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 목도리>
누군가 길가에 누워 있었다
아버지가 차를 세웠다
몽실몽실한 긴 꼬리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족제비라고 했다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인 거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족제비를 잡아 털가죽을 팔았다고
털가죽으로 노란 목도리를 만들어 팔던 때도
있었다고
족제비는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 목도리
피가 묻은 목도리가
작은 입을 오물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어서 가자고
흉측한 걸 왜 보느냐고 손을 내저었다
햇살이 콧수염을 하나하나 매만지고 있었다
앞발과 뒷발을 그러모으고
족제비는 누워 있었다
저 뒷발로 땅을 짚고 서서
앞발을 들고 먼 데를 보다가
하루에도 몇 차례 늘어지게 하품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풀숲의 쥐와
풀잎 끝의 여치와
돌무더기 아래 뱀과
돌담 위의 새를
낚아챘을 것이다
산머루 같은 까만 눈으로 산머루를 바라보다가
지금은 길가에 누워 있는 족제비
아스팔트의 목을 감싸고 있는 목도리
- <동시마중>2022년 1.2월호
- <올해의 동시 2022>
카페 게시글
날마다 동시
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 목도리 / 안도현
히섶
추천 1
조회 96
22.11.30 20:33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