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8일, ‘2016 새들 교육문화연구학교’ 아홉 번째 시간에는 ‘조선상고사(212~390쪽)’를 읽고 최근 나의 역사적 사건과 이번 '조선상고사'의 본문 중 연결되어 생각되는 사건을 모둠별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배움터 경당을 다니는 우리 모둠의 한 학생은, 이번 주 본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연애전쟁’(신채호 선생님이 이렇게 표현하셨다!)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친구(교육문화연구학교에 함께 하고 있는)와 나눴다고 했다.
조선상고사 357쪽에서 362쪽에 걸쳐 나오는 ‘연애전쟁’은 고구려 안장왕과 백제 한주의 사랑 이야기다. 사랑을 이루기 위한 안장왕과 한주의 지극한 노력이 담겨있는데, 결국 이 둘은 다른 이들의 간절한 사랑(안장왕의 여동생 안학과 고구려 장수 을밀의 사랑)으로 인해 맺어지게 된다. ‘연애전쟁’ 나눔 뒤로, 조선상고사에 등장하는 서동과 선화공주,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눔을 들으며, ‘녹색평론’에 실린 ‘시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이라는 제목의 글이 떠올랐다. 파블로 네루다의 사랑을 노래한 시가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고 혁명으로 인도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돈 파블로는 코뮤니스트였다. 그는 진정한 독립을 위한 라틴아메리카의 투쟁을 믿었고, 혁명을 믿었으며, 무엇보다 이 대륙의 통합을 믿었다. 아마도 그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기념비적인 시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의 제목은 ‘마추피추 봉우리들’이다. 이 시의 종결구는 장엄한 반역성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로 되어 있다.
내게 침묵을 달라, 내게 물을, 희망을 달라.
내게 투쟁과 쇠와 화산을 달라.
신체들이 자석처럼 내 몸에 달라붙게 하라.
내 혈관과 내 입으로 어서 오라.
내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내 피를 통해서 말하라.
그러나 이 강력한 울림에도 불구하고, ‘라 세바스티아나’의 기둥에 새겨지도록 선택된 것은 이 시가 아니었다. 그리고 파시즘의 어둠이 계속되던 오랜 세월 동안 젊은 남녀들이 끔찍한 독채에 저항하여 싸우도록 영감을 불러일으켜준 것은 이 시가 아니었다. 그들이 목숨을 걸로 칠레와 자유를 위해서 싸우게 한 것은 이 시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네루다가 사랑한 한 여성에게 바쳐진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운율들이 실제로 그 상징이 되었고, 저항을 위한 투쟁의 노래가 되었다.
… 다섯 번째 것은 그대의 눈입니다.
나의 마틸다여,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눈 없이 잠을 자지 않으렵니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그대의 응시 없이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대가 나를 지켜보기만 한다면
그대에게 봄을 드릴 것입니다.
녹색평론 134호에 실린 안드레 블첵의 글 ‘시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 중 일부
이 글과 지난주의 사건이 겹쳐졌다.
2016년 11월 12일, 오후 5시경, 시청역 2번 출구에서 바라본 광장의 모습, 주어진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뭐라도 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을 사람들의 모습은 가슴 속 뜨거운 무언가를 여러 번 꿈틀거리게 했다. 성난 민중의 물결이, 그 뜨거운 마음이, 사랑이 하나로 뭉쳐져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였다. 사랑을 포효하는 덩어리였다. 아직 함성을 지르지 않았는데, 이미 나는 시청역 2번 출구 앞에서 몸으로 포효하고 있었다.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포효. 더 이상 이렇게 살지는 않겠노라 외치는 소리 없는 포효. 입을 막으면 눈으로, 눈을 막으면, 숨으로, 피부로, 뚫린 곳이 어디든 쏟아져 나오는, 살 떨리는 포효. 광화문 광장을 향해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는 포효했다.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깃발 아래 또 다른 깃발이었다. 그것은 물결이었다. 이순신 동상 아래에서 출렁이는 파도였다.
사랑이 잠시 쉬어 간대요
나를 허락한 고마움.. 갚지도 못했는데
은혜를 입고 살아 미안한 마음뿐인데
마지막 사랑일거라 확인하며 또 확신했는데
욕심이었나봐요
난 그댈 갖기에도 놓아주기에도 모자라요
우린 어떻게든 무엇이 되어있건
다시 만나 사랑해야 해요
그때까지 다른 이를 사랑하지 마요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이승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그 날 광화문 광장의 사람들은 이 절절한 사랑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광장을 나왔던 이들의 마음이 꼭 사랑을 잃은 이의 마음을 닮아 있었다. 허락해 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 은혜를 입고 살아 미안한 마음, 갖기에도 모자라고, 놓아주기에도 모자란 자신이지만 어떻게든 다시 만나 사랑해야 한다는 이 절절한 고백은 그 곳에 있던 많은 이들의 고백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울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자신의 가슴을 치며 울고, 다시 일어서서 사랑하겠노라 다짐하며 울었다. 자성과 염원의 울음이었다.
시와 노래(풍월과 풍류)가 어떻게 우리를 울게 하는가, 시와 노래가 어떻게 우리들 가슴에 불을 지피는가.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 선생님은 화랑의 도가 다른 학문과 기술에도 힘을 썼지만 가장 힘을 기울인 것은 음악과 시가였고, 이를 통해 인간 세계를 교화(敎化)하려 했음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움직이는 시와 노래는 어떻게 지어지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을불’의 삶 속에 엿볼 수 있었다. 을불은 당시 고구려 왕(봉상왕)의 아우 돌고의 아들로, 봉상왕이 백성들로부터 신망받는 숙부 달가를 죽이고, 아우 돌고까지 사형에 처하자 그 화를 피해 도망하여, 갖은 고생 끝에 떠돌이 걸인이 되었다. 그러한 처지에서도 그는 요동을 꿈꿨고, 그가 신은 신과 그가 뿌린 풀이 그의 이름이 될 정도로 요동 땅을 두루 걸어 다녔다.
그 대왕이 그렇게 걸식을 하고 다닐 정도로 빈궁하고 곤고하였지만, 그는 항상 요동을 차지할 꿈을 가져서, 요동 각지를 다니며 걸식을 하면서도 산천의 험하고 평탄함과 도로의 멀고 가까움을 알기 위하여 풀씨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것을 길가에 뿌려 지나온 길을 기억하였다. 그리하여 지금도 요동 각지의 길가에는 「우글로」라는 풀이 많다.
그의 고단했던 삶이 그의 걸음으로, 간절했던 염원으로, 시와 노래로 승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시는 요동 땅을 걷는 것이었고, 그의 노래는 요동 땅에 풀씨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는 세상을 절절히 사랑했다. 그의 사랑은 빈궁함과 곤고함을 핑계대지 않을 정도로 절박했고, 요동이라는 땅을 꿈꿀 정도로 컸으며, 그가 신은 신과 뿌린 풀이 그의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실제적이었다.
신채호 선생님은 신라의 화랑제도가 고구려의 선배제도를 모방하여 만든 것임을 이야기했다. 선배가 된 자들은 한 집에서 자고, 한 자리에서 먹고, 앉으면 옛일을 이야기하거나 학문이나 기예를 배우거나 하고, 나가서는 산수를 탐험하거나, 성곽을 쌓거나, 도로를 닦거나, 군중을 위하여 강습하거나 하여 자신의 한 몸을 사회와 국가에 바쳐 어떤 어려움과 고생도 사양하지 않는다고 했다. (230쪽)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움직이는 시와 노래는 사랑하며 사는 삶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나의 삶과 '조선상고사''를 통해 배우게 된다. 나에게도 '선배'와 같은 삶이 허락되었다. 친구들과 한 집에서 자고, 한 자리에서 먹고, 앉으면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배우고, 나가서는 산수를 탐험하는 공동 생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제 사람들과 마음 다해 사랑하며 사는 삶으로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쓰련다. 내 삶이 다른 이들과 세상을 움직이는 시와 노래가 되게 하련다. 함께 이 길을 걸어가련다.
첫댓글 어디 한곳을 막으면 어디에서든 터져 쏟아져 나오는 포효..
우리의 삶이, 그렇게 살떨리는 사랑의 포효로, 간절함으로 살게 되길 바라고 바라게 됩니다.
부족하기에 함께하고, 함께하기에 충만히 채워지고, 그 충만함이 때를 만나 터져 쏟아나오는 삶을 허락하신이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