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김창옥 교수의 책
“나는 당신을 봅니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심리상담가라고 소개한
어느 여성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사람들과의
원활한 상담기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저의 사무실로 찾아왔는데
말솜씨가 매우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 필요한 것은
상담기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 앞에서
이 이야기를 한적은 없습니다.
차마 남편에게도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오늘은 하고 싶네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사실 제 안에는
열두 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
제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
꿈에서 귀신이 쫓아 왔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무작정 뛰었고
당시 집 앞에 있던 강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때 다행히 뒤따라온 어머니가 저를 붙잡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용한 무당을 찾아가 굿을 했습니다.
더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무당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저의 가족들은 물놀이를 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시 아홉 살이던
남동생이 물에 빠져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저를 볼 때마다 ‘재가 죽었어야 하는데
아들이 죽었다’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몸과 마음이 얼어버렸습니다.
저를 대신해 동생이 죽었다는 자책감에
열두 살의 아이는 마음이 멈춰버렸고
그렇게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는 그렇게 얼어버렸고
지금까지 열두 살 아이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것입니다.
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듯이..
사실 동생의 죽음은
열두 살 아이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제 어른이 된 선생님께서
열두 살 아이에게 말해 주십시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입니다.
선생님은 심리상담을 위해
무언가를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선생님 안의
열두 살 아이가 얼어 있을 뿐입니다.
그 때문에 선생님께서 상담할 때
원래 가지고 있는 힘보다
절반밖에 안 나오는 것입니다.
열두 살 아이에게 괜찮으냐고 물어봐 주세요.
그리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해주세요.
그런 후에 그 아이를 한번만 안아주십시오.”
몇 달 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봄의 기운이 한껏 깃들어 있었습니다.
‘어머 선생님, 무슨 좋은 일이 생기셨나 봐요.”
“네, 저 며칠 후 수영장에 가기로 했거든요.
축하 받고 싶어서요.”
그녀는 열두 살 이후로
수영장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름마다
바닷가에 가고 수영장에도 가지만
그녀는 죄책감 때문에
평생 물가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똑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어쩌면
그녀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면
그대로 마음이 꽁꽁 얼어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어릴 때 즐겨 했던 ‘얼음땡’ 놀이 기억나세요?
술래가 잡으려 할 때 ‘
얼음’이라고 외치면 절대 나를 헤치지 못하지만
대신 누군가가 ‘땡’을 외쳐줄 때까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이 놀이처럼..
누군가가 나 자신에게 괜찮으냐고 물어봐 주고
자신의 상처를 꼭 안아주기 전까지
마음이 꽁꽁 얼어있습니다. .
얼음 상태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서
‘떙’을 외쳐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자신에게
‘땡’을 외쳐주는 것입니다.
김창옥 교수는
두 번째 방법을 권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땡’을 마냥 기다리고 있기엔
앞으로 남아있는 나의 삶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떙’을 외쳐주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괜찮니”’라고 물어봐 주고
‘괜찮아’라고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공포와 죄책감에 빠진 아이를
꼭 안아주는 것입니다.
김병삼씨는
그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왠지 자신이 초라해 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족감을 채워보려고 노력하고
고민하지만 영원히 채워지지 않음으로 인해
더 실망하고 아파하고 자신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 부족함을 채울 수 있을까?
우리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더욱 공허함을 느낄 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로부터의 세상적 인정에
목말라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고
날아가버리는 먼지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실수투성이, 상처투성이인
나를 알고 용납하시고
용서하고 인정하고 사랑합시다.
"그래도 괜찮아"
스스로 위로하고 앞으로 나갑시다.
그러면
자존감이 커지면서우리는 정말 괜찮아집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