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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외경에 나타난 마리아 막달레나
송 혜 경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1) 들어가는 말: 문제 제기
Ⅰ. 신약성경 복음서의 마리아 막달레나
1. 공관 복음
2. 요한 복음
3. 요약
Ⅱ. 신약 외경에 나타난 마리아 막달레나
1. 토마 복음
2. 필립보 복음
3. 마리아 복음
4. 구세주와의 대화
5. 피스티스 소피아
Ⅲ. 종합적 고찰과
결론
1. 고찰
2결론:
여자에게 공동체에서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
나가는 말
들어가는 말:
문제 제기 2012년 9월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콥트어학회에서 미국의 카렌 킹(Karen King, 1954~현재) 교수가 예수 부인의
복음서(Gospel of Jesus’ Wife)라 명명한 파피루스 단편을 공개하여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1)
발표 논문에서 킹 교수는 이 단편의 원문이 2세기 여성 중반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예수가 자신의 아내를 지 칭한
현존 유일의 텍스트”라 평하였다. 킹 교수는 이 문서가 예수 사후 100년도 더 넘은 시기에 작성된 만큼 예수가 결혼했다는
직접 적 증거가 될 수 없음을 밝히면서도, 적어도 이 문서가 만들어지던 시기에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고
하였다.2) 그런데 킹 교수가 공개한 파피루스 단편은 역사성 면에서 그다 지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파피루스의 발굴과 입수 경위가 알 려지지 않았고,3) 파피루스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차가 있다.4)
게다가 크기가 가로 8센티미터, 세로 4센티미터에 불과한 작은 사본에 기록된, 완전한 문장 형태도 갖추지 않은 본문 을 두고
예수님의 결혼 여부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그 리 합리적인 태도는 아니다.5)
그리고 문제가 되는 “예수님께서 그 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부인’[…]”이라는 문장 뒤에 어떤 내용이 국제콥트어학술회
(2012년 9월 18일)에서 카렌 킹 교수는 제목을 알 수 없는 이 파피루스 단편에 예수 부인의 복음서(Gospel of Jesus’ wife)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다. 이 제목은 킹이 임의로 붙인 것이기에 실제로 예수의 부인이 이 본문을 썼 는지, 그녀가 이 본문의
주인공인지, 아니면 적어도 그녀를 이 본문에서 깊이 다루 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편의상’ 그렇게 하였다고 말하지만 사람들 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기회를 빌려 혼인과 성, 그리고 초대교회 내 여성의 위상 문제를 부각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2)
2012년 9월 17일 뉴욕타임스, 보스턴글로브,등과의 공동 인터뷰의 내용. 킹 교수는 자신이 공개한 파피루스 사본이 4세기에
만들어진 진품이라 하더라도 역사 의 예수님이 결혼하셨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음을 분명히 밝혔다. 3)
지난 2010년에 익명의 수집가가 개인적으로 킹 교수에게 접촉하여 이 단편의 번 역과 해석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때 수집가는 1980년대 초반에 기록되었다는 편지 를 동봉했는데 그 편지에는 베를린 자유대학의 이집트학과 교수 게르하르트
페흐 트(Gerhard Fecht)가 이 단편이 예수님이 결혼했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으리라 믿 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그 편지 말고는 이 단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어서 그것이 발견된 정황은 알 수 없다. 4)
학회에 참석한, 뮌스터 대학의 콥틱학 교수 슈테판 엠멜은 이 문서 파편의 진위 에 의문을 품었다.
엠멜 교수는 “문서 파편의 출현과 텍스트의 문법에 완벽히 납득 되지 않는 뭔가가 있다”고 말했다. 5)
콥트어 권위자인 볼프-피터 풍크는 문구들이 문장으로 완성된 게 아니라 맥락 없는 단어가 나열된 작은 파편일 뿐이어서 문서
파편의 의미를 알 길이 없다고 말 했다. 이를테면 ‘내 부인, 그런 것은 없다’가 될 수도 있고 ‘내 아내는 지혜롭다’가 될 수도 있는
문제다. 따라서 ‘내 부인’(taHime)이라는 단어만으로 이 본문을 예수님이 자신의 아 내의 존재를 인정한 확고한 증거로
간주할 수 없다. 설사 이 단편 이 정말로 예수님의 부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2세 기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글을 역사의 예수님과 결부하기는 어렵 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의 혼인 여부’ 혹은 ‘예수님의 부 인’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6) 킹 교수의 발표 이후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도 과연 예수님께서 결혼하신 적이 있는가, 혹은 예수님께 부인이 있었는가
하는 문제 를 두고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다. 동시에 킹 교수가 여기서 말하는 예수님의 부인이 마리아 막달레나였을 것으로
추측하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었다.
단편에 마리아라는 이름이 나올뿐더러 2 세기 중엽에서 말엽 사이에 만들어졌을 법한 다른 영지주의 작품 에서도 비슷한 주제가
다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마리아 막 달레나를 주님의 동지이자 짝이라 부르는 본문도 있다.
주님께서 여인들 가운데 마리아 막달레나를 가장 사랑하셨으며 다른 제자들 에게는 알려 주지 않은 비밀 가르침을 그녀에게만
계시해 주셨다 고 하는 본문도 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킹 교수의 발표가 계기가 되어,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자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신약 외경 작품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필립 보 복음, 마리아 복음, 토마 복음, 피스티스 소피아, 구세주와의 대 화 등이 대표적 사례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추어 신약 외경에 나타난 마리아 막달레나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마리아 6) 킹 교수의 말대로 이 복음서가 2세기 영지주의 분파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부 인’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물질과 육신을 폄하하는 영지주의 공동체에서는 대개 혼인과 출산을 금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들이 말하는
혼인은 ‘영적 혼인’ 혹은 ‘순결한 혼인’으로 세상 사람들이 올리는 혼인과는 다른 의미였 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예수의 부인도 순결한 배우자, 소울메이트로 이해할 수 있겠다.
여성 막달레나가 신약 외경 본문들 안에서 어떻게 소개되고 있으며, 제 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정경 복음서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어떻게 소 개하는지 살펴볼 것이다.7)
이렇게 정경과 외경이 제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초상을 비교해 보면서 그 차이가 내포한 의미를 헤아 릴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의 위상과 권위를 부정하는 사 람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해 볼 것 이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당시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시각에 따 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여성의 위상과 역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가늠할 수 있을 터이다. I. 신약성경 복음서의 마리아 막달레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네 복음서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다.
그런데 단독으로 언급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다른 여자들과 함께 등장 한다.8)
이때 마리아 막달레나가 거의 매번 제일 처음 거명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더욱이 거의 모든 본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제일 처음 발현하신 것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마리아 막달레나의 존재감과 그 의미가 남달랐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복음서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분명 특별한 존재로 그려 지지만 그녀의 이름을 정확히 밝힌 경우는 열두 군데뿐이다
(마태 27,56.61; 28,1; 마르 15,40.47; 16,1.9; 루카 8,2; 24,10; 요한 19,26; 20,1.18).
게다가 한 곳(루카 8,2)을 제외하면 마리아 막달레나가 등장하는 장 면은 모두 십자가 처형과 빈 무덤 사화에 한정되어 있다.
이것은 7) 본 논문에서는 신약 정경보다는 외경 쪽에 무게가 실릴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 ‘신약 정경과 외경에 나타난 마리아 막달레나’가 아니라 ‘신약 외경에 나타난 마리 아 막달레나’로 정하였다. 8)
신약성경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오직 네 복음서에만 등장하며 사도행전이나 서간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왜 수난 이전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에는 등장하지 않 을까?
마리아 막달레나를 여자들 가운데 으뜸으로 치면서도 다른 남자 제자들에 비해서 자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 까?
제인 샤버그(Jane Schaberg, 1938~2012)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리아 는 “복음서 저자들이 말하는 것보다는[…]더 중요한
인물이었음 이 분명하다. 한 이야기의 결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갑자기 생뚱맞게 등장할 수는 없는 법이다.”9) 이
때문에 성경 독자 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마리아 막달레나의 역할이 정경 복 음서에서 다소 축소된 듯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복음서 저자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마리아가 여자였다는 사실 과 관련이 있을까?
그렇다면 정경 복음서 저자들은 여성을, 혹은 교회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 기 위해서는 네 복음서를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르코 복음은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였으며(65~70년), 그 뒤에 저술된 마태오와 루카 복음의 토대가 되었다는 게
통설이 다.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한 이야기 역시 마르코 복음이 근간이 되 며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이야기에서
크게 벗 어나지 않는다. 요한 복음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공관 복음과 조금 다르게 소개한다.
먼저 공관 복음을 살핀 뒤 요한 복음은 따 로 다루겠다.
1. 공관 복음
1.1. 마르코 복음 마르코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네 번 거명되는데, 그 첫 번 째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묘사한 마르코
복음 15장 40절에서 다. 마르코 복음이 총 16장인 점을 감안하면 그녀가 복음서에 등장 여성 한 시점이 상당히 늦은 편이다.
이 구절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 님의 처형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여자들 가운데 하나로 나온 다.10)
그들이 왜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 다.11)
그들은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기도 했 다고 전한다.
마르코 복음 15장 40~41절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대략 세 가 지 정도다.
하나는 여자들이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을 들었다는 점, 그 여자들 가운데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일 처음 거론 된다는 점, 마리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목격했다는 사 실 등이다.
다음으로 마리아 막달레나가 언급되는 곳은 마르코 복음 15장 47 절이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을 어디 에 모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이들이 주님께 서 묻히시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만 간단히 알리고 있다.
여기서도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다른 여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마르코 복음 16장 1~2절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안치 되신 예수님께 향료를 발라 드리려고 다른 여자들과 함께 무
덤으 로 간 상황을 전한다.12) 여기서도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름이 제일 처음 언급된다.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무덤 안 치와 부활 대목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이 남자와 여자를 통틀어 마 리아 막달레나
뿐이라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 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님과 함 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마르 15,40~41). 11)
여자들은 처형 장소에 가까이 갈 수 없었거나 화가 미칠까 두려워서 멀리 피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12)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 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 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부활을 중심으로, 혹은 수난과 부활을 향하여 짜여져 있음을 감안 할 때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어쨌든 여자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 입구의 돌이 치워져 있었고 웬 젊은이가 무덤 안에 앉아 있었는데, 그 젊은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고 알려 주면 서 이 사실을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알리라고 여자들에게
명한다. 그런데 마르코 복음의 주요 수사본들에는, 여자들이 두려워서 아무 에게도 주님의 부활을 알리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마르 16,8).13) 그 러나 16장 8절 뒤 혹은 16장 20절 뒤에 붙은 짧은 끝맺음에서는 마 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자들이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 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알렸다고 한다.
“그 여자들(마리아 막 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은 자기들에게 분부하 신 모든 것을 베드로와 그 동료들에게
간추려서 이야기해 주었다” 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처음에는 여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 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결국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렸던 것 같다.14) 더 후대에 덧붙여진 긴 끝맺음 단락(16,9~10)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을 처음 목격했으며 나머지 제자 들에게 가서 그 소식을 전했다고 요약한다.15) 13)
마르코 복음의 결말 부분은 전승 상황이 조금 복잡하다.
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 등 주요 수사본에서는 마르코 복음이 16장 8절로 끝난다.
따라서 이들 수사본 에서는 마르코 복음이, 여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끝난다.
그러 나 후대의 거의 모든 수사본에는 마르코 복음 16장 9~20절(긴 끝맺음)이 덧붙여져 있다.
어떤 수사본에는 16장 8절 뒤, 긴 끝맺음 앞에 짧은 끝맺음이 덧붙여져 있다.
어떤 수사본에서는 이 짧은 끝맺음이 16장 20절 뒤에 이어져 있다. 긴 끝맺음 없이 짧은 끝맺음만 6절 뒤에 덧붙여진 경우도 있다.
마르코 복음의 결말 부분의 편집에 관해서는 이 구절은 여러 외경 저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을 법하다.
주님께서 마리아 막 달레나와 다른 여자들에게 부활뿐 아니라 다른 가르침도 전해 주셨을 것이라 상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그 여자는 예수님 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 였다”(마르 16,11~14). 제자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다가, 예수님께서 몸소 그들에 마르코 복음 16장이
묘사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모습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여러 여자들 가운데 제일 처음 거명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녀가 예수님의 부활 후 발 현을 처음 목격한
인물이라는 점은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다른 남자 제자들보다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사실,
게다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알릴 임무를 맡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 소 식을 알리는 최초의 전령이었으며, 주님께서 그녀를 부활 소식의 전령으로서 뽑으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리아는 주님의 수난 과정 전부를, 곧 십자가 죽음과 무덤 안치와 부활을 모두 목 격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요 수사본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여자들은 겁이 나서 부활을 알려야 할 임무를 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묘사하는 점 도 간과할 수 없다(마르 16,8). 후대에 붙은 긴 끝맺음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자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했다고는 하면서도
그녀를 일곱 마귀에 시달리던 사람으로 제시한다. 과연 마리아 막달레나에 게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자질이 있는지 복음서
저자가 의심 한 것일까? 1.2. 마태오 복음 마태오 복음은 총 28장으로 마르코 복음을 바탕으로 쓰였을 것 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두 복음서가 드러내는 유사성은 상당하다.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마르코 복음에 서처럼 마태오 복음에서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마지막 2장, 곧 27~ 28장이 시작되기 전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여기 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무덤 안치 및 부활 대목에서만 등장 한다.
우선 마태오 복음 27장 55~56절에서 그녀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많은 여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로 소개된다.16) 마리아 막달레나가 여자들 가운데 제일 처음으로 소개됨은 물론이다.
이 구절은 마르코 복음 15장 41절과 흡사하며, 여기서도 여자들이 왜 멀리서 십자가 처형을 지켜보았는지는 설명 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무덤에 안치하는 장면도 마르코 복음과 비슷하다. 마태 오 복음 27장 61절은 마르코 복음 15장 47절과 비슷하게
예수님을 무덤에 모실 때 마리아 막달레나와 또 다른 마리아가 맞은편에 앉 아 있었다고 전한다.
여기서도 마리아 막달레나가 먼저 거명된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에 찾아가는 장면에서도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일 먼저 언급된다(마태 28,1). 이때 주님의 천 사가 여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면서 제자들에게 알릴 임무를 맡긴다.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제자들 에게 달려간다(마태 28,7).
그들이 두려워서 아무 말도 전하지 않았 다고 하는 마르코 복음 16장 8절과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이때 갑 자기 예수님께서 나타나 여자들에게 인사하시며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 소식을 알리라고 이르신다.
이처럼 부활 대목과 관련된 마태 오 복음의 이야기는 마르코 복음의 것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 소식을 알리러 제자들에게 곧바로 달려갔다고 하는 점이 다르다.
마태오 복음의 마리아 막달레나가 마르코 복음의 마리아 막달레나보다 더 용기 있고 강한 모습이다.
그녀가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목격한 사람으 로 나오는 점은 마르코 복음과 같다. 1.3.
루카 복음 루카 복음에서는 마르코나 마태오 복음과 달리 마리아 막달레나 가 십자가 처형 장면 전부터 등장한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처음 등 장하는 곳은 루카 복음 8장 2절이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16)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
여기서도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 일 먼저 소개되는 패턴이 고수된다.
이 구절 다음에는 마리아 막달 레나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마지막 장인 24장에 이르러서 나온다.
루카 복음 24장 첫머리는 여자들이, 주간 첫날 새벽에 준비한 향 료를 가지고 예수님을 모셔 둔 무덤에 갔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 여자들이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들은 앞서 십자가 처형 과 예수님 시신을 무덤에 모시는 장면을 지켜본 여자들,
곧 “갈릴 래아에서부터 그분을 함께 따라온 여자들”(루카 23,49; 참조: 루카 23,55)과 같은 사람일 터이다.
여자들의 이름은 루카 복음 24장 10절 에서야 비로소 나오는데, 이때도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름이 제일 먼저 언급된다.
어쨌든 이 여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무덤에 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이에게 부활을 알렸다고 한다
(루카 24,9~11).18) 루카 복음에서도 마리아 막달레나가 여자들 가운데 제일 첫 자 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르코나 마태오 복음에서와 달리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지는 않은 것으 로 되어 있다. 십자가 처형이나 시신 안치 장면에서 마리아 막달레 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고 그녀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뵙지 는 않았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다소 감소된 듯하다. 루카 복음의 후편격인 사도행전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목격증인 가운데 마리아 막달레나가 끼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마리아 막달레나를 목격자 목록에서 제외시켰는지도 모른다.19)
어쨌든 마르코나 마태오 복음에 비해 루카 복음에서 마 17)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18) 여기서도 사도들은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19)
에스터 드 보어는 루카 복음 저자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여자들이 예수님 의 제자이기는 했지만 다른 열두 제자와 달리
사도로 불리지는 않았음을 보여 주 송혜경/ 신약 외경에 나타난 마리아 막달레나 57 리아 막달레나의 중요성이 감소된 것은
사실이다. 2. 요한 복음 요한 복음이 전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이야기는 공관 복음과 조 금 차이가 난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다른 복음 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에서다(요한 19,25).20)
십 자가 곁에 있었던 여자들을 소개한 구절인데, 그녀의 이름이 제일 앞에 나오지 않는 경우는 네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이곳뿐이다.
그 리고 여기서는 여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고 전한 다.
여자들이 십자가 처형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았다고 전하는 공 관 복음의 내용과 다르다. 게다가 거기 있던 여자들의 수도 셋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공관 복음의 처형 장면에는 나오지 않는 예수님 의 어머니와 이모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행한 것으로 소개된다.
따라서 십자가 처형 때 자리를 지킨 여자로 네 복음서가 한결같이 거명하는 사람은 마리아 막달레나뿐인 셈이다.
요한 복음 20장 1절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 혼자 예수님의 무덤 을 찾아간다.21)
그리고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한 마리아는 곧 바로 시몬 베드로와 애제자에게 달려가서 그 사실을 알린다.
무덤 이 빈 까닭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 다.
요한 복음 20장 11절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 밖에 서서 울 고 있다가 무덤 안에 있는 두 천사를 발견하고는 누군가 주님을
꺼 내 가서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뒤돌아 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지만 그분을
알아보지 못 하고 정원지기로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을 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 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 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형제들에게 가서 당신께서 하느님께 올라가심을 전하라고 명하신다.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주님을 뵌 일을 알려 주며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한다(요한 20,11~18).
이처럼 마리아 막달레나는 요한 복음의 수난과 부활 이야기에서 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인물이다.
십자가 처형 장면을 지켜본 세 사람 가운데 하나이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모습을 보 이신 사람도 마리아 막달레나였다.
여기서 마리아는 다른 제자들에 게 부활 소식을 알리라는 주님의 명을 수행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요한 복음에서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리 강하고 현명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주님의 부활 사실을 깨닫는 데도 더디다. 빈 무덤을 보고도, 두 천사를 만나고도 부활을 깨닫지 못하며 심지 어 주님을 뵙고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름을 불러 주셨을 때라야 스승을 알아본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결 국 복음을 전파하러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제자 가운데 마리아 막 달레나는 끼지 못한 듯하다(요한 20,19~23).
요한 복음 저자가, 마리 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이야기에서 아무리 비중이 크다 해도 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 부활을
선포하고 복음을 전파 할 사도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22) 3.
요약 네 복음서를 망라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무덤 안치, 부활 발 현까지 모두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다.23결 국 네 복음서 모두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22) 물론 남자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곧바로 알아
뵙지는 못한다(루카 24,13~ 43; 요한 20,24~29; 21,1~14). 그러나 그들은 결국 주님을 알아 뵙고 온 땅에 복음을 선포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후 향방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에서 전하는 바가 없다. 23)
요한 복음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이 묻히시는 광경을 지켜보았는지 에 관해서는 밝히지 않고, 루카 복음에서는
부활 장면 이전에는 여자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지만 이는 문맥상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현장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최고의 위치를 점한다. 정경 복음서에서 수난과 발현이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와 비중을 생각할 때
마리아 막달레나의 중요성도 그만큼 커진다. 그러면서도 복음서 저자들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자들을, 복음을 전파하기에는 어딘지 부적합한 존재로 묘사하는 듯하다.
II. 신약 외경에 나타난 마리아 막달레나
신약 외경은 마리아 막달레나나 다른 여자들을 묘사하는 방식에 서 신약성경과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인다.24)
토마 복음, 필립보 복 음, 마리아 복음, 피스티스 소피아, 구세주와의 대화와 같은 외경에 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다른 여자들보다,
혹은 심지어 다른 남자 제 자들보다 예수님에게 더 큰 사랑을 받던 제자로서 그려지는데 이 상황은 정경 복음서와 그리 다르지 않다. 예수님의 죽음을 지킨 사 람,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는 뜻 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경이 제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위상은 정경 복음서 와 사뭇 다르다.
그녀의 위상은 단순히 여자들 가운데 으뜸이라거 나 주님의 총애를 받은 사람이라는 한정된 범위를 넘어선다.
다시 말해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자 공동체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탁월한 위치를 점하던 인물들 가운데 하나로 그려진다.
마리아가 더 이상 나약하고 두려움에 떠는 여인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다른 제자들(남자들)을 다독이며 주님의 명을
따르라고 격려하는 동료 제자요, 통찰력 있는 교사이며 공동체 지도자로 등 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외경이 그리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모습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같은 외경이라 하더라도 문 헌마다 표방하는 입장이 다르고 정통 교의와 가깝거나 먼 정도가 여성 제각각이기에 모든 외경을 같은 범주에 넣고 일률적으로 해석해서 는 안 된다.
본 논문에서는 토마 복음, 필립보 복음, 마리아 복음, 구세주와의 대화, 피스티스 소피아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어떻게 제시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 작품들은 대개 영지주의 계열로 분 류지만, 각 작품이 제시하는 여성의 역할이나 위상은 조금씩 차이 가 나므로
따로 살피겠다. 1. 토마 복음25) 토마 복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로 시작하는 개별적 말씀 들을 모아둔 어록집이다.
대화의 형식을 띤 말씀도 있는데, 대개는 ‘불특정’ 다수의 제자들이 질문을 하고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식 이다.
간혹 제자의 실명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그 수는 다섯에 그친 다. 시몬 베드로(13; 114), 마태오(13), 토마(13), 마리아(21),
살로메(61) 가 그들이다. 말씀 79에는 어떤 여자가 질문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79).
따라서 114가지 말씀 가운데 특정 제자 가 질문한 경우는 말씀 13, 21, 61, 114 이렇게 네 개뿐이다.
그 가운 데 두 가지 말씀이 마리아 막달레나와 관련 있다. 말씀 21과 114가 그 두 가지인데,26) 이 두 가지 말씀을 통해 마리아
막달레나와 관 25) 1945년에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문헌들 가운데 가장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 었던 토마 복음은 예수님의
114가지 말씀을 모아 둔 어록집이다. 이 어록집은 나그 함마디 사본 Ⅱ의 두 번째 논고이며 콥트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어 본문은 단 편들만 전하는데, 파피루스 옥시린쿠스 사본 1, 옥시린쿠스 사본 654, 옥시린쿠스 사본 655가 그것이다.
로마의 히폴리투스 등 초대 그리스도교 저작물들이 토마 복 음의 존재를 알리기도 한다.
토마 복음은 본디 그리스어로 동부 시리아 에데사에 서 만들어졌을 법하다. 이곳은 토마 사도가 특별한 존경을 받았으며
사도의 유해 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토마 복음 최초의 원본 혹은 골격은 1세기 에 만들어졌음 직하며, 여기에다
후대 편집자들이 다른 자료를 첨가하거나 수정하 기도 했을 것이다. 최종 편집은 2세기 중반쯤에 이루어졌을 법하다
말씀 21의 질문자로 소개된 마리아가 마리아 막달레나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 지만 대개 그럴 것으로 추정한다.
말씀 114에서도 마리아라고만 하는데, 이 역시 송혜경/ 신약 외경에 나타난 마리아 막달레나 61 련하여 매우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토마 복음 말씀 21에서 마리아는 주님께 “당신의 제자들은 누구 와 같습니까?” 하고 묻는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아 닌 “너희”를 대상으로, 곧 제자 전체를 향해 답변하신다.
이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마리아의 위상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우선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께 직접, 그것도 제자의
신원과 관련된 중 요한 질문을 했다는 점이다. 사실 마리아가 질문자로 등장한 것만 으로도 작은 일은 아니다.
게다가 마리아의 물음이 제자의 신원에 관한 것이며, 예수님의 답변이 “너희”를 향하고 있음을 볼 때, 이 질문과 답이
개인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마 리아가 제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질문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 전체를
향해 제자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최소 한 이 말씀을 기록하고 수집한 공동체에서는 마리아를 비롯한
여 자가 제자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던 듯하 다.
사실 말씀 61에서는 살로메가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토마 복음 말씀을 만들고 수집한 공동체에서는 여 자라는 사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말씀 114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관련하여 더욱 중요하다. 마리아 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말씀 114는 베드로와 예수님 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생명”에 적합하지 않은 마리아를 “우리” 한테서 내보내자고 베드로가
제안하자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남자 로 만드시겠다고 대답하신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자들은 생명에 합당하지 않으 니 마리아를 우리한테서 내보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내가 몸소 그녀를 인도하여 남자로 만들겠다. 그리하면 그녀는 남자인 너희와 비슷한 살아 있는 영이 될 것이다.
자신을 남자로 만드는 여자는 모두 하 마리아 막달레나일 것으로 추정한다.
마리아가 베드로와 갈등 관계에 놓인 상황이 마리아 복음과 피스티스 소피아에서도 비슷하게 재현되는데, 이 두 작품에서는
그 주인공이 마리아 막달레나임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자인 마리아를 “남자로 만든다”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 할까?
사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얼핏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 편을 드신 것 같다.
여자가 구원되기 위해 서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 말씀이, 여자는 생명에 합당하지 않 다는 베드로의 말을 두둔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세계에서 여자는 대개 지상적인 것과 사멸하는 것 을, 남자는 천상적인 것과 불멸하는 것을 상징했다.
토마 복음 114 의 “남자”와 “여자”를 이러한 상징으로 읽는다면, 여자든 남자든 모 든 사람이 지상적인 것과 멸하는 것에서부터
천상적이고 불멸하는 것으로 변모해야 된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여자인 마 리아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남자가
표상하는 천상적 불멸의 존재 가 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육체와 지상에 속하는 인간이 사멸할 지상 세계를 넘어 불멸의 천상적 존재로 탈 바꿈해야 천상으로 귀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27)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이 말씀은 성적 차이와 차별을 없앰으로 써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신심이 깊고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을
지 도자(제자)로 삼겠다는 예수님의 의지로 볼 수도 있다.28) 제자 혹은 교회 지도자의 자격은 그 사람의 ‘영’에 달려 있지,
여자냐 남자냐 하는 ‘성별’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시대 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여자도 제자가 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먼저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 이다.
이 말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여자도 제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는 혁신적이고 시대를 앞서지만, 그러기 위해 먼저 여자가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비유적 표현이든 그렇지 않든 ‘여자’ 자체는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함축하고 있다.
한편 토마 말씀 114는 종종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자들 사이에서 누리던 권위를 베드로가 부정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는 거꾸로 마리아가 당시 공동체 안에서 모종의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방증이 된다.29)
사실 베드로가 마리아 막달레나를 폄하하 려는 시도는 외경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30)
어쨌든 베드 로의 말이 ‘마리아 막달레나’, 한 개인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여자 들’을 통칭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마리아 막달레나 개인에 대한 비 판이 아니라 ‘여자’는 누구든 생명에 합당하지 않으며 자기네 제자 공동체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구절은 초대교회 공 동체, 적어도 일부 공동체에서 일어났음 직한 논란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2.
필립보 복음 필립보 복음은 발렌티누스의31) 제자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묵상 선집이며 나그함마디 사본 Ⅱ의 세 번째 논고로서
토마 복음 바로 다음에 위치한다. 필립보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언급되는 경우는 두 번이다.
필립보 복음 59와 63~64가 여기 해당한다. 필립보 복음 59에서는, 항상 예수님과 함께 다닌 세 여자의 이름 이 모두 마리아였다고
소개한다. 이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예수님 의 누이(혹은 이모),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다.32)
여기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동지(koinwnos 혹은 koinōnos)이자 동반자 혹은 발렌티누스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 등지에서 활동한 2세기의 뛰어난 영지주의 교사이자 설교가였다. 한때 로마 주교 자리에 오르려 했다고도 한다. 32)
요한 복음에서 십자가 처형 장면을 지켜본 세 여자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였다(요한 19,25).
항상 주님과 함께 걷던 이가 셋 있었다: 마리아, 그분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자매와 그분의 동지(koinwnos)라 불리던
막달레나다. 사실 그 분(녀)의 누이와33) 그분의 어머니와 그분의 짝(Hwtre)이 모두 마리아였다.
마리아 막달레나를 예수님의 동지이자 동반자 혹은 짝으로 묘사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koinwnos는 그리스어 koinwno,j 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차용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도 나온다.
바오로는 코린토 후서 8장 23절에서 티토를 동지라 불렀다.34) 그리 고 필레몬서 1장 17절에서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그대가
나를 동지 로 여긴다면”이라고 한다. ‘같은 뜻을 나누어 가진 사람’이라는 의 미일 터이다.
따라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과 같은 뜻을 나눈 동지라 불렸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한편 필립보 복음을 제외한 다른 본문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예수님의 동반자(Hwtre)로 부른 경우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어떤 이에 대해서도 그렇게 부른 경우는 없다.35) Hwtre는 Hwter (hōter)의 방언 형태이며, 뜻은 ‘결합하다’
‘합류하다’ ‘동의하다’ ‘짝 을 이루다’ 등이다.36) 33) 콥트어 본문은 ‘그분의 누이’라 되어 있지만 문맥상 ‘그녀(어머니 마리아)의
누 이’가 맞다. 세 마리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지키는 것으로 묘사하는 요한 복음 19장 25절에서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녀의 자매인 마리아,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 이렇게 세 사람이다. 34)
“티토로 말하면, 그는 내 동지(koinwno,j)며 여러분을 위한 나의 협력자(sunergo,j) 입니다.
필립보 복음에서는 Hwter 동사가 매우 빈번하게 등장한다[58: “완전한 빛을 거 룩한 영(성령)에 결합시킨 이여, 천사들을 모상인
우리와 결합시키소서”]. 보통 ‘둘 이 결합하다’ 혹은 ‘둘을 결합시키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필립보 복음 65: “모상 과 천사가 서로 결합하면, 어느 누구든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다가서지 못할 것 입니다.”
69에도 동사가 사용되었다[“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참으로 다시 태어납니 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둘로(?) 태어납니다. 우리는 영을 통하여 도 유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태어났을 때 (하나로) 결합되었습니다”].
70에서는 여자와 남자를 다시 결합시킨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여자는 신방에서 그녀의 남편에게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필립보서 저자가 ‘아내’를 지칭할 때는 여자 혹은 아내를 뜻하는 다른 단어 sHime(또는 Hime)를 사용한다
(필립보 복음 65; 76; 82). 따라서 Hwtre는 여기서 ‘아내’나 ‘배우자’의 의미로 쓰인 것 같지 않다.
Hwtre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밝히기 위해서는 이 단어가 필 립보 복음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필립보 복음 70에서 “그(아담)의 영혼의 짝(Hwter)은 영입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이 단어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영과 영혼의 관계를 동반자적 관계로 비유한 것이다. 따라서 Hwter라는 단어는 배우자라기보다는 중립적 의미에서 ‘짝’이나
‘동반자’를 뜻하고 대 개 둘 사이의 관계에 적용되는 것 같다. 여러 동반자들 가운데 한 명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라는 뜻이다.37)
사실 필립보 복음 59에서 Hwtre는 같은 구절의 koinwnos와 비슷한 의미로 대등하게 사용된 것 같다.
같은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한 번은 그리스어 차용어를 쓰고 한 번은 그에 상응하는 콥트어를 쓰 는 현상은 콥트어 본문에서
흔히 발견된다. 일종의 동의어 반복(tau tology)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필립보 복음에서는 동사 koinwnei 와 동사 Hwtre가
비슷하게 ‘결합하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38) 명사 든 동사든 두 단어가 호환된다는 뜻이다.
결국 Hwtre라는 단어는 ‘동지’(koinwnos)와 동의어로서 ‘영적 동반자, 함께 가는 이’의 의미 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듯하다.39) 결합됩니다.” 71에도 결합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37) 이런 측면에서 필립보 복음 76의 한 구절은 Hwter의 의미를 밝히는 데
큰 도움 이 된다. “이 세상에서의 결합(Hwter)은 남편(Hoout)과 아내(sHime)(의 일)이다.
영원 한 세상(에온)에서는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결합(Hwter)의 형태가 다르다.”
이 구 절에서 Hwter는 둘 사이에 이루어지는 결합을 가리키지, 배우자 자체를 가리키지는 않음이 드러난다. 38)
필립보 복음 65: “남자들은 여자의 형태로 지내는 영혼들과 결합한(koinwnei) 자 들입니다.”
아쉽게도 이 대목은 손상이 많아 읽기도 어렵고 해석도 쉽지 않지만 학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만큼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님이 마리아 막달레나를 다른 제자들보다 더 사랑 하셨으며 그녀에게 자주 입을 맞추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자]의 동지 [마]리아 막[달]레나, 그[녀]를 [모든] 제자 들보다 더 [사랑하셨으며] 그녀의 […]에 입을 맞추셨다.
나머지 [제자 들]은[…].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께서는 무엇 때문에 우리 모두 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십니까?”
구원자께서 대답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 셨다. “무엇 때문에 내가 너희를 그 여자만큼 사랑하지 않느냐고?
눈먼 이와 볼 수 있는 이 둘이 어둠 속에 있을 때에는 서로 차이가 나지 않는 다.
그러나 빛이 오면 그때에는, 볼 수 있는 이는 빛을 볼 것이며 눈먼 이 는 어둠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예수님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다른 제자들보다 더 아끼시는 이유를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다.
이 말씀에서 다른 제자 들이 ‘눈먼 이’라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볼 수 있는 이’임을 추측할 수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제자들이 어둠 속에 있는 지금은 서로 구분되지 않지만 빛이 오면 확연히 구분될 것이라는 의미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눈먼 이가 아니며, 빛이 오 면 볼 수 있다.
즉, 예수님의 탁월한 제자이자 동지로서 손색이 없 는 것이다. 마리아의 영적 이해력을 칭송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신 약성경에서 여자들을 빈 무덤을 보고도 부활 사실을 깨닫지 못하 던 모습으로 묘사한 것과 대조된다.
한편 학자들은 예수님이 마리아 막달레나를 더 사랑하시고 입을 맞추곤 하셨다는 내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두고 수많은
설 명을 내어 놓았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 어디에 입을 맞 추셨는가를 두고도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교 전통에 서는 성도들 사이에서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를 나누는 관습이 있었다.40)
게다가 여기에 사용된 동사 aspaze는 그리스어 avspa,xesqai 40) 로마 16,16(“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의 차용어로서 일차적으로는 ‘인사하다’는 의미이며41) ‘포옹하다’ 나 ‘입 맞추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필립보 복음 63에서 ‘그녀의 […]에’라는 표현이 이 동사 뒤에 나와서인지 대부분의 학자들이 ‘입 맞추다’로 옮긴다.
그러나 이 입맞춤을 특별히 이성 간의 애정 표현으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초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입을 맞추며 인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42)
심지어 avspa,xesqai 동사는 초대교회 안에서 전례적 표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43)
필립보 복음 63에서 는 이 동사가 특별히 전례와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으며, 주님께서 마리아와 거룩한 입맞춤을 나누곤 하셨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참고로 야고보의 첫째 묵시록에는 예수님께서 야고보에게 입을 맞추셨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두 작품에서 입맞춤은, 마리아 막달레나나 야고보가 주님의 총애를 받았음을 보여 주는 한 방편 이었을 터이다.
마리아 복음은 베를린 영지주의 사본 세 본문 가운데 콥 트어 역본이 가장 온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편이지만 시작 부분 네 쪽과
중간 부분 두 쪽, 총 여섯 쪽이 소실되었다. 현재 전해지는 본 문의 반을 마리아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가 차지하며, 나머지 반에
서도 마리아가 중심인물로 나온다. 토마 복음과 필립보 복음에서도 마리아 막달레나가 언급되지만 마리아 복음에서는 마리아가
숫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리아 복 음은 실제로 초대교회 때 적어도 일부 공동체에서 여성이 어떤 역 할을 맡았는지
가장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일부 본문이 소실되 었지만 마리아 막달레나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 지 보여 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마리아 복음의 현존하는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 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여기에는 물론 마리아 막달레나도 포함된 다. 구원자께서는 여러 가르침을 주신 뒤(마리아 복음 7), 제자들에 게 그릇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하시며, “사실 사 람의 아들은 너희 안에 있다. 그의 뒤를 따라라. 그를 찾는 이들은 그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니 가서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라!” 라 이르시고는 떠나신다(8~9).
제자들은 구원자께서 떠나시자 혼란에 빠진다. 구원자께서 십자 가형을 당하신 것처럼 자기네들도 같은 고난을 겪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저들이 그분을 살려두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려두 겠소?”라는 것이다(10).
이때 마리아가 나서서 그들을 격려하고 일 으켜 세운다. “울지 마십시오. 슬퍼하지도 마십시오.
마음이 갈리지도(불안해하지도) 마십시오. 그분의 은총이 여러분을 지켜줄 것입니다.
오히려 그분의 위대 하심을 찬양합시다. 그분께서 우리를 준비시켜 주시고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으니 말입니다.”
베드로는 구원자께서 그녀를 특별히 사랑하신 것을 인정하면서 그분께서 그녀에게만 계시해 주신 것을 자기네들에게도 알려
달라 고 요청한다.45) 마리아는 환시를 통해 구원자를 뵌 체험을 전하는 데, 본문이 이 대목부터 네 쪽이 소실되고 없어서
그 구체적인 내 용은 알 수 없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마리아는 무지와 욕정에서 해 방된 영혼이 천상의 세계로 귀환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사람이 죽 은 뒤 몸에서 분리된 영혼은 천상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일곱 권 세들의 심문을 받는데, 이때 영혼이
올바른 답변을 제시해야 그들 을 통과하여 천상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15~17).
마리아가 말을 마치자 안드레아는 마리아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 고 반발하면서 다른 형제들에게 의견을 구한다.
마리아의 가르침이 자신들이 전해 받은 것과 ‘다른 생각’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베드 로도 이에 동조하며 “정말로 그분께서
우리도 모르게, 드러나지 않 게 일개 여자와 말씀을 나누셨을까요? 우리가 그녀에게 가서 모두 들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이요? 그분께서 우리보다 그녀를 더 좋아하셨을까요?” 하고 마리아의 말에 의심을 표명한다(17).
이에 마리아가 항의하자 레위가 나서서 “구원자께서 그녀를 합당하게 여기셨다면 당신이 누구라고 그녀를 내친다는 말이요?”라며
마리 아의 편을 든다. 그리고 구원자께서 그녀를 잘 아셨기에 자기네보 다 그녀를 더 아끼신 것이라 말한다(19).
마리아 복음에서 그려지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모습은 신약성경 의 모습과 분명히 차이가 난다. 마리아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 는 분명 공동체의 지도자, 제자들의 지도자 격으로 등장한다. 그녀 는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뒤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을 위로한 다. 그러고 나서 그녀에게만 알려 주신 비밀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알려 준다. 제자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내용들이다.
안드레아는 그 녀의 가르침이 지금껏 자신이 들은 것과 다르고 생소한 가르침이 라며 반발하고, 베드로도 과연 주님께서 자신들
몰래 여자인 마리 아에게만 가르쳐 주셨겠느냐면서, 그리고 자신들이 마리아의 말을 45) “자매여, 구원자께서 당신을 다른
여자들보다 더 아끼셨다는 것을 알고 있소. 구원자의 말씀들을 기억나는 대로 말해 주시오. 당신은 알지만 우리는 알지도 못 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 말이오.” 이에 대해 마리아는, “여러분에게 가려져 있 는 것, 그것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한다. 70 □ 특집 ‧ 여성 들으러 가야겠느냐면서 회의를 표명한다.
과연 마리아 막달레나가 공동체 지도자 혹은 교사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심한 것이다.
이에 레위가 나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편을 들면서, 그녀를 합당히 여기 시고 (혹은 만드시고) 가르침을 계시해 주신 주님의 뜻을
거역할 자격이 베드로에게 있는지 따진다.46) 마리아 복음은 이러한 대립을 통해 마리아 막달레나가 초대교회 에서 차지한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부각시킨다.47) 결국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 어떤 제자들보다 주님 의 가르침을 받기에 합당했으며, 다른 제자들에게 이 가르침을 전 수할 자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래서 주님께서 그 어떤 제자 들보다 마리아 막달레나를 더 아끼셨다는 것이다. 4.
구세주와의 대화
구세주와의 대화는 나그함마디 사본 Ⅲ의 다섯 번째 논고로서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주제를 두고 제자들과 나누신 대화를 담고 있다. 때로는 제자들을 뭉뚱그려서 지칭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세 제자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유다, 마태오와 마리아가49) 그들이다. 구세주와의 대화는 다른 영지주의 본문의 주제들과 깊이 연관되 어 있는데,50)
특히 토마 복음과 비슷한 주제가 자주 발견된다.
여기서 마리아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말하는 게 거의 확실하다. 무엇보다 여기 나오는 마리아가 다른 작품에서 소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초상과 많이 닮아 있 다. 50) 구세주와의 대화 후반부는 유다와 마태오와 마리아가 체험한 묵시주의적 환시 를
담고 있는데, 그 환시 내용은 영지주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가령 저 위 플레로 송혜경/ 신약 외경에 나타난 마리아 막달레나 71
리아를 포함한 제자들은 아르콘들, 영혼이 입은 옷, 충만과 결핍, 생명과 죽음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두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다.
이때 마리아는 여러 가지 경구 말씀들을 발설하기도 한다. 이를테 면 “일하는 자들은 양식을 얻을 자격이 있다.
제자들은 그 스승을 닮는다”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말씀들이 다른 자료에서는 대개 예수님의 말씀으로 소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만큼 마리아 막달레나의 지혜가 출중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구세 주와의 대화는 마리아가 “모든 것을 이해한 (혹은 완전히 깨달은) 여자로서” 말했다고 전한다. 5.
피스티스 소피아
‘피스티스 소피아’라는 신적 존재에53) 관한 영지주의 사변을 담고 있다.
피스티스 소피아 본문은 Askew 코덱스(Codex Askewianus)에 담겨 있다.
이 필사본은 4세기 중후반에 만들어진 것 이지만 본문 자체는 적어도 그보다 한 세기 앞서, 이집트에서 만들 어졌을 법하다.
피스티스 소피아에서는 예수님의 여러 제자들이 질문도 하고 자 마(충만)의 영역에서부터 하느님의 빛이 아래쪽 결핍의 세상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이 세상은 말씀을 통해 구원되어 저 위의 빛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식이다. 51)
구세주의 대화가 만들어진 시기와 장소에 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헬뭇 쾨 스터와 일레인 파겔스는, 1세기 말에 만들어진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2세기 초에 기록되었으리라 제안한다
‘피스티스 소피아’라는 인물은 여성으로서, 종종 실수를 범하여 천상의 신적 영 역에서 추락했으나 나중에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천상 세계로 회귀했다고 한다. 이 인물은 이 작품 말고도 세상의 기원, 지배자들의 현실, 에우그노스토스 등의 다 른
나그함마디 문서에도 등장한다. 세상의 기원에 따르면 피스티스 소피아의 결핍 으로부터 혼돈(카오스)과 세상의 창조가 유래했다.
그리고 피스티스 소피아는 물속 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느님의 모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다.
에우그노스토스 와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에서는 인간의 아들, 혹은 구원자가 자신의 짝인 소피아 ―어떤 이들은 피스티스라
부른다―와 하나가 된다. 그리고 인간의 아들은 양성 겸유의 밝은 빛을 발한다.
여성 신의 의견을 표명하기도 하지만 특히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정 요 한이 예수님의 추종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마리아 막달레나가 가장 탁월한 위치를 차지한다.
마리아가 다른 형제들보다 하늘나라에 더 깊이 헌신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게다가 피스티스 소피아에 나오는 46개의 질문 가운데 적 어도 39개의 질문이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마 리아 막달레나는 여기서 이사야서 구절과 예수님의 말씀(“들을 귀 가 있는 자는 들어라,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 다”)을 인용하고 해석하면서 이 세상 안에서의 삶과 인류의 구원에 관해 가르친다.54)
무엇보다 피스티스 소피아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드로 사이의 갈등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베드로가 마리 아 막달레나의 지혜를 질투하여 그녀가 앞에 나서는 것을 막으려 드는 형국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마리아를 비판하며 그녀의 말을 막으려 할 때55) 예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나 말할 권리가 있다고 하시며 은근히 마리아를 옹호하신다. 가령 이런 식이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 앞을 가로막으면서 저희 가 말하게 놔두지 않고 줄곧 자기 말만 하는 이 여자를 저희는 견딜 수 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답하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자기 안에 서 영의 힘이 일어나서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앞으로 나와서 말하도록 하여라”(피스티스 소피아 36). 다른 곳에서는 마리아가 자신의 말을 막는 베드로를 두고 스승 께 이르자
예수님께서는 명백히 마리아의 편을 드신다. 지혜를 간 직한 사람이 말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였다. 54) 이 말씀들은 대개 신약성경과 토마 복음 등 초대교회 작품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 것들이다. 5
신약 외경에 나타난 마리아 막달레나 73 “스승님, 제 마음속으로는 제가 언제든 피스티스 소피아가 말한 것을 해석하러 앞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무섭습니 다. 그는 저를 위협하며 우리 성(여성)을 혐오합니다.”
그녀가 이 말을 하 자 첫 번째 신비께서 그녀에게 대답하셨다. “빛의 영으로 가득 찬 사람들 은 누구든 내가 말하는 것을 해석하러
앞에 나설 수 있다. 아무도 그들을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피스티스 소피아 72).
예수님은 노골적으로 마리아 막달레나를 칭송하기도 하신다. 마 리아 막달레나가 하늘나라에 가장 깊이 헌신하며 이 땅의 모든
여 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며 순수한 영, 혹은 순수한 영적 여인이라는 것이다(피스티스 소피아 87).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무조건 마리아의 편만 드셨다는 것은 아니 다. 여자든 남자든 성을 불문하고 지혜를 얻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 은 누구나 앞에 나서서 말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래 서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남자들한테도 말할 기회를 주라고
당부하시기도 한다. 베드로가 말하였다. “스승님, 여자들이 질문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십 시오. 우리도 질문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와 여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대들의 형제인 남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거라”(피스티스 소피아 146).
III. 종합적 고찰과 결론
1. 고찰 신약성경 복음서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선교 여행에도 동참했던 여자들 가운데 하나며,
십자가 수난을 지 켜보고(요한 19,25; 마르 15,40~41 및 병행)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제일 처음 접한 사람이자
(요한 20,1~10; 마르 16,1~8 및 병행) 제자들에게 부활 소식을 알린 사람으로 나온다(요한 20,11~18; 마태 28,8; 루카 24,9~10). 하지만 제자로서의 위치나 활동은 남자 제자들에 가려 전 74 □ 특집 ‧ 여성 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6세기 후반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 마리아 막달레나가 루카 복음 7장의 죄 많은 여인이라고 말한 뒤부터56) 정 통 교회에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요한 복음의 회개한 창녀와 동일 시하는 시각도 있었다.57) 이는 분명 제자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다.
반면에 영지주의 문헌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제자 임은 물론 다른 제자들보다 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로 소개된다.
이를테면, 구세주와의 대화에서 마리아는 모든 것을 이해한 사람으 로, 피스티스 소피아‧마리아 복음에서는 다른 제자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통찰을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 나온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자들 사이에서도 특히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는 것이다. 게다가 마리아 막달레나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복음서를 가진 역사상 유 일한 여인이기도 하다.58) 실제로 신약 외경이 제시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위상과 역할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엇 보다 예수님의 탁월한 제자였다. 그녀는 예수님에게서 배우는 제자 56) 그레고리우스의 말은 이렇다. “루카가 죄 많은 여자라고 부르고, 요한이 마리아 라 부르는
그녀는, 그녀에게서 일곱 마귀가 쫓겨났다고 마르코가 전하는 바로 그 마리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일곱 마귀가 모든 악덕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을 의미 했겠습니까?[…]형제들이여, 그 여자가 전에는 금지된 행위 때 자신의 육신에 향 기를 더하기 위해 그 향유를
썼을 것이 분명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회개한 창녀로 여긴 서방교회 전통에 대해서는 다음들 가운데 하나로서 스승께 질문도
하고 답도 한다. 피스티스 소피 아에 나오는 46가지 질문 가운데 39개가 마리아가 제기한 질문이 다.
토마 복음 21에서 마리아는 제자단의 목적과 본성에 관해 질문 한다. 구세주와의 대화에서 마리아는 마태오와 유다와 더불어
주님 께 특별한 가르침을 받는 세 제자 가운데 하나로 나온다. 그녀는 슬픔과 기쁨의 의미를 묻고(126), 형제들에게 스승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을 어디서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묻기도 한다. 마리아의 통찰 력은 칭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피스티스 소피아에서 마리아는 자주 스승의 칭찬을 듣는다. 그녀가 시의적절하게 질문을 할 줄도 알고(25), 그녀의 마음 또한
다른 형제들보다 하늘나라에 더 가깝다 는 것이다(17). 마리아 막달레나는 해석가로서의 역할도 맡는다.
그녀는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그 의미에 관해 논하기도 한다. 피스티스 소 피아에서 마리아는 이사야서와 시편을 인용하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바오로가 기록한 것을 암송하기도 한다(17; 18; 60; 62; 113).
마리아는 구세주와의 대화 139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데, 그녀가 “모든 것을 이해한 여인”으로서 이 말을 했다는 진술이
뒤 에 덧붙여져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 인물로서 다른 제자들을 격려하고 가르치는 임무를 맡기도 한다. 필립보 복음 64 와 마리아 복음 18에서는 스승께서 다른 제자들보다 마리아를 더 사랑하셨다고 표현한다.
필립보 복음 59에서 마리아는 스승 예수님 의 동지이자 동반자로 소개된다. 주님께 남자 제자 열둘과 여자 제 자 일곱이 있었다고
전하는 야고보 첫째 묵시록에서는 주님께서 야고보에게 마리아 막달레나에게서 배우라는 말씀도 하신다(38; 40).59)
마리아 복음에서 마리아는, 다른 제자들이 주님께서 떠나신 후 두려움에 사로잡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자 이들 59)
야고보가 여자 제자들을 두고 말하면서 “나는 무력한 그릇(여자)들이 그들 안 에 깃든 지각으로 인해 강해진 사실이 놀랍습니다”
하고 여쭈자 스승께서는 야고 보에게 몇 사람의 이름을 들며 그들에게서 배우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가운데 마 리아 막달레나도
포함된다(38; 40). 76 □ 특집 ‧ 여성 을 독려하여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주님께서 자기에게만 따로 계 시하신 비밀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기도 한다. 2.
결론:
여자에게 공동체에서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 영지주의 문헌에서 드러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위상은 사뭇 인 상적이다.
그런데 이들 작품에서 대개 누군가 나서서 그녀의 위상 에 도전한다. 마리아가 공동체 안에서 가르칠 자격이 있느냐는 것 이다.
도전자는 베드로나 안드레아 등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명이다. 이때 마리아 막달레나의 권리를 옹호하는 이도 등장한다.
마리아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 복 음 114; 마리아 복음 17~18; 필립보 복음 63~64; 피스티스 소피아 36; 72).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드로 혹은 다른 남자 제자와의 갈등을 두 고, 혹자는 성차별주의자들이었던 초대 정통 교회와 그렇지 않았던
영지주의 교회의 갈등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해석한다. 두 교회의 여 성관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60)
혹자는 이 갈등을, 정통 교회 와 영지주의자들의 여성관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 교의의 차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드로가 정통 교회를 대변한다면 마 리아 막달레나는 영지주의를 대변한다는 것이다.61)
곧 베드로와 마 리아의 갈등은 정통과 영지주의 사이에 일어났던 신학적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는 말이다.
어떤 의견이 맞을까? 우선 정통 교회와 영지주의 교회의 여성관 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똑 부러지게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을까?
정 말로 정통 교회는 명백한 성차별주의자고 영지주의자들은 그렇지 60) 드 보어는 베드로가 마리아를 반대한 것이 교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베드로가 정통의 관점을 대변하지만 이는 신앙의 교리와 관련해서가 아니 라 여성에 대한
입장과 관련해서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답하려면 우선 당시의 여성관을 살펴보고 여 성에 대한 시각을 드러내는 본문들을 자세히 검토해보아야 한다.
사실 마리아에게 제자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의심한 것은, 당시 문화와 관점에 비추어 보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여자는 동 서를 막론하고 남자보다 하등한 존재로 여겨졌다. 마리아 막달레나 에게 중요한 역할이 부여된 영지주의 본문에서도
여성을 폄하하는 용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62)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영지주의자 들의 긍정적 관점도 여성 자체에 대한
통념까지 바꾸지는 못했던 것이다. 실케 페터슨은, 영지주의 본문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 수님의 탁월한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하등한 여성성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다.63)
영지주의 본문이 여 성 자체가 아니라 여성성을 뛰어넘은 여자만 높이 평가했다는 것 이다.
영지주의 문헌에 익숙한 독자 가운데 페터슨의 결론에 의아해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여자에게서 나온 것은 무엇이든 죽 게 마련이다” “여자의 일들을 파괴하여라”(구세주와의 대화 144),64) “여자가 없는 곳에서
기도하여라”(구세주와의 대화 144) 등의 본문 들이 모두 페터슨의 결론을 지지하는 듯하다.
이집트인들의 복음도 비슷한 여성관을 내비친다. 살로메가 “언제까지 죽음이 힘을 가지 겠습니까?” 하고 묻자
주님께서 “너희 여인네들이 출산을 그만둘 때까지”라고 말씀하신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여자의 일들 을 파멸시키려고 왔다”고 말씀하신다
페터 슨은 영지주의 본문에 등장하는 여자 제자들에 관해 심도 깊게 연구했다. 64)
이처럼 영지주의 본문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하등한 존재이며, 여성성은 사라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내 (예수님)가 몸소 그녀(마리아)를 인도하여 남자로 만들겠다. 그리하 면 그녀는 남자인 너희와 비슷한 살아 있는
영이 될 것이다. 자신 을 남자로 만드는 여자는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라는 토 마 복음 114는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여자를 남자로 만든다는 것, 혹은 여자가 자신을 남자로 만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지 한 번 더 자세히 다룰 필요가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이 이 문제의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필 론은 ‘남성’은 ‘이성’(理性)을, ‘여성’은 ‘감각’을 상징한다고 본다
동시에 필론은 실제 남자와 여자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남자들은 ‘남자다움’을 갖추고 있어서 현명하고 건전하고
의롭고 신중하고 경건하며 자유롭고 대범하며 지혜와 가 깝다. 반면에 여자들은 비이성적이고 동물적 욕구와 두려움, 슬픔 과
쾌락과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라는 점에서 ‘여성스럽다’.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답게 ‘격상’될 수 있고, 남자들은 여성스럽게
‘격하’ 될 수 있다는 게 필론의 생각이다
이러한 관점에는 남성적 요소가 여성적 요소보다 월등히 훌륭하 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탁월함은 언제나 남성에 속하고 여성적인 것은 항상 어딘지 부족하고 남성적인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다
이처럼 필론에게는 남녀의 구분과 위계가 분명하여 남자가 여자 보다 완전하며, 여성은 그 자체로 불완전한 남자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여자의 일들을 파괴한다는 것은 사멸성의 순환, 곧 출산과 죽음의 순환에서 해방시켜 신적 생명과 빛을 누리게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66) 같은 대목에서 필론은 모든 미덕이 여성형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가장 완전한 남자의 능력과 활동성을
지닌다고 한다 그러므로 필론에게 ‘진보’란 여성성을 포기함으로써 남성으로 변화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탈출기에 관한 질문과 응답, 1.8). 따라서 필론이 지향하는 것은 남녀 공히 여성적 요소를 제거하여 태초의 완전한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67) 결국 필론의 진보 개념은 비유적 표현이든 실제에 대한 언급이 든, 남녀평등에 기초를 둔 개념이라고
할 수 없다.68) 이처럼 고대 세계에서는 여자인 것보다 남자인 것이 나았고, 남자에게는 여자를 인도하여 진보시켜야 할 책임이
있었다.69) 당시의 사고방식에서 이 런 성차별적 시각은 놀랍지 않다. 영이 물질보다,
그리고 남자와 남 성성이 여자와 여성성보다 하느님께 더 가깝다는 것이 헬레니즘 세계의 통념이었다.70)
따라서 토마 복음, 마리아 복음, 피스티스 소 피아 등의 영지주의 본문에서 부족하나마 이러한 사고방식에 도전 장을 내걸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고 여성의 권위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당연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정통을 대변하는 초대교회 본문의 상황은 어떠할까? 초대 정통 교회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네 복음서가, 마리아 막달의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만들어진 천상적 인간과 창세기 2장 7절의, 흙으로 빚어 만들어진 지상적 인간을 구분한다. 전자가 이성과
신 성한 영으로 살아간다면, 후자는 육의 쾌락과 피로 살아간다.
필론이 지향하는 것이 바로 태초의 원 형적 인간으로 돌아가 이성과 영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메이어는 여기서 여성성을 제거하여 남자처럼 되기 를 장려하는 것이 고대 세계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토마 복음 22 도 이런 배경에서 읽어야 한다. 69) 필론은 ‘죄는 나약함에서 오고 여성은 나약’하며 남성이 보다 완전하며 지배하는
입장이고 여성은 불완전하며 지배받는 입장 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여성성을 온전히 인정받으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 할 터였다. 불교에도 비슷한 사고방식이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어렵고, 남 자로 태어나는 것은 더 어려우며 남자로 태어나 승려가 되는 것은 더 어렵다고 한 다.
그만큼 전생에 공덕을 많이 쌓아야 남자 승려, 곧 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 레나를 예수님 선교 여행의 동반자이자 수난과 부활의 주요 목격 자로 인정하면서도 복음 선포자로서의 역할은 전면에
내세우지 않 았던 점은 앞서 살펴본 대로다.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움직임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도 당시 세계의 남녀차별적 시 각에 반기를 든 내용들이 더러 발견된다.
이를테면 예수님께서 정결례 규정, 혼인, 가족 관계에 관해 의견 을 피력하시는 내용이 복음서에 나오는데, 이 세 가지 관습은
여성 과 남성을 명확히 구분하는 대표적 수단이었다. 예수님은 외관의 정결보다 마음의 정결이 더 중요하다고 하시며 혼인이란
성실에 기반을 둔 두 사람의 결합이며 둘 에게 공동 책임이 있는 관계라 설명하신다(마르 10,11~12).
나아가 예수님은 가족 관계를 혈연에 의한 관계에서 믿음을 근거로 한 종 교적 공동체로 확장시키신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여자를 여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일화들도 담겨 있다.
가령 루카 복음 10장 38~42절의 마르 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나 요한 복음 8장 1~11절의 간음하다 잡힌 여 자 이야기가 그렇다.
예수님께서 여자를 가르치신 경우도 소개되 어 있다. 요한 복음 4장 1~30절의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가 훌륭한 예가 된다.
이 예 이외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남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음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있다.
그분께서 비유 등을 통해 가르침을 주실 때 남자와 여자의 경험이 나 일 모두를 언급하신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가령 예수님은 청 지기, 양치기, 고기잡이, 농부 등 남자 이야기뿐 아니라 출산의 고 통, 누룩, 소금, 등잔, 물, 집안 청소 등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도 하 신다. 이는 신약성경 복음서가 전체적으로 남성 중심적이면서도, 예수 71)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에게 좋은 몫을 택했다고 하시는 예수 님의 말씀은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여자라고 사람 시중드는 일만 하란 법이
없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의 일화는, 간음은 분명 남녀가 같이하는 일인데 유독 여자만 돌팔매와
비난의 대상이 된 시대의 아이러니 를 일깨워 준다. 양성평등 시각을 대변하는, 혹은 적어도 여성의 입장 을 이해하는 이야기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다가 복음서 안에 까지 들어왔을 것이다. 후대의 교부 문헌에도 남녀평등의 시각이 엿보인다.
이를테면 교 부 히에로니무스는 여자 제자들도 두었으며 그의 선생 가운데 여 자도 몇몇 있었다고 한다.72)
교부는 프린치피아라는 여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불신자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연약한 여인네들을 칭송하는 것 을 보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여인들이 구원자이신 우리 주님을 섬기고
살림을 보조했다는 것, 세 마리아가 십자가 앞에 서 있었다는 것, 그리고 특히 성실함과 열렬한 믿음 때문에 ‘탑’(마리아)이라
불린 막달라 마리아가 사도들보다 먼저, 제일 처음으로 부활하신 그리스 도를 뵙는 특권을 누렸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그들은 덕에
의해, 성(性)이 아니라 마음을 보고 판단하는 내가 어리석은 게 아니며 자기네들이 교만 하다고 선포할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자들을 성(性)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잣대로 판단한다는 히에로니무스의 말은 과히 혁신적이다. 특히 당시의 성차별적 시각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어쩌면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금하는 코린트 전서의 말이 당시 교회의 일반적 분위기였는지도 모른다.
오리게네스는 바오로의 코린트 전서를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칭찬할 만하거나 거룩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고 작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일 따름입니다”
이처럼 정통이든 영지주의 본문이든 둘 다 대체로 남성 중심적이며 여성을 폄하하는 경향이 포착되는 한편,
두 전통 모두에서 여 성을 한 인격체로서 보는 긍정적 시각도 발견된다. 74)
정통 교회와 영지주의 교회 모두 안에 여성관을 두고 차이와 다양성이 공존했 던 것이다.
따라서 남자 제자와 마리아 막달레나 사이의 갈등을 전 하는 본문들을 읽을 때, 여성의 역할을 두고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 서
일어났을 법한 논란을 연상해도 될 것 같다. 주님께서 남자 제 자들을 제쳐 두고 일개 여자에게 가르침을 전해 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안드레아의 모습은 지금도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자의 말을 들어야 하느냐는 베드로의 반응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초대교회 안에서 여자의 역할을 두고 어느 정도의 논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과연 여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역할이 주어졌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주님의 선교 여행에도 동반했으며 주 님의 수난과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었던 마리아 막달레나나 다른 여자들이 주님의 제자로 인식되었는지조차 분명히 알 수 없다.
사 실 막달레나를 비롯하여 어떤 여자도 예수님의 제자로 불린 적이 없으며, 신약성경 어느 곳에서도 예수님의 여자 제자에 대해
언급 한 경우는 없다. 그러나 여자를 예수님의 제자로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그렇게 간주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구절 이 있다. 마르코복음 15장 41절에서 여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뜻으로 사용된 그리스어 avkolouqe, w 동사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단어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뒤따라가다’(마태 21,9), 혹은 ‘따라가다’(요한 6,2)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제자로서 스승의 뒤를 따른다 (마르 1,17~18; 2,14) 75)는 비유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 았다.”; 2,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최소한 예수님 일행과 같이 다니며 시중만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그분의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야말로 제자의 핵심이 아닐까? 게다가 마르코복음 15장 41절에서 avkolouqe, w 동사가 미완료형(hvkolou, qoun)으로
사용된 것은, 여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행위가 단발성의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일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자들이 줄곧 예수님의 선교 여행에 동반하며 시중도 들고 가르침도 받았을 법하다.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까지 왔다가 십자가 처형 장면까지 멀리서 지켜보았던 것이다.
이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76) 게다가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오로의 말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여 자들도 복음 선포 활동에 참여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다른 여자들도 복음 선포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바오로의 활동과 삶에서 여자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로마서 16장 끝인사에서 바오로는 포이 베를 교회의 일 꾼(dia, konoj)으로 소개하는 한편, 프리스키, 마리아, 유니나, 트리퍼 나와
트릭 포사와 페르세스 등 여러 여성을 자신의 협력자 혹은 교 회를 위해 애쓴 사람으로 소개한다(로마 16,1~12).
안드로 니코스와 유니 부부를 ‘뛰어난 사도’(로마 16,7)로 소개한 점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바오로는 아퀼라와 프리스키의 집에 모이는 교회(1코린 16,9)와 님이의 집에 모이는 교회(콜로 4,15)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에우 오디아와 신티케를 복음을 전하려고 바오로와 함께 싸운 사람 들로 소개하기도 한다(필리 4,2~3).
여자들도 바오로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데 힘썼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 들이다.
그러나 바오로의 서간은 전례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는 않는다.
코린트 전서 11장 2~16절에서 여자들은 여성 전례에 참석할 때 머리를 가려야 한다면서, 이 조건만 갖춘다면 여 자도 전례 때
기도하고 예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코린트 전 서 14장 34~36절에서는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학자들 중에는 코린트 전서 14장 34~36절을 후대에 덧붙 여진 내용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77)
교회 안에서 여자는 잠자코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오로의 생각은 아니라는 뜻이다.
코린트 전서의 일견 모순된 11장과 14장, 두 구절 가운데 어느 쪽이 바오로의 입장을 보여 주는 것일까? 78)
여자는 줄곧 교회에서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이 바오로의 진짜 생각이라면 여자들을 교회의 일꾼이자 협력자 혹은 사도로까지
소개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입을 다문 채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교리를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 가?
그런데 세례를 받은 이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유 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다는 갈라티아서 3장 26~29절을 고려하면, 적어도 바보로 계 교회에 서는 여자들도 전례 때 공적으로 기도와 예언을 했으며
바오로의 동반자로서 복음도 선포했을 법하다. 그러다가 후대로 갈수록 여성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79) 물론 초대교회 때 마리아 막달레나나 다른 여자들이 열두 제자 나 다른 사도들과 동등한
위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음이 분명이 서간의 저자가 여성 봉사자의 역할에서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배제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코 린 토 교회에서는 여자가 전례 때 예언을 하거나 기도를 할 수 있었다(1코린 11,2~ 16).
따라서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코린트 전서 14장 24~46절 은 바오로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여성 봉사자들의
역할을 제한했던 바오로의 후계 자들(가령 티모테오서의 저자)의 입장을 반영한 것일 터이다.
열두 사도가 초대교회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80)
그러나 그들 이외에 다른 제자들도 더 있었음을 신약성경이 증명하고 있다. 일흔 명의 제자들을 파견하신 이야기가 그 좋은
예가 된다. 그런데 줄곧 주님의 곁에서 가르침을 들었던 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절대 제자로 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욱이 마리아 막달레나가 사도행전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여생을 줄곧 침묵하며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제일 먼저 다른 사람에게 알린 이가 마리아 막달레나였다.
초대교회 때 주님의 십자 가와 부활의 선포 말고 무엇이 더 중요했을까?
과연 여자들이 주님의 복음에 침묵하며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제자들 이외에는 아 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전한 부활의 소 식은 결코 복음의 선포로 볼 수 없다고, 그저 여자들의 수다에 불 과했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게다가 여자들이 교회 안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면 여자 들은 교회 안에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을
여자의 역할을 제한하는 신약성경의 표현들은 역으로 초대 교회 안에서 여자들이 교사로서, 지도자로서 활동하고 있었음을
방 정하는 것이 아닐까? 차츰 주류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활동을 제한하게 되었을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아예 여자들이 교사나
지도자로 서 활동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가는 말 토마 복음, 필립보 복음, 마리아 복음 등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열두 제자들보다 위에 두는 듯한 표현을 쓴 것은, 당시에 적어도 일부 공동체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설사 이것이 80)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직제자가 아니었으므로 여기서 거론하지 않는다. 변방의 몇몇 공동체에서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이 또한 교 회의 역사에 속한다. 사실 정통과 영지주의 계열을 막론하고 초대 교회는 여성에 대한 당시의 통념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어느 쪽에 서건 여성의 역할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정통 교회가 점차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는 방 향으로 나아갔다면 영지주의 교회는 그 반대쪽 경향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제자들의 갈등 이, 정통 교회와 영지주의 교회의 갈등 혹은 두 교회 사이의 여성 관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이분법적 시각에서는 벗어나야 할 것 같 다. 오히려 이러한 갈등은, 당시 사회의 통념, 곧 여자는 공동체의
권위 있는 지도자나 교사가 될 수 없다는 통념에 대해 교회 공동체 가 보여 준 다양한 반응과 답변을 반영하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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