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낳지 말자
노병철
“아들을 낳지 말자”
“자네 말이 옳소.”
고된 훈련장에서 나오는 구호 소리다.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뭐 빠지게 뛰는 와중에 고참의 선창을 따라서 다들 후창한다. 이 나라에 아들로 태어난다는 것은 군대 가서 나라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엄청난 짐을 어깨에 메야 하고 집안 가문의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 묘사나 제사에 참여해야 하고 벌초를 해야만 했다. 추석이 다가올 즈음이면 어김없이 집안 어른에게서 전화가 온다.
“이번 주 일요일에 벌초 가는 날이다. 잊지 마라.”
“저 교회 가는데요.”
“교회 가도 벌초는 하고 가라.”
얄짤없다. 그 어떤 핑계도 조상을 업신여기는 행위에 대해선 용서가 없었다. 매장으로 인한 봉분 중심의 묘역 관리가 추석 성묘가 결합하면서 한국 특유의 벌초 문화가 생긴 것이다. 육십 대 어른은 전화만 돌리고 현장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 밑에 군번이 따라나서서 감독을 한다. 오십 대만 되어도 낫을 들지 않는다. 뒷짐 지고 따라다니면서 잔소리한다. “좀 더 짧게 단정하게 못 하냐. 내가 젊었을 땐 이발소 머리 깎듯이 깔끔하게 했는데 너무 대충하는 것 같다.”라는 말씀을 연신 쏟아 낸다. 정말 벌초하자며 아버지에게 끌려 산에 올라갈 땐 엄마한테 잡혀 여탕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싫었다. 당시엔 제초기도 없었고 순전히 조선낫으로 일일이 땡볕에 허리 숙여서 해야 했기에 정말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겨우 점심때쯤 젊은 애들끼리 삼삼오오 서열에 맞게 우거진 구석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온갖 불평을 쏟아 낸다. 이미 땀은 비 오듯 흘러 온몸에 물 범벅이 되어 몸을 더 지치게 만든다. 벌초는 하루 만에 끝이 나지 않는다. 거의 이틀이란 시간을 잡아먹었다. 벌초하는 날 비가 오면 정말 상상조차 초월하는 강행군이 펼쳐진다. 이 나라에 아들로 태어난 죄라고나 할까. 수년 전부터는 현대 벌초 문명의 최대 발명품인 예초기를 돌려 겨우 당일에 끝낼 수 있었지, 그 전엔 정말 언감생심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시골 살 적에는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틈틈이 올라가 여러 차례 손질했다. 하지만 하나 마나 한 일을 괜히 힘들게 한다고 봤다. 풀은 자고 나면 엄청나게 자라나 전날 작업한 벌초 행위는 이미 완전 원상 복구되어 힘이 빠지게 만들고 만다. 어른들이 모르고 한 일은 아니겠지만 어린 내 눈에는 참으로 우매한 짓(?)이라 봤다. 이제 내가 집안 어른 축에 속하다 보니 왜 그렇게 자주 산소를 찾았는지 이해가 된다. 추석이 다가오면 벌초 생각에 잠을 못 이룬다. 집안 남정네들은 전원 열외 없이 집합시켜보지만, 갈수록 일하는 젊은 친구들이 줄어든다. 외국에 있거나 바쁜 비행기 조종사 같은 애들을 하나둘 빼다 보면 참가하는 애들의 불만이 눈에 보인다.
요즘 추세로 봐서 제사도 몰아서 지내거나 안 지내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벌초가 단순한 '묘지 관리'가 아니라 추석맞이 조상을 찾아뵙는 성묘 전 단계 행위라는 고상한 의미를 제대로 가슴에 새기며 벌초에 임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벌초하고 새벽에 차례 지낸 뒤 산에 올라가 성묘하는 추석 행사가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석 연휴엔 전부 해외여행 떠난다고 공항이 북새통인 세상에 차례 안 지내고 어딜 가느냐는 옛 어른의 불호령은 이젠 먼 산에서 희미하게 사라지는 메아리처럼 들릴 뿐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에 결단을 내렸다. 벌초 대행업체를 이용해서 벌초에 대한 젊은 애들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러자 이번엔 계속 올라가는 대행업체의 금액이 부담스러운지 이런 전 근대적인 방법 말고 새로운 추모 공간을 만들자고 한다. 나도 그 옛날 어른들의 심정인가. 이해는 가는데 선 듯 결단을 못 내리겠다. 젊은 사내애들의 고생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집사람이 아들을 낳지 않았나 보다.
"아들이 지네 처갓집 벌초 간데요."
첫댓글 선생님 작품은 항상 입꼬리가 올라가게 만듭니다.
때로는 눈물 찔끔나게 요절복통도 하고.
종갓집 맏며느리인 저는 벌초 때 동서들은 아무도 안 가는데도 꼭 참석을 합니다.
시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그 많은 사촌들까지 먹이려고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지만
지금은 제초기가 아니라 아예 잔디 깎는 기계를 트럭에 싣고 오니까 오전에 끝나 시내까지 나가
맛있는 매운탕 사 먹지요. 그러나 저러나 아들 없는 저의 산소는 누가 벌초할까요. ㅎ
마지막 문장이 본인 말 대변해도 하소연조차 못 할 시대를 사는 우리세대. 입만벙긋하면 저더러 밀린답디더.
유당 선생님 이글이 십년 후 읽히면 그땐그랬었지 하겠지요.봉분이나 안녕하겠습니까? 맏동서 벌초 이야기 끝에 간 크게 한 말했습니다. 형님 저도 제남편 좀아껴야겠습니다. 맏시숙도 벌초 끝나면 해마다 이틀씩 앓아 누우셨다길래 올해 부터 선산의 큰 집 조상들처럼 시부님 산소도 벌초 대행하는 아재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친정은 독립운동가 증조부 산소는 꼭 멀어도 직접하는 오빠동생께 미안하네요. 안동의 딸들은 살림 밑천이라면
아들은 조상섬기기 희생양이네요.
시기적절한 글!
늘 유머와 해학이 있어 찾아 읽었더니
역시 제 선택이 옳았네요.
거침없이 하이킼 해 주소서
마음에 없는 일은 안하면 됩니다. 억지로 벌초 하라 말라 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마음이 있으면 하면 복이 됩니다. 내 속에 망자까지 아끼는 좋은 마음이 싹이 트니까요. 성의가 없으면 차려주는 밥상도 맛이 없어요. 살아 있는 나도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데 죽은 조상이 응감하겠는지요. 나는 머지 않아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예언하는 사람입니다. 이유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성심이 없기때문입니다. 유튜브 <강호의 발바닥>을 한번 보세요. 성심 없이 거대한 조형물과 위락시설 지었다가 유령 건물된 곳이 전국에 수두룩 합니다. 이러고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지요. 모두들 늙어 죽기 전에 노세노세 하는 분위기 입니다. 지금 주변에 일일장하는 곳도 생겼습니다. 망자의 죽음을 애닯다 할 사람도 없는데 돈 내버려가면서 3일 장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져 버린 세태를 풍자한 글 잘 읽었습니다.
ㅎㅎ 선생님 글은 언제 읽어도 재밌습니다. 매장 문화도 좀 바껴야 하지 않을까요? 계속해서 묘지를 만들면 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웃다가 갑니다~^^
요즘은 청년들이 벌초나 제사나 묘사에 참가하는 것도 시큰둥이지만
사실 교회나 사찰에도 이들이 잘 안 나타납니다.
문학판도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도 이게 궁금해서 가만히 살펴보니
이들이 북카페나 야구장에 우르르 출몰하잖아요.
'남들의 간섭(관심)도 싫지만,
그렇다고 외톨이가 되는 것도 싫다.'
이게 이런 뜻인가 싶기도 한데.
어디 용한 도사님이라도 있으면
청년들이 모이게 하는 신통방통 부적이라도 주문해보겠는데,
여러모로 생각할 여지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