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리문답 세례 2
1.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전이다.
2.세례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시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3.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다른 길이 아닌
세례를 통해 구원받도록 명령하셨다
4.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세례를 베푸신다는 뜻이다.
5.세례의 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담긴
거룩하게 구별된 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례전을 만든다.
세례의 물은 여타의 물과 다릅니다. 자연적인 성질 때문이 아닙니다. 아주 특별하고 고귀한 것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힘과 능력을 그 안에 두셨습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 단순한 자연수가 아닙니다. 신성하고 거룩하며 복된 하늘 물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다함이 없는 찬송으로 찬미해야 할 물입니다.
여기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매우 충분한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말씀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거룩한 하늘의 말씀이기에 그 누구도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모든 일을 행하셨고, 또한 그 말씀으로 신적인 모든 일을 행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례전이라고 부르는 것의 본질은 말씀입니다.
이것을 아우구스티누스는 ‘말씀이 자연의 본성인 물질에 들어와 성례전이 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성례전은 거룩하고 신성한 그 어떤 것이며 표지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물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세례를 존귀하고 거룩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 때문입니다. 세례는 하나님 스스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면서 존귀하게 만든 것입니다. 또한 하늘로부터 임한 기적으로 이것을 확증하셨습니다. 혹시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하늘에서 임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이 임하셨다는 것을 농담으로 여기십니까?
다시 권면합니다. 이 둘 곧 물과 말씀을 따로 구분하지 마십시오. 이 둘은 가르거나 분리할 수 없습니다. 물과 말씀을 분리하는 순간 그 물은 목욕탕에서 쓰는 물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거룩한 세례를 ‘목욕물 세례’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에는 성례전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세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례전의 본질과 가치를 논할 때 가장 으뜸이 되는 항목이라고 할 만합니다.
세례의 목적과 효과는 죄와 죽음과 악마로부터 구원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사는 데 있다.
두 번째 항목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례가 무엇인지 그리고 세례를 어떻게 여겨야 할지 알아보았습니다. 이제는 세례가 어떤 목적으로 제정되었고 그 유익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다시 말해 세례의 효과는 무엇이고, 무엇을 가져다주며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 배울 것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앞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의 이해를 돕는 데 가장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이 복되다’ 이 구절은 세례의 모든 질문을 단 한곳으로 집중시킵니다. 세례의 능력, 행위, 효과, 열매, 최종 목적 모두, 복됨에 있습니다. 그런데 복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이란 ①죄와 죽음과 악마로부터 풀려나 ②그리스도의 나라 가운데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지를 재차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보화를 이 세례 안에서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세례의 물이 단순한 물로 여겨질 수 없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단순한 물은 그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세례의 물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생명이 있고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거룩하고 복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며, 은총이 충만한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의 능력은 곧 말씀을 통해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서 3장에서 이를 ‘중생의 씻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디도서3:4 그러나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께서 그 인자하심과 사랑하심을 나타내셔서
3:5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행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①그분의 자비하심을 따라 거듭나게 씻어주심(물세례: 원죄)과 ②성령으로 새롭게 해 주심으로(성령세례: 죄의 종노릇→하나님의 자녀)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복을 받는다. 그러나 세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믿음은 보이는 외적 표지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소금과 빛: 착한 행실, 성화: 거룩한 행실)
새로운 영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너무나 똑똑한 이들의 말을 들어 봅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오직 믿음만으로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공로와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믿음으로 판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더 깊이 다루어야 할 믿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눈먼 소경 인도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믿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의지하고, 설 수 있고, 발을 디딜 수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례를 믿는다는 것은 물 안에 축복과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단순히 물 때문이 아닙니다. 앞서 강조했듯이 하나님의 말씀과 제정하심이 물과 하나 되었고, 그분의 이름이 그 안에 서려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것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그 안에 두신 말씀의 보화를 보이는 물질로 제공하셔서 우리가 파악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외에 다른 무엇을 믿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이 계시다는 것을 외적 표시 곧 ‘소금과 빛: 착한 행실, 성화: 거룩한 행실’을 통해 알게 하고 믿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