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小花) 데레사’로 알려진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873년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태어났다.
1888년 열다섯 살에 리지외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결핵을 앓다가 1897년 스물네 살에 세상을 떠났다.
비록 수도 생활은 짧았지만 그는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고 고행했으며,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였다.
그는 죄인들의 회개와, 사제들,
특히 먼 지역에 가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발표된 병상 저서들은
세계 곳곳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께서 그를 시성하시고,
1929년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셨으며,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셨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고자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 일행을 거절한다.
제자들은 격분하여 벌을 내리기를 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돌아가신다
(루카 9,51-56).
예수님의 제자들이 의기양양해 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수많은 기적들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임금이 되시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시대가 오리라는 기대마저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걸어서 사흘 정도 걸리는데
사마리아 지방을 가로질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가는 길에 사마리아에서 길이 막힙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의 희생자들입니다.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수도 사마리아는 끝까지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처형되었고, 주민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아시리아는 사마리아에 다른 민족을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남은 유다인들은 그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예루살렘 중심의 남쪽 지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족의 순수성을 더럽힌 집단으로 여겼고, 유다인으로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사마리아인들도 증오심으로 대했고,
독자적인 종교 예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푸대접에 분개합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제자들 자신들에게 그럴 만한 능력도 없으면서 이러한 말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다른 곳으로 돌아가자고 하십니다.
사마리아인들의 마음을 이해하신 겁니다.
그분의 깊은 배려였습니다.
‘길이 아니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정의를 내세워 폭력으로 누르고 뚫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사랑의 길이 아니면 돌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다리고 참으며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우리 안에 잠재된 분노와 폭력성이
정의라는 탈을 쓰고 종종 그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런 예수님의 큰마음을 우리는 언제나 배울 수 있을는지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9,51)
예수님께서
하느님 곁으로 가실 시간이
다가왔음을 아시자,
마음이 서둘러
고향 예루살렘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네.
우리도
천국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아채게 된다면,
거칠고 사악해진
우리의 마음이 먼저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하리.
- 김혜선 아녜스 -