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후... 경상남도 합천시.
관광객의 발걸음이 모두 끊어져버린, 깊은 밤 시간의 해인사.
시리도록 밝은 보름달의 빛은 경내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찌르륵거리는 벌레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올 뿐,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등불의 작은 불빛마저 보이지 않는 경내.
고요함 그 이상의 것이 감돌고 있다.
해인사의 대웅전 또한 고요함에 싸여 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쏟아져 나오는 환한 불빛이 있다.
환한 불빛이 비춰지는 대웅전의 문엔 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앉아있는 그 사람. 흡사 석고상처럼 보인다.
대웅전의 불상 앞에는 향 연기가 곧게 피어오르고 있다.
작은 공기의 움직임조차 없는지 연기는 직선으로 피어오른다.
긴장감과 평온함이 묘하게 섞인 대웅전 안의 공기.
순간, 연기의 움직임이 약간의 흔들림을 보인다.
그 흔들림은 점점 더 격해지더니 마침내 연기가 사방으로 번져 나간다.
흩어진 연기들은 일정한 방향 없이 계속 흐른다.
그렇게 대웅전 안을 떠돌던 연기 가닥들이 어느 순간 뭉쳐지는가 싶더니 참선 중이던 사람에게로 방향을 바꿔 흐르기 시작한다.
나뉘어졌던 연기의 가닥들은 어느새 한 가닥으로 합쳐져 그 사람의 주위를 감돌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아주 정확하게...
자아의식이 있는 듯한 연기의 움직임...
한참을 그렇게 감돌던 연기가 이윽고 한 형상을 이루어 나간다.
점점 뚜렷해지는 윤곽...
순간,
"어흠. 준희야, 안에 있느냐-."
인기척이 들림과 동시에 완벽한 형상을 이뤘던 연기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진다.
한 순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대웅전.
준희는 감고있던 눈을 뜬다.
"네, 선사님. 들어오세요."
준희의 대답에 인기척의 주인공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선다.
자상하면서도 위엄 서린 대각선사.
"여지껏 참선 중이었다니... 졸립지 않느냐?"
"아, 예. 잠자리가 그다지 편하질 않아서요. 자꾸만 불안해 지는 것이..."
"무엇이 그리도 불안하더냐?"
"모르겠어요. 그냥 이유 없이..."
"그래서 참선 중이었던 게냐?"
"예. 마음을 다스려보면 좀 괜찮을까 하고..."
"그래, 좀 괜찮아지더냐?"
"아뇨. 오히려 불안감이 더 커지던데요."
"그럼 참선은 그만하고 나와 함께 나가자꾸나."
"예."
이윽고, 대각선사와 준희는 함께 경내를 걷기 시작한다.
"참으로 고요한 밤이로구나. 그렇지 않느냐?"
"예? 아, 예..."
"달 또한 시리도록 밝구나... 저 달은 무수한 시간을 거슬러 왔을테지."
대각선사는 천천히 옮기던 발걸음을 멈춰선 채 달을 올려다본다.
그런 선사를 따라 준희도 달을 쳐다본다.
"준희야."
"예, 선사님."
"우리 선조들은 항상 저 달과 함께였느니라. 알고 있느냐?"
준희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선사의 어조가 질문 아닌 다른 무엇을 품고 있는 것 같아 그저 달만 쳐다볼 뿐이다.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어물거리는 준희를 남겨놓은 채 선사는 대웅전을 향하여 유유히 걸음을 옮긴다.
"저 달빛이 한스러움은 옛 선인들의 희노애락이 서려있기 때문이니라..."
선사의 목소리는 그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멀어져 간다.
남겨진 준희는 뜻 모를 선사의 말을 되뇌이며 다시 한번 달을 올려다본다.
여전히 밝은 빛을 내리비추는 달...
해인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