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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목령에서 사면으로 내려 수렴 걷고 바라본 운무산
夏木成帷晝日昏 우거진 나무 둘러싸니 한낮에도 어둑하고
水聲禽語靜中喧 고요한 골짜기에 물소리 새소리
己知路絶無人到 길 끊겨 오는 사람 없는 줄 알고 있지만
猶倩山雲鎖洞門 산 구름 골짝 어귀를 가리네
―― 대곡 성운(大谷 成運, 1497~1579), 「한낮의 골짜기(大谷晝坐偶吟)」
▶ 산행일시 : 2020년 6월 28일(일), 맑음, 연무
▶ 산행인원 : 7명(악수, 광인, 캐이, 킬문, 더산, 토요일, 두루)
▶ 산행시간 : 10시간 18분
▶ 산행거리 : GPS 도상 22.8km(더산 님 오룩스 맵)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KTX 타고 둔내역으로 가서, 택시 타고 양구두미재로 감
▶ 올 때 : 흥정계곡 양지교에서 봉평 택시 불러 평창역으로 와서, KTX 타고 상봉역에 옴
▶ 구간별 시간
06 : 22 - 청량리역 KTX 출발(둔내 07 : 25 도착)
08 : 00 - 양구두미재, 산행시작
08 : 30 - 임도 1,145.5m봉
08 : 58 - 태기산(泰岐山, △1,258.8m)
09 : 08 - 임도
10 : 15 - ┫자 갈림길
10 : 38 - 임도
10 : 58 - 1,076.3m봉
11 : 42 - 1,065.8m봉
12 : 09 ~ 13 : 30 - 삼계봉(三界峰, 1,104.6m), 점심
14 : 11 - 1,090m봉
14 : 43 - 1,032.7m봉
15 : 08 - 구목령(九木嶺), 임도 안부
18 : 18 - 흥정계곡 입구, 양지교, 산행종료
18 : 37 - 평창역 앞 편의점, 저녁
20 : 09 - 평창역 KTX 출발
21 : 22 - 상봉역, 해산
1-1. 산행지도(태기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2. 산행지도(삼계봉, 구목령,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3. 태기산 지도
▶ 태기산(泰岐山, △1,258.8m)
이른 아침에 서울에서 기차 타고 택시 타고 달려간 둔내 양구두미재다. 1시간 30분 정도 걸
렸다. 고갯마루에서 우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산미인’들을 만난다. 캐이 님, 더산 님, 두루
님이 그들이다. 그들은 어제 하루 종일 백석산 주변을 휘도는 산행을 한 후 봉평에서 자고,
오늘은 우리들과 함께 태기산을 가려고 왔다. 반갑다.
양구두미재가 준령이다. 해발 960.7m. 6번 국도가 둔내에서 봉평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나
는 종종 양두구미재로 잘못 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이 귀에 익은 탓이다. 『한국지
명유래집』 ‘중부편’은 양구두미재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양구데미라 불렀다 한다. 옛날 어느 가난한 선비가 묘를 잘 쓰면 부자가 된다
는 말을 듣고 용한 지관을 통해 아버지의 묘를 쓴 곳이 바로 이 고갯마루였다. 한참이 지나도
재산이 늘어나지 않자 선비는 묘를 이장하기 위해 관을 들어냈는데 땅 속에서 두 마리의 황
금 비둘기가 나와 고개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한다. 그 후로 이 고개를 양구(兩鳩)데미라 불
렀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횡성군이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지명유래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김형수의 『韓國400山行記』의 ‘태기산’ 지도에서만은 ‘구두미재’로 표기하고 있다.
구두미 〔마을〕삽교3리 2반에 속하는 마을로 마을의 지형이 거북이 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
진 이름이다.
구두미재 〔고개〕평창군 봉평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가리키는 것으로 구두미에 있는 고
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구두미재 〔고개〕구두미에서 평창군 봉평면 무일리로 통하는 고개를 가리키는 것으로
고개가 두개라 붙여진 이름이다.
대기가 춥도록 서늘하다. 고지이기도 하지만 이곳에는 어젯밤에 돌풍을 동반한 비가 심하게
내렸다고 한다. 임도 따라 간다. 이 임도는 태기산 턱밑까지 2.1km를 간다. 느긋한 오르막이
다. 캐이 교수님으로부터 벌노랑이, 꿀풀, 범꼬리, 터리풀, 개다래 등 길가 초목에 대한 여러
설명을 들으며 가니 조금도 심심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임도 옆에서 조는 듯 돌고 있는 풍력발전기를 지난다. 멀리서는 한낱 바람개비로 보여도 가
까이 다가가면 그 크기가 거대(날개 1개의 길이가 50m나 된다) 하여 그 밑을 지날 때면 혹
시나 떨어지면 크게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겁이 난다. 풍력발전기가 있는 데마다 승용차가
있어 발전기를 A/S 하는 기술자들인가 했는데, 야영객들이다. 1,000m에 이르는 고지에 주차
하기 좋은 너른 공터가 있고 조망 또한 트이니 야영지로서는 명당이다. 다만, 날개가 돌아가
는 소리와 발전기 바로 아래라는 점이 거슬린다.
오늘 미세먼지는 좋다고 했으나 수증기 때문인지 사방이 온통 뿌옇다. 경점인 임도의 최고
고지 1,145.5m봉에 올라도 원경은 답답하게 가렸다. 발전기 기둥 그늘에 들어 첫 휴식하며
입산주 탁주를 나눈다. 1,145.5m봉을 약간 내리면 임도는 태기산을 왼쪽 사면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풀숲에 묻힌 계단 길 0.53km를 오른다. 군인의 길이다. 군 통신선과 함께 간다.
2. 태기산 가는 임도(1,145.5m봉)에서 조망, 멀리 가운데는 봉복산, 그 앞은 삼계봉 연릉
3. 태기산
4. 범꼬리
5. 범꼬리 군락지
6-1. 11년 전 이맘때 태기산에서 조망, 멀리는 가리왕산, 그 앞은 금당 거문 연릉
6-2. 태기산 동릉
7. 태기산 동릉
8. 태기산 북릉
철조망 두른 태기산을 오른쪽으로 돈다. 등로는 풀숲에 가렸다. 발로 더듬어 길 찾는다. 등산
객들에게는 ┣자 갈림길이 있는 바위 위가 태기산 정상이다. 여느 때는 산 첩첩 가리왕산까
지 보이는 경점인데 오늘은 금당산과 거문산도 캄캄하니 가렸다. 너른 초원에 군데군데 하얀
솜을 흩트려놓은 듯한 터리풀꽃이나 보고 또 본다.
태기산을 반원으로 길게 돌고나서 북진하여 약간 내리면 임도와 만난다. 또 임도를 간다. 임
도 주변에는 전에 보지 못한 여러 생태탐방로를 개설하였다. 커다란 태기산 표지석 옆 쉼터
는 전망대다. 우리는 그 맞은편 숲속 데크로드를 따라 양치식물 생태탐방 쉼터로 들어가서
휴식한다.
태기산은 진한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이 산성을 쌓고 신라군과 싸웠다는 전설에 따라 명명
되었다 하고(태기산 국가생태탐방로 안내판), 신라가 갑자기 발흥함에 따라 진한(辰韓)의
태기왕(泰岐王)은 대세에 못 이겨 지금의 횡성군 갑천면으로 피난을 왔기 때문에 이 산을 태
기산이라 지었다 한다. 갑천(甲川)도 역시 태기왕이 패잔병을 거느리고 여기까지 피난 행군
하다 여기서 갑옷을 냇물에 빨았다 하여 갑천(甲川)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하고(경향신문,
1963.8.12.자, ‘地名 따라 3千里(2) 江原道’),
태기산 전설에 의하면 옛날 부족국가시대에 태기왕이 두 장수와 군사 860명을 거느리고 예
국(濊國)과 싸우다 군졸들이 전멸된 후, 홍천강 백옥포(현 백옥포리)에 투신했다 하고
(김형수의 『韓國400山行記』),
골짜기가 피리처럼 길쭉하게 생긴 피리골(생곡리 笙谷里)은 70가구가 거주하는 산골마을이
다. 2000년 전 삼한 중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군에게 쫓겨 구목령(현재 피리골
인근)을 넘어 운무산에서 항거 끝에 패망했는데, 당시 태기왕의 병사들이 대나무처럼 속인
빈 구릿대라는 식물을 잘라서 왕을 위로했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이후 마을에 모여 살던
화전민들이 어려운 시기를 지내면서 구릿대 피리를 만들어 함께 불며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
왔다 한다(한국대학신문, 2018.6.21.).
▶ 삼계봉(三界峰, 1,104.6m)
상마암고개를 지나 태기산을 넘어 우리와 함께 삼계봉으로 가는 영춘기맥을 꼭 붙들기가 어
렵다. ┫자 임도 갈림길에서 우리는 직진하여 태기산 북릉을 간다. 그 입구 철조망문의 쪽문
을 잠그지 않았다. 광인 님은 잠가놓은 줄로 잘못 알고 오른쪽 풀숲을 뚫었다. 임도는 능선
마루금과 동무하며 간다. 영춘기맥은 1,154.7m봉을 지나기 전에 왼쪽 사면의 잡목 숲을 헤
치고 내려야 한다. 여러 산행표지기가 안내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표지기를 건성으로 보고 지나쳤다. 누군가 괜히 한 장을 달아놓자 덩달아
너도나도 단 것이 아니겠느냐 하고. 앞서간 더산 님은 당연히 태기산성 터를 지나 군계가 꺾
이는 지점이 마루금이려니 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막상 군계를 따르려니 인적이 없을뿐더러
잡목 숲이 너무 울창하여 엄두가 나지 않고,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계는 계곡 물을 건
넌다.
방금 전에 지나쳤던 여러 산행표지기가 괜히 달린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뒤돌아간다. 임도
0.7km를 왔다 간다. (광인 님은 지도의 태기산성 터를 찾는다고 산속으로 들어갔으나 찾지
못했다. 그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그러고 보니 영춘기맥 종주의 열풍이 한창 불던 시절
에 누구라도 여기서 길을 헤매고 마는 통과의례를 치렀던 기억이 난다.
9. 터리풀 꽃봉오리
10. 터리풀
11. 터리풀 군락지
12. 터리풀 군락지 너머는 태기산 북릉
13. 태기산 표지석, 태기산 정상을 내려와 임도 옆 쉼터에 있다.
14. 태기산
15. 삼계봉 가는 길, 산죽 숲길이다.
16. 삼계봉 정상에 달린 산행표지기(일부)
산행표지기가 안내하는 잡목 숲을 잠깐 들추자 산죽 숲에 길이 춘향이 가르마처럼 잘 났다.
가파른 내리막이다. 어젯밤 내린 비에 젖어 미끄럽다. 갈지자 연속해서 그리며 내린다. 바닥
친 안부 지나고 아연 험로가 이어진다. 키 큰 산죽 숲이다. 길은 산죽 숲에 가렸다. 여기서도
발로 더듬어 길을 찾는다. 어제 내린 비를 소급해서 맞는다. 젖은 산죽 숲을 헤치자니 바지는
금방 다 젖어 칙칙 감긴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꽤 심하다. 봉봉을 올라도 아무 조망이 없는 그저 키 큰 산죽 숲이
다. 길게 올라 여러 봉봉의 맹주인 삼계봉이다. 홍천군과 평창군, 횡성군이 만나는 꼭짓점이
다. 산행교통의 요충지다. 덕고산을 넘어온 한강기맥과 태기산을 넘어온 영춘기맥이 여기서
만나 함께 구목령으로 간다. 주변 나뭇가지에 달린 산행 표지기가 110개 된다.
삼계봉 정상만은 산죽이 고맙게도 양보한 널찍한 공터다. 점심밥 먹는다. 당초에는 구목령
근처의 계류에 내려가서 물놀이하며 점심밥을 먹으려 했으나 가망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여기 삼계봉에서 구목령까지 이정표 거리로 3.72km나 된다. 고기 굽는다. 토요일 님이 잰 돼
지주물럭(?)을 넉넉히 가져왔다. 불판도 준비했다. 고기 잡을 집게와 자를 가위는 음식점용
으로 준비했다. 캐이 님은 버너를 준비했다. 두루 님은 어제 백석산 근처에서 곰취를 좀 뜯었
다. 술은 충분하다. 그러니 점심시간 1시간 30분이 짧기만 하다.
구목령 가는 길. 산죽 숲 유영을 계속한다. 발에 걸릴 통나무는 인계인수하며 간다. 1,090m
봉에서 홍천군에 든다. 그 오른쪽 옆 △1,148.2m봉은 평창군과의 군계다. 거기까지 편도
0.35km다. 킬문 님이 대표로 다녀온다. 인적 없는 산죽 숲을 뚫느라 무진 애를 쓰리라.
1,032.7m봉을 넘고부터 산죽 숲이 수그러든다. 일로 북진한다. 좌우사면이 가팔라 무디지만
나이프 릿지를 닮은 능선이다.
구목령으로 내리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바라본 오른쪽 구목봉(△1,203.2m)이 대단한
준봉이라 지레 주눅이 든다. 구목령. 임도가 지나는 안부다. 왼쪽 임도는 생곡리(피리골)로
가고 오른쪽 임도는 흥정리로 간다. 임도는 산허리를 도는 게 아니라 바로 골로 가서 계류과
함께 간다. 구목봉을 오를 것인가? 나는 오르는 데에다 지르고 세를 규합했으나 호응이 없다.
대세는 임도 따라 내리자다. 구목령에서 흥정계곡 입구까지 10km나 된다.
그럼에도 임도로 내리다 그 옆 계류에 들러 알탕하려는 유혹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사실 구
목봉은 오르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산모롱이 돌고 임도 절개지는 높은 절벽으로 길게 둘
렀다. 완만한 지능선을 잡으려면 상당한 거리를 내려와야 한다. 그 핑계로 구목봉을 놓아준
다. △1,148.2m봉을 들렀다 오는 킬문 님을 하릴없이 기다리느니 어서 가서 알탕하며 기다
리는 편이 낫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줄달음하여 내린다.
임도 양쪽 길섶에 줄지어 피어 있는 개망초가 우리를 응원하는 화초다. 그에 힘 받는다. 임도
갈림길이 나오고 다리 아래 계류가 째작하게 흐른다. 애벌 알탕한다. 이 개운한 느낌을 십분
살려 다시 줄달음하고, 흥정계곡 입구가 가까워서 임도 갈림길에 호수만한 소가 나와 물속에
풍덩하는 알탕한다.
햇볕에 나는 데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얼굴 들어 맞는다. 시원하다. 흥정계곡 입구 가
는 길에 봉화 택시 부른다. 흥정계곡 양지교를 건너고 택시 2대가이미 와 있다. 분승하여 평
창역으로 달려간다.
17-1. 구목령에서 바라본 운무산
17-2. 뱀무
18. 개망초, 임도 양쪽 길섶에 줄지어 피어 있는 개망초가 어엿한 화초다.
19. 물레나물
20. 햇볕 속에 소나기가 내렸다.
21. 흥정계곡
22. 평창역 가는 길에 뒤돌아본 백적산
첫댓글 올림포스산 정상에서 등산신들의 조우인가요. 면면이 화려합니다. 굿이에요.
널널하게 먹고 마시며 즐기셨군요...조망이 없는게 조금은 흠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