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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강해_17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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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과 절기 강해 제17과
1. 유월절(The Feast of the Passover): “성도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레23:4-5(1월 14일)
출애굽기 12장
출애굽 상황, 엄청난 속박과 학대
‘어린양’의 교리적이며 예언적인 중요성은 출애굽기 12장에 가서야 완전히 나타난다.
(1) 첫째로 ‘어린양’은 선택되어야만 한다(출12:3).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고 유지시키는 분이시므로
그분께서 스스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셔야만 한다.
출12:3의 ‘어린양’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고 있다(창22:8 참조).
그 ‘어린양’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
예수님은 ‘창세로부터 죽임 당한 어린양’(계13:8), ‘창세 이전에 예정된 어린양’(벧전1:19-20)이셨다.
(2) 둘째로 ‘어린양’은 흠이 없어야만 한다(출12:5).
여기서 우리는 완전하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다(벧전1:18-19).
그분은 죄를 알지 못했고(고후5:21) 죄를 짓지 않았으며(벧전2:22) 죄가 없었다(요일3:5).
이스라엘 백성은 니산 월 십일(1월 10일)에 ‘유월절 양’을 선택했고, 니산 월 제 십사일(1월14일)까지
그 양을 지켜보면서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했다(출12:3, 6).
시험의 기간
,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그 자체도 역시 시험의 기간을 포함했다.
사탄의 증언: 그는 광야에서 예수님과의 대면을 통해 그분이 하나님의 흠 없는 어린양임을 증언했다(마
4:1-11). 마귀들의 증언(막1:24), 유다의 증언(마27:4), 빌라도의 증언(눅23:4; 마27:24, 19절도 참조)
(3) 셋째로 ‘어린양’은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흠이 없다는 것이 완전히 판명된 후에 그 ‘어린양’은
반드시 죽어야만 했다(사53:7).
요1:29, 고전5:7
그 첫 번째 유월절 저녁에 수많은 어린양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출애굽기 12장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복수인 ‘어린양들’(lambs)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단수인 ‘어린양’(a lamb)으로 기록한다(6회,
3,3,4,4,5,21절).
살아 있는 양은 아무리 흠이 없어도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 그 자체는 비록 죄가 없고 흠이 없으셨으나 죄를 대속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 자체가 죄를 대속할 수는 없다.
계시록 5장(계5:3-8), 유다 지파의 사자는 ‘어린양’이다. 어린양에 대한 장로들의 노래(계5:8-9)
계시록 7장에는 구속받은 큰 무리가 나타난다. 그들은 교회가 휴거된 뒤에 구원을 받는 환난 성도들로
서 어린양의 피에 자기들의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들이다(계7:9-14).
(4) 넷째로 ‘어린양’은 대신 죽어야 하는 대속물이어야만 했다.
아담과 이브의 가죽 옷(창3:21)
아벨은 자신의 대속물로 죽임을 당한 양을 갖고 왔다.
‘대속’이라는 성경의 원리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이다(마20:28; 롬5:8; 고전15:3; 갈1:4).
유월절 어린양의 대속 사역에 관한 구절(고전5:7).
누구라도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자로 영접하면 그 순간에 ‘유월절 어린양’
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동참하게 된다(갈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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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강해_18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성막과 절기 강해 제18과
(5) 다섯 번째로 ‘어린양’의 피는 뿌려져야만 했다(출12:7). 출12:3
히브리인 아버지가 양을 죽였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구원받지 않았다. 문기둥에 그 ‘양’의 피를
발라야 했다. “내가 피를 보면 너희를 넘어가리라.”
신약시대의 성도들(saints)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해 선택된 자들이다”(벧전1:2).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달력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출12:2).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으려는 죄인이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라고 진실하
게 고백할 때 그는 다시 태어난다.
유월절이 있는 니산 월(月)은 모든 달들의 시작이 되었다
.
새로운 창조물(고후5:7).
우리 주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요3:3, 7, 9). 그는 새로운 출생을 모르고 있었다.
내 부모님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 나는 큰 아들로 첫 번째 태어났다. 동생은 둘째로 태어났으나
역시 이 세상에는 첫 번째 태어났다. 막내도 셋째로 났으나 역시 이 세상에는 첫 번째 태어났다.
성경은 사람이 한 번 이상 태어나는 것을 가르쳐 준다.
첫 번째 출생은 첫째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죽음의 선고 아래 놓여 있는 출생이다(롬5:12).
첫 번째 태어날 때 이미 우리는 첫째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죽어 있다(엡2:1).
그래서 두 번째 태어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두 번째 태어나는 것은 육신이 아닌 영의
탄생으로써 위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첫째 아담의 세대를 다루는 책이며, 신약성경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를
다루는 책이다(창5:1; 마1:1).
유월절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새로운 시작을 주신 날을 나타낸다.
우리가 다시 태어나는 그 날에 우리의 지난 과거는 다 지워진다.
히스기야 왕의 고백(사38:17), 다윗 왕의 고백(시103:12), 미가 대언자의 고백(미7:19)
유월절은 일곱 개 명절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바로 다시 태어난 삶의 시작이 된다.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므낫세와 에브라임, 아담과 그리스도
당신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개인의 구세주로 믿는가?
당신은 두 번째 태어났는가?
당신에게는 유월절이 있는가?(요5:24)
2. 무교절(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성도들의 성화를 위한 하나님의 준비”
레23:6-8(1월 15-21일)
두 번째 명절인 무교절은 유월절을 따라서 시작되었다. 유월절 어린양은 정월 십사일(or 13일) 해질
때 죽임을 당했다(레23:6). 해가 지자마자 십오일(십사일)이 시작되었으므로 첫째와 둘째 명절 사이에는
비어 있는 시간이 없었다. 두 명절이 밀접해 있었기에 신약에서 유월절은 무교절 안에 포함된 것으로
생각되었다(눅22:1).
유월절은 하루만 지키는 명절이었고 ‘어린양’의 죽음도 단 한 번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길게 지키는 명절들은 그것들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유월절은 반복할 필요가 없는 단 한 번의 사건인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다(롬6:10; 히10:10-12).
유월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보여 준다.- 34
반면에 무교절은 신자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행해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아무도 누룩을 치움으로써(무교절) 구원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았기에
(유월절) 누룩을 치운다는 사실이다.
무교절은 ‘7일’이라는 완전한 기간에 걸쳐 행해진 절기였다(레23:6; 민28:17; 신16:1-4).
누룩 없는 빵: 고난의 빵(신16:3)
‘유월절 어린양’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위한 기초인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다.
7일 동안 지키는 무교절은 하나님과 신자와의 교제의 바탕인 신자들의 생활을 나타낸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교제의 차이를 인식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우리의 구원의 최종적인 단계이다.
누룩이 없는 빵을 먹으라는 명령은 구속된 자들이 지켜야 할 의무를 보여 준다.
성결한 삶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새 관계를 즐겁게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다.
누룩은 성경에서 항상 악과 도덕적 타락의 상징을 쓰인다. 누룩이 있는 곳에는 썩는 일이 생긴다.
주의 만찬: 누룩 없는 빵, 포도 주스
유월절 양의 피가 뿌려진 집에서는 무교절을 지키는 7일 동안 항상 누룩의 흔적을 없애야만 했다.
신자는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작이다.
구속받은 자들과 구속하신 주님 사이에 달콤하며 거룩히 구별된 사귐이 있어야 한다.
누룩을 치우기 전까지는 아무도 구원의 즐거움을 완전히 누릴 수 없다.
신약과 구약 사이의 중요한 원리:
‘신약은 구약 안에 숨겨져 있고, 구약은 신약 안에서 그 의미가 드러난다.’
고전5:7-8
하나님 편에서 보면 유월절(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죄에 대한 모든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켰다.
무교절은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실제적인 성화와 교제의 시작을 상징한다.
https://youtu.be/OS1Gc7Af3CY?list=PL4P6SBDceLgE0HYwChUE4IlTYeyg69vk9
성막 강해_19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성막과 절기 강해 제19과
유월절은 구원의 교리, 무교절은 성화의 교리를 제시한다.
이 둘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또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성화는 구원이 이루어진 뒤에 일어난다(고전5:7-9). 성화: 성도들의 고민거리
무교절이 유월절 다음에 나오는 이유: 구원 다음에 성화가 온다.
‘성인’과 ‘성화’라는 명사, ‘성화시킨다’라는 동사는 모두 그리스어 ‘하기아조’(hagiazo)에서 나온다.
이것은 ‘나누다’ 혹은 ‘분리시키다’의 의미를 지닌다: 안식일(창2:3)과 성막과 그 안의 것들(레8:10)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성인들’(saints)(한국어 성경들은 ‘성도들’로 표기)이라고 부른다.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다(롬1:7; 고전1:2; 엡1:1; 빌1:1 등).
성도(성인)라는 단어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사용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여전히 죄를 지음)
로마카톨릭교회에서 이야기하듯이 성경의 saint는 거룩한 행위를 한 죽은 사람
을 지칭하지 않는다.
고린도 교회(고전1:2). 파당, 음행, 법정 소송, 우상 음식, 주의 만찬 등
성도들의 성화의 세 가지 단계
1. 위치적 성화: 어떤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그는 성화를 일으키는 성령님에 의해 단번에 하나님께
로 분리가 된다(벧전1:2; 살후2:13; 고전6:11).
2. 실제적 성화: 이것이 바로 무교절에서 강조되고 있는 점이다.
살전4:3-8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4-45; 19:2; 20:7; 벧전1:16).
예수님의 산상설교(마5:48)
실제적 성화는 위치적 성화와는 달리 배우는 과정을 통하여 개개인이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요15:3; 17:17: 성경에 있는 가르침을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며 우리를 분리하신
목적대로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게 된다.
https://youtu.be/PpjMeLdh91o?list=PL4P6SBDceLgE0HYwChUE4IlTYeyg69vk9
성막 강해_20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성막과 절기 강해 제20과
완전한 거룩함이 성화의 최종 목표이다.
하나님 한 분만이 완전히 거룩하신 분이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한 성화를
이룰 수 없고 완전한 성화라는 책임을 늘 깨닫고 산다.
완전 성화: 요한 웨슬레, 감리교, 성결교
끝까지 견디는 자, 구원을 잃는다는 교리
우리에게는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질 날이 있다(살전3:13; 요일3:2; 엡5:25-28; 고전15:51).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옛 생활의 거룩하
지 못한 행위에서 구해 내실 것도 계획하셨다(갈1:4; 고후5:15).
성경 속의 누룩
우리 주님은 가르치시면서 종종 누룩을 언급하셨으며 이것이 우리 신자들이 꼭 알아야 될 악의 원리임을
보여 주셨다.
1. 속이는 누룩(눅12:1): 위선자라는 단어는 연극배우를 위해 사용되었다.
신자인 체 행동하며 말만 하는 그리스도인은 바로 위선자이다.
우리 주님은 위선을 저주하셨다(마6:1). 위선자들(마6:5; 16-18; 15:7-8, 비교 사29:13).
바리새인은 율법의 글자대로 모든 일을 하려는 종교적 분파로서 분리주의자를 의미한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더욱 종교적이라고 믿었고 자기가 우월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눅
18:10-12; 마23:13-33).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시며 일곱 번이나 “화가 있을지어다”라고 저주하셨다(마
23장).
2. 속되게 하는 누룩: 속되게 한다는 것은 깨끗하지 못하게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도덕적 타락을 일으키는 누룩이다(헤롯의 누룩 막8:15).
헤롯의 비윤리적인 생활양식은 우리 주님을 죽이려는 그의 욕망과 그의 이복 형제였던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간음한 사실을 통하여 잘 나타난다(눅13:31-32; 마14:1-3).
헤롯의 누룩은 곧 세상을 사랑하는 누룩이다(요일2:15-17).
고린도 교회에서 도덕의 타락을 일으킨 누룩은 그곳의 비도덕적인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고전
5:7; 고후7:1).
3. 교리 부족의 누룩: (마16:6, 11-12).
a. 바리새인들은 마음속에 저주, 욕심, 질투, 시기, 육체적 욕망, 미워함이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겉으로 옳은 체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b.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가르쳤다(마22:23; 행23:6-8).
그들은 그 당시의 실존주의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삶이란 인간이 보고 느끼고 맛볼 수 있는
단순한 현재만을 의미했다. 그들은 지적인 사람들로서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몰랐다(마태22:29).
c. 분명히 고린도 교회에도 이런 사두개인들이 있었다(고전15:12; 딤후2:18).
부활을 부인하는 것이 그들의 교리에 있어서 가장 부족한 것이었다.
d. 갈라디아 지방에 있었던 ‘교리의 부족’이라는 누룩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율법주의의 영향
믿음을 통해 은혜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율법 아래 있는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여러 곳에서 이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갈2:19-21; 3:1-3; 3:25-26; 4:4-6;
4:9-13). 갈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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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강해_21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성막과 절기 강해 제21과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들로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들의 삶에서 누룩을 제거할 것인가?
우리의 갈등의 핵심 문제
, 출12장의 해결 방법, 출12:8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피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고 그 뒤 ‘어린양’을 먹어야 했다.
그 피로 구속받은 사람들만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다(출12:43-49).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면서
무교절을 지킬 것이다(출12:15;
레23:6).
a.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주님의 말씀(요6:53-54), 오병이어 기적: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됨
이 구절은 ‘주님의 만찬’을 뜻하지 않는다(때가 다르다, 고전11:23).
요한복음 6:53-54절에서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을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이것들을 상징적
의미로 사용하셨다.
b.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먹을 수 있을까?
요6:35: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그분을 먹어야만 함을 가르친다.
요한복음 6:51-56에서 절마다 한 번씩 여섯 번이나 그분은 자신의 살을 먹을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결론(요6:63): 성도들이 실제로 그분의 살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셨다
.
요한복음 6:63(내 말들)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기록된 말씀’(The Scriptures)으로 제시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을 구원할 능력이 있으며 또 그리스도인을 보존하며 강건케 하는 능력도 있다.
그것은 바로 우유이며(벧전2:2) 영혼의 양식이다(히5:12-14). 예레미야(렘15:16)
하나님의 자녀들의 실제적인 성화와 영적인 성장의 시작과 유지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데 달려 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먹을 때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을 먹는다.
이것이 무교절의 참된 의미이다.
누룩이 발견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출12:19): 심한 경우 교제의 단절, 죽음
누구라도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면 용서를 받는다(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바울 등).
삶에서 악을 제거하는 것을 거부하는 신자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가 있다(요일5:16).
물론 거듭날 때 얻었던 영생을 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그리스도인이 잃는 것은 육체적 삶이다.
그리스도인이 육체를 따라 살므로(롬8:13),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요15:2), 성령님께 거짓말하므로(행
5:1-6), 하나님께 불평하므로(민16:41-49), 아니면 도덕적인 죄에 빠지므로(고전5:1-8) 생명이 끊어질
수 있다.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 알고 행한 죄와 비밀리에 행한 죄를 고백하여 누룩을 우리의 삶에서 제거하자.
3. 초실절(The Feast of Firstfruits): 첫 열매 절기, “성도들의 안전을 위한 하나님의 맹세”
(레23:9-14, 1월 17일), 추수가 아니라 수확이다(가을이 아니라 봄에 거두어들인다).
구약의 절기들은 단지 이스라엘 국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구약과 신약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예언과 구원의 측면에서 폭넓은 말씀을 포함한다.
유대인들의 명절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넓게 성취된 하나님의 예언의 달력이다
.
그 달력 안에 있는 이 거룩한 날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다(골2:17).
유월절 연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집트 탈출을 기해서 7월을 1월로 바꾸시고 새 달력을 만드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묵은 달력의 처음 여섯 달은 첫째 아담의 자녀로서 영적으로 죽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서 소망이 - 38
없는 사람의 상태를 보여 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시작을 하셨다.
첫 번째 아담은 죄와 죽음을 가져왔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와 영생을 가져왔다(고
전15:22).
하나님은 새 달력을 제정하시면서 유월절 ‘어린양’이라는 기초(고전3:11) 위에서 이 일을 행하셨다.
갈보리에서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는데 만일 그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정말로 큰 비극이었을 것이다(히2:14-18).
초실절 즉 첫 열매 명절은 하나님의 예언의 달력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의 한 큰 사건
즉 죽음과 무덤에서의 부활을 보여 준다.
https://youtu.be/ra1o_8hiGOI?list=PL4P6SBDceLgE0HYwChUE4IlTYeyg69vk9
성막 강해_22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성막과 절기 강해 제22과
초실절이 별개의 명절이 되는 이유: 초실절의 날은 무교절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초실절에 행하는 일 즉 첫 열매의 단을 흔드는 것이 무교절에서 꼭 필요한
요소이므로 초실절을 별개의 명절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유월절은 정월 14일 해질 때 기념하였다. 무교절은 정월 십오 일부터 이십일 일까지 정확하게 만
칠일 동안 걸쳐 지켰다. 초실절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날인 정월 17일에 지켰다.
그러므로 시간상으로는 분명히 이 명절들이 겹치고 있으나, 이 세 개의 명절은 각각 다른 교리적/실제적
진리들을 강조하며 가르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 세 번째 절기와 그 앞의 다른 두 절기들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옮겨가는 동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초실절과 그 외의 다른 절기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야 기념할 수 있었다
(레23:10).
그 뒤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단순히 가나안 땅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그 땅을 정복해서
소유해야만 될 것을 확실하게 명령하셨다(신26:1-11).
종종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소유하지 못하며 또 그것들로 인해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육신으로 인해).
초실절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는 ‘청지기직’에 대한 교훈이다(레23:10-11).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예비하신 곳 즉 가나안 땅에 있었다(신8:7-10).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에게 번영과 풍성함의 땅이었다.
초실절에서 첫째로 배우는 교훈은 소유권에 대한 원리이다. 하나님은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
고 유지하시는 분이시며 그분의 백성은 그분의 청지기들이다(시24:1; 고전10:26, 28). 이생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다(딤전6: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은 그들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그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학2:8; 고전4:7).
잘 익은 곡식들의 첫 단들을 주님께 드림으로써 앞으로 수확할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헌금의 원리: 고후9:6-8
하나님께서는 우리 소유의 첫 번째 것들과 가장 좋은 것들이 그분의 것임을 우리가 인정할 것을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우선권을 갖고 계신다(잠3:9; 마6:33).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을 위해 빵을 굽기 전에 주님께 첫 단을 드려야만 했다(레23:14).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께 첫 열매를 드리기 전에 그 땅을 소유해야만 한 이유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하지 못한 것을 그분께 드릴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복(엡1:3), 구약의 복과 신약의 복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
신약에서 물질적인 복을 약속하는 말씀은 없다.
우리가 이 복을 우리 것으로 취하기 전에는 그분께 아무것도 드릴 수 없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소유권의 원리를 기억해야 한다.- 40
둘째, 초실절이 가르쳐 주는 좀 더 큰 교훈은 ‘신자의 안전’이다.
성도의 안전은 성도의 부활과 미래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예언의 달력은 유월절과 함께 시작되었다(출12:2).
유월절 ‘어린양’이신 우리 주님의 죽음과 유월절의 관계(고전5:7).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같은 편지에서 하나님의 예언의 달력에서 이루어지는
그 다음 사건을 보여 준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 그 뒤에 논리적으로 뒤따르는 사건은 죽음과 무덤으로부터의 그분의
부활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에 관한 신약성경의 대표적 부활 장이다.
고전15:22-23의 중요성
사도 바울이 선포한 복음 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 그리고 부활이 하나로 묶여
있다(고전15:1, 3-4).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음, 매장, 부활을 정리한 순서는 처음 세 개의 절기들을
지킨 순서와 같았다.
우리 주님께서 죽음에서 일어 나셨을 때 그분께서는 이미 죽었거나 이제 죽을 모든 신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첫 열매로 드리셨으며 이것은 곧 수확이 뒤따라 있을 것임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수확이란 무엇을 나타내는가? 예수님같이 죽음에서 일으켜져서 아버지 앞으로 인도될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 바로 그 수확이다.
“성경기록대로 그분께서 셋째 날에 일어나셨다”라고 했을 때 사도 바울은 레23:9-14를 염두에 두었다.
우리의 안전 보장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끝내 놓으신 일’에 달려
있다.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http://cafe.daum.net/Jesus-bible 예수그리스도안에서(카페)
http://www.keepbible.com/ 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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