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가 통계학이니 아니니 말들이 많지만...
이것을 좀더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먼저 '통계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부터 규명해 들어가야 한다.
통계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인구가 몇명인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은 몇명인지가 통계학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통계학이란 대표적인 '귀납적 체계'의 적용 분야라는 것이다!
또한 통계학의 귀납체계는, A라는 현상과 B라는 현상 사이에 발생하는 인과성(因果性)이 모호하거나
불분명한 상태에서 적용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귀납체계와 차별성을 보유한다.
예를 들자면...
'경기지수가 나빠지면 미니스커트를 입는 여성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속설이 존재한다.
경기가 불황인 것과 미니스커트의 유행은 최소한 겉으로만 보면 아무런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경기가 나쁘니 옷감을 절약하기 위하여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혹자는 생물학적 관계에서 힘의 우위에 근거하여 여성은 먹을 것을 남성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 먹을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남성을 꼬시기 위한 잠재의식의 발로라는 설도 있으나, 물론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註: 물론 문명이 배제된 자연상태에서는 힘의 우위에 있는 남성이 여성보다 사냥감이나 물고기나 열매
등을 더 많이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판단이다.
만약 A라는 현상과... B라는 현상 사이에 명확한 인과성을 찾을 수 있다면
통계학적 효용성의 상당부분이 소실될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인과성은 최소한 표면적인 것이라도 논리적 정합성을 보유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리고 그 논리적 정합성은 당연히 '현상세계'에서 실증될 수 있어야 한다.
명리학에서의 문제를 몇가지 명제를 통하여 짚어보자
A명제: 육합이 있으면 두 글자가 각각 그 작용력이 약화되어 상실에 가까운 현상을 보인다
B명제: 월이나 시에 천문성이 있으면 활인업에 종사한다
만약 위와같은 명제가 모두 성립한다면...
위의 명제가 진리이기 위해서는 그 상황들이 현상계에서 인간이 6가지 감각소여(sence data)를 통하여 그 작용과정의 내재논리와 작용결과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A 명제(육합)의 현상계적 발현
1.육합을 이루는 글자는 위치상으로... 서로 정반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상대적 위치성'을 보유한다
2.그것을 지구에 비유하면 지축을 중심으로 한 '상대적 위치성'으로 볼 수도 있다
3.다시 말해서 지축을 중심으로 그어놓은 위도선과 유사성을 보인다
4.그것은 비슷한 기온분포라는 동질성과, 지역적 위치의 반대라는 이질성을 동시에 보유한다
5.밤과 낮의 길이 변화도 동일하고 계절적 변화도 동일하지만 위치성은 반대다
6.결국 음과 양의 질량적 보유량이 모두 같지만
7.그 보유량이 동일하다는 것은 거꾸로 모자란 부분을 보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가= 양 :70 , 음 :30
2)나= 음 :70, 양 :30
이렇게 음양의 측면에서 반대적인 질량적 보유량이 되어야 음양이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인데
1)가= 양 :70, 음 :30
2)나= 양 :70, 음 :30
이렇게 이루어지면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므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A명제인 육합은 최소한의 표면적 논리적 정합성과 동시에 작용력의 현상적 체험이 가능하므로
귀납적 통계학의 범주를 벗어나 연역적 합치성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B명제인 천문성은 어떠한가?
어떠한 표면적 논리성이나 현상적 체험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디
결국 통계학적 귀납성에 종속되는 결과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견강부회하여 괘 위치나 하도낙서 이론을 적용할 수는 있으나, 그것들이 과연 '현상적'체험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주가 통계학이냐 아니냐는, 그 표방하는 명제나 이론들이 얼마나 논리적 정합성과 현상적 체험성을 구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명리학자들이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통계학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귀납적이라고 해서 가치가 저하되고, 연역적이라고 해서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절대 아닌 것이다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모든 과학적 명제는 엄밀히 말하면 모두 가설(假說)에 불과하다'라는 현대물리학적 성과를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어차피 인간의 모든 지식은 불완전성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명리학이 세인에 의하여 학문으로서 대접을 받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그들이 말하는 '학문' 자체가 불완전 투성일 바에는!
오히려 명리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자세가 더 중요한 것이다.
결국 명리학의 가치는 '세인의 평가'와는 무관한 것이다.
학문이라는 평가와도 어쩌면 무관한 것이다.
학문이라는 옷을 입었건 아니건 명리학의 위대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통계학이든 아니든 그것이 무슨 대수랴!
잘 맞히면 되는 것 아닌가? ^^
첫댓글 참 답답하다.. 맞고 안 맞고의 문제가 아니라 음양의 이치를 논하는 학문을 그저 술로만 인정한다는 얘기인감 ㅠㅠ
음양의 이치는 통계는 아니지만 명리학이란 음양의 이치와 경험론적 지식이 더해진 것이다. 명리학은 종교가 아니라 엄연한 학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진부한 논쟁이 조선의 주리파와 주기파의 논쟁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논쟁으로 생각합니다.
끝줄의 말이 씁씁하게 만드네요. 잘맞추는것은 3년넘기지못한다느 울 스승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왜? 잘맞추면 3년을 넘기지못할까요? 그것은 사주를이용해서 맞추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치료를해야하는것입니다. 의사가 진단은 잘하는데 치료르랄수없는 의사라면 의사이기를 포기해야죠. 의사가 상담하면서 당신암이니까 6개월이면 죽을거야 직접적으로 얘기하지않거든요. 비록 죽을거라하더라도 희망을주면 더오래살수있는게 인간이거든요. 운이 않좋게 흐르더라도 희망을주어서 핻복을 스스로 만들게 하는것이 사주학문이며 사주 상담학이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일단 잘 맞춰야 합니다. 그래야 말이 먹혀 들어가니까요 그래서 죽을때까지 세심한 곳까지 잘 맞춰 볼려고 노력하다 세상 떠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잘 맞추지도 못하면서 인생이 어떻고 역학이 어떻고하면서 도사 흉내내려 하는 사람들은 언제고 개망신을 당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사람들이 바로 이 바닥의 쓰레기들입니다.
명리학자이시며 철학박사이신 XXX선생님의 책 첫머리에 " 본 학문의 생명이자 목적이라 할수 있는 적중률" 이라는 글이 적혀있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