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는 영웅이 있고, 그 영웅은 대개 남과 다른 생애를 살아간다. 또한 그가 태어나는 때에는 보통 용(龍)과 관련된 태몽이 있거나 이와 비슷한 기이한 태몽이 있게 된다. 그것이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든 아니든 간에 하여튼 영웅은 잉태되면서부터 남다르다.
태종대왕(이하 태종이라 함)의 삶은 난세가 만들어낸 영웅의 생애이다. 그가 있음으로 해서 조선이 건국되었고, 그가 왕위에 오름으로 해서 조선왕조 5백년의 기반이 다져졌다. 그리고는 왕위를 셋째 아들 충녕대군 즉 세종에게 선위하면서 더욱 그 틀을 공고히 하였다.
어느 누구라도 이러한 업적을 남긴 태종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태종의 56 년간의 생애는 이 점에서 충분한 역사적 조명을 받을 만하다.
태종공정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太宗恭定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의 휘(諱)는 방원(芳遠)이요, 자(字)는 유덕(遺德)이다. 태종은 태조(太祖)와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 사이에서 6남 2녀 중 다섯 째로 역사를 뒤바꿀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당당한 무인의 가문의 위세를 등에 업으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무력기반을 이미 갖추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역사의 시간은 일단 아버지 태조를 중심으로, 그 흐름의 중심부에는 태종의 힘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그가 주인공으로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무인이었던 태조가 물러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공민왕의 개혁정책이 신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대륙에서는 세계 대제국으로서 그 위세를 떨치던 원(元)나라가 주원장이 이끄는 명(明)에 의해 패퇴에 패퇴를 거듭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곧 공민왕의 실정과 죽음, 고려왕실의 정통성 시비,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 그리고 권세가들의 극심한 농민 침탈 등으로 인해 고려 4백년의 역사는 이제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태종은 1367년(고려 공민왕 16) 정미년 5월 16일 신묘에 함흥부(咸興府) 귀주(歸州) 사제(私第)에서 탄생하였다. 당시에도 오늘날과 같이 아들이 태어나면 점쟁이를 통해 아이의 운명을 알아보는 것이 일반적인 습속이었다.
당시 함흥부에서 유력한 집안의 안주인이었던 한씨(韓氏)는 인근에서 점을 잘 치기로 이름난 점쟁이를 찾아가서 태종의 사주를 내밀었다. 이 때 사주를 본 사람은 문성윤(文成允)이란 이름을 가진 이였는데 갑자기 그 사주를 보더니 모양새를 갖추고 한씨에게 공손하게 대답하기를,
“이 사주(四柱)는 귀하기가 말할 수 없으니, 조심하고 점장이[卜人]에게 경솔히 물어보지 마소서.”
라고 하였다. 한편 남은(南誾)은 태종(太宗)을 보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하늘을 덮을 영기(英氣)이다.”
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무인의 피를 타고 태어난 관계로 균형잡힌 몸과 강인한 체력, 그리고 그의 얼굴생김새와 군더더기 없는 그의 명확한 말솜씨와 문장실력,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그만의 흡인력을 두고 한 말이었다.
태종의 용모는 아버지 태조의 얼굴을 닮았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다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남들이 보기에 꼭 닮았다고 할 정도로 비슷했던 모양이다. 태조는 높은 코[隆準]에 용의 얼굴[龍顔], 그리고 뛰어난 풍채와 무인 특유의 의리와 결단력을 가진 제왕의 상이었는데 태종의 용모는 바로 이를 닮았던 것이다.
첫댓글 일석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답글없이 올리신 글 읽기만 했습니다.다 잊어버린 역사공부를 다시 하는 재미입니다.창에서 잠깐씩 뵈도 인사못드려 죄송했어요. 글이 너무길어 처음엔 지루하다 싶었는데 지금은 차근차근 감사하게 읽고있어요..건강하세요.소사드림
저두요..일석님...소사님의 꼬리잡고 들어왔습니다....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다시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워낙 역사에 어두운지라 혼자서 공부하다가 혹여 나와 같은 역사맹(?)들 이 보면 도움될까 하고 올린 건데 봐 주시는 님들께 제가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