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한국 남자의 전통 정장 의상이 그러하였듯이, 예전 목사님들은 그냥 한복 두루마기만 걸치셨었는데... 하기사 "오직 너희는 택하신 族屬이요 王 같은 祭司長"(벧전2:9상)이라고 하는 평신도(laymen) '만인사제' 개념에 비추어 보면 '목사 제도' 자체도 잘못된 것이고...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들이 바로 진실을 드러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어느 분이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켜서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들이었다고 말하고 율법의 문제와 연관시키는데 사실은 그 바리새인 문제는 오늘날 목사들의 문제와 같은 것입니다. 목사들과 성경에 기록된 바리새인들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저희 옷술을 크게 하며 차는 경문을 넓게 하고 (마 23:5)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고, 시장에서 문안받기를 좋아하며, 랍비라 (선생) 불리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먹사들입니다. 이 먹사들은 소수의 목자들과는 구분해주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소수의 목자들이 양심대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름 대로 복장을 만들어서 입는 것은 일종의 구약 제사장들을 계승한 것이 오늘날의 목사요 사제라는 암시를 주기 위함으로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가 제사장들로서 십일조를 받아 챙길수 있고 여러 특권을 누릴 수 있으며 나머지 병신도들은 돈갖다 바치고 그저 순종하고 평신도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무언의 명령이기도 하다도 믿어집니다.
한때는 잘못 되었다고 뛰쳐나온 반만 개혁자인 후예들의 목사들이 다시 카톨릭과의 짝 사랑으로 향 로마 하고 있는 마지막때 입니다. 징그러운 가운에 대해 눈이 좀 띄여진 사람들로 인해 말이 많으니 이젠 또 많은 목사들이 '로만 칼라' 복장을 하고 다닙니다. 설령 가운과 가증한 로만칼라 복장을 벗고 평복의 차림을 한다 한들 성경에 없는 '목사'의 옷을 입고 있는한 크게 다를게 있을가 합니다.
자기손으로 친히 일하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이웃을 돌아보며 복음을 증거한, 그러한 바울과 같은이는 눈씻고 찾아볼수 없는 세상 입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들에게 이런 문제의 시정을 기대하면서 지적하는 것은 거기서 쫓겨날 것을 각오하고 마지막으로 할수 있는 말이지, 그 안에 공존하면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주 미련한 행동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그런 교회들에 대하여 밖에서 충분히 토로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첫댓글 한국 남자의 전통 정장 의상이 그러하였듯이, 예전 목사님들은 그냥 한복 두루마기만 걸치셨었는데... 하기사 "오직 너희는 택하신 族屬이요 王 같은 祭司長"(벧전2:9상)이라고 하는 평신도(laymen) '만인사제' 개념에 비추어 보면 '목사 제도' 자체도 잘못된 것이고...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들이 바로 진실을 드러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어느 분이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켜서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들이었다고 말하고 율법의 문제와 연관시키는데 사실은 그 바리새인 문제는 오늘날 목사들의 문제와 같은 것입니다. 목사들과 성경에 기록된 바리새인들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저희 옷술을 크게 하며 차는 경문을 넓게 하고 (마 23:5)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고, 시장에서 문안받기를 좋아하며, 랍비라 (선생) 불리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먹사들입니다. 이 먹사들은 소수의 목자들과는 구분해주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소수의 목자들이 양심대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위의 것들은 니골라당 (계 2:6, 15) 복장이고 아래 천주교 사제단의 것은 그마림 (스바냐 1:4) 복장입니다
이렇게 나름 대로 복장을 만들어서 입는 것은 일종의 구약 제사장들을 계승한 것이 오늘날의 목사요 사제라는 암시를 주기 위함으로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가 제사장들로서 십일조를 받아 챙길수 있고 여러 특권을 누릴 수 있으며 나머지 병신도들은 돈갖다 바치고 그저 순종하고 평신도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무언의 명령이기도 하다도 믿어집니다.
예수님이나 그분의 제자들이 이런 복장을 입고 전도하러 다니셨다고 믿어집니까?
"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고전 4: 11-12)
한때는 잘못 되었다고 뛰쳐나온 반만 개혁자인 후예들의 목사들이 다시 카톨릭과의 짝 사랑으로
향 로마 하고 있는 마지막때 입니다.
징그러운 가운에 대해 눈이 좀 띄여진 사람들로 인해 말이 많으니 이젠 또 많은 목사들이
'로만 칼라' 복장을 하고 다닙니다.
설령 가운과 가증한 로만칼라 복장을 벗고 평복의 차림을 한다 한들 성경에 없는 '목사'의
옷을 입고 있는한 크게 다를게 있을가 합니다.
자기손으로 친히 일하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이웃을 돌아보며 복음을 증거한,
그러한 바울과 같은이는 눈씻고 찾아볼수 없는 세상 입니다.
'로만 칼라'를 저는 '차아니 칼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또 하나 알아 갑니다.
여튼 목사들은 너희들과는 달라~~라는 메시지(어투로, 옷으로...)를 주려고 무진장 애를 씁니다.
여튼 여러모로 티를 내려고 합니다..나는 단하에 앉아 마냥 아멘 하고 있는 당신들과는 다른 사람이야....
나는 모태신앙이야...모태신앙은 원래가 미직지근해....
교회에서 예수님 위에 앉은 사람이 바로 목사입니다.
그들은 구원, 회개, 말씀을 지킴, 죄, 지옥 같은 것은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만 열심히 나오고 십일조 기명으로 꼬박꼬박 잘 바치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쳐 줍니다.
목사들은 자꾸 변합니다..박진석 목사도 사랑의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기쁨의 교회가 작은 교회라고 했습니다..물론 사랑의 교회보다는 작지만, 그 교회가 결코 작은 교회가 아닙니다.
좋은 목사님들도 자신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조금씩 변함을 느낍니다.
<< 이 권세는 곧 교회안의 권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며 한번 섬김의 맛을들인 목회자를
성도들이 비판하거나 견제하려 권면을 하다가는 사탄의 앞잡이란 모함을 듣기 십상이다. >>
교회 안에서 목사들에게 이런 문제의 시정을 기대하면서 지적하는 것은 거기서 쫓겨날 것을 각오하고 마지막으로 할수 있는 말이지, 그 안에 공존하면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주 미련한 행동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그런 교회들에 대하여 밖에서 충분히 토로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런 옷장사들이 번성해야 또 산업이 발달하겠지요? 불교 석상들과 카톨릭 마리아 상들 등 여러 우상 산업에 의존하는 인구가 ( 행 19:25 )
종교인들이여 가운을 벗어라~
먹칠하는 사람들은 목사가 아니며, 삯꾼을 목사로 호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먹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