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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송원(茶松園) 원문보기 글쓴이: 長樂山人 이종인
미학(美學, Aesthetics) & 미메시스(Mimesis)
#1. 미학사(美學史; History of Aesthetics) 고찰
들어가는 말
미학(美學; 라 aestheica; 독 Ästhetik; 영 aesthetics)이란 미적(美的; ästhetisch) 현상을 총체적으로 다루며, 예술에 대한 제반 문제까지 가치로서의 미(美), 현상으로서의 미(美), 미의 체험 등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 여러 학문의 상위에 위치하는 미 그 자체의 학문을 제창한 플라톤을 대표로 하는 서양의 전통적 미학은, 초월적(超越的) 가치로서의 미학을 주창한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 1714∼1762)의 미학을 중심으로 하는 미학사(美學史)의 고찰함을 위하여 수학적(數學的) 바탕의 인식론(認識論)이란 배를 빌려서 살피고자 합니다.
1. 미학(美學)의 근본문제
미학(美學; aesthetics)의 근본 문제는 ‘미(美; Schön)란 무엇인가?’로 귀결됩니다. 독일어에서의 미는 원래 ‘보는 것(Schauen, Anschauen)’과 어원적으로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보는 것, 즉 직관이나 관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미적(美的)’이란 창조(creation)와 향수(享受; appreciation)의 영역에서 ‘보는 일’의 원리와 연관 됩니다. 대체로 미는 넓은 뜻에서 미적인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미학(美學)을 의미하는 에스테티카(Aesthetica)는 그리스어 ‘아-스테시스(감각; Αἴσθησις)’(perception, understanding)에서 유래하였으며,‘미학(美學)’이란 학명(學名)을 최초로 부여한 학자는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 1714∼1762)입니다.
고급 인식 능력은 이성적 인식이며 개념적 인식인데 반해, 저급 인식 능력으로서의 논리학은 불명료하고 혼연한 감성적 인식입니다. 실질적으로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미학에 부여한 사람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입니다.
칸트는 근대 미학 사상을 완성하였고, 그로부터 현대 미학 사상이 비롯되었으나 미의 학이라기보다는 미적인 능력에 관한 비판을 논의, 미적인 학 대신 미적 기술 즉 예술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가령, 미의 학이 있다고 한다면, 증명 근거에 의해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않은가를 규정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에 관한 판단은 그와 같이 ‘학’에 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취미 판단(Geschmacksurteil)에 속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칸트에 의하면 미의 학은 있을 수 없고 오직 미의 비판 혹은 판정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미에 관해서는 오직 비판적 판정만이 있을 수 있으며, 이에 관한 학문적 탐구는 곧 취미 판단에 관한 ‘판단력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미학은 ‘미’라는 가치 영역뿐만 아니라, ‘예술’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예술학’, ‘예술 철학’ 및 ‘비평 철학’ 모두를 포함합니다. 미가 오직 예술에서만 구현된다거나 예술의 목적이 오직 미의 구현에만 있다고는 할 수 없을 지라도, 예술이란 미가 드러날 수 있는 주된 장소이다. 예술은 우리가 미를 발견하고 향수하며 체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이 되는 미학은 미와 예술은 특수한 상관관계를 갖습니다. 이런 이유로 때로는 미학이 곧 예술 철학과 동일시됩니다. 이에 근거하여 많은 예술 철학자들이 예술의 본질에 대한 정의(定義)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결국 미학 또는 예술 철학은 예술가들의 작업, 창작과 관련된 지적이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 예술 형태의 본질이 연구되고 그 성격이 규명되며, 그 상호간의 관계가 탐구됩니다. 예술 작품 혹은 미적 대상을 평가하고 감상하기 위한 기준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고, 도덕·종교·과학·경제활동·환경 등 인간의 다른 문화 영역들과의 관계를 분석 고찰합니다. 그래서 미와 예술에 관한 제반 문제를 탐구함으로써 사람의 삶을 풍요와 조화로운 삶의 경지로 이끌어 가므로 아름다운 영혼의 미적 문화 또는 예술 문화를 이루는 것을 미학의 근본 의의를 부여합니다.
2. 미학(美學) 이해를 위한 인식론(認識論) 이해
미학(美學; aesthetics)은 인식론(認識論; epistemology)을 매개로 이해하게 되는데, 인식론은 그리스어 ‘에피스테-메-(ἐπισήμη;episte-me-)’knowledge= 위에(높이)서 있음)’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인간의 인식의 기원·본질·한계 등을 연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 “인간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슨 권리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의 탐구대상이 인간이라면 인식론은 그 탐구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앎이란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식(認識; knowledge)이란 객관적 실재가 인간의 의식에 이론적으로 반영되는 과정과 그 결과, 인식은 인식과정의 결과로서, 넓은 의미로는 인간 지식의 총체를 말하며, 좁은 의미로는 일정한 범위의 대상에 대한 지식을 뜻합니다.
인식의 토대와 출발점은 어떤 신비한 인식충동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실천과 실천적 욕구가 인식의 발전 방향을 규정하며, 인식의 중요한 과제들도 실천에서 나옵니다. 자연 대상의 속성과 자연법칙에 대한 인식은 인간이 자연력을 생산에 이용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를 이룹니다.
사회발전의 법칙에 대한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적 생활과정을 의식적·계획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모든 인식은 직·간접적으로 결국 이와 같은 실천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 때 그것이 어느 정도 객관적 실재와 일치하는지가 입증됩니다. 실천은 인식의 정당성을 판가름하기 위한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기준입니다.
인간이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깥 세계를 알고 이해해야 됩니다. 오늘날의 문명과 문화와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세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과학의 성취로 인간은 세계에 관한 진리를 손에 쥔 것 같은 느낌을 갖지만, 인간은 언제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과학이 증명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그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 자신의 인식 능력을 탐구해야 할 필요에 직면하게 됩니다. 인식론은 지식에 관한 지식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식론의 역할과 다른 분야와의 연관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형이상학과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경험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형이상학적 탐구의 많은 부분들은 초월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포기되었고, 철학적 분석의 대상에서도 제외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세계의 일반적 구조와 그 궁극적 실재의 문제를 다루는 형이상학은 그것에 대한 앎의 문제를 다루는 인식론자들에게 주요 관심사가 된 것입니다.
지식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심리학과 인식론 사이에는 구분이 없으나 20세기에 들어와 심리학은 철학적 방법을 거부하고 경험과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식론자의 개념 분석은 인지에 대한 심리학자의 탐구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인식론자의 숫자·운동·외부대상들에 대한 어린이의 초기 인지형성이나 인간의 지각경험·기억·무의식 등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에서 도움을 구하게 됩니다.
심리철학은 최근 대략적으로나마 자신의 영역을 갖게 된 분야, 심리철학은 인식론의 문제 보다는 심신·자아·정신활동의 다양한 측면에 관한 문제들에 집중, 이를 위해 심리철학은 인식론과 심리학에서의 연구 결과들에 익숙해야하며, 인식론자는 심리철학의 연구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을 없게 되어있습니다.
논리학은 인식론과 별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논리학자들은 논리적 법칙들의 궁극적 근거나 상호 배타적 논리체계들의 양립 가능성 문제 등에 직면해 인식론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인식론자는 인간을 규정짓는 이성적·논리적 사유의 본성을 설명해야 합니다. 인식론적 분석에 논리학은 유용한 도구가 되며, ‘인식논리’와 같은 영역에서는 인간의 인지현상을 논리적으로 형식화하려는 시도도 이뤄집니다.
⑴ 현대 인식론의 쟁점은 ‘안다’·‘앎’·‘지식’이란 말 등의 용법을 포괄하는 하나의 정의를 내리기는 난해합니다. 인식론자들은 “무엇이 그러함을 안다”는 경우 명제적 지식에 관해서로서 명제적 지식은 “……을 할 줄 안다:, ”(누구)를 안다“, ‘왜 ……인지를 안다”, “(장소)를 안다”와 같은 지식과 구분됩니다. 인식론자들이 명제적 지식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명제가 진리 값을 갖기 때문입니다.
감각적 지각에서 감각자료 이론은 인간이 언제나 감관을 통해 사물을 본다면 참으로 보는 것은 실제의 사물이 아니라 감관에 주어진 감각자료라는 생각으로 유도 될 수 있습니다.
시공 속에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 사물의 세계로 생각되는데 이때는 외부적 물리적 대상과 실제 대상을 구분하는 경우 문제는 사물 연결되며, 감각자료를 보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실제 대상과 실제대상에 관한 지식을 이끌어 내는 가 이며, 감각자료가 물리적 대상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촉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고, 이 난점을 대처하는 방법은 데이비드 흄과 존 스튜어트 밀 같은 20세기 중엽의 경험주의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현상론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 현상론자들은 물리적 대상에 대해 현상 즉, 나타나 보이는 것에 대한 확신만으로 족하다고 봅니다.
② 현상론은 이미 물리적 대상을 전제
③ 대상이 나타나 보이는 방식이 무한 할 수 있고
④ 대상의 존재를 표시하는 문장은 정언적이고 진술문인데 반해 그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하는 환원문을 가언문으로 의미 손실 없이 환원될 수 없으며, 전후 현상론의 발전과 그 실패는 이 문제에 대한 급격한 전환이 필요함을 느끼게 합니다.
Ⓐ 보증의 차원으로 합리주의적 전통에서는 외부세계에 대한 확실성을 이성 능력 속에서 구하려 했습니다. 이성은 절대적 진리, 필연적 진리를 직관적·직접적 방식으로 증거를 제공한다고 생각 되었으나 단번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지적 직관 능력은 인간 지식에서 언제나 보이는 오류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면 합리주의적 이상은 회의주의에 빠지게 될 것인데 회의주의자는 확실한 지식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개연적 믿음의 가능성만을 받아들입니다.
개연적 지식에는 개연성의 정도가 개입되며 이 개연성의 정도를 결정하는 증거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됩니다. 증거는 감각적 지각이나 기억들로부터 추론,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얻은 정보들로서 증거가 적합유무 문제는 더 복잡한데 이는 그 적합성 결정의 기준이 문제가 됩니다. 증거의 적합성 여부는 상대적으로만 결정 될 수 있고, 상식적·합리적인 의견에 비추어 결정될 수밖엔 없으나 확실한 지식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정신행위에 대하여 현대인식론이 전통 인식론과 궤를 달리하게 되는 분기점은 언어적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사입니다. 인간의 사유가 언어로 이루어지기에 문제의식이 생겨납니다. 전통인식론자들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인지과정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현대인식론자들은 언어의 구조를 살피므로 인간의 세계에 대한 사유구조, 나아가 언어와 세계와에 관계를 밝히려합니다.
Ⓒ 합리주의적 방향에서는 칸트 이전의 합리주의와 칸트의 비판적 합리주의, 칸트 이후의 합리주의로 말하게 됩니다.
칸트 이전 고대 그리스의 합리주의는 플라톤의 형상이론에서 표현,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계를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 법칙과 영원한 구조, 질서를 이해하려 했으며, BC 6세기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數)’로 보려 했고, 파르메니데는‘부동(不動)의 일자(一者)’, 아낙사고라스는 이성 혹은 지력을 말하는 누스(nous)로, 형상(from, idea)에 관한 묘사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발견되고, 아름다움의 형상과 선(善)과 정의의 형상들이 <국가론>에서 논의되었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합리주의를 완화시키기는 하지만 거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윤리학>·<형이상학>에서 플라톤의 형상개념을 공격했으며, 스토아 학파·에피쿠로스 학파·그리스 회의주의자들의 현존하는 단편적 글에서서도 합리주의적 요소가 있으며, 제논·에피쿠로스·크리시포스·포세이도니우스·카르니아데스·에네시데무스에서도 발견됩니다.
교부철학자들은 추론을 중시 했고, 11∼12 세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에서 능동적 이성과 수동적 이성에 관한 논의에 관심이었고,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누스를 독립된 실체로 간주한 플로티누스와 그 이후 아라비아 철학자들의 견해를 거부하고 감각경험과 지성의 호혜적 관계를 인정했습니다.
Ⓔ 르네 데카르트는 현대 합리주의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의 합리주의는 <방법서설>(1637)에서 제시된 방법과 명석판명한 지식에 관한 설명에서 나타나며, 스피노자도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수학의 방법과 같은 엄밀한 방법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윤리학>(1675완성)의 제목이 말하고 있습니다.
Ⓕ 칸트는 18세기의 비판적 합리주의자로서 그의 주저 <순수이성 비판>(1781)은 합리주의에 대한 많은 비판을 담고 있는데,
① 철학적 방법은 수학적 방법과는 다름
② 감각적 경험이 사물에 대한 현상적 지식 제공
③ 감각적 경험을 넘어서는 영역에 대한 지식은 가능하지 않으며, 감성적 조건에 제한을 받지 않는 순수이성의 활동은 세계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확장해 주지 못합니다.
칸트의 언어는 라이프니츠-볼프 학파에 속했고 그의 사유 또한 합리주의적 경향을 나타냅니다.
④ 칸트 이후의 합리주의를 말하려면, 절대적 관념론은 헤겔에 의해 최초로 명확한 형태로 제시 되었습니다. <피히테와 셀링 철학 체계의 차이>(1801)는 그의 관념론의 근원을 밝혀줍니다. 헤겔에 있어 근본적 실재는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은 그것의 한 현현입니다.
헤겔은 절대정신은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자기실현을 향해 갑니다. 변증법은 논변이나 사유의 방식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세계의 운동 또는 발전의 논리를 구성합니다. 절대적 관념은 19세기 중엽 독일의 대학들에서 유행이었습니다. 이때는 걸출한 사상가는 배출되지 않았지만, 포이어바흐와 같이 헤겔 철학에 자연주의적 전환을 시도함으로 해서 마르크스 철학의 기초를 폈습니다. 20세기 초 영국에서는 브래들리, 미국에서는 로이스, 이탈리아에서는 크로체에 의해 절대적 관념론이 펼쳐졌으며, G.E. 무어의 실재론을 합리주의진영에 포함시켜도 무방하며, 엉뚱하지만 미국의 불샤드도 합리주의 철학자입니다.
⑵ 고대 그리스와 중세의 경험주의 방향의 인식론을 말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 초기 철학자들의 관심은 자연세계의 본질에 관한 것으로 무엇이 존재하는지, 존재의 기본 단위는 무엇인지 알고자 했으며, 그것이 물이나 공기, 불이 였으리라는 생각이고, 그들의 탐구 방법은 관찰과 관찰된 것에 대한 사변이었기에 경험주의자라도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테아이테스토>의 대화편에서 그는 “감각이 곧 지식이다”, “올바른 판단이 지식이다”,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이 지식이다”라는 얘기를 살피면 이들 모두를 부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수학자 테아이테토스는 감각이 지식이라고 주장, 관찰자에게 드러나는 그대로가 사물이라는 생각은 프로타고라스·소피스트들·소크라테스도 이에 동정적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감각 경험의 중요성을 말하여 “감각적 지각없이는 배움도 이해도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 중세 철학자들은 13세기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때가지 그 당시 철학의 유일한 목표는 합리적 논의를 통해 그리스도교적 믿음을 정당화하기에 자연과학은 정체되었습니다. 알베르투스는 대상에 관한 지식 획득에서 감각적 관찰이 지니는 역할을 말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수제자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이어졌습니다. 아퀴나스는 간혹 비판적이기는 했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주의 성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상한 흐름은, 자연과학은 이들 도미니쿠스 계통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들이 아니라 이들에 대한 비판세력이었던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한 프란키스쿠스 계통의 플라톤주의 수학자들에 의해 발전 했습니다.
14세기에는 둔스 스코투스가 명명한 구체적 ‘개별성(thisness)’이 자리를 잡았으며, 오컴은 감각적 직관을 통한 개별적 존재에 관한 앎을 지식의 근본으로 말합니다.
Ⓑ 근대와 현대의 경험주의는
① 17세기 초기 선구자들 즉 프랜시스 베이컨은 후기 저서 <신기관(Novum Organom>(1620)에서 새로운 과학을 위한 새로운 과학을 위한 방법론을 제시했으며, 데카르트와 동시대인으로서 에피쿠로스 철학의 부활을 꾀한 가상다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그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② 고전의 영국의 경험주의자들 얘기는 <인간 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서두에서 인간의 마음은 백지와 같은 것으로서 타고난 능력은 갖고 있지만 생득적 관념은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로크의 표상이론은 ‘지각의 베일’을 통하여 대상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로크의 경험론은 당대의 여러 비판자들 중 버클리에 의해 난점이 부각되었는데, 관념이 물질세계를 표상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물질세계에 대한 지식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③ 경험주의에 대한 평가와 현대적 경향들은 18세기의 평가에 의하면 경험주의자들에 대한 보다 풍부한 고찰은 토머스 리드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리드는 경험주의자들이 감각과 지각을 구분하지 않을 것을 비판하면서, 버클리와 흄은 상식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18세기의 의사인 데이비드 하틀리와 산소 발견자 조지프 프리스틀리 등 유물론자들은 콩기야크의 감각주의를 지지, 그들의 주장은 생리학·심리학에 가까웠습니다.
19세기 실증주의도 경험주의의 한 분파인데 창시자 콩트는 <실증 철학강의(Conrs de philosophie positive)>
(1830∼42)에서 실증주의의 원리들을 발표했는데, 그는 과학과 기술 발전에 주목하여 새로운 과학인 사회학에 자연과학의 방법을 적용해야 함을 주장, 영국에서는 밀이 경험주의의 단순성을 비판, 이 학파에는 칼 뒤링과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 프레게·러셀·화이트헤드·빈 대학의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 슐리크·카르나프·바이스만·노이라스 등이 있습니다.
⑶ 인식론에서 합리주의적 입장과 경험주의적 입장은 강조점이 다르긴 하지만, 사유작용은 인정합니다. 사유는 이성도 아니고 감각경험도 아닌 것으로서, 전체 인지 경험의 부분을 이루고 있기에 개념적 사유라 명명하겠습니다. 로크는 사유의 대상인 개념 ‘일반관념’이란 일반 단어를 갖는다고 생각했습니다.
⑷ 인식론자들은 언어 문제에 관심을 보입니다. 사유 속에서 ②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반명사로 표현되는 보편자의 존재는 여러 세기에 걸쳐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형상론 혹은 이데아론을 발전시켰습니다. 보편론자 논쟁은 3세기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 중 포리리, 5세초 로마의 보이티우스를 거쳐 11,12세기에 심했고, 13세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 많이 받아들여졌고, 14세기에는 보편자는 사유 혹은 개념 작용 속에 추상으로, 이름으로만 존재한다는 견해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를 유명론(唯名論)이라고 하는데,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유명론에 가깝습니다.
근대에는 경험주의자들은 보편자를 경험에서 추상개념으로 간주, 합리주의자들은 어떤 보편자들은 선험적으로 알려진다고 주장, 현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실재론과 개념론이 많이 받아들여졌지만, 실증주의자들은 유명론을 제창, 한편 관념론자들은 수리논리주의 학파의 일원들은 플라톤적 실재론을 내세웠습니다.
① 일반명사가 사유 안에서 사용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
② 속성과 그것이 속하는 사물 사이의 연관이 어떠한 것인지를 규명해 줄 속성에 관한 탐구 ③ 속성들의 동일성 혹은 유사성에 대한 설명
④ 개념활동 안에 내재하는 성향적 요인들에 대한 규정
⑤‘개념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필요로 합니다.
인식론자에게 중요한 문제는 인간 사유에 존재론적 적합성을 확립하는 이론에 대한 필연적인 근거를 그러한 보편자 이론이 제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논의는 서양 철학의 입장에서 제언한 것이고 개략적으로 인식론을 살펴본 것입니다. 이외에도 도덕적 의식과 미적 가치 평가에 대한 논의에서도 인식론적 문제를 추출할 수도 있는데, 필자가 인식론을 말한 것은 미학을 접근함에 있어서 인식론적인 도구를 통한 접근 시도를 위해서 미학을 이해하려고 인식론을 본 논문에 도입한 것이고, 본 인식론은 Macropaedia의 논문을 기축으로 하였음을 밝힙니다.
3. 미학은 미와 예술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
미학(美學; aesthetics)은 미(美)와 예술(藝術)을 그 대상 영역으로 삼고 있는 학문입니다.
내용면에서 예술(fine arts)이란 인간이 수행하는 많은 활동들 중 어느 특수한 사물의 제작이나 혹은 내적 경험의 표현과 같은 창조적인 활동 및 그 결과로서의 작품을 지시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미(美; beauty)란 진(眞)이나 선(善) 더불어 인간이 추구하는 많은 가치들 중의 하나를 지시하는 개념,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 두 개념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긴밀하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는 예술에 국한된 개념도 아니었으며, 18세기 이전까지는 예술이란 말이나 그 말로 대변되는 일정한 체제도 없었던 만큼 예술이라는 말의 형성은 근대적 사고의 소산입니다.
이것은 전통적 리버럴 아트(liberal arts)의 체제에 포함되어 있던 음악과 르네상스 이후 동류의 활동으로 간주 된 시와 회화·조각·건축 등 5개의 긴간 활동들이 미를 목적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어법이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로부터 예술의 목적은 미이며, 미는 예술에 의해 추구되는 가치라는 식의 긴밀한 관계 성립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미학은 미를 추구하는 예술활동과 그에 관련된 미적 인성교육이라는 고유한 영역을 다루는 철학의 한 형식적인 교과로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미와 예술과의 관계가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꼭 등식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자연의 미나 인간의 미가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예술만이 아니라 숭고한 예술, 심지어는 추한 예술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미학의 대상 영역에 대한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어서 그 모두를 통일하는 기초로서의 미적 경험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게 된 것입니다. 이 미적 경험은 미적 대상·그것이 예술이든, 자연이든 간에 대상 그것이 미적 지각 또는 미적 태도로부터 미적 가치가 생긴다는 구조를 가진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미학의 기본 과제는 미적 경험, 즉 어떠한 미적 대상으로부터 어떠한 미적 가치를 가지게 되든 그것의 특징적 성격을 해명하거나 분석하는 일로서, 미적 가치가 의식적으로 추구되는 예술 현상이 주된 탐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적 경험이란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일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것은 미적 대상을 전제로 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미적 경험을 갖게 되는 미적 대상으로서의 예술 작품이 객관적인가 하는 또 다른 문제가 파생됩니다.
따라서 그것의 지각 역시 객관적인 것인가? 문제가 제기되는 수순을 밟습니다.
4. 미학을 발전시킨 사람들
미학이라는 말을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라이프니츠-볼프 학파(Leibniz Wolffische Schule)의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 1714∼1762)입니다. 바움가르텐은 독일 계몽기 볼프학파의 철학자, 베를린에서 태어나, 할레대학에서 볼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동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었다가, 나중에 프랑크푸르트 안데르 오데르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볼프의 이론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전개한 우수한 교과서를 많이 썼으며, 칸트는 대부분을 강의 부독본으로서 평생 사용하였습니다. 그 자신의 업적으로서는, 미학(美學)을 처음으로 철학의 독립된 부분으로 나누고, 스스로도 시문분석(詩文分析) 등으 비롯한 미학체계를 전개함으로써, 근대미학사(近代美學史)에 큰 공적을 남겼습니다. 주요 저서는 <윤리학> (1740), <미학>(2권, 50∼58)이 있습니다.
⑴ 바움가르테는 그 때까지 이성적 인식에 비해 한 단계 낮게 평가되고 있던 감성적 인식에 독자적인 의의를 부여하여 이성적 인식의 학문인 논리학과 함께 감성적 인식의 학문도 철학의 한 부분으로 수립하고, 그것에 미학(美學)이란 말 에스테티카(Aesthetica)라는 명칭을 부여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美)란 곧 감성적 인식의 완전한 것을 의미하므로 감성적 인식의 학문은 동시에 미의 학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여기에 근대미학의 방향이 개척된 것입니다. 고전미학은 어디까지나 미의 본질을 묻는 형이상학이어서 플라톤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초감각적 존재로서의 미의 이념을 추구하였습니다.
이에 반해서 근대미학에서는 감성적 인식에 의하여 포착된 현상으로서의 미, 즉 <미적인 것(das Ästhetische)>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미적인 것>은 이념으로서 추구되는 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의식에 비쳐지는 미입니다. 그러므로 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근대미학은 자연히 미의식론을 중심으로 해서 전개되게 됩니다.
⑵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독일의 철학자, 프랑스 혁명과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서 그 이전의 서유럽 근세철학의 전통을 집대성하여, 그 이후의 발전에 새로운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그 영향은 여러 가지 형태로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어, 근세 철학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의 한 사람으로 말합니다.
마구(馬具) 제조업자인 아버지로, 경건하고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로 동(東)프로이센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고향의 대학에서 수학하고 모교의 교수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이민을 가까운 조상으로 한 변경(邊境)의 소시민 가정에서 성장한 칸트는 프리드리히 대왕 시대의 계몽적인 시민육성책의 혜택도 받을 수 있었던 지리적·역사적 조건이 그의 철학으로 하여금 독일적 특수성을 떠나 참다운 <세계시민적>인 철학이 되게 하는 조건 을 형성하였습니다.
대학 재학 중에는 신학·철학을 비롯하여 여러 학문을 배웠으나, 특히 당시의 신사상이었던 뉴튼 물리학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이 방면에 대한 연구는 대학을 마친후 10년이나 모교의 강사직을 얻은 1755년에 <천계(天界)의 일반 자연사와 이론(Allgemine Naturgeschichte und Theorie des Himmels)>으로 결실을 보았습니다.
이 저작에서 그는 뉴튼 물리학의 모든 원리를 확대 적용하여 우주의 발생을 역학적(力學的)으로 해명하려고 시도하였는데, 후일 <칸트-라플라스의 성운설(星雲說)>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뉴튼의 방법의 철저한 적용이라는 대담한 시도는 목적론적 세계관에의 귀의(歸依)와 표리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그것의 바탕 위에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는 일면을 갖습니다.
여기에 내포되는 모순이 의식에 떠오른다면 그것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위기에서 칸트를 건진 학자는 루소입니다. 루소는 칸트로 하여금 문명에 침식되지 않은 소박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하고, 여기에다 그 후의 모든 사상적 노력의 숨은 기초를 뿌리 내리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뉴튼, 루소를 두 개의 기둥으로 삼고 흄을 부정적 매개체로 하여 중세 이후의 전통적 형이상학을 그 밑뿌리까지 파고 들어가 전면적 재편성을 시도함으로써 비판철학을 낳았습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 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에서 뉴튼의 수학적 자연과학에 의한 인식구조에의 철저한 반성을 통하여, 종래의 신(神) 중심적인 색채가 남아 있는 형이상학의 모든 개념이 모두 인간 중심적 4인, 즉 넓은 의미에서의 인간학적인의미로 바뀌어야 되는 이유를 들고, 다시 나아가서 일반적·세계관적 귀결을 제시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여 인간적 인식이 성립되는 장면을 해명해야 할 인간학적 형이상학을 새로 수립하는 일을 통하여, 종래의 신적 형이상학(神的形而上學)이 이론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이유를 제시한 것입니다.
제 2의비판서인 <실천이성비판(實踐理性批判;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1788)에서 칸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율적 인간의 도덕을 논하고, 실천의 장(場)에서의 인간의 구조에 불가결한 <요청(要請)>이라는 형태로 신(神)·영세(永世) 등의 전통적 형이상학의 내실을 재흥시켜 그것이 새롭게 인간학적 철학에서 점유할 위치를 지정하였습니다.
종교를 도덕의 바탕위에 두는 이 구상(構想)은 그 후의 <종교론>(1793)에서 다시 구체적으로 전개 되었습니다.
이상 두 개의 비판서에 의해 명백해진 인식과 실천이라는 두 개의 장면을 매개하고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장(場)의 구조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새로운 인간학적 철학을 종결짓고자 구상된 것이 제 3의 비판서인 <판단력비판(判斷力批判; Kritik der Urteilskraft)>(1790)입니다.
여기서 칸트는 미(美)와 유기체(有機體)의 인식이라는 장면의 분석을 통하여 목적론적의 인식의 구조를 명백히 하고, 또한 목적론과 기계론의 관계라는, 일생의 과제이며 동시에 세기적 과제에 비판적 해결을 부여하여 스스로의 철학적 노력을 결말지은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3권의 비판서에 의해 그 토대가 놓여진, 비판철학의 사상과 밀접하게 관련하여, 또는 그 위에 기초한 사고(思考)를 전개한 기타의 주요한 저서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의 해설판이라 할 수 있는 <프로레고메나(Prolegomena)>(1783),<실천이성비판>에 앞서 비판적 논리학의 기본구상을 기술한 <도덕형이상학원론(道德形而上學原論;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1785), 이것에 기초한 법철학·도덕철학의 구체적 체계를 전개한 <도덕형이상학(Metaphysik der Sitten)>(1797), 그 자매편으로서 자연철학의 체계를 전개한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원리(Metaphysische Anfangsgrϋ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와
<인간학>(98), <자연지리학>(1802)은 칸트의 박식한 실제적 지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칸트의 철학은 3권의 비판서 간행 후 얼마 안 되어 전 독일의 대학의 논단을 석권하였고, 피히테에서 헤겔에 이르는 관념론 철학의 선두 주자로서의 그들의 모태적 역할을 하였으며, 그 영향은 영국·프랑스의 이상주의 철학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특히 후일 독일 신(新)칸트학파의 철학은 칸트의 비판주의의 직접 계승을 지향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신칸트학파 퇴조 후에 나타난 많은 철학 조류도 모두 직·간접으로 칸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관언이 아닙니다.
④ 칸트의 이와 같은 인생론적인 전반적인 살핌으로 볼 때에 칸트는 감성적 현상으로서의 미적인 것을 탐구하는 방향은 당연히 경험주의와 결부됩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독일 관념론의 사변적(思辨的) 미학을 대신하여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사례를 근거로 하여 미의 이론을 구축해 나아가는 경향이 현저해졌습니다.
⑶ 페히너(Gustar Theodor Fechner 1801~1887)는 독일의 물리학자·철학자, 드레스덴 근처의 그로스제르헨에서 출생, 드레스덴 대학과 라이프리치히 대학에서 의학·물리학·철학을 공부한 뒤 라이프리치히 대학의 물리학 교수와 철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물리학자로서는 자극과 감각과의 강도의 관계를 양적으로 연구하고 <페히너의 법칙>으로 알려진 공식을 정리하여, 정신물리학 및 이후의 실험심리학의 개조(開祖)가 되었습니다.
페히너는 이와 같은 실증과학을 토대로 당시 유행하던 실증주의·유물론(唯物論)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고, 오로지 스피노자적 물심평행론(物心平行論)에 바탕을 둔 신비주의적·사변적(思辨的)인 실재론적 유심론(實在論的唯心論)의 철학을 설파하였으며, 심리학적 실험미학(實驗美學)의 개조(開祖)로서도 유명합니다. 주요저서로는 <정신물리학원론(Elemente der Psychophysik>(1860) <실험미학(Zur experimentellen Ästhetik)(1873) <최고선(最高善)에 대하여>(1846) 등이 있습니다.
페히너는 <아래로부터의 미학>을 제창하면서 심리학의 입장에서 미적경험의 제법칙을 탐구하려는 <실험미학>을 주장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또 미적 현상의 해명에 사회학적 방법을 적용시키려는 <사회학적 미학>이나, 분석철학의 언어분석 방법을 미학에 적용하려고 하는 <분석미학>등, 다채로운 연구분야가 개척되어 가고 있습니다.
5. 오늘에 이른 미학(美學)
앞에서도 언급한 것같이 미학(美學)은 예술·자연·인생 등 경험되는 다양한 미를 미적(美的)이라 총칭하고, 이 미적 현상이 지닌 본질이나 법칙성을 명백히 하는 학문을 미학이라고 대략 말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이론적 반성 그 자체는 고대 그리스에 비롯되는데, 고대에서는 진(眞)·선(善)·미(美) 등의 가치가 서로 관련되고, 그 일치가 이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미에 대한 단독의 학문은 없었습니다.
중세에서는 그러한 모든 가치가 종교적인 거룩함의 가치에 지배된다고 규정되었기에 미의 문제는 신학적(神學的) 반성의 일부로 나타났습니다.
근세에 들어와 그러한 가치부문 분립의 자각에 수반하여 독립된 미적 대상 영역을 다루는 학문으로서의 미학 발아하여 18세기 중엽 독일의 바움가르텐(A.G.Baumgarthen; 1714∼62)에 의해. 진리에 대한 이성적 인식의 학문인 논리학에 대해 미학은 미에의 감성적 인식의 학문으로서 에스테티카(easthetica)라는 이름으로 철학의 한 부분에 설치된 것이 최고가 된다 하겠습니다.
영국의 샤프르베리(Earl of Shaftesbury; 1671∼1713)에서 버크(E.Burke; 1729∼97)로의 미를 선천적인 내관이나 본능에 기초를 두는 이론, 프랑스의 뒤보스(J.B.Dubos; 1670∼1742)에서 바투(C.Batteux; 1713∼80)로의 자연원리나 사회환경 강조의 예술이론에 나타납니다.
칸트의 비판 종합하는 동시에 미학의 자율성을 체계적으로 기초를 만들었으며, 이후 셀링, 헤겔을 거쳐, E. 하르트만(E.von Hartmann; 1842∼1906)에 이르기까지 미학의 주류는 미의 근거를 절대자(이데)에게서 보는 관념론의 계통에 따라 발전했습니다.
지류로는 독일의 헤르바르트(J.F.Herbart; 1776∼1841) 일파의 미를 대상의 형식관계로 돌리는 실재론적 미학, 영국에는 스펜서(H.Spencer; 1820∼1903)의 진화론적으로 미나 예술의 발생을 설명하는 미학사상, 프랑스에는 테느(H.A.Taine; 1828∼93), 귀요(J.M.Guyau; 1854∼88) 등 미나 예술의 본질·기능을 사회학적으로 해명하는 실증주의적 미학이 있었습니다.
19세기 중엽 이후는 과학 일반의 발달에 영향을 받아 경험적 경향이 세력을 강화하고, 독일에서 페이너(G.T.Fechner; 1801∼87)가 종래의 관념적·철학적인 <위로부터의 미학>에 대해 경험적·과학적인 <아래로부터의 미학>을 방법으로서 적극적으로 주장한 이래, 이 연구 방향은 그로제(E.Grosse; 1862∼1927)의 예술과학의 제창 등을 거쳐 결국에는 대상으로서 미적 현상과 예술현상을 준별(峻別)하는 견해까지 등장했습니다.
20세기 미학은 방법상의 철학적·과학적, 대상상의 미적과 예술적과의 대립관계에서 대체로
① 철학적 미학
② 과학적 미학
③ 예술과학
④ 예술철학으로 분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다시 종합의 기운으로 향하고, 먼저 철학적과 과학적과의 관계에서는 전자가 여러 종류의 과학적 연구 – 심리학·인류학·생물학 등의 여러 방법에 의한 연구의 성과를 근거로 하는 동시에, 반대로 후자의 여러 연구는 철학적 입장에서 기초를 만들고, 서로 어울려서 미와 예술의 체계적 반성이 충실해져갑니다. 미적과 예술적 관계에서도 대체로
①양자를 준별하여 예술철학의 우위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미학을 과학으로서 그 보조학의 하나라고 보는데 독일의 데스와르(M.Dessoir; 1867∼1947),우티츠(E.Utitz;1883∼1956) 등의 일반 예술학(Allgemeine Kunstwissenschaft)의 견지에서 이 경향은 오늘날에도 남았으며
②미적과 예술적은 사실이나 현상면에서는 어긋나더라도 그 본질에 있어서 겹친다고 봅니다. 즉 철학으로서 그 통일적 본질을 해명하는 미학은 또 예술철학도 됩니다. 오늘날 미학의 대세는 이것입니다.
그 주요한 방향의 대표자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칸트학파의 코헨(H.Cohen; 1842∼1918), 콘(.Cohn; 1869∼1947)
Ⓑ 생철학파의 딜타이(W.Dilthey; 1833∼1911), 짐멜(G.Simmel; 1858∼1918)
Ⓒ 현상학파의 오데브레히트(R.Odebrectht; 1883∼1945), 가이거(M.Geiger; 1880∼1937)
Ⓓ 존재론적 미학의 하르트만(N.Hartmann; 1882∼1950), 실존론적 입장에서는 벡커(O.Benker; 1889∼1964) 마리탕(J.Maritaein; 1882∼1973), 수리오(E.Souriau; 1892∼)
Ⓔ 프래그머티즘의 계통으로는 듀이(J.Dewey; 1859∼1952), 먼로우(t.mUNRO; 1897∼1974)
Ⓕ 논리적 실증주의의 랑거(S.Langer; 1895∼) 등등입니다.
Ⓖ 현대 미학의 신방향으로는 기계시대·기술시대의 예술상의 새로운 사실을 감안하여 여러 예술을 서로 비교해서 예술의 현대적 체계를 만들려하는 수리오나 먼로우의 비교미학(comparative aesthetics), 그리고 미나 예술을 정보나 교통의 기능면에서 파악해 가는 벤제(M.Bense; 1910∼)와 랑거의 정보론적 혹은 의미론적 미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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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메시스(Mimesis), 模倣(모방)
원어명 mīmēsis
플라톤에서 이데아와 개물(個物)의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
모방(模倣) ·흉내와 함께 예술적 표현도 의미하는 수사학(修辭學) ·미학 용어다. BC 5세기경 피타고라스파(派)에 따르면 음악은 수(數)의 미메시스(모방물)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플라톤에 이르러 비로소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플라톤은 여러 가지 개체(個體)는 개체가 되도록 한 형상(形相: idea)을 흉내낸다고 하여, 이에 의해서 현상계(現象界)의 열등성을 증명하는 이유로 삼았다. 플라톤에 따르면 현상계는 원형의 모방이다. 그는 주요저서 《국가론(國家論)》에서 목수나 화가나 작가가 모두가 집을 짓지만, 목수의 집에 비교해서 화가나 작가의 집은 허구(虛構)이며, 이것을 가상(假象)이라 하여 예술을 소극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 개념을 플라톤으로부터 이어받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詩學)》에서 오히려 예술을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메텍시스 [methexis]
공유(共有), 관여(關與)라는 뜻.
함께(meta) 가진다(hexis)에서 유래되었다. 플라톤 철학의 여러 가지 이데아와 감각적 개물(個物)의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파이돈篇, 파르메니데스篇)에서 미메시스(모방)와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美)의 이데아는 개개의 아름다움의 근거이며 개개의 것은 미의 이데아에 관여하고 이 이데아를 공유함으로써 아름다운 것이 된다.
플라톤이 사용한 이래 수 차례 의미의 변천을 겪어온 특별히 존중할 만한 용어인 미메시스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단순히 모방(imitation) 을 뜻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 말을 경멸 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예술가의 '창작물'을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에게 이 세계의 만물은 단지 일시적으로 존재하며 이데아의 모방이기 때문에 이 세계의 사물을 복사하는 것은 사본을 복사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이 하고 있는 행위인 이러한 행위에 따르는 문제는 모방품이 진리나 이데아로부터 더욱 멀어졌는데도 진리라고 생각되거나 그것에 접하는 사람들에게 진실한 표상이라는 환상을 준다는 데에 있다.
플라톤과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미메시스는 인간의 기본 본능이며, 현실의 모조가 아니라 보편자의 표상이라고 주장했다. 보편자라는 것으로 그가 의미한 것은 플라톤적 이데아가 아니라 그날 그날의 경험 속에 현존하는 '자연의 질서'이다. 문학에서 이 질서는 플롯 속에 -단지 스토리상의 사건들의 순서가 아니라 단단히 얽혀 한 유기적 전체를 형성하는 사건들의 구조 속에 묶여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작품은 단지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연의 형식적 법칙에 따르는 존재이다.
현대 비평의 어법에서 '모방적(mimetic)'은 아리스토텔레스적 모방 개념을 가리킬지 모른다. 특히 시카고 학파 멤버들이나 케네스 버크나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비평과 관련해서 사용할 때 그렇다. 그러나 가장 통상적인 용법은 외부 현실이나 외부 현실의 일부를 복제했다고 생각되는 예술작품을 말하는 것이다. 몇몇 유형의 맑스주의 비평(MARXIST CRTICISM)을 포함한 많은 이론적 연구 방법은 예술과 경험적 현실 사이의 표상을 통한 관계, 그리고 현실이 담론의 매개 밖의 어떤 층위엔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고집하기 때문에 모방비평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메시스 (〔그〕mimēsis)
모방(模倣) 또는 재현적(再現的) 제시. <흉내내다> <비슷하게 하다>를 뜻하는 동사 mimēomai에서 연유된 말이다.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이 말을, 사람이 남의 모습을 흉내내는 경우(《개구리》)와, 시인이 시를 지을 때에 스스로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직분을 흉내내는 경우(《여자만의 제사》)에 쓴 바가 있으나, 이 말의 문제성은 흉내내는 주체와 그 대상의 다양성, 대상의 존재론적 위상, 그리고 포이에시스(창조)의 본질과의 상관(相關)에 있다.
자연의 모방이라는 사상은 데모크리토스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상화나 음악·문법과 같은 <기술(技術)도 역시 자연을 모방하여 이런 것을 창조해 내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 위서(僞書) 《우주론(宇宙論)》의 말이라든지 히포크라테스의 <인간이 이용하고 있는 기술은 사람의 자연적인 본질(physis)과 닮고 있다>고 한 말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할 것이며, 아니면 착한 사람을 모방해야 할 것이다>(《斷片》)고 말하였으며, 미메시스가 형식이나 구조뿐만 아니라 가치적인 것에 대한 모방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자연모방과 가치적인 것에 대한 모방이라는 사상은 플라톤의 형이상학에서 통합된다. 인간적 실존은 그것을 지켜보는 신과의 긴장관계에 있고, 그 목적은 선미(善美)의 극(極)에 있는 <신을 가능한 한(限) 닮는 일> 에 있다 (《Theaitetos》). 신과 사람은 이성(理性)이라는 황금의 실로 맺어져 있으며(《법률》), 로고스를 지녔다는 고유의 존재양식에서 사람은 본래적으로 신과 닮았다. 그러나 다양한 독사(생각)와 파테마(情動)로 말미암아 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은 지혜를 사랑하고, 철학을 영위함으로써, 신에게 적합한 자기의 본성을 찾아 신을 모방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파이드로스》).
따라서 철학의 길에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과 신을 모방하는 것은 본래 같은 것이며, 인간적 활동의 일체는 물론, 포이에시스까지도 근본적으로는 미메시스이다. 문예창작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포이에시스가 미메시스의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 개개의 현상을 그저 <그 현상에 입각하여> 모방적으로 재현하고자 할 때, 즉 가장 평범한 의미의 자연이나 사물의 모방을 수행할 때, 예컨대 시인은 단순한 <영상모방자(影像模倣者)>로 떨어지게 된다(《국가》). 결과인 작품이 신의 작품을 모방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창조 주체의 포이에시스의 원인유비(原因類比)가 성립되어 있어야 한다. 주체의 원인성에 관한 플라톤의 형이상학적·인식론적 요구는 극히 엄격하므로, 신을 모방하여 선미의 극에 도달하는 것은 인간의 영원한 과제이며, 진리의 미메시스로서의 포이에시스는 사실상 극히 곤란해서, 포이에시스는 사실상 단순한 허구가 되어버리고 만다.
미메시스의 이념은 플라톤에 의하여 형이상학적으로 음미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현실적 의미가 획득됨으로써 후세에 여러 모양의 영향을 주었다(예컨대 18세기 프랑스美學의 <아름다운 자연모방>). 모방적 재현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표현이념과 추상적인 예술을 경험한 오늘날에 있어서도 미메시스사상은 창작이나 추체험으로서의 향수이념(享受理念) 또는 예술분류의 원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술과 미메시스
藝術 art 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의해서 정신의 충실체험을 추구하는 문화활동. 문학·음악·조형미술·연극·무용·영화 등의 총칭이다. 예술의 장르를 열거하고 분류하는 생각의 일례로서, 프랑스의 미학자 E. 수리오의 도표를 보면, 원을 7분할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부채꼴은 감각적 소재의 특수성을 나타내고, 이에 대응하는 예술 장르가 외원(재현적 예술)과 내원(비재현적 예술)의 2층으로 나뉘어 표시되어 있다.
〔변동하는 예술의 개념〕 예술현상 자체는 동양·서양을 불문하고 고대부터 존재해 왔는데, 문학·음악·미술 등을 포괄하여 하나의 영역으로 보는 생각, 즉 유개념(類槪念)으로서의 예술은 거의 18세기 중엽의 서유럽에서 성립된 것이다.
이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예술은 먼저 <아름다운 아트>, 즉 영어로는 fine arts, 프랑스어로는 beaux-arts, 독일어로는 schne Knste로 표현되었다. <아름다운 아트>는 예술 일반을 가리키며 조형미술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藝術>이라는 한자어는 《후한서(後漢書)》에서도 쓰인 오래된 말로서 학문과 기예(技藝)를 가리켰다. 즉 오늘날 예술이라고 생각되고 있는 것은 그 일부분에 불과하였다. 그 점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18세기 말에는 단적으로 art라 하여 예술을 가리키게 되지만, art는 원래 훨씬 넓은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art는 라틴어의 아르스(ars), 또 그리스어의 테크네(techn)에서 유래하며 이러한 말들이 학문과 기술의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한자어의 <예술>과 매우 비슷하다. 이 기술적 학문 또는 학문적 기술의 넓은 영역에서 <예술>이 나타내는 특수성을 근대 서양에서 미(美)로 인정한 것은 예술의 본질을 미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인데, 이러한 사상도 결코 예로부터 내려온 것은 아니다.
고대의 그리스인은 <미메시스(mimsis)의 테크네>의 개념에 의해서 거의 예술에 대응하는 영역을 정의(定義)하였다. 미메시스란 현실 사상(事象)의 모방 또는 재현을 말한다(예를 들면 초상화). 이것은 물건을 만드는 일의 양태(樣態)에 의해서 예술을 규정하는 생각이며, 이것에 대하여 근대적인 <아름다운 아트>는 만들어진 작품의 효과면에서 예술의 본질을 보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술 개념 자체가 역사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의미나 결과를 하나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사냥감을 찾아서 행해진 원시시대의 주술적 예술은 현대의 전위예술과는 거리가 멀다. 가까운 과거에도 사진이나 영화가 예술이냐 아니냐는 논쟁거리였으며, 현재는 컴퓨터아트가 그 논쟁거리의 예가 된다.
새로운 가능성의 개척과 더불어 예술의 영역은 변화하고, 동시에 예술의 개념도 바뀌어 간다. 역사적으로 변동한다는 것은, 어느 시점을 두고 보아도 예술의 영역이, 근접하는 학문과 기술의 영역과의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 것〕 변동성이나 모호함 가운데서도 예술을 예술답게 하고 있는 것으로 기(技)·지(知)·작품의 3가지를 들 수 있다. 이것은 테크네-아르스-아트의 주요 어의(語義)와 대응하는데, 이 3가지의 종합이 예술이다.
예술작품은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서도 일용품이나 도구·기계 등과는 달리 그 목적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 가능한 한 충실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예술작품의 사명이다. 따라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技;솜씨)> 또한 어느 일정한 목적을 만족시키면 된다는 식의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높은 곳을 지향하는 모험정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 예술에 있어서의 지(知)도 학문적인 지와 같이 개념적 언어로써 설명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고 실제의 창작에 의해서 터득되는 <직감력>이나 <요령> 같은 것, 혹은 <그 작품의 감상에 의해서만 보이는 경지>와 같은 것이다. 전자는 기와 지가 일체화된 능력이고, 후자는 작품이 감상자에 대하여 펼치는 개성적인 세계이다.
이 작품세계는 말로써 파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감상자는 그것을 말로써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단순한 감상(感想)에서 고도의 평론(評論)에 이르는 활동이 여기에서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보아도 여전히 이야기를 못다한 느낌이 걸작 속에는 있다. 따라서 특정한 목적에 갇혀 있지 않은 작품은, 작자나 감상자에게 긴장의 결정(結晶)이며, 다양한 의미를 샘솟게 하는 독창적 세계이다. 이 독창적인 세계는 작자의 개성을 각인(刻印)한 <작자의 세계>이지만, 작자의 의도를 초월할 가능성도 품고 있다는 의미에서 작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세계이다. 작자의 의도를 초월한 의미를 캐내는 것은 감상자의 해석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의 세계는 가능한 한 높은 곳을 지향하는 예술가의 모험정신에 의해서 창출되고, 최대한의 의미충실을 구하는 감상자의 본성적인 지향성(志向性)에 의해서 구현된다.
이렇게 하여 보여지는 작품 세계의 의미 충실이 곧 미(美)이다. 예술미는 진(眞)·선(善)·성(聖) 등의 온갖 가치를 배제하지 않고 그러한 표현 위에서 달성되는 작품 존재의 질(質)이며,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만이 미는 예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의 예술 개념의 중심을 차지해 온 것은 작품이며, 단순히 예술이라고 하면 예술작품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대의 전위(前衛) 가운데는 작품 개념을 공격하는 경향도 강하다. 그것은 작품을 정적(靜的)인 대상으로 생각하였을 때의 일이며, 이러한 비판의 밑바닥에는 생생한 정신의 현동성(現動性)을 중요시하는 현대사상 공통의 태도가 있다. 이러한 사조(思潮)는 작품 개념을 파괴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해석의 가능성이 내포된 작품 세계의 속깊이를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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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각적 경험이 사물에 대한 현상적 지식을 제공하는데,
미학(美學)은 예술·자연·인생 등 경험되는 다양한 미를 미적(美的)이라 총칭,
미학의 기본 과제는 미적 경험, 즉 어떠한 미적 대상으로부터 어떠한 미적 가치를 가지게 되든
그것의 특징적 성격을 해명하거나 분석하는 일로서,
미적 가치가 의식적으로 추구되는 예술 현상이 주된 탐구 대상이 되고 있다.
독창적인 세계는 작자의 개성을 각인(刻印)한 <작자의 세계>이지만,
작자의 의도를 초월할 가능성도 품고 있다는 의미에서 작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세계이다. 작자의 의도를 초월한 의미를 캐내는 것은 감상자의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