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출처는 엔하위키 http://mirror.enha.kr/wiki/%EB%AC%B4%EC%8A%A4%ED%83%80%ED%8C%8C%20%EC%BC%80%EB%A7%90%20%EC%95%84%ED%83%80%ED%8A%80%EB%A5%B4%ED%81%AC
이고 자세한건 항목을 참조해주세요
저는 이 항목에서 대충 요약만 해볼게요.
오스만 제국의 장군, 갈리폴리 전투와 터키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터키의 국부.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1923년부터 1938년 사망할 때까지 15년간 재직했다.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문자정비와 문화 부분에서 세종대왕 + 전쟁관련해서 이순신이고 근대적 개혁자이며 정치력까지 포함하면 그냥 비교할 대상을 찾을 수도 없다. 제3세계에서 호치민 정도를 제외하면 비교대상을 불허하는 그야말로 먼치킨 지도자.
1. 1차대전 -대영제국과의 갈리폴리 전투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오스만 제국이 참전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결국 오스만 제국은 전쟁에 참전하고 그도 어쩔 수 없이 전선에 나선다.대령으로 진급된 그는 영국군이 상륙해서 오스만 제국을 점령하려고 하자 이를 갈리폴리 전투에서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전공을 세우고 군 지휘관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이 공로로 장군이 된다.
상대는 대영제국, 엄청난 해군전력의 지원(드레드노트로 대표되는 엄청난 질과 양의 함선들)과 정예병력들을 상대로 질적 수준이 형편없었던 오스만 병력으로 승리
2. 오스만제국 멸망, 터키 탄생
오스만 제국 술탄에게 거역하며 저항을 벌이던 군대 진압 및 민족주의 단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되려 휘하병력을 이끌고 토벌하려던 군대와 합류함
여론과 많은 군대들은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앞다퉈 그에게 합류하기에 바빴고, 1920년 4월 23일(이 날은 터키 공화국 건국기념일이다.) 케말은 군사 요충지인 앙카라에서 국민회의를 주최하고, 자신의 명성과 국민 정부의 명분을 바탕으로 군의 지지를 확보
군주의 폭정으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자 국민에게 합류하여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 탄생시킴
3. 구국(나라를 구함)
1차대전의 패배로 인해 오스만제국을 찢어먹고자, 열강들이 너도나도 군대를 파견하고 숟가락을 얹어대기 시작, 신생독립국인 그리스는 비잔틴의 고토회복(환빠?)을 노리고 침략해옴.
개판된 나라꼴(1차대전 패배+전후 혼란+외국의 간섭+왕정이 무너진 직후의 신생 공화국의 혼란등등...)을 극복하고 열세인 조건에서도 결국 외세를 몰아내는데 성공 (참고로 오스트리아는 나라가 산산조각남)
4. 근대화, 탈 이슬람화
강력한 정교분리, 세속주의 원칙을 펼침(지금도 그렇지만 사회 전반에 이슬람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상황이었음).
미국인 교육개혁자인 존 디웨이를 초빙해 자문을 얻고 여성교육 및 근대교육 정착에 힘쓴다. 1928년 11월 3일에는 복잡한 아랍 문자 대신에 알파벳을 쓰는 라틴 문자를 채택하는 언어개혁법을 통과
1930년에는 여성 참정권을 인정. 이 무렵, 아타튀르크는 히잡을 금지시키고 싶었는데, 이슬람 국가에서 히잡을 금지하면 반발이 클것으로 예상하고 제정된 법안이 모든 창녀는 히잡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었음.
5. 언행 일치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직계 자손도 남기지 않았다. 공화국 수립 이후 라티페 우샤키(Latife Uşşaki/1898~1975)라는 여성과 1923년 결혼했지만 자신이 자손을 남기게 될 경우, 이미 터키 국내에서 영웅시되고 있는 자신으로 인해 자신의 자손들이 대대로 대통령을 해 먹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끝에 2년만에 이혼하고 대신 양자와 양녀를 합해 8명을 들임. 죽은 후에는 자신의 재산의 극히 일부를 자신의 여동생에게 물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국가에 기부했다.
윗동네 돼지와 우리나라 독재자들과 참 비교되는 부분임
6. 기타
국제정세를 바탕으로 한 식견도 대단해서 제2차 세계대전에도 추축국 편에 서지 말 것을 당부했고, 당시 국제적으로도 평이 나쁘지 않았던 히틀러에 대해서도 제 정신이 아닌 인물이라고 평해서 그 본성을 궤뚫어 보았으며 무솔리니에 대해서도 "자기 국민의 손에 목이 매달릴 놈이지."라고 평했는데, 이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기 전에 머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급의 전쟁이 발발할 것이며 그 전쟁에 미국이 필연적으로 참전하게 될 것이고 미국의 손에 종결될 것이라 예상했다. 이쯤되면 그냥 예언자급.
7. 어록(주관적으로 몇개만 뽑아봄)
Memleketin efendisi hakiki müstahsil olan köylüdür.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서민들이다.
Ne mutlu "Türküm" diyene.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터키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Egemenlik, kayıtsız şartsız ulusundur.
권력은 조건없이 제한없이 인민의 것이다. (아타튀르크의 무덤에 새겨진 글귀)
첫댓글 모든 "창녀"는 히잡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오이거 진짜 머리 좋게 원리주의자들 통수날려준거네요ㅎㅎ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막히네
그러니까요ㅋㅋㅋ
진짜 훌륭하고 멋진 형님이십니다!!! ㅠㅠ
정말 우리나라에 이런 대통령이 한번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진정한 국부에요 ㄷ ㄷ ㄷ
갈리폴리 전투 당시 오스만 군은 독일 고문관들의 도움으로 상당한 수준의 무장을 갖추었었는데 말이죠 ㅇㅇ
그러긴 해도 케말이 유능한건 변하지 않습니다
영웅이 나타났다!
강희제도 제법 유능했는데....이분은 걍 무섭네요.
갈리폴리 전투에서는 드레드노트 투입 안하고 패기 안한 전-드레드노트 전함들을 부었습니다.... 일단 오스만 해군이 다르다넬스 해엽인근에 엄청난 기뢰를 깔은 데다가 지형도 끔찍하고 육,해군 지원도 잘 안맞는데다가 애초에 전쟁성 장관 이었던 육군의 키치너 원수는 이 작전에 회의적이었고 제1해군장관 원스턴 처칠이 밀어붙인 거라서 육군의 투입도 상당히 한정적인데다가 오스만 투르크도 갈리폴리가 털리면 바로 콘스탄티노플이라서 정말 온 힘을 다해 막은겁니다. 투입된 군대의 숫자도 무려 상륙작전인데 오스만 투르크 군을 과소 평가하고 6개 사단이 방어하는 지대에 5개 사단을 투입하는 병크 -- 를 터트리고
물론 케말도 19사단 지휘관으로써 큰 활약을 벌였고 안작만에서의 최초 전투에서 굉장한 성과를 거두는등 큰 활약을 벌였습니다만 일개 사단장이 양쪽 합쳐 거의 100만명이 투입된 작전에 혼자의 힘으로 승리를 거두게 할수는 없죠.
우리나라에도 구국의혁명을 일으키신분이 있죠
자기 입으로 나는 독재자다! 라고 말하기도 했죠. 독재자중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거의 유일한 인물.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독재자는 한 사람 밖에 없다는 점에서 독재같은걸 정당화하는건 헛소리라는게 더 방증될 뿐,
난 이사람 싫음 ㅠㅠ 비잔티움이 부활할수고 있었는데 ㅠㅠ
지금의 터키가 오스만 제국이 아니듯 지금의 그리스는 비잔틴 제국이 될 수 없습니다.
정치학 파다 보면 뵙게 되는 그분... 통찰력과 무욕, 청렴함은 확실히 동양에선 호지명 할배나 비교가능 하죠 ㅋㅋ
하악하악 이분은 빨아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