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근무한 지 반년이 조금 더 지난 때였다.
햇병아리 교사라 순수한 열정은 넘치나 학생을 다루는 기술은 부족했다.
중학교 3학년과는 아홉 살, 예절교육을 맡은 고등학교 3학년보다는 내가 여섯 살밖에 많지 않았다.
하루 일과는 교무회의로부터 시작했다.
특별행사가 있는 날은 회의가 더 길었다.
그날은 1학기 중간고사 첫날이라 학생주임교사는 감독 요령과 부정행위 적발을 특별히 강조했다.
선글라스를 쓰고 시험 감독을 하는 교사도 있었다.
어디를 주시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학생들이 감히 부정행위를 할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햇병아리 교사인 내가 선글라스를 쓰고 교실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교단에 서면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한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부정행위라면 커닝 페이퍼가 단연 으뜸이었다.
책상 속에 책을 펴놓고 몰래 꺼내볼 경우에 대비해서 책가방은 모두 교단 앞에 쌓아두게 했다.
옆 사람의 답을 훔쳐보는 경우를 막기 위해 옆줄은 다른 학년을 앉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행위가 가뭄에 콩 나듯 간간이 일어났다.
그날도 별다른 일이 없기를 바라며 두 뭉치의 시험지를 들고 배정된 교실에 들어섰다.
학년이 다른 두 가지 시험지를 인원수에 맞게 배부하고는 시신경에 모든 힘을 집중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교실에는 시험지에 연필로 글씨 쓰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나 내 바람이 무참히 깨지는 일이 도둑고양이처럼 은밀히 시작되고 있었다.
가운뎃줄 중간쯤의 학생이 시험지를 살짝 들추고는 뭔가를 보고 다시 답을 쓰기를 반복하는 것이 포착되었다. '커닝 페이퍼'라는 확신이 들어 조용히 그 학생 옆에 가서 시험지를 들었다.
역시나 작은 크기의 종이에 깨알 같은 글씨가 빈틈없이 적힌 커닝 페이퍼였다.
나는 시험지와 커닝 페이퍼를 압수해서 학생주임에게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교실의 모든 학생이 이 부정행위를 다 알게 되었다.
'얌전한 고양이가 먼저 부뚜막에 오른다.'더니 평소에 얌전해 보이던 여학생이다.
몹시 당황해하는 그 학생이 안 돼 보였지만, 학칙대로 처리했다.
"어쩌다가... 쯧쯧..." 사람 좋은 담임교사도 안타까워했다.
그 당시 부정행위에 대한 벌은 엄중해서, 이미 친 시험도 모두 0점 처리되었다.
그리고 3일간 정학 처벌을 받았다. 정학이란 그 기간 동안 집에서 반성하라는 벌이다.
한 번의 부정행위로 엄청난 벌을 받은 학생이 몹시 안타까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도 마음의 짐이 되어 아프고 괴로웠다.
시간이 흐르고 괴로운 감정이 조금 잦아질 즈음, 어느 날 느닷없이 교무실에 그 학생과 어머니가 나타났다. 학생주임교사 앞에서 무언가 일을 마치고 돌아서며 어머니가 딸에게 물었다.
"어느 선상(선생)이고?" 학생이 말없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자
"선상님(선생님) 때문에 우리 아아(아이)가 이 학교에 더 댕기지(다니지) 몬하고 전학을 갑니더."
입술을 앙다물고 눈엔 흰자위가 허옇게 보이도록 노려보는데 나는 가슴이 벌렁거렸다.
딸의 잘못은 간 곳 없고 모든 잘못을 감독한 나에게로 돌리는 그 어머니의 황당한 말과 섬뜩하리만치 원망 어린 표정에서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극도의 선택을 한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죄인처럼 듣고만 있었다.
처음으로 객지 생활을 하는 나에게 엄청난 사건이었다.
다 그만두고 집으로 가고만 싶었다.
꼭 그렇게 전학까지 가야만 했는지...
배운 대로 고지식하게 살아 아직 누구와 다투거나 언짢은 소리도 들어본 일이 없는 나에게 이 사건의 충격은 엄청나게 크고 오래갔다.
결혼 후 나는 불임으로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때 불현듯 그 일이 떠올랐다.
그들의 원망이 나를 저주하는가?
지금은 오래전 일이라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쓰고 있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악몽으로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지금쯤 그 학생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때를 잠깐의 악몽이라 여기고 모두 잊고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도 며느리와 사위를 볼만큼 세월이 흘렀다.
부정행위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고, 40여 년 전에는 아날로그식이었다면 지금은 디지털 시대에 맞게 IT 기술을 동원한 교묘한 방법으로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좋은 점수나 좋은 것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이 순간적으로 발동하면 누구나 부정의 함정인 커닝 페이퍼를 만들게 될 것이다.
2016.1.19
첫댓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도 사대 졸업하고 첫발령지에서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황스럽고, 자신과의 싸움으로 많이 망설였는데, 나중 조용히 불러서 얘기를 나누었죠.
이렇게 순수한 애들인데...
살아가면서 가끔 바른길이 맞는데 가야되나,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참 난감합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만약 그당시 경력이 오래되었다면 조용히 요령껏 처리할 수도 있었겠다는 때늦은 후회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학생주임의 말씀과 학칙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다른 학생과의 형평성에도 맞다고 생각했었죠.
그 교실 아이들이 알아버려서 더 어쩌질 못했죠.
그 뒷일이 그렇게 크게 되리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