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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1-9 2023/11/19 성령강림 제25주
19: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19: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19: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19: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19: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상 하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음과 함께 빵을 나누자
이것이 기아대책 강화이사회의 바람입니다.
우간다 쿠미 기아대책 소속 이명현 선교사(2007)를 방문하는 이유
1. 선교사님과 동역자들을 축복하고 응원하기 위해
2. 공립바자초등학교 환경개선 사업(급식, 교사기숙사, 물탱크)
3. 청년 일자리와 미혼모 자립사업
4. 마을 소득증대사업과 협동조합사업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엘리야입니다.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하나님의 예언자지요.
‘엘리(나의 하나님) 야(여호와)’
예언자 엘리야
그는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살고 있었던 시대
북이스라엘의 자아상을 그 누구보다 뚜렷하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왕과 제사장들과 궁중의 예언자들이 행하는 거짓과 불의를 시퍼런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예언자 엘리야는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자들의 말이 아니라 광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곧 하나님의 말씀만 듣는 외골수였습니다.
동시에 예언자 엘리야는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두가 침묵할 때
왕의 교만과 제사장들의 무능과 예언자들의 거짓을 눈감아주지 않고,
독설을 퍼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예언자로 산다는 것은 참 외롭고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결혼으로 시작이 됩니다.
아합은 자신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고, 군사적 힘을 도모하기 위해, 북쪽에 있는 신흥 도시국가 페니키아(시돈)의 공주 이세벨을 왕비로 맞이합니다. 전략적인 결혼이지요.
문제는 전력결혼의 당사자였던 이세벨의 힘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합이 이세벨의 청을 모두 받아들입니다.
①이세벨의 신하들과 그의 시종들을 받아들입니다.
②이세벨이 거처할 수 왕궁을 짓기 위해 건축 기술자들을 받아들입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③이세벨이 자신이 섬겼던 페니키아의 신상과 신관들까지 데리고 옵니다. 그 때 가져온 신상이 페니키아의 신 바알 하몬이었습니다.
천둥과 번개의 신 바알 하몬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제1-2계명을 볼까요.
출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하지만 아합은 여기에 기록된 계명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무시하고, 페니키아의 신 바알 하몬을 위한 신전을 사마리아에 짓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아내 아세라 신상도 깎아 만들어 놓고, 매일같이 번제를 드리지요.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바알의 제사장 450명, 아세라의 제사장 400명이었습니다.
그러자 귀족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바알 하몬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비를 내려주는 신 바알과 아들을 낳게 해주는 신 아세라는 논경사회에서 너무 매력적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3년 가뭄으로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정신 차리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멈추지 않고,
오히려 바알을 더욱 의지하고 섬기게 됩니다.
아이러니죠.
그러던 어느 날.
다시 하나님의 명을 받은 엘리야가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을 찾아가 이렇게 제안합니다.
왕상18:19 ①이제 사람을 보내어, 온 이스라엘을 갈멜 산으로 모아 주십시오. 그리고 ②이세벨에게 녹을 얻어 먹는 바알 예언자 사백쉰 명과 아세라 예언자 사백 명도 함께 불러 주십시오."
18:20 아합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부르고, 예언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았다.
18:21 그러자 엘리야가 (대혼란에 빠진) 그 모든 백성 앞에 나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들은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무슨 말입니까?
양다리를 걸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엘리야가 좀 더 구체적인 제안을 백성들에게 합니다.
각각 번제 단을 쌓고, 그 번제 단에 임하는 불의 응답을 통해
바알이 하나님인지
여호와가 하나님인지 대결을 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백성들이 흔쾌히 승낙합니다.
왜요?
자신들이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바알이 천둥과 번개의 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850대 1이였기 때문입니다. 해 볼만 했지요.
삼상18:23 이제, 소 두 마리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십시오. 바알 예언자들이 소 한 마리를 선택하여 각을 떠서, 나뭇단 위에 올려 놓되, 불을 지피지는 않게 하십시오. 나도 나머지 한 마리의 소를 잡아서, 나뭇단 위에 올려 놓고, 불은 지피지 않겠습니다.
18:24 그런 다음에, 바알의 예언자들은 바알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그 때에, 불을 보내셔서 응답하는 신이 있으면,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하였다.
‘바알’과 ‘여호와’ 누가 불을 집혔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자 바알에게 농락당했던 백성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립니다.
삼상18:38 그러자 주님의 불이 떨어져서, 제물과 나뭇단과 돌들과 흙을 태웠고, 도랑 안에 있는 물을 모두 말려 버렸다.
18:39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땅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그가 주 하나님이시다! 그가 주 하나님이시다!"
결국 분을 참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과 아세라의 예언자 850명을 붙잡아, 이스르엘 평원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기손 강가로 데려가서 단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죽여 버립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이 엘리야 귀에 들어왔습니다.
왕비 이세벨이 자신을 죽인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왕상19: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19: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러자 엘리야는 3년 전 있었던, 아주 끔찍한 사건이 기억이 났습니다.
사무엘상 18장에 나오는 사건으로,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몰살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칩니다.
어디까지 도망치는가하면, 국경을 넘어 남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까지 도망칩니다.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했던지, 하루는 하나님께 드리지 말아야할 기도까지 드리게 됩니다.
왕상19: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죽기를 원하는 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깊은 절망에 빠진 엘리야를 이렇게 대접해 주십니다.
첫째 깊은 단잠을 주십니다.
왕상19: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둘째 깊은 단잠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단잠을 자는 동안 천사를 보내 엘리야를 어루만져주십니다.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세 번째 지친 엘리야의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밥상까지 베풀어 주십니다.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왕상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감동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잘했다 잘못했다’ 훈계하지도 않고,
‘못났다 비겁하다’ 꾸짖지도 않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단잠을 주시고
찾아와 품어 안아 어루만져 주시고
힘내라고 밥상까지 차려 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감동이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왕상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19: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은 엘리야가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서 찾아간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이 어디일까요?
하나님의 산 호렙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산 바로 호렙에 이르게 됩니다.
왕상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하나님의 산 호렙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사람(예언자) 엘리야가 있어야할 자리였지요.
하지만 엘리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처럼 호렙 산에 오르지 않습니다. 호렙 산에 오르지 않고, 한 굴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깁니다.
왜요?
여전히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호통을 칩니다.
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 때 엘리야는 자신이 숨을 수밖에 없는 사정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새)왕상19:10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자신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새)왕상19:1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19:12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현존을 목격한 엘리야는
그 즉시 외투로 자신의 얼굴을 가립니다.
왜요?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곧 ‘살리는 소리’를 ‘죽음의 소리’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한 번 호통을 칩니다.
(새)왕상19: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바로 그 때에 그에게 소리가 들려 왔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9: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엘리야가 꼭 해야만 하는 일
두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하나는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우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 칠천 명과 함께 신앙의 개혁을 계속 이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 어떻게 했을까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릅니다.
그렇게 척박한 땅에서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남겨 놓은 칠 천명과 함께 신앙의 개혁을 계속 이어갑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살다보면 모든 것이 귀찮아 질 때가 있습니다.
소명도 사명도 다 귀찮아 질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
먼저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십시오.
단잠을 주시고, 어루만져주시고
밥상을 차려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누리십시오.
그런 후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책망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책망과 함께 다가오는 하나님의 일 곧 내 뒤를 이어갈 예언자와 남겨진 예언자들과 함께 신앙의 개혁을 이어가십시오.
그렇게 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일에 충성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