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오빠
- 김언희
김언희 시인
진주에서 출생. 경상대학교 외국어교육과 졸업.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트렁크』(세계사, 1995)와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민음사, 2000),
『뜻밖의 대답 』(민음사, 2005), 『요즘 우울하십니까?』(문학동네, 2011) 가 있음.
보고 싶은 오빠
- 김언희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하고, 십년도 넘었어, 난 저 개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2
기억나, 오빠? 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먹었던 거? 정말로 개새끼였어, 오빤, 그래도
우린 짬만 나면 엉기곤 했지, 줄 풀린 투견처럼, 급소로 급소를 물고 늘어지곤 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뭐니, 헛소리를 해대면서
3
꿈에, 오빠, 누가 머리 없는 아이를 안겨주었어, 끊어질 듯이 울어대는 아이를, 머리도 없이 우는 아
이를 내 품에, 오빠, 죽는 꿈일까…… 우린 해골이 될 틈도 없겠지, 오빠, 냄새를 풍겨댈 틈도, 썩어볼
틈도 없겠지, 한번은 웃어보고 싶었는데, 이빨을 몽땅 드러낸 저 웃음 말야
4
여긴 조용해, 오빠, 찍 소리 없이 아침이 오고, 찍 소리 없이 저녁이 오고, 층층이 찍 소리 없이 섹스
들을 해, 찍 소리도 없이 꿔야 할 꿈들을 꿔, 배꼽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오빠, 우린 공손한 쥐
새끼가 됐나봐, 껍질이 벗겨진 쥐새끼들, 허여멀건, 그래도
5
그래도, 오빠, 내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 변기를 두른 선홍색 시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싸게 만들어, 하느님도 오줌을 싸실 걸, 언제 한번 들러, 오
빠, 공짜로 넣어줄게
- 제6회 이상 시문학상 수상작
※ 입력자 평
오래 전입니다. 2006년 10월 어느 날, 아내는 영풍문고에 가서, 박현욱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깜
짝 놀랐습니다. 아내가 결혼을 하다니, 초판 35쇄 발행일 · 2006년 10월 16일 판입니다. 그러니까 제 아내가 튀는 여자가 아
닌 것은 분명합니다. 35쇄판이니까 남 따라 장에 간 셈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내가 어느 날 남편에게 다른 남자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남자들은 1부2처가 사실상 가능한
데, 여자는 왜 1처2부 제도가 가능하지 않느냐? 당신도 사랑하고 다른 남자도 사랑하는 제도도 좋지 않느냐? 정도입니다. 남
편은 허락합니다.
박현욱은 사회학 전공 출신 소설가입니다. 억압된 여성의 여성성에 대한 사회학적 해설로서 소설을 택한 것입니다.
시인 김언희는 '캐논 인페르노'로 올해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캐논 '인페르노'가 무순 뜻인지 국어 교원인 저는 모릅니다.
현실 공간을 지옥이라 규정한 것 같은, 희미한 해석일 뿐입니다. 아마도 지옥 폭격 쯤일 것입니다. 아니면 연옥같은 현실 비
판?'
보고 싶은 오빠'로 이상 시문학상도 받았습니다. 올해 61세,
아마도 보고 싶은 오빠는 옛날의 애인이거나 전남편일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남편은 '개"입니다. 그 개하고 찍소리 없이 일
상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내 마음은 붉다고 합니다. 붉은 것은 일편단심? 나는 비데(여성성기?)이니 한번
이라도 오면 공짜로 넣어 준다고 하네요. 갇힌 일상의 탈출이고, 사회적 편견으로부터의 해방?
심사위원들은 "'캐논 인페르노'는 단테의 지옥에 대한 변주곡처럼 현대인의 일상을 압축해 놓고 있다"면서 "자기 복제의 틀
을 과감히 털어내고 자신의 평원을 새롭게 개척해 나갈 징조가 예견되는 빼어난 수작"이라고 평했다.
캐논 인페르노
- 김언희
손에 땀을 쥐고 깨어나는 아침이 있다 손에
벽돌을 쥐고 눈을 뜨는 아침이 있다 피에
젖은 벽돌이 있다 젖은
도끼 빗이 있다
머리 가죽이 벗겨질 때까지 나를 빗질해대는 가차 없는
빗살이 있다 가차 없는 톱니가
있다 옆집 개를 톱질하고 온 전기톱이 있다
전기 톱니가 있다 무서운
틀니가 있다
죽은 사람의 틀니를 끼고 씩 웃어 보는 子正이 있다 똥을 지리도록
음란한 子正이 있다 음란하기 짝이 없는
목구멍이 있다 입도 없이
나를 삼키는 목구멍
괄약근 없는
食道가 있다 대대로 물려받은 음탕한
괄호가 있다 그 괄호를 납땜하는 새파란 불꽃이
있다 내 배때기를 푸욱 찔러라 찔러 이 방 저 방 따라다니는
노모의 칼끝이 있다 밤새도록 콕콕콕
찍히는 마룻바닥이 있다 뒤통수가
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거울이 있다 발이 쩍쩍 들러붙는 콜탈
의 거울이 있다 거울 속에 시커먼 똬리가 있다 당신은 뱀에
감긴 사람이야 친친 감긴 채 살아 당신만 몰라
모르는 사람이 있다 모르는 손이 모르는
벽돌을 쥐고 진종일 떠는
하루가 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곳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눈을 뜨는 하루가 있다 내 혀가 뭘
핥게 될지 두려운 곳에서
내 두 손이 뭔 짓을
하게 될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시와 사상》2013년 가을호
제2회 시와사상 문학상 수상작
황혼이 질 때
- 김언희
개같은
똥같은
갈보같은 구멍
천역에 찌들린 구멍 피로로
썩어가는 구멍 이미
끝장이 난 구멍
끝장이 난 다음에도 중얼거리는
크르륵거리는 구멍 풍선껌을
씹는 말랑말랑한 이빨로
내 머리를 씹는 옴쭉
옴쭉 나를
삼키는
구멍
헐 헐 헐
웃는
구멍
백합, 백합, 백합
- 김언희
자웅동체
암수 한 몸
지척지간 한배 새끼
나는 나와
생피 붙는다
(불륜의 향기는 코를 찌르고 목을 조르고 눈구녕을
후벼파고)
씩씩거리는
향기의
여섯 발굽에 비끌어매여
이토록
찢어지고 있는
육시처참의
나는
가족극장, TE
- 김언희
아버지가 내 얼굴에 던져 박은 사과
아버지가 그 사과에 던져 박은 식칼
아버지가 내 가슴에 던져 박는 사과
아버지가 그 사과에 던져 박는 식칼
아버지가 내 자궁에 던져 박을 사과
아버지가 그 사과에 던져 박을 식칼
더럽게 재수 없는
-김언희
더럽게 재수 없는 수태고지
초장부터 똥 밟은 나는
아침저녁 살충제에 제초제를 섞어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며 수음을 하네
(내 눈이 걸려보지 않은 임질이라고는 없지만, 내 입이 걸려보지 않은 매독이라고는 없지만)
징글맞게 재수 없는 수태고지
구역질 구역질 애도의 헛구역질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한번 박혀볼래?
박아줘?
더럽게 지분거리는 벌건 십자가의 이름으로
나는 내 자궁에 불을 지르고
그 불길에 담배를 붙이네
불안은 불안을 잠식한다
-김언희
3분마다 발정하는 불안, 책상 아래서 불알을 주물럭거리는 불안, 기둥 같은 헛좆을 세우는 불안,
불안이 간통을 하고, 불안이 시를쓰고, 불안이 불안의 눈알을 후벼 불안의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심
장의 박동, 불안의 비트, 쉭쉭 거리는 불안의 피스톤, 들숨날숨 공기만 마셔도 살이 찌는 불안, 러닝
머신 위에서 헐떡거리는 불안, 혀가 말리는 불안, 쓸개에 돌을 박는 불안, 수족관 속에서 질금질금 똥
을 지리는 불안, 배가 갈라져도 숨이 끊어지지 않는 불안, 접시 위에서 벌렁거리는 불안, 우걱우걱 대
가리가 씹히면서도 멈출 수 없는 교미,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 다다르는 불안,
아닐까
- 김언희
나는 몸만 여자지 음탕한 남자 아닐까
하이에나 암컷처럼 가짜 음경으로 발기까지 하는 건 아닐까
먹히는 척하면서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먹히는 것보다 더 빨리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시가 키스방에서 파는 키스는 아닐까
입술만 썰어서 파는 건 아닐까
썰어놓은 해삼 같은 입술*만
* 이성복 <입술>
첫댓글 시인의 모습은 참 고와만 보이는데
큰 상까지 받은 시라는데.
휴~~~
제가 쫌 탐미주의 성향이어서 그런가는 몰라도
내면의 일탈을 표현하는것도 이런 성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표현은 별로~~
글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