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필은 월간 '책과 인생'(범우사)제 226호에 실린 작품입니다.
오동나무를 위하여
김양순
연자줏빛 꽃들이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전설에 나오는 봉황새가 내려앉는다는 오동나무, 그 고귀한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렸던 종 모양의 꽃들이 뚝뚝 떨어져 행인들의 발길에 채이고 있다.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앞길을 지날 때마다, 학교 담장 안에 있는 큰 오동나무를 자주 바라본다. 높다란 키에 아름드리 몸통, 쭉쭉 뻗은 가지를 가진 그 나무에서 나는 항상 고상하고 점잖은 분위기를 느낀다.
오동나무는 옛 여인들에게 더없이 친근한 나무였다. 우리 조상들은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어 딸이 커서 시집갈 때 그 오동나무로 장롱을 만들어주었다. 딸이 태어났다고 부모님이 심어주신 나무, 그 오동나무로 만든 오동농은 안방지기로 여인과 평생을 같이 했을 테니, 오동나무는 옛 여인들의 벗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옛날 우리 동네에도 큰 오동나무가 있는 집이 많았다. 오동나무꽃 진한 향기가 골목마다 흘러넘치던 시절, 동네 총각들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던 순박한 처녀들의 얼굴이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옛날 우리 집 밭둑에도 작은 오동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나는 부모님을 따라 밭에 갈 때마다 그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밭둑 한 귀퉁이에 서서 널따란 잎을 자랑하며 커가는 나무가 왠지 내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엔 딸이 나 하나뿐이니 내가 커서 시집 갈 때 저 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주실까’ 어린 마음에 궁금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는 그 오동나무를 베어버리셨다. 밭에 나무 그늘이 지면 곡식이 자라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베어버리고 난 오동나무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돋아 쑥쑥 자랐는데 아버지는 그것을 자동(子桐)이라고 알려주셨다. 그것이 어른 키 높이만큼 자라자 아버지께서는 또 잘라버리셨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그 오동나무 밑동에선 새 순이 돋았고, 새순의 키가 웬만큼 자라면 아버지의 톱날에 잘려나갔다. 아버지는 내가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엔 오동나무 장롱이 필요치 않은 시대가 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 일까?
오동나무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알려져 있다. 집 주변이나 빈터에서 잘 자라는 속성수(速成樹)로 키가 15m까지 자란다고 한다. 빨리 자라면서도 습기와 불에 잘 견디는 특성이 있고, 나무의 문양이 곱고 재질이 가벼워서 그 쓰임새가 다양하였다. 장롱, 장식장 같은 가구는 물론이고 거문고, 비파, 가야금 등, 악기를 만드는 데도 많이 쓰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오동자(씨), 오동엽(잎), 줄기, 뿌리, 껍질 등도 한방에서는 각종 약재로 쓰였다.
이렇게 사랑을 받았던 오동나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시골에 가면 더러 볼 수 있겠지만, 도시 사람들은 요즘 오동나무 보기가 쉽지 않다. 특히 도시의 아이들 중에 오동나무를 아는 아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 생활양식이 급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즘 가구들은 대부분 수입산 나무, 철재,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기 때문에, 딸을 낳았다고 오동나무를 심는 집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악기 역시 가야금이나 거문고 같은 전통 악기보다는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서양 악기를 더 가까이 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오동나무 쓰임새는 갈수록 줄어들게 되고, 사람들 관심밖으로 밀려난 오동나무는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게 아니겠는가.
우리 조상들이 벗과 같이 여겼던 나무, 더구나 우리나라 특산 식물인 오동나무를 우리 곁에 좀 더 가까이 둘 수는 없을까? 궁리해 보면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전국에 있는 공원이나 아파트 정원, 그리고 각 학교 뜰에 한 두 그루씩만이라도 오동나무를 심도록 권장한다면 어떨까. 그리한다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서나 오동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오동나무를 우리의 나무로 여기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전국에서 생산되는 오동나무의 양 또한 적지 않을 것이며, 오동나무의 우수한 특성을 살려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끌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동나무의 꽃말은 ‘고상’이다. 연보랏빛과 연자줏빛을 머금은 꽃빛깔에서는 어머니의 미소 같은 포근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작은 종 같기도 하고 별을 닮은 것도 같은 꽃 모양은 가슴 두근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느끼게 해준다. 어디 그 뿐인가? 오동나무 꽃이 필 때면 멀리서도 코가 벌름거려질 만큼 그 향기 또한 매력적이다. 이렇듯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근사한 꽃을 피우는 오동나무가 우리나라 특산 식물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관상용 정원수로 많이 심어도 좋을 것이다.
근래 몇 십 년 사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편리함만을 추구하느라 소중한 것들을 많이 놓쳐버렸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오던 미풍양속도 희미해지고, 의식주 문화 또한 서구화 되면서 우리민족 고유의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식물들마저 그 종류가 바뀌어가고 있어서 더욱 안타깝다. 우리 조상들과 함께 했던 친근한 식물들은 점점 사라지고 낯선 식물들이 우리 산야를 차지해가고 있는 이 때, 오랜 세월 선조들에게 사랑 받았던 오동나무를 앞으로도 계속 우리 곁에 있도록 해주어야 옳지 않을까?
(2012년 5월 10일)
첫댓글 그러고 보니 오동나무가 우리 곁에서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공감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멋진 가을 날 풍성한 시밭 일구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느 스님의 <비우고 살자>라는 말씀을 접할 때 마다 속 빈 오동나무 생각을 합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박말이님, 찬란한 빛깔로 물든 가을 풍경처럼 멋진 나날 보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