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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께서 또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곧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둘러보는 데만 사흘길이나 되는 아주 큰 성읍이다.
4. 요나는 그 성읍으로 가서 하룻길을 걸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었다.
6. 이 소문이 니느웨의 왕에게 전해지니, 그도 임금의 의자에서 일어나, 걸치고 있던 임금의 옷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다.
7. 왕은 니느웨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하여 알렸다. "왕이 대신들과 더불어 내린 칙명을 따라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 떼든 양 떼든, 입에 아무것도 대서는 안 된다. 무엇을 먹어도 안 되고 물을 마셔도 안 된다.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굵은 베 옷만을 걸치고,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쳐라.
9.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나님께서 그들이 뉘우치는 것, 곧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요나3장)
1 Once again the Lord spoke to Jonah. 2 He said, “Go to Nineveh, that great city, and proclaim to the people the message I have given you.” 3 So Jonah obeyed the Lord and went to Nineveh, a city so large that it took three days to walk through it. 4 Jonah started through the city, and after walking a whole day, he proclaimed, “In forty days Nineveh will be destroyed!”
5 The people of Nineveh believed God's message. So they decided that everyone should fast, and all the people, from the greatest to the least, put on sackcloth to show that they had repented.
6 When the king of Nineveh heard about it, he got up from his throne, took off his robe, put on sackcloth, and sat down in ashes. 7 He sent out a proclamation to the people of Nineveh: “This is an order from the king and his officials: No one is to eat anything; all persons, cattle, and sheep are forbidden to eat or drink. 8 All persons and animals must wear sackcloth. Everyone must pray earnestly to God and must give up their wicked behavior and their evil actions. 9 Perhaps God will change his mind; perhaps he will stop being angry, and we will not die!”
10 God saw what they did; he saw that they had given up their wicked behavior. So he changed his mind and did not punish them as he had said he would.
*표적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께 정말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기적을 가까이에서 볼수록 예수님의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정체를 밝혀줄 더 확실한 표적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답하신 것입니다.
38. 그 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께 대답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에게서 표적을 보았으면 합니다."
3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요구하지만, 이 세대는 예언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아무 표적도 받지 못할 것이다.
40.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과 같이, 인자도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마12:38-40)
그 음란한 세대의 요구를 거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선지자 중에서 요나만을 유일한 표적으로 들어서 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요나가 무슨 표적을 보였을까?
말씀을 안 들었다가 고래 뱃속에 들어간 일 말고 알고 있는 표적이 없습니다.
요나하면 말씀을 삔질거리며 피해 다닌 선지자로만 알고들 있습니다.
단순히 고래 뱃속의 삼 일이 예수님의 무덤 속의 삼 일과 일치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은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요나도 크지만 당신은 요나보다 더 크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나 안에서 그리스도를 읽어 내야 할 것 같습니다.
1. 주께서 또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1 Once again the Lord spoke to Jonah.
*또다시
요나는 시종일관 하나님의 말씀을 저항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끝까지.......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고도 화를 참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요나를 찾아오셨습니다.
그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요나는 짐싸 들고 다이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 니느웨를 노골적으로 등졌습니다.
이유는 너무 간단했습니다.
니느웨는 치가 떨리는 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그 곳은 일본놈 수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원수 나라에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에게 전할 소식은 좋은 소식은 아니었습니다.
너희들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그는 배를 타자마자 그 배 밑창에 내려가더니 드러누워 잠자버렸습니다.
풍랑에 굴러다니면서도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죽든지 말든지!
그는 놀랍게도 그 살벌한 폭풍우의 이유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 턱이 없었던 사람들은 살겠다고 발버둥을 했습니다.
배에 있는 제 물건들을 바다로 모조리 집어 던졌습니다.
제 신을 불러댔습니다.
그들 보기에 그 풍랑에 드러누워 자고 있는 요나가 이상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도사가 아니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범상치 않는 풍랑을 저렇게 저항하다니.......
제비를 뽑으니 과연 이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이 이 배 밑창 도사가 말했습니다.
자신을 폭우 가운데 던지라는 것입니다.
뱃 속의 사람들은 요나에게 더럭 겁이 났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 도사를 바다에 던졌다가는 더 큰 재앙이 닥칠 줄로 알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풍랑에서 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요나의 말을 따라하자 그 말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신들의 전쟁에 끼어들었다고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지지자 큰 물고기가 그를 기다렸습니다.
그를 그대로 삼켰습니다.
고래 뱃속의 요나는 뒤집어지며 엎어지며 미역 줄기에 몸이 감기고.......
물고기가 그 요나를 바닷가에 토해 놓은 것입니다.
구역질과 함께 뒤섞인 요나에게 하나님은 또다시 그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2.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2 He said, “Go to Nineveh, that great city, and proclaim to the people the message I have given you.”
*요나 뿐
당시에 이렇게 다루기 힘든 요나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다른 사람은 없었을까?
다른 적임자는 없었습니다.
요나뿐입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부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스로 도망치고 있는 그 요나를 다시 부르신 것입니다.
이제는 말 좀 들으라고 그를 바닷가에 토해 놓은 것입니다.
저항하는 요나!
*니느웨
변치 않고 요나를 택하신 하나님은 변치 않고 그 장소로 요나를 보내셨습니다.
말도 꺼내기 싫은 니느웨!
원수의 나라!
니느웨만 아니었더라면 요나는 오히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을 것입니다.
다시스로 가라고 하시니.......
그런데 성부 하나님은 정해 놓고 그리스도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죄인 세상으로 가라.
*너에게 한 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도 그대로였습니다.
거기 가서 경고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망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만사형통한다고 하시지.......
사람도 요나 그 사람, 장소도 니느웨 그 곳, 죄를 돌이키라는 말씀도 그대로입니다.
3. 요나는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곧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둘러보는 데만 사흘길이나 되는 아주 큰 성읍이다.
3 So Jonah obeyed the Lord and went to Nineveh, a city so large that it took three days to walk through it.
*말씀하신 대로
이제야 요나는 말씀대로 한 것입니다.
니느웨로 갔습니다.
요나의 순종을 말하기 위해서는 고래뱃속을 반드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배밑창에서 저항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느니 풍랑과 함께 바다에 빠져 죽기를 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래 뱃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기로 정한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을 두고 땀이 피가 되도록 씨름했습니다.
그 수용이 쉬우셨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큰 성읍
그런데 하나님은 이 도시가 사흘길이나 되는 큰 도시라는 데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그만큼 많은 생명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그 많은 생명입니다.
그런데 요나의 관심은 그들의 죄입니다.
저것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적대하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 취급을 할 수 없는 악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보시는 하나님과 원수를 보는 요나의 대결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은 보시며 저렇게 더러워 보여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가치의 충돌이었습니다.
4. 요나는 그 성읍으로 가서 하룻길을 걸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4 Jonah started through the city, and after walking a whole day, he proclaimed, “In forty days Nineveh will be destroyed!”
*하룻길
요나는 사흘길을 하루만 갔습니다.
제대로 니느웨 사람들을 만나서 말씀을 전하려면 이틀길을 더 가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서울 가서 하라는 말씀을 거창에서 대전쯤 올라가다가 다 외치고 온 셈입니다.
아니 약속을 해 놓고 왜 이 모양인가?
그러니까 이런 말씀입니다.
요나가 고래 뱃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그 만남을 통해 100% 갈등이 다 해소되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일단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그래도 속에서는 갈등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 적용하자면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해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의 갈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엽을 감아놓으면 한 방향으로 정확한 딸깍거리며 돌아가는 톱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예수님의 갈등이 다 사라지고 만 것이 아니었습니다.
못에 박히신 후에도 그리스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부인하시고 거기에서 내려와 버리실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그가 했던 말입니다.
39.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를 모욕하며
40. 말하기를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나 구원하여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하였다.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함께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
43.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까,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시겠지."(마27:39-43)
그들은 십자가에 박히신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았습니다.
조롱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감정을 자극한 것입니다.
그 고통의 한계 상황에서 그의 의지를 좌절시키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학적 입증을 위해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기적을 동원하라고 했습니다.
겟세마네만이 갈등의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순간도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의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거부감의 현실과 그 용서의 이 양쪽의 무게가 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죄의 무게에 비교해서 용서의 무게가 더 컸을 뿐입니다.
죄에 대한 미움을 축소하는 것은 또한 은혜를 축소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피바다가 될 뻔한 것입니다.
그 계엄을 벌여놓고 그것을 계몽이라고 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죽음의 전쟁터를 벌여놓고 그것을 계몽의 교실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작자들입니다.
뉴라이트라는 무리들입니다.
니느웨를 두고 우리 편으로 해석하는 자들이 양의 탈을 쓴 마귀 무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뉴라이트란 최소한 기독교인들에게는 쌍욕인 셈입니다.
마귀의 소리입니다.
죄의 어두움의 무게를 없애 버리는.......
십자가가 별거 아닌 것처럼 여기는.......
니느웨를 두고 하나님의 백성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뉴라이트의 그 늙은 목사를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과거에는 새벽을 깨웠는지 모르지만 지금 한국 교회에 어두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기는 했지만 사흘길 중 하룻길만 순종한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갈등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다시 이르지만 마귀는 십자가의 무게를 목걸이로 귀에 구멍 뚫어서 달랑거리는 십자가 장식품의 무게로 여기게 하는 자들입니다.
사람 죽이는 계엄을 계몽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요나는 말씀을 순종했지만 그 죄의 무게로 발이 후들거렸던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갈등했던 것입니다.
*무너진다.
요나의 선언에는 니느웨가 왜 망하는지 그 이유가 없습니다.
또 대안도 없습니다.
요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속으로 한 가지 염려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백성들이 자신이 전하는 말씀을 제대로 못 알아듣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혹시 자신의 메시지를 제대로 알아듣고 그들이 회개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저것들은 망하는 것이 답이다.
그래서 그의 선언은 이렇게 불친절했던 것입니다.
밑도 끝도 없었습니다.
너희는 망하기로 정해져 있다.
5.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었다.
5 The people of Nineveh believed God's message. So they decided that everyone should fast, and all the people, from the greatest to the least, put on sackcloth to show that they had repented.
*그러자
그것은 하룻길의 선언이었습니다.
서울 가다가 대전에서 말씀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 불친절한 말씀을 듣고 일어난 일입니다.
기적입니다.
그것들이 말한 적도 없는 메시지의 핵심을 읽어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 옷을 입었습니다.
예수 믿고 만사형통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죄를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이 원수의 백성들이 엉뚱한 짓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읽어냈던 것입니다.
친절하게 전해 주어도 엉뚱한 짓하기 일쑤인데, 불친절한 내용을 꿰뚫어 보다니!
이 일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입니다.
기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니느웨 백성들의 위대함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12:41)
그들의 깨달음이 위대했습니다.
요나도 위대했습니다.
뺀질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요나보다 더 위대하셨던 것입니다.
6. 이 소문이 니느웨의 왕에게 전해지니, 그도 임금의 의자에서 일어나, 걸치고 있던 임금의 옷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다.
6 When the king of Nineveh heard about it, he got up from his throne, took off his robe, put on sackcloth, and sat down in ashes.
*왕
요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달은 것은 니느웨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자 백성을 보고 왕이 깨달은 것입니다.
백성들의 소식에 왕이 스스로 제 금보좌에서 내려와서 잿더미 위에 앉은 것입니다.
우리가 꼭 그 일을 경험했습니다.
왕이 계엄을 선언했는데 백성들이 그것을 계몽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밑에 사람들이 계엄을 계몽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왕은 감옥에 가 있습니다.
위에서 총 들고 양민을 학살하라고 하니 백성들이 총 들고 편의점에 들어가서 라면 사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아래의 사건이 결국 이 땅에 생명을 부른 것입니다.
아래에서 위로의 사건입니다.
요나가 이렇게 아래 사람들을 계몽시켰던 것입니다.
아랫사람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목사들의 사명입니다.
윗사람이 아닙니다.
아래 사람들에게 빤쓰 메시지가 통하니 빤쓰 목사가 있는 것입니다.
밑에 사람 여러분이 중요합니다.
한국 개신교회가 빤쓰 교회가 되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광화문에는 왜 가 앉아 있습니까?
7. 왕은 니느웨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하여 알렸다. "왕이 대신들과 더불어 내린 칙명을 따라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 떼든 양 떼든, 입에 아무것도 대서는 안 된다. 무엇을 먹어도 안 되고 물을 마셔도 안 된다.
7 He sent out a proclamation to the people of Nineveh: “This is an order from the king and his officials: No one is to eat anything; all persons, cattle, and sheep are forbidden to eat or drink.
*왕의 선포
왕이 옥좌에 앉아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선포했습니다.
폼나게!
알고보니 백성들이 먼저 실천하고 있던 내용에 불과 했습니다.
못난 대통령이 존재하는 것은 밑의 못난 백성 때문입니다.
왕의 정체가 바로 여러분의 정체인 것입니다.
*금식
왕의 요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식욕을 절제하는 금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죄란 인간의 욕구가 그대로 드러난 장소입니다.
사람의 욕구가 절제되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닦친 환경의 문제도 인간의 무절제한 소유 때문입니다.
비윤리적으로 소유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가 오직 그 무절제 때문에 죄입니다.
8.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 나가,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사5:8)
하나님은 일 가구 이 주택이 죄라고 하셨습니다.
더 엄청난 무절제는 과학 기술에 있습니다.
방금도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높이가 내 키에 못 미칠 것입니다.
크기는 내 책상만큼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기관총을 앞에 내민 로봇을 보았습니다.
카메라 눈깔이 사방으로 삥삥 돌고 있었습니다.
전쟁터에 그것이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굴에 숨어있던 러시아 병사들을 향해 방송을 했습니다.
기어 나와!
그 밑으로 러시아 병사들이 공포에 질려서 스스로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쇳덩이에게 감정이 있을 리 없습니다.
슬금슬금 눈치 보면서 사람 생명들이 쇳덩이 앞에 머리도 못 들었습니다.
오금을 절이며 기어 나온 것입니다.
순식간입니다.
이 쇳덩이 마음에 안 드는 순간 드르륵 갈겨버릴 것입니다.
제가 러시아 편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런 잔인한 문명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물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군인을 향해서 그런 짓을 해도 저는 분노할 것입니다.
이런 무절제의 극한입니다.
비참한 현실입니다.
금식하라는 것입니다.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굵은 베 옷만을 걸치고,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쳐라.
8 All persons and animals must wear sackcloth. Everyone must pray earnestly to God and must give up their wicked behavior and their evil actions.
*영적 사건
그런데 그 본능적인 욕구를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역행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절제력이 없으니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습니다.
노름꾼, 술꾼, 마약꾼, 전쟁꾼, 과학 기술꾼.......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그 사람을 통제하실 분은 유일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뿐입니다.
8.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8 Everyone must pray earnestly to God
*윤리 사건
초대 교회 당시 공무원들이 발령받기를 꺼리는 지역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이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거기 마을 사람들에게 뇌물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건은 윤리 사건입니다.
예수 믿고 부자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윤리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주를 분별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환상 예언하고 방언 잘 하나를 보고 식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성 문제를 일으키며, 거짓말을 일삼으며, 라스베가스에서 억대를 들고 노름하는 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 윤리가 그를 분별해 내는 더 확실한 근거인 것입니다.
8.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쳐라.
8 Everyone ~~~~ must give up their wicked behavior and their evil actions.
정치인에게 뇌물 주고 그 비윤리가 그 정체를 말해줍니다.
요나 때문에 왕은 백성들에게 이런 윤리를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9.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9 Perhaps God will change his mind; perhaps he will stop being angry, and we will not die!”
*멸망
요나가 전했던 것은 니느웨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들이 망할 것을 전한 것입니다.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제 운명을 모르는 것입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바로 그 생명의 문제를 전해 주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현실부터 알아야 합니다.
또 그 죽음을 결정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죽음을 결정하실 때는 명백한 기준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가능성(Perhaps)
9절을 다시 정독해 봅시다.
9.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9 Perhaps God will change his mind; perhaps he will stop being angry, and we will not die!”
우리의 생명과 또 멸망을 결정하시는 분이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시면 우리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지 않으시면 우리에게 죽음이 있습니다.
죽고 사는 가능성(Perhaps)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내가 결정하려 한다면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푸시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10. 하나님께서 그들이 뉘우치는 것, 곧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10 God saw what they did; he saw that they had given up their wicked behavior. So he changed his mind and did not punish them as he had said he would.
*보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죽고 사는 문제를 정하실 때에 여러분에게서 그 근거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이제 나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나의 죽고 사는 문제를 결정하시는가?
달리기 선수를 뽑는데 예쁜 사람을 뽑겠습니까?
달리기 잘하는 사람을 뽑지.......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보시고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10. 곧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10 he saw that they had given up their wicked behavior.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실은 나쁜 길(their wicked behavior.)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이 길에서 돌이키는지(give up) 여부를 보시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 짓을 하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윤리적 돌이킴을 유심히 살피시기 때문입니다.
*기준
하나님의 기준은 그 자리에서 임기응변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10.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10 as he had said he would.
이미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as he had said he would.) 그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하셨던 말씀을 늘 듣는 것입니다.
식당을 차려도 가게 주인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손님들이 짠 것을 좋아하면 짜게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단 것을 원하면 음식을 달게 해야합니다.
결국 우리의 생명을 좌우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요나
요나가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입니다.
요나의 눈에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이 훤히 보였습니다.
물론 그 말씀은 니느웨를 향한 무서운 경고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요나에게는 그것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이 재앙의 경보가 결국은 그들에게 복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원수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한 것입니다.
죽음보다 싫었던 것입니다.
그는 풍랑 속에서도 드러누워 버린 것입니다.
초지일관 죄인의 죄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2. 그는 주께 기도하며 아뢰었다. "주님,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서둘러 다시스로 달아났던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셔서, 내리시려던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욘4:2)
죽을 죄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내용성을 이른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람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죄를 묵인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걸으시고, 회초리질을 당하시고, 못 박히시고, 창에 옆구리를 찔리시고, 뺨을 맞으시고.......
그 죄의 1kg의 무게라도 간과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죄의식을 약화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요나는 죄에 대해 알러지 반응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죄보다 더 큰 무게의 십자가를 지셨을 뿐입니다.
야곱은 그 늘그막에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큰 아들 르우벤으로 시작해서 열 놈들!
그들이 함께 한 짓거리입니다.
그 때서야 드러났습니다.
그놈들이 그가 가장 사랑하던 아들을 죽여서 애굽에 팔아먹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 놓고는 어떤 짐승에게 잡혀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일생을 다 보내고 죽음이 가까이 온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아들놈들의 그 사건이 그대로 드러나 버린 것입니다.
26. 그들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이집트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야곱은 정신이 나간 듯 어리벙벙하여 그 말을 곧이들을 수가 없었다.
27. 그러나 요셉이 한 말을 아들들에게서 모두 전해 듣고, 또한 요셉이 자기를 데려오라고 보낸 그 수레들을 보고 나서야, 아버지 야곱은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다.
28.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 나의 아들 요셉이 아직 살아 있다니! 암, 가고말고! 내가 죽기 전에 그 아이를 보아야지!" 하고 이스라엘은 중얼거렸다.(창45:26-28)
내가 아버지였다면 이 벼락 맞아 죽을 놈들!
아버지는 이 열 아들을 용서하는 길 외에 길이 없었습니다.
그 아들 열 놈 중 한 놈이 입을 열더니 이런 죄쯤이야 하는 놈이 있었습니까?
계엄이 계몽이지!
그리스도 용서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그 죄가 가벼웠다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죄의 무게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그들이 용서를 받고 생명을 허락받은 순간까지도 그들의 죄의 무게를 그대로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요나를 통해서 예수님의 그 갈등의 현실을 그대로 보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요나보다 크신 분을 통한 구원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