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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하늘의 공기, 그리스도의 호흡을 할 때이다.
육체적인 호흡을 하면 사망을 만지게 된다.
천상으로 올라가 예수님이 마시는 공기를 마셔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다.
모든 것의 실제되신 예수님 자신이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원한다.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왜 숨을 쉬고 있는가? 나의 삶의 본질, 실제는 무엇인가?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잘 모르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두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니 내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예수님만 믿으면 문제 없어. 이렇게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두 번째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로워지는데 이것만으로 가능한가? 불안한데... 그래서 나의 행위를 집어넣는, 노력을 끼워넣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도바울은 율법을 최고로 알았다.
그런데 행위에 중점을 가지고 있었고 부활도 믿는 영적인 사람이였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믿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를 죽이는데 동조를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사도바울의 입에서 이 말씀을 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나의 생각으로 읽으면 안된다. 성경을 쓴 저자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구하고 말씀을 볼 때 와닿는게 다르다.
그는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진다고 생각을 했다. 율법을 잘지키면 거룩해지고 의로워진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다.
율법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는 악한 것, 인간의 본질,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본성을 철저히 보게 된 것이다.
자기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 행위로 되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 '예수 그리스도로 되는 것이다.' 라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다 이루었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찌라도 믿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믿어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머리로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정말 아는데 왜 스스로의 의를 이루려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전도도 해야하고, 선교도 가야하고, 십일조도 정확하게 하고, 봉사해야 하고, 좋은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동기는 좋으나 그것으로 의로워질 수 있을까? 그것으로 의로워질 수 없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섬기고, 전도를 많이 하고, 선교가고, 봉사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의롭다고 하지 않는다.
어떤 행위로도 우리는 의로워질 수 없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행위를 하므로 의롭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더라. 그런 사람은 힘들게 신앙생활을 한다. 이것은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것이 없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가? 천국가기 위해서?? 아니다.
우리는 의롭지 않게 되면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의로워져야 천국을 갈 수 있고, 의로워져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의로워져야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있다. 죄인은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
어떻게 의로워지는가? 굉장히 심플하다. 그래서 은혜이다.
오직 믿음이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이루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내가 안해도 되는 것이다. 타종교는 스스로 의를 이루려고 하고, 나무에 매달려고 금식하고, 신을 기쁘게 해서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가고 있다. 그런데 크리스천도 그런 사람이 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믿는 것인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그분이 나를 위해서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내가 의로워졌고 나는 그분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나의 느낌은 상관없이 그분이 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나를 의롭게 하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나를 건져내셨다는 것을 분명히 믿어야 한다.
믿음은 무언가 노력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은혜에 감사해서 기뻐서 하고 싶어서 무엇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내안에서 하는 것이지 내가 스스로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한 마디로 그분으로 사는 것이다. 행위로 안된다는 것을 머리 속에 넣으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의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심판, 정죄를 많이 하는 것은 (복음주의는 은사주의를 심판, 정죄하고 은사주의는 복음주의를 심판, 정죄한다. 남편을 심판, 정죄하고 아이들을 심판, 정죄하고 나 자신을 심판, 정죄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그 마음 깊은 곳에 나는 의롭다는 것이다. 나는 괜찮다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너는 틀렸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어떤 행위로 의로워지고자 하는 것이 우리 안에 다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절대 심판, 정죄하지 않는다.
율법 아래 스스로 놓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사망아래 있게 된 것이다.
율법은 우리를 항상 사망으로 끌고 간다. 율법 아래 두었을 때 누구도 의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스스로 율법 아래 두니 죄인의 상태가 되기 때문에 기쁨과 생명과 평강이 있을 수가 없다.
심판, 정죄할 때 우리 마음 속에 평강이 없다. 옳고 그름을 지식 나무로 판단하기 때문에 기쁨이 없다. 우리는 독을 먹어버린 것이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무단히 노력하는 타락한 본성이 태초부터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비판하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증명하는 순간 우리는 율법 아래 나 자신을 두기 때문에 (갈2:16) 말씀을 어기는 것이 된다.
내가 어떤 행위를 통해서 절대 의로워질 수 없다.
오늘 우리가 이 심판, 정죄, 판단의 영을 축사받읍시다.
우리는 옳지 않습니다!! 주님만 옳습니다!!!
갈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율법이 죽었다는 것은 율법이 나를 좌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율법의 잣대로 내가 죄인이 되거나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벗어난 것이다. 율법과 내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율법 아래 있으면 무조건 우리는 죄인으로 낙인찍힐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율법을 향해 죽었니 율법이 나를 판단, 정죄할 수 없으니 내가 잘못해도 죄의식이 없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왜? 하나님 대하여 살기 위함이다.
두 생명이 살 수 없다. 하나님을 향해서 살려면 율법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 율법을 향해서 살려면 하나님 향해서는 죽어야 한다. 두 개가 동시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심판, 정죄할 때 기쁨이 싹 사라진다. 왜? 하나님 향하여 죽었고 율법을 향해서 살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율법을 향해서 죽었다고 한다. 왜?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함이다.
ex) 선교사님 간증 - 사역하다 보면 율법아래 있는 나는 이것도 실패하고 저것도 실패했어. 내가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고 능력이 나가겠어?? 이런 생각이 불쑥 든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실패와 실수도 하기에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때 말씀을 생각했다.
"그래! 나는 율법을 향하여 죽은 자야! 나는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만 살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지! 나의 어떠함이 아니야!
이런 믿음으로 하니 능력이 나가게 되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살리라" 이 말씀이 정말 신나는 말씀이다. 하나님 나를 통해서 사시니까. 이것보다 신나는 것이 없다. 이 말씀이 공명이 되고 새겨지길 축복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나도 못 박힌 것이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 같지만 죽어 있는 것이다. 또 죽어 있는 것 같지만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있다면 어떤 자가 살아있는가?
그런즉! 그렇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내가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지금부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기쁜 소식이다. 나는 실패하는 자이다. 나는 너무나 똥덩어리다. 주님 없는 나는 배설물이다. 그런 자가 산다고 하면 너무 끔찍하다. 그런 사람이 온 세상을 덮고 있기 때문에 너무 끔찍한 세상이 된 것이다. 예수가 살게 하면 너무나 다를텐데 예수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이 살게 하지 마세요. 끔찍한 나로 살게 하지 말라.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미 안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남편 직장으로 8년 동안 힘들 때 나 자신을 보았기에 나에 대한 어떤 소망도 없다.
정말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나는 믿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저를 봤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것이 나를 살리는 말씀이다. 복음 중에 복음이다.
나로 살고 싶지 않다. 나로 사니 좋은 것이 없고 되는게 없다. 어찌하던지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도록 계속 내어드리는 것. 그것밖에 내가 할게 없다.
기쁨과 평강과 권세와 능력이 거기서 나온다.
내가 다스리면서 살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닫고 주님 앞에 내어드리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파워풀하게 살 수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죽었지만 사는 것이다. 이것이 미스테리다. 우리는 카이노스다. 우리는 사는 것 같지만 죽어 있고 죽어 있는 것 같지만 살아있는 자이다. 우리가 죽은 것은 나의 육체사람, 예수가 없는 내가 죽은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나는 어떤 나인가? "나를 사랑하사!!"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 안에 고백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서" 이다. 예수님이 개인적이 되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이라는 것은 원어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믿음.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이다. 내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예수와 함께 죽었다. 그런데 사는 것은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이기에 자기 믿음이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자기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예수 안에 한 영이 되므로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안된다. 그런데 여러분은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라.
우리의 믿음을 버리라. 또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우리 믿음은 없다. 맞습니다. 예수 안에 믿음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만하신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믿음을 나의 것으로 취하면 된다. 왜 나를 바라보면서 내안에 믿음이 없니 있니. 그것을 보려고 하는가? 어차피 우리는 믿음이 없다. 내가 "아님"을 볼 때 우리 안에 "예수"를 보게 된다.
내가 일하고 믿을 때는 내 안에 진짜 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
이런 믿음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갈20: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폐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효화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율법으로 의로워지려고 하지 않겠다. 내가 최고로 생각했던 율법. 다 버렸다. 다 배설물로 여긴다. 나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로워질 수 밖에 없고 예수 안에만 소망이 있고 예수 안에 사는 나만이 실제다. 예수 안에서 내가 숨쉬고 예수로 호흡하는 것만이 나의 인생의 전부며 이것이 가치있고 실제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됩시다.
(성찬식)
주님 ~ 우리 안에 사시기 위해서 고통 당하시고 죽어주신 주님.
그분과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부활하고 승천하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안에 사는 것이 그분의 갈망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우리 안에 주님이 실제가 되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 안에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숨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숨쉬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를 마심으로 제안에 거룩한 피가 흐릅니다.
생명의 피가 제 안에 흐르므로 어떤 바이러스도 나를 폐하거나 약해질 수 없습니다.
저는 더욱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지고 더 영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적인 성찬식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에너지가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ABM, #에미꼬, #에미꼬순, #아브라함정, #낸시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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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할렐루야~~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믿음" 이 말씀이 어찌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저는 죽었기에 믿음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 안에 계신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삽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만하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 이것이 제가 할 일이라는 것이 너무 좋고 기쁩니다.
새로운 믿음의 세계를 열어주신 선교사님 감사합니다.
선교사님의 말씀은 언제나 너무 깊어서 내 영을 한걸음 더 위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십니다.
선교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아직도 내 안에 율법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나도 모르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내 모습이 있었음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아직도 죽음을 붙잡고 있는 나의 어리석음을 철저히 회개하며 생명되신 주님께로, 내 믿음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나아갈 것을 고백했었는데 이 말씀 을 다시 읽으니 늘 나의 죄된 모습을 깨닫게 하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선교사님께 다시금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선교사님의 설교 말씀은 우리의 영을 흔들어 깨우시는 강한 힘이 았습니다.할렐루야!!!
너무나 귀하신 선교사님 감사합니다!!
귀하신 설교 말씀을 잘 정리해 주신 간사님께도 깊이 감사드려요.
아멘~~나눠주신 간증으로 또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참으로 이런 제안에 거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이 계심이 감사합니다♡♡
마리아 간사님 늘 정리를 잘 해주셔서 목마른 분들이 와사 다시 퍼먹을수 있게 수고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 주 동안 말씀안에 거하시며 깊은 샘물로 저희의 목마름을 채워주시는 선교사님께 감사해용 😊 우리의 깊은 곳으로 거하시길 원하시는 주님께 감사해용 😊
아멘 아멘!!! 죽었다고 아는것과 믿는것의 차이에 대한 울림이 참 컸던 예배였는데 이렇게 수고해주신 말씀을 통해 한번 더 은혜받습니다
하나님 아들 안에 있는 믿음이 오늘도 ABM모든 식구들에게 강력한 믿음으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
아멘!!! 저는 죽었고 하나님 아들 안의 믿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겠습니다!! 🙏
아멘~
아멘!!!
내 믿음이 아닌 예수님의 믿음으로 전진 ~~~!!!
감사합니다
선교사님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나는 없어지고 제 안에 예수님이 가득함으로 너무 기쁩니다
생명이 넘칩니다
감사로 넘칩니다
내 혼과 육은 없어지고 오직 예수님의 사랑과 믿음으로 내 배에 생수가 가득채워 지도록 먹고 또 먹고있습니다
선교사님과 잘 정리해주신 간사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