부패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기 전에 하나님께서 롯(아브라함의 조카)의 가족(아내와 두 딸)만을 구하여 주시되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말고 떠날 것을 명하셨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그리움 때문인지 뒤를 돌아봄으로 그 자리에서 소금 기둥으로 변하여 죽음을 맞이했다. 옛정에 약하고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다시 장항선 열차를 타고 귀경길에 오를 때 누구나 가야하는 일회적인 삶의 엄숙함과 생명의 계절, 오월의 신록이 손짓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제부터 밀려오는 피로와 함께 지그시 두 눈을 감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